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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140 vote 0 2003.08.28 (21:15:32)

『누가 그이들을 울게 하는가? 우리의 작은 방심이 그이들을 힘들게 했다. 반성이 있어야 한다』

북한선수단이 경북 예천 인근의 도로상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새겨진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울면서’ 현수막을 철거해 갔다고 한다.

현수막에는 한반도기와 함께 김정일과 김전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고 “북녘동포여러분 환영합니다. 다음에는 남녘과 북녘이 하나되어 만납시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을 뿐이다.

태극기가 비를 맞아도 괜찮은 걸로 되어 있는 남쪽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그 일행에는 150명의 응원단과 11명의 선수가 있었다. 그 중 누구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 나머지 160명도 같이 울어야만 한다. 경쟁적으로 대성통곡을 해야한다. 북한은 그런 사회이다.

왜 불필요한 마찰이 계속되는가? 북한은 한 사람이 울면 모두가 같이 울어야만 하는 사회, 극단적으로 행동통일이 요구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숙소에 잠입해서 화투장을 밀어넣었다는 북측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북쪽 관계자가 긴장이 풀어진 응원단을 모아놓고 군기를 세게 잡은 걸로 봐야 한다.

작년만 해도 북한 응원단은 만경봉-92호 선상에 묵었다. 즉 그들이 비로소 남한 땅을 밟은 것이다. 이 의미를 결코 과소평가해서 안된다. 한 두명도 아니고 300명이다. 선수단까지 포함하면 무려 500명이나 된다.

그것도 여론파급력이 있는 북한 상층부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북으로 돌아가서 남쪽에서 보고 들은 바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우리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생각하면 실로 대단한 사건이다.

89년 임수경의 방북만 해도 그렇다. 겉으로 그들은 체제우월을 과시하고 승리를 외쳤을지 모르나 속으로는 무너져 내렸다. 임수경 한 사람의 역할이 부시의 크루즈미사일 100기 보다 크다. 그 정도로 북한은 외부에서의 충격에 대한 내성이 없는 사회이다.

닳고 닳은 우리가 순수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노랑머리에, 외제품홍수에, 사치스런 복장에, 자유분방한 행동에.. 북한과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녀들은 한편으로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한편으로 긴장이 풀어졌을 것이며, 위에서 판단하기를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엄한 내무사열을 실시했을 것이다.

그 결과 화투장 따위가 발견된 것이며 누군가에게 책임이 추궁된 것이다. 우리 눈에 띄지 않게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남쪽의 관객들 중에는 북한응원단에게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건네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심코 건네는 작은 선물이지만 그녀들에겐 목숨을 건 도박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선물을 받으면 곧 “모든 사람이 선물을 받아도 되는가? 아무 선물이나 받아도 되는가? 선물 받은 사실을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가? 선물을 개인적으로 소유해도 되는가?”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된다. 북한은 그런 나라이다.

우리는 선의가 그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중해야 한다. 어른스럽게 처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숭이 아니라 진짜로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북한응원단이 남쪽에 왔다. 처녀총각이 맞선을 보는 것과 같다. 처녀가 맞선장소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내숭을 떠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에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이다.

지금 북한응원단의 처지가 그렇다. 북측 신문기자들 중 일부는 응원단을 감시하기 위하여 보내진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응원단도 감시원도 하나같이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이다. 일, 이십명도 아니고 무려 500명이나 되는 사람을 통제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안그래도 그녀들은 지금 힘들다. 우리가 그들을 초대했다. 우리에게는 손님을 편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는 법이다. 마땅히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적극 헤아려야 한다. 우리는 그만큼 성숙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말이다.

독일인 의사 폴러첸씨가 남의 나라에 와서 정권교체 운운하고 있다. 우리를 어느 오지나라 원주민 쯤으로 여기는 발상이다. 고맙긴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않다. 100만표를 가져다 바치려면 내년 총선 때나 가서 그런 멍충이 짓을 해주기 바란다. 독일로 돌아가는 길에 이왕이면 황장엽도 데려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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