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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6797 vote 0 2006.07.12 (16:08:03)

 


지단의 고독


“내가 누군지는 나 자신도 말하기 쉽지 않다. 나는 매일같이 내게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나를 언제나 자문한다” - 지단 -


그는 왜 박치기 카드를 썼을까? 박치기의 순간 그는 퇴장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무수한 비난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버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새디즘과도 같다. 정체성의 고민에 빠진 자의 위악적인 자기학대.

김기덕 영화의 주인공들은 위악을 저지르는 방법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묻는다. 그것은 아이가 본의와 무관하게 집을 떠나는 마음과도 같다.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났을 때 누가 맨 먼저 자신을 불러줄 것인가? 엄마가 “이놈의 자슥 이리 안올래!” 하고 꾸짖는다면 그곳에 자기의 정체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면? 떠나야 한다. 아주 멀리 떠나야 한다. 어디까지? 외계까지. 지구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넓은 지구 어디에도 그를 받아들여줄 단 한 뼘의 땅이 없다. 그 순간 외계에서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다. 지구를 떠나고 싶다. 환멸이다. 받아버려야 한다.

그는 알제리인이다. 그의 부모는 알제리를 배신하여 프랑스편에 붙어서 싸웠다. 수십만의 알제리인이 프랑스인의 학살로 희생되었다.

똘레랑스가 눈꼽만큼도 없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학살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프랑스는 같은 알제리인끼리 서로 죽이게 교묘하게 유도했다.

- 프랑스에 똘레랑스가 눈꼽만큼 있다고 말하는 얼간이도 지구상에 더러는 있다. 기가 막힌 역설이 아닌가? -

그의 정체성은 알제리에 있다. 알제리 대표팀으로 뛰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그의 존재가치를 극대화 한다.

그는 알제리를 떠났고 알제리는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알제리의 그 누구도 자상한 엄마의 표정으로 “이놈의 자슥 빨리 안돌아올래!” 하고 나무래주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편에서 싸웠다. 이 방법으로는 그의 존재가치를 극대화 할 수 없다. 그는 승리했지만 그 승리는 가짜 승리다.

그것은 용병이 남의 나라 전쟁을 이겨준 것과 같다. 그는 승리의 끝에서 진한 고독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승리의 크기에 비례해서 고독의 깊이는 깊어간다.

한국인 역도산은 일본에서 성공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고독해졌다. 그 어떤 한국인도 “신락이 이놈 고향에 안올래!“하고 꾸짖어주지 않았다.  

한 훌륭한 한국인 스승이 있어 “네 이놈” 하고 역도산의 귀싸대기를 때려주기 바랬지만 그 어떤 한국인도 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 일본을 떠나고 싶어졌다. 그 방법은 그만의 왕국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제 3국인이 되고 싶었다.

역도산의 리키 스포츠 센터는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비밀왕국이다. 그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역도산국의 왕이 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 방법으로만이 그의 고독의 진주는 알알이 열매맺을 수 있다. 지단 역시 같은 심리에 빠져버렸다. 그의 가슴 속에 쌓인 슬픔의 진주를 빛나게 하기.

김기덕의 모든 영화의 주인공이 그러하듯이 자기만의 은밀한 섬으로 도망하든가 자궁 속으로 퇴행하든가 아니면 지구를 떠나든가다.

그는 정체성의 고향을 찾아 끝까지 더듬어 가보기로 했다. 자신을 찾아 자신의 엄마를 찾아 엄마의 자궁 속으로 퇴행하고 싶어졌다.

그 방법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그는 유년의 아기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박치기 초식을 사용한 것이다.

정체성의 의문에 빠진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기현시적인 일탈을 저지른다. 자신의 뿌리를 배반하며 한편으로 그 뿌리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는 엄마를 부정하고, 조국을 부정하고, 고향을 부정하면서 한편으로 엄마가, 조국이, 고향이 자기를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나 고향은, 조국은, 엄마는 끝내 불러주지 않는다. 이때 어린아이와도 같은 퇴행을 저지른다. 한편으로 자기만의 은밀한 왕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마이클잭슨이 이상한 왕국을 만들었듯이 말이다. 스눕 도기 도그가 또래들의 무리를 데리고 다니듯이 말이다.

지단은 축구 속으로 도피했다. 축구가 그의 새로운 고향이었고, 축구가 새로운 엄마였고, 축구가 새로운 조국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섰다.

정상에 섰을 때 그는 깊은 허무를 느꼈다. 그는 자신이 축구라는 허구의 왕국 속으로 도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박치기는 그가 그의 전부인 축구를 부정한 것이다. 그렇게 자기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최후의 긍정을 찾아나선 것이다. 고독한 자의 위악은 항상 그러하다.

지구 상 어디에도 지단을 받아들일 한 뼘의 땅은 없다. 어린 왕자의 소행성 B-622호로 되돌아가는 수 밖에.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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