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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7404 vote 0 2006.01.17 (20: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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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래 내전과 가뭄으로 100만명이 굶어죽은 수단 남부. 아요드의 식량센터로 가는 길에 쓰러진 소녀. 그리고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검은 독수리. 그 사진을 찍은 카메라 기자 케빈 카터.


카터는 1994년에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단숨에 스타가 되어 뉴욕 처녀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33살 한창 나이에 자살했다. 왜?


처음에는 영광과 찬사가 쏟아졌고 그 다음에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질문을 던졌던 거다. 그 소녀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소녀는 죽었다.


소녀의 죽음이 그의 책임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소녀의 죽음을 이용한 셈이 되어버린 거다.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렸듯이 카터도 기다렸던 거. 그 소녀의 죽음을.. 아니면 특종을 혹은 퓰리처상을.


카터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사려깊게 행동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카터를 비난할 일이 아니지만 퓰리처상 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에 처한 인간을 카메라에 담기 이전에 그를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기자의 윤리를 담은 또다른 헬싱키 선언이 있어야 한다.


휴머니즘의 결여다. 인간의 죽음을 팔아 명성을 얻고 치부를 한다면 슬픈 거다. 물론 카터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선의에 따른 행동이라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911테러 때다. 쌍둥이 빌딩이 폭파될 때 특종을 찍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기자들. 물론 그 상황에서도 기자는 사진을 찍어야 하겠지만 섬뜩한 거다.


다이애나비의 죽음 때도 파파라치들은 악착같이 사진을 찍었던 거다. 특종을 잡기 위하여. 돈을 벌고 명성을 얻기 위하여. 이건 섬찟한 거다.


MBC PD들의 행동이 카터를 연상하게 한다. 위기상황에서는 그 위기에서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PD들의 최초보도가 잘못은 아니지만 그 이후 PD수첩의 죽이기식 보도를 통한 자기합리화 그리고 최문순 사장의 행동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거리에서 폭력배를 만나 구타를 당하는 등의 위기에 빠졌을 때 아무도 구하려들지 않고 모두들 휴대폰을 꺼내 폰카로 사진이나 찍어대고 있다면? 이와 비슷한 일이 얼마 전에 실제로 있었다.

 



[열린세상] 황교수만 주저앉히면 되나 [서울신문 박강문 칼럼]


“황교수만 주저앉히면 된다.” 이것이 목표였던 사람들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 같다. 철저히 부서진 황우석 교수가 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과 관련하여 작년 12월부터 달포 이어진 논란, 즉 문화방송 ‘PD수첩’ 1∼4편, 그 사이의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의 폭로 기자회견,YTN의 보도,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 숱한 보도기사들, 다시 12일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실망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 배를 탔던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에서 더욱 그러했다.


특히, 공동저자로 들어가 한때 영광을 함께 누린 사람들 일부가 표변하여, 몰리는 황 교수의 등에 비수를 꽂는 것은 볼썽사나웠다. 난자 채취 과정이나 논문 데이터의 부적절한 처리보다, 이것이 더 큰 윤리적 파탄이라고 생각된다.


논문의 과오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나, 함께 연구한 동료에 대한 인신공격과 감정 실린 폄하는 인간관계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영광은 함께 하되 불명예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이기심을 학자들에게서 보았다.


논란의 과정에서 또 느끼는 것은 ‘거칠다’는 것이다. 황 교수를 몰아대는 쪽의 태도에서 크게 느껴졌다. 국제 특허와 상업적 이익 등에 대한 주도권 다툼,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한 생명윤리 문제 등 복잡하게 얽혀 있을 이 미묘한 사건을 다룰 때는 좀더 신중해야 했다.‘조작’을 폭로한다는 ‘PD수첩’의 보도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조작’이 폭로당하기도 했다.


네티즌이 만든 ‘동네수첩’의 등장은 기성 언론매체의 ‘거’에 대한 저항이다. 난자 기증 동의서를 텔레비전 화면에 내보일 때 일부만 보여줌으로써 마치 연구원의 난자 채취를 강요하려고 쓴 문서처럼 보이게 한 속임수는 네티즌이 문서 양식을 통째로 보여줌으로써 들통났다. 황 교수 농장의 쇠고기 회식을 무슨 거창한 잔치처럼 보여준 것은 본질하고는 상관없는 인신공격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우석 영웅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매체들이, 김선종 연구원에게 입원비와 귀국비용으로 쓰라고 황 교수가 보내준 3만달러(3000만원)를 거액 회유 비용이나 되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거’은 서울대 조사위원회 정명희 위원장의 발표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황 교수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보고서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마저 가치를 축소하여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는 정확하지도 않고 진중하지도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뉴캐슬 대학 언급 부분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문제의 초점은 황 교수가 이룩한 원천기술 존재 유무와 황 교수가 주장하는 배아줄기세포 바꿔치기 여부인데, 서울대 조사위는 뒤의 문제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제까지 진행된 상황으로 보면 문제는 미즈메디와 연결된 부분에서 일어났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수인데도 조사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자체 조사의 한계일 것이다.


검찰은 황 교수가 요청한 김선종 연구원 등에 의한 바꿔치기 수사를 즉각 시작하지 않고 서울대 조사위 결과를 지켜 본 다음에야 수사를 시작했으나,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서는 이와 관계없이 서둘러 증거 확보를 위한 압수 수색을 했어야 옳았다.


이제까지 ‘조작’을 폭로하거나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무엇이 보호되어야 하느냐.’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과오는 철저히 찾아 징벌해야 하지만 이것에만 쏠려, 반드시 보호되어야만 할 가치를 함께 불에 싸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나머지 진상 규명은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의혹을 모두 털어내면서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신중하고도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황 교수만 주저앉히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황 교수와 함께 주저앉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박강문 교수 서울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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