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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2647 vote 1 2013.02.04 (00: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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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오브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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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건 숨은 전제다. 예컨대 많은 영화평들은 작가가 정답을 알고 있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작가도 정답을 모른다.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정답은 있다.


    그리고 작가는 정답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관객들은 영화 속의 장치들이 정답에 대한 단서가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그러나 장치들은 그냥 장치일 뿐이다. 작가가 관객에게 힌트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작가도 정답을 모르는데 무슨 힌트? 장치가 들어가는 이유는 그게 들어가야 할 지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화의 여러 장치들은 관객이 정답을 찾도록 돕는다. 관객이 스스로 정답을 찾을 확률을 올려준다.


    작가는 그냥 영화를 만든다. 여러 장치들은 감독의 노림수와 상관없이 영화 자체의 결을 따른다. 영화 자신에게 필요한 거다. 영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라. 자기를 배제하고 영화입장에서 보라.


    1) 어느 쪽이 진실일까?
    정답 - 첫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다. 두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다. 잘못된 전제다. 숨은 전제를 까발리라. 영화는 거짓이다. 더 그럴듯한 거짓이 진실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거짓같지 않으므로 거짓이다. 거짓이 아니면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픽션이고 픽션에 충실해야 완전성과 맞다. 영화 안에서는 픽션에 충실한 첫 번째가 이야기가 파이의 진실이다.


    두 번째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감독의 암시에 걸렸다. 숨은 전제에 홀려서 감독이 논픽션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논픽션으로 착각한다. 영화는 픽션이고 픽션이어야 한다. 그래야 도리어 완전하다.


    2) 믿음이란 무엇인가?
    정답 – 완전성이다. 이 영화는 믿음에 대한 영화다. 그런데 믿음이 뭐지? 의심할수록 믿음도 분명해진다는 표현이 있지만 작가의 구라다. 의심은 의심이고 믿음은 믿음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는가이다.


    만약 어떤 유딩이 ‘왜 늦었느냐’는 교사의 추궁에 ‘오다가 악어를 만났다’고 답한다면 그는 정말 악어를 만났는가? 유딩이 거짓말을 하는가? 교사는 유딩을 믿어야 한다. 유딩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상황을 총체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호랑이와 나 사이의 대척점을 지운다는 말이다. 호랑이가 반대편에 있고 내가 이쪽에 있다면? 그 경우는 부당하게 자기를 개입시킨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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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과 거리가 가까운 쪽이 앞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배를 타고 있다면 이물이 앞이고 고물은 뒤다. 자동차를 타고 있다면 운전석이 앞이다. 마차를 타고 있다면 말이 있는 쪽이 앞이다. 앞은 정해져 있다.


    당신 마음대로 앞을 정하지 마라. 그러나 대부분 자기 맘대로 앞을 정한다. 자신을 대상의 맞은 편에 포지셔닝 하여 두고 그 사이에 대척점을 띄운다. 그러므로 망가진다. 그게 포착해야 할 숨은 전제다.


    왜 당신 멋대로 당신과 가까운 쪽이 앞인가? 누가 정했는데? 정신차리기다. 교사가 ‘오는 길에 악어를 봤다’는 유딩의 말을 안 믿는다는 것은, 자기와 유딩 사이에 피아를 구분하는 대척점을 띄워버린 거다.


    왜 거기다 대척점을 세우는데? 누구 맘대로? 왜 거기서 피아구분이 들어가? 유딩이 남인가? 엄마가 아기의 말을 믿는 것은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아구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척점을 띄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믿음은 완전성을 따른다. 사건 자체의 결을 따라야 한다. 바다를 믿어야 하고 호랑이를 믿어야 한다. 바다 입장에서 생각해야 바다를 믿을 수 있고 호랑이 입장에서 생각해야 호랑이를 믿게 된다.


    그대가 바다의 맞은 편에 서는 한 그대는 바다을 이길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바다는 그대를 심연에 던져버린다. 호랑이의 맞은 편에 서는 한 그대는 호랑이를 이길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호랑이에 물린다.


    신의 맞은 편에 서는 한 그대는 신을 믿을 수 없다. 그대가 신을 믿노라며 증거대는 즉 그대는 신의 맞은 편에 선 것이다. 그대는 신이 보는 풍경을 보지 못한다. 신이 보는 풍경을 봐야 신을 믿는 것이다.


    그대는 당하고 만다. 운명에 치인다. 세파에 치인다. 희망과 야심을 말소했을 때 비로소 보일 것이다. 무엇이? 운명이, 호랑이가, 바다가. 그리고 지켜보고 있는 신의 시선이, 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다.


    3) 신의 시선을 의식하는가?
    이 영화는 지켜보는 신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지켜보는 시선을 포착하려면 신의 앞쪽이 당신의 앞쪽이어야 한다. 당신의 앞쪽이 앞이라고 믿는 한 당신은 신을 이해할 수 없다. 운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는 호랑이를 이해할 수 없다. 바다를 이해할 수 없다. 독자를 이해할 수 없다. 유권자를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 경우 그대는 반복하여 자기 자신에게 속는다. 게임에 패배한다.


    호랑이는, 바다는, 운명은, 세상은, 시련은, 신은, 우주는 당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기 앞을 가진다. 배는 이물이 앞이다. 비행기는 조종석이 앞이다. 지구는 날짜변경선이 앞이다. 동경 180도가 지구 앞이다.


    세(勢), 법(法), 술(術)이 있다. 술(術)은 대상의 맞은편에 포지셔닝 한다. 그리고 대척점을 띄운다. 호랑이의 맞은편에 서서 호랑이를 길들이려고 한다. 호랑이는 배를 타고 그대는 뗏목을 타고 서로 마주본다.


    서로 으르릉거리며 대치한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는 끝내 호랑이를 길들이지 못한다. 자기 앞을 앞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별도로 호랑이앞을 가지기 때문이다. 둘은 영원히 평행선을 그린다. 교착된다.


    그 경우는 호랑이가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그대로 죽도록 놔둔다. 그리고 파이 혼자 항해한다. 결국 파이는 바다에서 죽는다. 술로는 요행히 호랑이를 제압할 수 있다 해도 바다라는 더 큰 호랑이를 만난다.


    호랭 다음에 호랭2가 있고 호랭3이 있다. 바다가 호랑이고 세상이 호랑이고 운명이 호랑이다. 그대는 어떤 경우에도 패배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온통 호랑이 소굴이기 때문이다. 똥밭에서 탭댄스를 춘다.


    법(法)은 호랑이를 길들인다. 호랑이와 한 편이 된다. 바다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준다. 그것은 배의 이물이 앞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그러나 속았다. 이물은 앞이 아니다. 배가 후진할 때는 고물이 앞이다.


    배가 진행하는 방향이 앞이다. 자동차가 가는 방향이 앞이다. 후진할 때는 반대로 뒤가 앞이다. 파이는 결국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 호랑이가 파이를 먹지않은 이유는 맛있는 도시락을 아껴두는 이유와 같다.


    호랑이는 조금 더 배가 고팠을 때 파이를 잡아먹는다. 세상은 그대를 잡아먹는다. 결국 운명에 치이고 만다. 세상에 속고 만다. 그대의 믿음은 깨지고 만다. 호랑이 맞은 편에 서도 죽고, 같은 편에 서도 죽는다.


    호랑이의 맞은 편에 서면 싸우다가 물려 죽고, 같은 편에 서면 착취당하다가 말려 죽는다. 파이는 낚시로 참치를 잡지만 호랑이에게 빼앗긴다. 호랑이는 참치를 먼저 먹고 다음에 후식으로 파이를 먹어치운다.


    ◎ 술(術)은 자기 앞을 앞이라고 한다. - 투쟁하다 죽는다.
    ◎ 법(法)은 배의 이물이 앞이라 한다. - 착취당해 죽는다.


    선원은 자기 앞이 앞이라고 한다. 기관장은 이물이 앞이라고 한다. 선장은 목적지가 앞이라고 한다. 선원은 그 배의 목적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기관장도 그 배의 도착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선장만이 앞을 안다.


    술은 선원의 마음이요 법은 기관장의 마음이다. 선장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호랑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다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신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는 시선을 얻어야 한다.


    살아남는 방법은? 부단한 항해 뿐이다. 앞도 없고 뒤도 없다. 원래 없다. 부단히 항해함으로써 앞은 그 순간에 만들어진다. 그대가 앞을 만들어내야 한다. 부단한 상호작용으로 가능하다. 멈추는 순간 죽는다.


    이 영화의 정답은 생존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고 신의 지켜보는 시선이며 그것은 신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다. 멈추지 않는 항해다. 그 방법으로 앞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직 그대가 만들어낸 것만이 진짜다.


    ◎ 하수의 술 – 자기앞을 앞이라고 한다.
    ◎ 중수의 법 – 운전석을 앞이라고 한다.
    ◎ 고수의 세 – 전진하여 앞을 창조한다.


    그렇다. 술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법으로도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명박의 꼼수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노무현의 원칙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부단한 상호작용만이, 부단한 항해만이 최후에 승리케 한다.


    그것이 신의 지켜보는 시선이다. 항해를 멈추는 순간 그대는 죽는다는 사실. 그래서 세(勢)다. 세는 파죽지세와 같다. 멈추지 않는다. 외부의 에너지 자원을 끌어온다. 부단히 호흡한다. 생명의 본은 세(勢)다.


    지구에 첫 생명이 탄생한 이후 세는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처음 탄생한 하나의 세포가 아직까지도 증식하고 있다. 무수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지만 세는 계속 간다. 그러므로 계속 가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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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가 앞입니까? 자기 앞을 앞이라고 믿는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함께 큰 배를 타고 있습니다. 배의 이물이 앞이라고 믿는 사람도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진짜는 부단한 상호작용에 있습니다. 배가 가는 방향이 앞입니다. 답은 신과의 부단한 대화 속에 있습니다. 신이 보는 시야를 당신이 볼 때 앞은 거기에 있습니다. 신의 맞은 편에 서는 한 당신은 불안해하며 신을 믿는다는 증거를 대려 할 것이고, 그 경우는 영원히 신이 보는 풍경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이 가는 방향을 보지 못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최호석최호석

2013.02.04 (01:42:14)

시원한 시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2.04 (05:43:18)

신과 같은 방향을 보자.
신은 내 등뒤에 있고, 이때는 후광이 되고(같은 편이 됨, 세를 이룸)... 이때의 신과 내가 결따라 크로스되어 같은 방향을 볼때 편안해진다. 이것이 그 흐름위에 세위에 올라타 항해하는 것.
[레벨:6]토마스

2013.02.04 (13:36:51)

 

어느 바보 감독이 비현실적인 드라마틱한 만화같은 일어나기 어려운

이야기를 힘들여 영화로 만들어 놓고 끝에가서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라고

할까요

 

이안은 그런 바보가 아닌데 그럼에도 '두 번째 이야기가 진짜였다'라고

영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혹시나 그런 사람은

절대 영화감독 되면 안될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2.04 (13:38:25)

사실은 거짓말이었다고 했다가 망한 바보 감독 장선우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2.04 (13:58:20)

사실과 진실의 대결.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2.05 (05:06:44)

그대가 바다의 맞은 편에 서는 한 그대는 바다을 이길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바다는 그대를 심연에 던져버린다. 호랑이의 맞은 편에 서는 한 그대는 호랑이를 이길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호랑이에 물린다.

여기서 ..바다을-> 바다를...? 이지 싶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2.05 (05:26:10)

사실과 진실의 대결에서...
이를 현실에 대입해 본다면...

장준하가 죽었다. 추락사로 죽었다 -> 사실...보여진 부분....의심.
장준하는 해머에 맞아서 죽었다-> 진실...보여지지 않은 부분....믿음.

박정희가 죽었다. 김재규가 총을 쐈다. 김재규 나쁜 놈...사실... 보여진 부분...의심.
김재규는 총을 쐈다. 독재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겼다...보여지지 않은 부분...믿음.

대체로 우리 사회는 사실만을 부각시키고 진실은 수장시키는 방식을 써왔음.
그런데 진실은 계속해서 위로 솟구치는 방향을 가지고 있음.
사람들 마음에서도 진실은 송곳처럼 날카롭게 헤집고 돌아다님. 나오고 싶어서 그러는 것음.
여기에 반응하는 이들은 진실이 수장되면 괴로워서 못산다고 여겨짐.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이 아니라 송곳처럼 쑤시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에 한곳을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진실의 방향성이 이러하다면... 사실은 사실 그 자체로서 이미 은폐가 이루어지고 있음. 쇼크가 바로 전달되기 때문임. 인식하기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 그래서 속이기가 쉬워지고 감정에 충실해지고 감정에 굴복해버림.

사실과 진실에서 진실이 객관화라면 사실은 주관화라고 여겨짐.
사실주의는 엄밀히 말해 진실주의 임.
변해버리는 것을 강한 임팩트를 주어 변하지 않게 강렬함을 담음. 오히려 이것은 진실을 담으려는 것과 같다고 보임.

보통 사실이 변하지 않고 객관적이라 여겨지지만 역설이 작용한다. 사실은 변하고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3.03.10 (01:01:58)

어쩌다 영화라는 걸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였소.  이안감독 작품이었군요.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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