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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56 vote 0 2020.11.25 (12:19:54)

      

    원자론과 진화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사건이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복제다. 원자 개념은 옛날 사람의 막연한 설정이다. 당연히 설정오류가 심각하다. 작가들은 설정오류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묵살한다. 원자는 영혼이나 귀신처럼 대강 가져다 붙인 관념이지 과학적으로 엄격하게 비판된 개념이 아니다.


    영혼으로는 가족의 결속을 도모할 수 있고 귀신으로는 전염병과 정신질환을 설명할 수 있다. 필요하면 지어낸다. 고대인의 대충 둘러댄 말이 현대인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면 슬픈 일이다. 세상은 자연수로 되어 있다고 치자. 그냥 그렇게 가정해 보는 거야. 자연수 1은 쪼갤 수가 없다. 원자는 쪼갤 수 없다.


    아닌데? 자연수도 쪼개면 쪼개지는데? 유리수는 뭐지? 닥쳐! 그냥 이대로 함 가보는 거야. 이 개념이 유효한가? 현장에서 먹히는가? 쓸만한가? 이게 중요한 거야. 일정부분 유효하다구. 다들 불만이 없어. 사회가 발전하면 도구를 바꿔야 한다. 주먹구구 곤란하다. 육안으로 안 되면 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톱과 망치로 안 되고 정밀한 연장을 써야 한다. 사건은 쪼갤 수 없다. 사건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커플은 쪼갤 수 없다. 커플을 쪼개면 커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칭은 쪼갤 수 없다. 대칭을 쪼개면 대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은 대칭에 의해 작동하므로 쪼갤 수 없다. 아니다. 사실은 사건도 쪼개진다.


    그것은 사건의 진행이다. 어쨌든 사건의 출발점에서는 자원들이 나란히 출발선에 모여야 하며 이때는 쪼갤 수 없다. 총성이 울리고 스타트가 시작되면 다들 출발선에서 뛰쳐나간다. 그다음에 쪼개진다. 사건의 시작점은 쪼갤 수 없다. 살인자와 피해자를 쪼개놓으면 어떻게 될까?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접촉해야 한다. 이는 무조건이다. 공격팀과 수비팀은 같은 그라운드 안에 있어야 한다. 원자의 쪼갤 수 없다는 관념은 여기서 연역된 것이다. 남자와 여자를 떼놓으면 아기는 탄생하지 않는다. 사건은 불발이다. 사건의 출발점에서는 무조건 붙어있어야 한다. 이는 우주의 절대법칙이다.


    우주의 절대법칙 – 사건의 촉발단계에서 둘은 하나를 공유해야 한다.


    편지를 부칠 때는 봉투를 밀봉한다. 쪼갤 수 없다. 누가 들여다보면 안 된다. 그러나 배달된 편지는 당연히 개봉된다. 쪼개진다. 배달되지 않은 편지를 누가 중간에 가로채서 뜯어볼 수 없으므로 집배원이 밥을 먹는 것이다. 이는 상황이 통제된다는 말이다. 탈레스는 왜 원자론을 고안했을까? 불안해서이다.


    집을 짓는데 벽돌이 깨지면 건축할 수 없다. 기왓장이 깨지면 지붕을 올릴 수 없다. 깨지면 곤란하다. 우주를 신뢰할 수 있는가? 내일도 해가 뜬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믿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면? 믿을 수 있다. 안심해도 좋다. 그렇다.


    탈레스는 단지 걱정을 덜고 싶었던 것이다. 원자라면 믿을 수 있지. 깨지지 않으니까.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지. 21세기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에 부딪혀 있다. 세상을 믿을 수 있는가? 확실하게 믿을 구석이 단 하나라도 있어야지. 무대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


    단서가 필요하다. 단은 끝단이다. 맨 처음 시작점을 찍는다. 스타트를 하려면 총성이 울려야 한다. 축구를 하려면 휘슬을 불어야 한다. 단서가 있다. 어떤 사건의 시작점에서는 완벽하게 통제된다. 결혼식장에서는 신랑도 통제된다. 부부싸움은 신혼여행 가면서 시작된다.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


    화장실에 가기 전에는 통제가 된다. 사정이 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원용한 우리의 방법은? 상황을 부단히 시작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계속 게임을 걸고 일을 벌이는 것이다. 사건을 계속 키우는 것이다. 일을 벌여서 부단히 새로 출발점에 서게 하는게 진보주의이다. 왜? 출발점에서는 평등하거든. 


    출발점은 갑을관계가 없다. 재용이도 태어날 때는 고추 하나 달고 알몸으로 태어났잖아. 이 방법을 쓰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계속 신곡이 나와주고, 새로운 유행이 나오고,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 그 때문이다. 검찰을 조지고, 의사를 조지고, 사이비 목사를 정리한다. 진보를 멈추면 죽는다.


    쓰던 것을 계속 쓰면 불평등해진다. 차별이 심해진다. 선거 때는 금뺏지도 고개를 숙인다. 유권자 앞에서 평등해진다. 그렇다면 선거를 자주 해야 되겠네? 스위스가 일 년에 국민투표를 40번 하는 이유를 알겠네. 그것이 진보의 원리다. 우주의 절대법칙이다. 모든 사유의 궁극적 단서다. 확실히 믿을 수 있다.


    사건의 출발점에서는 깨지지 않는다. 평등해진다. 고분고분해진다. 말을 듣는다. 통제할 수 있다. 계속 시작점에 서도록 만들면 된다. 도원결의하면 된다. 리부팅하면 된다. 사실 원자는 없다. 물리학의 원자는 그냥 용어를 가져다 쓴 것이다. 뭐든 있다면 그것은 공간에 있을 텐데 그렇다면 시간은 뭐지?


    사건은 시공간에 걸쳐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하고 있다. 원자는 작다. 왜 작을까? 사건은 대개 작은 데서 시작된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한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작은 불씨가 요원의 들불을 일으킨다. 원자 개념은 사건의 출발점을 모방한 것이다. 


    사건은 작을 때 통제된다. 큰불은 못 꺼도 작은 불은 끈다. 고참은 통제가 안 되지만 신입은 통제된다. 어른은 통제가 안 되지만 애들은 잘 통제된다. 다 자란 늑대는 말을 안 듣지만 늑대 강아지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사건이 커지기 전에 통제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다. 


    원자 개념은 희망사항을 투사한 것뿐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진지해지자. 귀신이든 영혼이든 천국이든 필요해서 지어낸 관념들이다. 천국이 있다고 하면 말을 듣는다. 영혼이 있다고 하면 가족이 결속한다. 귀신이 있다고 하면 주술사에게 매달린다. 원자는 대상을 통제할 의도로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원자의 단점은 딱딱하다는 거다. 이 부분을 보완할 의도로 지어낸 관념이 플라톤의 이데아다. 이데아는 말랑말랑하다. 영혼이나 귀신과 매치가 된다. 원자는 영혼과 충돌해서 곤란한데 말이다. 천국을 가려 해도 원자를 타고 가면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이데아를 타고 가면 쉽게 후르륵 가 버린다. 좋구나.


    둘 다 개소리다. 원자도 없고 이데아도 없다. 실제로 있는 것은 사건이 일어나는 시작점에서의 통제가능성이다. 구조론과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설의 차이는 사건의 시작점인 유전자를 보느냐 사건의 종결점인 환경을 보느냐다. 시작점은 통제되고 종결점은 통제되지 않는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다윈은 세상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사건의 시작 때는 감독을 쳐다보고, 코치를 쳐다보고, 심판을 쳐다보고, 관중을 쳐다본다. 사건이 종결되면 이긴 자는 기고만장해진다. 눈에 뵈는게 없다. 진 자는 도망치고 없다. 어느 쪽이든 통제되지 않는다. 다윈은 사건의 종결점을 보게 만들었다. 


    시작점에서 작동하는 유전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다윈의 영향을 받아서 인류는 대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졌다. 비뚤어졌다. 보수꼴통의 폭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대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그들을 전쟁에 광분하도록 만들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미국은 소련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버렸다. 지금은 중국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다. 그런데 통제할 수 있다. 일을 벌여서 사건을 부단히 출발점으로 되돌리면 된다. 그러려면 일단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일을 벌일 수 있다. 한국이 나서면 거만한 중국인들을 통제할 수 있다.


[레벨:4]고향은

2020.11.25 (14:14:48)

"원자의 단점은 딱딱하다는 거다."


진화는.
대칭하는 짝과 합合을 이루어 일이 되어가는 통제가능성을 지향하고
원자는.
때에 따라서 요지부동搖之不動과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상태에 갇힐 수 있다

살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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