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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706 vote 0 2021.10.17 (10:44:58)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명령에 있다. 인간은 명령하는 동물이다. 명령하려면 권력이라는 이름의 지렛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집단의 공유자산인 영역과 세력과 역할을 지렛대로 삼아 명령할 수 있다. 개인은 집단에 권력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명령을 따른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공민권을 상실하고 유무형의 공유자산을 뺏기게 된다. 많은 경우 그들은 감옥에서 생활한다.


    인간은 의리를 조직하여 공유자산을 늘릴 수 있다. 집단 안에서 상호작용의 톱니가 맞물리는 정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원래 의리는 없었다. 아빠는 존재가 없고 엄마와 그 자식들로 집단이 유지되며 무리의 숫자는 100명 이하다. 대집단을 만들어 경쟁에서 이기려면 의리가 필요하다. 의리는 집단을 긴밀하게 한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발전한 이유는 부계사회가 더 긴밀한 집단을 만들어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많이 낳아봐야 10명인데 아버지는 자식을 백 명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은 명령할 수 없다. 썰매개 무리의 대장개는 잘못된 방향을 잡는 부하개의 목덜미를 물어 경고한다. 무엇을 하지마라고 위협할 수는 있어도 무엇을 하라고 시킬 수는 없다.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개가 짖는 것은 대응이지 명령이 아니다. 인간이 개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개가 짖는다. 개는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능동적으로 게임을 설계할 수 없다. 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는 방향으로 서서 주인을 쳐다보는 것이다.


    부족민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있다 해도 희미하다. 자식이 열두 살이 되면 집에서 쫓아낸다. 집은 여자의 것이고 남자는 집이 없다. 사회의 동원된 정도가 낮으므로 부족원에게 명령할 수 없다. 족장이 있어도 다툼을 중재할 뿐 이래라저래라 지시할 수 없다.


    가족간의 의리, 동료와의 의리, 국가와의 의리는 그냥 되는게 아니고 무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말로 해서 안 되고 한솥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자는 정도로 신체접촉을 통해 호르몬을 교환해야 한다. 원숭이는 두목 원숭이의 오줌을 묻혀 놓으면 왕따문제가 해결된다. 인간도 별수 없는 동물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스무 명 정도를 동료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낯선 사람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타자성 행동을 하게 된다. 타자성 행동은 소인배가 상대를 자극하여 되돌아오는 반응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해꼬지를 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제승방략이 실패하는 이유는 부하들이 같이 생활하는 직속상관 외에는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육으로 되는게 아니고 같은 공간에서 뒹굴며 호르몬으로 되는 것이다. 계급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사투리가 다르고, 성장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은 말을 듣지 않는다. 단순히 못 배워서 타자를 차별하는게 아니라 인간은 원래 적이 있어야 의사결정할 수 있는 동물이다. 어떻게든 적을 만들어낸다. 봉건사회에는 모든 가문이 원수집안이 있었다. 당연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차별해야 한다. 이 문제는 적극적인 사회화 작업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그 역할을 했고 현대사회는 정치적 올바름 공세로 해결을 시도하지만 용이하지 않다. 인간은 원래 죽어보자고 말을 안 듣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병은 간부를 주적으로 선언한다. 적이 있어야 안심되기 때문이다. 태극기 할배들은 어떻게든 북한이 땅굴 파는 소리를 들어내고야 만다. 간첩이 없으면 만들어 낸다. 간첩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안심되기 때문이다. 과거 안기부는 정기적으로 간첩사건을 날조하여 그들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사건이 일어나서 심리적으로 동원된 상태에 있어야 인간은 안심한다. 사건이 없으면 만들어내야 한다. 신간이 나오고, 미디어가 떠들고, 소문이 돌고, 유행을 전파하고, 떠들썩한 상태에서 인간은 편안해진다.


    사건에 동원된 상태에서 인간은 명령할 수 있다. 명령은 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명령을 내린다고 한다. 명령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law와 loyal의 어원은 low다. 법은 왕이 명령을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톱니가 맞물린 상태에서 명령이 전달된다. 톱니가 맞물려 돌기 때문에 역방향으로는 갈 수 없다. 시계바늘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가는 일은 없다. 집단의 의지가 반영된 명령은 거역할 수 없다.


    집단은 동원되어야 한다.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 전쟁이 일어나야 한다. 뉴스가 있어야 한다. 신간이 나와야 한다. 유행이 나와야 한다. 강제로 동원할 수 없다. 시장은 이윤으로 동원하고, 자연은 기세로 동원하고, 사람은 의리로 동원하고, 민주주의는 광장으로 동원한다. 물리적으로 관성이 작용해야 한다.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한다. 다수를 코어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긴밀하게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문명은 동원된 사회고 야만은 동물의 군집이다. 부족민은 족장이 없고 추장이 없다. 추장이니 족장이니 하는 것은 백인들이 갖다 붙인 말이다. 부족민은 지도자가 없으므로 의사결정을 못한다. 의사결정을 해도 염소 한 마리를 배상해야 하는 문제를 두고 부족원이 다 모여서 사흘 정도 난상토론을 거친 끝에 장로가 중재하면 받아들이는 정도다. 원고측과 피고측은 아는 패거리를 다 불러와서 탈진할 때까지 말다툼을 벌인다. 화력을 몽땅 쏟아부어 더 이상 입씨름을 할 에너지가 바닥나야 해결된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


    인디언 전사는 전쟁을 하다가도 집에 밥먹으러 간다. 인디언은 가족과 떨어질 수 없으므로 결국 오두막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고 백인 그 군대는 길목을 지킨다. 인디언은 집에도 가지 않고 남자끼리 모여서 생활하는 백인군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한두 번 크게 이겨서 망신을 주면 집에 갈 줄 알았는데 안 가고 버티고 있다.


    동원하려면 게임이 걸린 상호작용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자본의 경쟁이든 평판의 경쟁이든 전쟁의 경쟁이든 게임이 걸려야 한다. 자본주의는 시장으로 동원하고 민주주의는 광장으로 동원하지만 공산주의는 시장도 없고 광장도 없으므로 전쟁을 해야 한다. 전시체제를 유지하다가 망한다. 서구가 잘 나가다가 좌초한 이유는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 동원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 원래 세상은 먼저 배신하는 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이므로 다들 배신할 마음을 먹고 있다. 배신하지 못하게 하려면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고, 패스가 활발하게 연결되고, 감독의 작전지시가 내려오고, 총알이 쏟아지는 상태에서는 배신할 수 없다. 계속 선거를 하고, 계속 유행을 만들어내고, 신제품이 쏟아지고, 경쟁이 붙은 상황에서는 배신할 수 없다. 징기스칸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동원상태를 유지했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혁신으로 동원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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