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64 vote 0 2021.01.27 (10:41:06)

imagGGGe.jpg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지만 신은 인간이 될 수 있다.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다음 게임을 설계할 수는 있다. 타고난 피부색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식의 피부색은 결정할 수 있다. 이번 게임은 선수로 뛰지만 다음 게임에서는 주최측으로 올라서는 것이 삶의 의미다. 


    세상은 상호작용에 의해 전진한다. 누구는 빌런이 되고 누구는 히어로가 된다. 빌런도 필요하고 히어로도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히어로 희망자만 받는다. 빌런이 되고 싶은가? 꺼져! 누구든 빌런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그중에서 특별한 소수만 히어로가 된다. 


    노무현도 있어야 되고 이명박도 있어야 한다. 이명박이 되고 싶은가? 꺼져! 누구든 이명박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중에서 특별한 소수만 노무현이 된다. 코로나가 원래부터 있었다는 음모론도 필요하다. 그래야 상호작용이 증대된다. 음모론에 끌리는가? 꺼져? 


    원래 인간들은 다 음모론에 넘어간다. 그건 베이스다. 특별한 소수가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가 출발점이다. 출발점에 머무르고 싶은가? 이불 밖은 위험하다? 자궁 밖은 위험하다. 자궁 속으로 퇴행하고 싶은가?


     꺼져! 선장도 있어야 하고 갑판원도 있어야 한다. 갑판원이 되고 싶은가? 꺼져! 선원은 죄다 갑판원으로 시작한다. 그중에 선발된 자가 브리지에 오른다. 그냥 갑판원에 머무르려면 교육이 필요 없다. 구조론을 학습할 이유가 없다. 운동회의 꼴등상과 같다.


    그냥 준다. 세상에는 공자도 있어야 하고 노자도 있어야 한다. 노자가 되고 싶은가? 꺼져! 공자는 도리를 배워야 되고 노자는 그냥 된다. 합리주의는 약속된 룰을 배워서 하고 실용주의는 눈치로 한다. 합리는 둘의 약속이며 실용은 약속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모피어스의 빨간 약을 먹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파란 약을 먹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파란 약을 먹고 싶나? 꺼져! 영화 매트릭스의 파란 약은 설정오류다. 파란 약은 안 먹어도 된다. 누구든 파란 약을 먹은 채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당신은 파란 약에 중독되어 있다. 


    해독제로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그냥 이대로 살 것인가? 해독제를 먹으면 선장이 되어 항해를 설계한다. 지구촌 인류호의 함교에 올라 집단의 의사결정그룹에 드는 것이다. 특별한 소수를 선발하기 위해 다수가 존재한다. 선발되기 싫으면 그냥 그러고 살아라.


    구조론을 배울 필요가 없다. 자신의 운명은 바꿀 수 없지만 타인의 운명은 바꿀 수 있다. 인생의 승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성공과 패배는 의미가 없다. 사랑과 증오는 의미가 없다. 행복과 불행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운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태어나는 순간이 중요하다. 잘 태어나야 한다. 이미 태어났다면 포기하라. 인간은 그저 다른 게임을 설계하고 떠날 뿐이다. 인생은 환경과의 게임이다. 환경을 이길 수는 없다. 남의 자궁을 빌려 태어나는 순간 을의 운명이 확정되어 있다. 환경을 바꿀 수는 있다. 


    내가 바뀐 환경의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신은 인간의 운명을 설계한다. 당신은 신의 오른팔이나 왼팔 자격으로 신의 설계에 가담할 수 있다.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음 플레이어에게 더 좋은 게임을 선물하는 것이 인생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의미다. 


    승자는 게임을 제안하는 모피어스다. 네오는 바톤을 이어받는 다음 참가자다. 당신은 네오에게 게임을 제안하는 모피어스가 될 수 있다. 그 길을 가겠는가? 아직까지는 당신이 네오다. 선택해야 한다. 빨간 약을 선택할밖에. 파란 약은 태어날 때 이미 먹었으니까.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6594 구조론은 김동렬 2023-08-30 1642
6593 간섭 김동렬 2024-01-28 1645
6592 이것과 저것 1 김동렬 2024-01-26 1648
6591 중국 축구 수수께끼 풀렸다 1 김동렬 2023-11-23 1649
6590 본질지향에서 도구지향으로 김동렬 2022-04-23 1654
6589 자발적 변화 김동렬 2023-01-25 1658
6588 나폴레옹은 누구인가? 김동렬 2023-12-17 1663
6587 진화론의 완성도 김동렬 2022-12-08 1666
6586 연결문제 김동렬 2023-02-12 1666
6585 입력과 출력 김동렬 2024-01-20 1667
6584 왼손잡이 문제 김동렬 2022-05-22 1670
6583 딜레마 1 김동렬 2023-01-20 1673
6582 에너지의 방향성 2 김동렬 2022-06-29 1678
6581 도구주의 관점 김동렬 2022-06-22 1679
6580 힘과 짐 김동렬 2023-08-16 1680
6579 질서 김동렬 2023-03-01 1684
6578 차별과 증오의 야만인 정치 김동렬 2023-07-23 1689
6577 앎과 믿음 김동렬 2023-10-28 1689
6576 과학의 시련 김동렬 2023-01-29 1691
6575 진리 김동렬 2022-07-02 1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