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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70 vote 2 2019.12.20 (15:30:23)

      

    25년 전이다. PC통신을 통해 세상과 접속하였다. 김어준과 김유식, 김현국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김완섭이라는 쓰레기도 있었다. 천리안 이용자가 2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불어나던 시기다. 그때는 뭔가 되어가는 그림이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천리안은 200만 명을 찍고 문을 닫았다. 인터넷이 활짝 열렸으니까.


    인터넷은 갑자기 수백만이 몰렸고 장사할 줄 아는 대형포털이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개인들의 좋은 시절은 없었다. PC통신은 90년대 초 1만여 명으로 시작하여 90년대 말 백만 단위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서서히 증가했다. 그때가 좋았다. 신대륙에 사람이 하나씩 둘씩 몰려들 때가 호시절이다. 동호회를 하든 토론방을 열든 흥행된다.


    그때는 점잖은 개인들의 시대였다. 나중 온 사람은 먼저 온 사람을 존중했고 먼저 온 사람은 그 바닥의 매너와 룰을 가르쳤다. 나는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하늘의 별처럼 많다. 의인과 악당은 가려진다. 스승이 있고 재주꾼도 있고 동료도 있고 의리도 있고 광장의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는 토대는 갖추어졌다.


    몇몇 분탕질 치는 자가 있지만 평판공격을 받아 정리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도떼기시장이 열리면서 순식간에 양화는 구축되었다. DC인사이드가 일베화되는 코스로 희망은 멸망되었다. 강준만이 타락하는 속도로 인간들은 무너졌다. 진중권이 까부는 속도로 인간들은 비겁해져 갔다. 그들은 서로를 경멸하며 점차 고립되어 섬이 되었다.


    블로그는 고립된 섬과 같고 유튜브는 수평적 연결이 없다. SNS와 댓글의 익명성은 정체성을 가로막는다. 각자 노하우로 벌어먹는 시대가 되었다. 상호검증은 불가능하고 일방적인 선언만 난무한다. 극소수 명망가와 다수 이용자를 잇는 중간허리가 없어 세력화되지 못한다. 스승도 없고 선배도 없고 괴짜도 없고 동료도 없고 의리도 없다. 


    캐릭터도 없고 역할놀이도 없다. 황폐해지고 공허해졌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시대는 끝내 오지 않았다. 다들 진영의 프레임에 갇혀 있을 뿐 객관적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집금하려면 대중에게 아부해야 한다. 대중은 귀에 달콤한 거짓말을 소비할 뿐이다. 지구평면설이나 달착륙 음모론이나 가짜뉴스가 먹히는 세상이다. 


    정보 소비자의 갑질이다. 음모론자는 기껏해야 글자를 스무자 안팎만 쳐도 되는데 그것을 반박하려면 진지충 모드로 들어가서 A4지 여러 장에 심하면 나사 사이트까지 방문하여 자료를 긁어와야 하는 판이다. 그게 네티즌의 갑질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여 사람 일 시키는 재미가 있다. 팔짱 끼고 삐딱한 태도로 날 설득시켜 봐. 이런다.


    개소리 한마디로 잘난 척하는 샌님들 약 올려주는 재미가 있다. 어깃장 놓기 놀이가 즐겁다. 그렇게 찐따짓으로 다들 망해간 것이다. 99퍼센트는 편한 대로 타락해 갔다. 진영의 프레임에 갇히고 댓글로 죽이는 대중의 횡포에 질식하고 시장의 수요에 끌려간다. 나머지 1퍼센트는 침묵했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흐른다. 인간은 또 살아간다. 


    그럴수록 진실의 희소가치는 부각되는 법이다. 가짜가 난무할수록 진짜는 돋보이게 된다. 고졸이 대학총장 하며 떵떵거리는 시대다. 공자도 그런 개판시대에 뜬 사람이다. 처세에 밝지 못해 이곳저곳에서 거절당하여 찌그러져 있었더니 나이 70에 떠버렸다. 공자가 뜬 것이 아니라 공자의 제자들이 뜨는 바람에 뒤늦게 주목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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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이지 공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을 거치며 다들 얼어있을 때는 노자의 유머와 장자의 개그가 먹힌다. 히피면 어때? 즐겁잖아. 라즈니쉬 그 친구 인류를 골려 먹다니 재치가 있네. 마광수 그 양반 화통해서 좋잖아. 그런 느슨한 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들 막장경쟁을 하던 시대다. 지금은 첨예해졌다. 


    그렇다고 기합이 바짝 든 것도 아니다. 혁명의 시대도 아니고 투쟁의 시대도 아니다. 낭만은 가고 스펙은 온다. 다들 짜증 내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 찐따스럽게 누가 자신을 위로해주기를 바란다. 내무반에 신병이 안 들어오면 이런 분위기가 된다. 학교에는 아이가 없고 골목에는 꼬마가 없다. 다들 화장실을 사흘간 못 간 표정이다.


    인간의 가치가 추락한 시대다.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인간들은 당해봐야 안다. 온난화가 도리어 인간을 각성시킨다. 반지성주의가 도리어 인간을 각성시킨다. 진짜를 그리워하는 시대가 오고야 만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덴마크달마

2019.12.20 (16:04:58)

진짜를 그리워하는 시대가 오고야 만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슈에

2019.12.20 (16:15:43)

두번째 줄에서 활돟하고 있었다. -> 활동
미국만큼 반지성주의가 득세하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트럼프를 뽑고 나서 진짜를 그리워할 때가 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2.20 (16:43:24)

"인간들은 당해봐야 안다. 온난화가 도리어 인간을 각성시킨다. 반지성주의가 도리어 인간을 각성시킨다."

http://gujoron.com/xe/1150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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