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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135 vote 0 2018.01.23 (22:34:44)

     

    어떤 것을 안다고 곧 그것을 말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것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아는 것은 아직 아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을 이겨야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안다는 것은 주어진 문제의 해법을 안다는 것이다. 이미 패배해 있다. 문제가 먼저 와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문제가 갑이고 사람이 을이다. 문제에 종속되어 있다. 먼저 와서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다. 명상을 해서 깨달은 것도 아니다. 깨달은 사람이 제대로 된 명상을 할 수 있다. 명상을 한답시고 머리에 힘주고 앉아있는 것은 죄다 사기다. 참으로 깨달았다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가만 앉아있을 수 없다. 가부좌 틀고 폼잡을 정도로 한가할 수 없다.


    물론 생각의 흐름을 놓칠까봐 몇 시간씩 한자리에 앉아있기도 한다. 깊이 들어갈 때 그렇다. 조마조마해서 오줌도 참아야 한다. 보통은 걷는 것이 가장 좋다. 멈추지 못한다. 멈추면 흐름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명상해서 깨닫는게 아니고 깨달은 다음 명상한다는 것이 진실이다.


    나는 원래부터 그냥 알았다. 그것은 느낌이다. 느낌은 직관이다. 판단은 3초 안에 가능하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표현의 한계에 맞추어 사실을 조작한다. 어떤 판단을 하고 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념을 떠올리고 그 언어에 맞추어 자기 판단을 정하는 거다.


    어떤 사람이 나는 이것을 지지한다거나 혹은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면 나는 믿지 않는다. 생각은 얼어죽을! 누가 네 생각 물어봤냐고? 왜 자기생각을 말하지? 지금 기온이 몇 도지? 하고 물으면 온도계를 보고 와야 한다. 내 생각에는 영하 10도인뎅. 안 된다. 왜 생각을 말하느냐고.


    인간의 사유는 말하자면 계측기와 같아서 자를 대보고 눈금을 읽듯이 틀에 대입해보고 연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가 과연 맞는 자인지 설명해야 한다. 그 자를 도출하는 과정이 없이 눈금을 주장하면 어설프다. 그 생각에 도달하는 과정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계측기는 보편적인 것이어서 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홍준표를 지지한다고 말하면 사실은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말할 능력이 안 되는 거다. 문재인을 종북이라고 말하기 쉽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를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거 할 줄 아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다. 지식인들이 노무현을 배척한 이유도 같다.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말하려면 미래를 말해야 한다. 미래는 말할 수 없다. 미래를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를 말할 수 없다.


    그 에너지를 가리키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에너지는 한국어가 아니다. 우선 한국의 잠재력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잠재력을 동원하는 한국의 의사결정구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의사결정구조와 인류문명의 방향성이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평범한 대중은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다. 왜? 자신이 왜 노무현을 지지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라면 설명해야 한다. 한경오들이 모두 배반의 외길을 질주한 이유는 머리가 딸렸기 때문이다.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설명할 지식이 그들에게 없다.


    그들은 가짜 지식인이었다. 한국인의 70퍼센트가 문재인을 지지한다. 그들은 설명할 부담이 없다. 남들도 지지하니까. 남들이 캐물으면 70퍼센트라는 숫자에 떠넘기면 된다. 다수 속에 파묻혀 있으면 안전하다. 지식인은 설명해야할 부담을 느끼므로 문재인을 싫어하는 것이다.


    문재인이 그들의 무식을 들통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자신의 언어능력에 맞추어 사유를 제한한다. 나는 원래부터 알았지만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단 한 단어도 말하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한국말을 잊어버렸을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시켜주는 앱을 설치하고 테스트해봤더니 내 말을 알아듣고 글자로 잘 옮겨주더라. 안다는 것은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통제하려면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로 아는 것은 어떤 대상을 아는게 아니며 어떤 사실을 아는게 아니다.


    스님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가리켜지는 달을 바라보라고 백만 번 말해줘도 손가락만 본다. 죽어보자고 손가락만 쳐다보는게 인간 존재의 숙명적 한계다. 그 말을 지어낸 석가도 역시 손가락만 보고 끝끝내 달을 보지는 못했다. 단지 무언가 희미하게 감을 잡았을 뿐이다.


    손가락도 보지 말고 달도 보지 말고 손가락과 달의 관계를 봐야 보일 것이 보인다. 그 관계에서 에너지의 방향성과 통제가능성을 읽어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미래를 예견할 수 있어야 제대로 아는 것이다. 무언가 관측하여 보고 말하는 것은 인식론이니 무조건 잘못된 거다.


    자신이 관찰하여 뭔가 알아냈다면 일단 틀렸다. 자신이 자신의 생각을 반박하는 과정을 만 번쯤 연습해야 익숙하게 된다. 나는 유년시절에 자문자답하며 내가 나를 비판했기 때문에 내가 무슨 기특한 생각을 떠올리면 곧바로 허점을 찾아냈다. 두어 바퀴 돌려주면 만족할만하다.


    즉 어떤 것을 알고 다시 그 반대의 입장을 알고 다시 둘을 통일하는 제3의 것을 포착하고 다시 제3의 것에서 둘로 전개하는 에너지 방향성을 알아야 힘 조절이 가능한 경지가 되는 거다. 불을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불을 끌 수 있어야 한다. 불을 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 불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불은 마이너스다. 꺼진다. 성냥불도 꺼지고 불쏘시개도 꺼지고 장작불도 꺼진다. 그러므로 수순이 필요하다. 성냥불을 불쏘시개로 옮기고 장작불로 옮겨야 한다. 그 과정에 부채질과 풀무질이 필요하다. 그 구조를 설계할 수 있어야 안다고 하겠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고 곧바로 말하면 초딩이다. 어떻게든 그 생각을 반박하고 그 반박한 것을 다시 반박해야 한다. 내 안에서 자문자답하며 반박과 재반박을 무수히 해서 달도 손가락도 이겨내야 한다. 그 끝에 메커니즘이 발견되며 메커니즘은 반드시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다.


    메커니즘을 지배하는 에너지 방향성을 읽어낼 때 전체가 한 줄에 꿰어져서 진보와 보수, 유와 강, 정동과 반동이 하나 안에 통섭되면 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은 비로소 다스려진다. 어린 시절 나의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는 모른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뇌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나처럼 말 없는 아이가 되라고 요구할 수 없잖아. 나는 죽어보자고 질문을 안 했는데 질문하지 말라고 할 수 없잖아.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되는데 이 둘 사이에 둘을 통일하는 제3의 것이 있는데 그 3의 방향성이 이렇게 되는데 그러므로 이게 이렇다고 말할 수 없잖아.


    그건 너무 말하기가 골때리는 거다. 예컨대 이런 거다. 영화를 보고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이야기해준다. 지금은 극장문을 나섬과 동시에 다 까먹어버리지만, 그때만 해도 영화 줄거리를 동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줄 수 있었다. 그땐 나도 제법 총명했던 것이다. 


    그다음 몇몇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준다. 이 부분이 이래서 저 부분이 저렇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점점 길어져서 나중에는 몇 시간짜리 이야기가 된다. 가족들은 쟤가 왜 나무 밑에 온종일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있는지 궁금해했겠지만 내겐 그게 명상이었다. 


    구조론 독자들에게 나처럼 하라고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간 지금은 누가 허튼소리를 하면 바로 꺾는다. 어렸을 때는 반드시 어떤 생각의 반대편과 그 반대편의 반대편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그런 시행착오는 옛날에 내가 다 겪었던 건데 듣고 있자니 하품이 나오는 거다.


    어떤 생각이든 반드시 반대편 입장이 있다. 근데 그것은 답이 아니다. 대칭은 원래 깔고 들어가는 거다. 에너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는 것은 안쳐준다. 내 생각은 이래 하고 촐싹대며 반대편을 들쑤시는 것은 그저 대칭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부하고 유치한 기술이다.


    어떤 생각은 일단 틀린 생각이고 그 반대편 생각도 틀린 생각이며 둘을 통일하는 제3의 무언가를 포착하고 다시 방향성을 읽어야 하고 또다시 통제가능성을 찾아야 하고 그걸로 미래를 예견해야 한다. 그 정도 되면 느낌이 딱 와준다. 뻑적지근하다. 가슴 벅차오르는 충일감이다.


    나는 배워서 안 사람이 아니고 언어감각으로 그냥 알았다. 언어가 어색하면 보나마나 틀린 것이다. 자연스러운 말은 메커니즘적인 말이다. 아, 말 좀 해줬구나! 하고 느낌이 딱 와주는 말이 있는 거다. 불쑥 내뱉는 말, 하다가 만 말, 조리가 서지 않은 두서없는 말이라면 곤란하다.


    품격이 떨어지는 말은 좋지 않다. 전제와 진술이 갖추어지지 않은 말은 낯간지러워서 차마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주 말을 안 했다. 여러분도 나처럼 말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고. 말이 쉽게 나오면 안 된다. 필자의 사적인 경험을 말하면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가 되니 이만하자.


    사람마다 다르므로 자기류의 방법을 찾는 것이 맞을 것이나 하여간 내 경험은 그렇다.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죽어보자고 질문을 안 했듯이 질문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하여간 질문하려면 그것과 그 반대편과 그 양자를 통일하는 제3의 것과 그 방향성까지 생각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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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8]cintamani

2018.01.23 (23:40:01)

정말 감사합니다
[레벨:10]다원이

2018.01.24 (00:09:5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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