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279 vote 0 2017.09.20 (18:56:30)

     

    인간이 모르는 인간의 비밀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열정을 강조한다. 그 열정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열정페이라는 말이 있다. 좋지 않다. 인간에게는 열정이 필요하지만 열정을 강요하면 안 된다. 필자는 20년 전부터 열정이라는 말을 써왔지만 이 단어에 만족하지 못했다. 어딘가 불편하다. 존엄이라는 말도 있고 주체라는 표현도 있다.


    주체는 김일성 때문에 망했고 존엄은 권위적이다. 주인과 하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주인의 시선을 얻어야 한다. 호연지기라고 한다. 그것을 얻은 사람이 천하인이다. 이 표현은 일본만화 냄새가 난다. 니체의 초인도 있다. 인간을 격동시키는 그것이 있어야 한다. 마음에 불이 있어야 한다. 불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대표성이다. 신과의 일대일이다. 정상에서 전모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 눈높이를 얻어야 한다.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강한 개인이어야 한다. 그럴 때 가슴에 불이 붙는다. 불은 모두의 가슴에 옮겨붙는다. 세상을 불태운다. 일대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필요한 것은 에너지다. 의사결정할 수 있다.


    집단을 대표해 의사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에 종속되면 안 된다. 집단에서 이탈해도 안 된다. 옛날에는 진인이니 이인이니 하는 것이 있었다. 공자의 군자개념도 있다. 약하다. 천하의 마음을 읽고, 천하의 고통을 느끼고, 미래를 내다보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야 한다. 대결해야 한다. 그런 의사결정을 해내야 한다. 


    무릇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다. 자연을 움직이는 물리적 에너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의사결정 에너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신력이니 근성이니 하는 것이 있지만 유치하다. 동기부여 정도에 그치지 않고 행동력과 추진력을 부여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열정이 지속되어야 한다.


   대개 사람이 실패를 저지르는 것은 어떤 판단이 옳거나 그르친 문제가 아니라 개인을 넘어 국가를 넘어 인류단위, 문명단위로 진행되는 사건 전체를 조망하고 대비하고 책임지고 통제하는 거대기획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과학으로는 안 되고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우공이 산을 옮기려면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영혼이니 이데아니 하는게 말해졌지만 그냥 아저씨가 지어낸 말이다. 이성이니 지성이니 하지만 약하다. 문제의 답을 찾는 것과 인생을 불살라서 밀어붙이는 것은 다르다. 지성은 데이터를 모으고 이성은 그것을 분류한다. 그 정도에 불과하다. 프로이드 초자아도 근거가 없다. 그런게 있어야 안되겠나 하는 당위일 뿐이다.


    자아는 누구나 있다. 거기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은 원시의 본능이다. 물에 빠진 아기를 구하는 엄마가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 본능은 동물도 있다. 동물적 본능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위기상황에서 괴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윤봉길 의사로 하여금 폭탄을 던지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열정이니 존엄성이니 주체성이니 주인의식이니 호연지기니 깨달음이니 하는 말은 그 의사결정 에너지를 의미한다. 초인과 군자와 천하인과 강한 개인은 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 있다. 특별한 사람이다. 뜻을 품은 지사도 있고 그 뜻을 실천하는 의사도 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그것은 무엇인가?


    인생의 정답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기는 편에 들어야 한다. 진리의 팀에 가담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전을 해야 한다. 조금씩 확률을 올려가기다. 전술보다 전략을 쓰고 생존보다 세력을 추구해야 한다.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를 건드려야 한다. 자기 생각을 감추고 대표성을 얻어야 한다.


    인생은 게임이다. 아와 비아가 대결한다. 피아의 구분은 타자성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는 어디에 그어져 있는가? 그것은 내가 정하기 나름이다. 금을 잘 그어야 한다. 잘못하여 부모를 적으로 돌린다면 낭패다.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는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천하를 찜쪄먹는 높은 시선을 얻어야 한다.


    소인은 낮은 곳을 바라보므로 그 범위를 좁게 잡으니 자신의 주변사람을 이기려고 한다. 영웅은 높은 곳을 바라보므로 그 범위를 넓게 잡으니 신을 이기려고 한다. 운명을 이기려고 한다. 군자의 시선을 얻고, 초인의 눈높이, 영웅의 호연지기를 얻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대표성에서 나온다. 


   대표성은 게임에서 나온다. 게임은 나와 타자의 구분에서 시작된다.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친구든 가족이든 패거리든 집단이든 국가든 엮이면 망한다. 집단에 의존하게 되어 망한다. 어리광이나 부리는 소인배 되어 망한다. 이인삼각으로 엮여서 발목을 잡히게 되니 점차 동선이 좁아져서 의사결정을 못하고 망하는 것이다. 


    게임이다. 집단에 가담해야 승산이 있지만, 집단 안에서 포지션을 얻으려다 엮여서 대표성을 잃고 에너지를 잃으니 의사결정에 실패한다. 무의식적으로 집단을 위하여 경고를 보내는 파수꾼 심리가 되어 망한다. 집단이라는 나무의 가지끝에 섰다가 흔들려서 망한다.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에 다가서려고 오버하다가 망한다.


    누구든 위태롭게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집단의 중심에 다가서려고 가지끝에서 버둥대지 말고 이미 집단을 대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초연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감독의 눈치를 보며 번트댈까 망설이다가 망한다. 자신의 계획이 서 있어야 한다. 다음 단계의 전략이 대비되었어야 한다. 인생의 답은 게임 체인지다. 


    나와 타자 사이에 그어진 금을 바꾸기다. 동성애자는 당신의 적인가? 조선족은 타자인가? 북한은 우리의 주적인가? 일본은 한국의 적국인가? 미국은 우리편인가? 그 금을 바꾸는 것이 게임 체인지다. 약자를 응원하는 언더독게임에서 강자의 승리를 복제하는 탑독게임으로 바꿔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소인의 시선에서 군자의 시선으로 바뀐다. 파수꾼 시선에서 대표자 시선으로 바뀐다. 조연의 관점에서 주연의 관점으로 눈높이가 바뀐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눈이 열린다. 마음이 열린다. 위태롭게 가지끝에 매달려 외풍에 흔들리다가 든든한 기둥뿌리로 집단 안에서의 포지션이 옮겨와 있다.


    그러려면 불을 얻어야 한다. 에너지를 얻어 운명적인 만남을 일으켜야 한다. 만남의 확률을 높여가야 한다. 미리 그 지점에 가서 기다려야 한다. 도원결의해야 한다. 스스로 신분을 높여야 한다. 목사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신도가 되지 말고 신과 일대일로 대결하는 의사결정권자 되어야 한다. 신분상승을 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을 오해한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이데아도 없고 이성도 없고 오성도 없고 영혼도 없다. 그런거 없다. 한 살 아기와 침팬지를 비교하면 침팬지가 더 낫다. 똥가리기도 아기보다 먼저 해낸다. 걸음마도 인간보다 빠르다. 명령을 내리면 잘 수행한다. 이는 오래 전에 실험으로 밝혀진 바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나은 점은 하나다. 모방을 잘 한다. 이유도 모르고 괜히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한다. 침팬지와 아기를 같이 키웠더니 아기가 침팬지를 따라해서 문제가 되었다. 실험은 9개월 만에 중단되었다. 인간은 협력하는 동물이다. 그 협력이 문제가 된다. 협력한다는 것은 의사결정을 회피한다는 말이니 위태롭다.


    사이코패스가 승승장구하는 예는 흔하다. 인간성이 결여된 자가 출세한다. 왜? 인간의 인간다운 특징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지구의 어떤 동물보다 약하다. 1천 개체 이하로 줄어서 멸종위기까지 간 적도 있다. 협력은 인간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로 히틀러와 이명박이 출현했다. 사이코패스가 인류를 위협한다.


    협력의 단점은 극복해야 하고 협력의 장점은 강조해야 한다. 인간의 사회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인간은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풍부한 표정과 발달한 언어로 협력을 발달시켜왔다. 여성이 진화를 주도했다. 여성이 말을 더 잘한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낸다. 대신 냉철한 결단력을 잃었다. 겁이 많은 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겁이 없으면 사이코패스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겁을 이겨야 한다. 그러려면? 불을 얻어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강하게 하는가? 쾌락이나 행복이 인간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마광수는 10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이 야한 사회로 변할 거라고 예견했지만 틀렸다. 한국은 보수화 되었다. 한국인은 에너지가 필요했던 거다.


    쾌락이 에너지를 주지 못하기에 한국이 보수화 된 거다. 섣불리 쾌락을 탐해 미녀에게 들이대다가 핀잔을 맞고 주눅이 들었다. 행복이 에너지를 주지 못한다. 행복은 약자의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성공과 출세가 에너지를 주지 못한다. 그것은 콤플렉스를 들키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로 어떻게 해보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교실에다 10분 더 공부하면 미래의 남편이 바뀐다고 써붙이는 것과 같다. 개그소재가 될 뿐이다. 그것은 어설프다. 왜? 그럴수록 나와 남을 구분하는 금이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그 금이 나를 가두어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반경을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운명적 만남의 확률을 낮추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는 거다.


    워즈니악을 만난 잡스의 눈빛을 얻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결기를 얻지 못한다. 왜? 더 약자와 비교하면 되기 때문이다. 성공이니 출세니 야망이니 하는 콤플렉스에 의한 동기부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무시한 누군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어린 시절의 누구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깨닫게 된다.


    그때 그시절 나를 엿먹인 친구나, 나를 꾸짖은 아버지나, 나를 구타한 깡패나 알고보면 한없이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사실. 어릴 때 친구는 평범해져서 돈꾸러 온다. 늙은 아버지는 체격이 왜소해졌다. 깡패는 감옥에 있다. 별것 아닌데 쫄았던 거다. 그걸로 동기부여 해봤자 안철수나 될 뿐 천하를 도모할 수 없다.


    마동탁이 설까치를 부추겨 동기부여하게 했지만 별건가? 이현세도 콤플렉스가 있었기에 만화가 되었다. 이문열은 빨갱이 콤플렉스 덕에 책깨나 팔았다. 콤플렉스가 이문열의 발목을 잡았다. 성공해서 자기를 무시한 친구들 앞에서 우쭐대려는 마음이 세상과 그를 결별하게 만들었다. 성공에 가까울수록 진리와 멀어진다.


    이현세나 이문열이나 콤플렉스에 발목을 잡혀 세상과 나 사이의 금을 잘못 그었다. 이문열은 어쩌다 마동탁이 되었고 이문열의 마음 깊은 곳에 설까치가 도사리고 있다. 이문열을 조롱하고 있다. 평생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던 싸움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새로운 전단을 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과 싸워내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 천하인의 눈높이를 심어주는 것, 가슴에 큰 불덩어리 하나 일으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약한 고리를 보는 것이다.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은 의를 일으키는 것이며, 이에 필요한 것은 지를 얻는 것이며, 그 전에 세상이 나를 품어주는 인이 필요하니 내가 과연 세상에 받아들여지는지다. 


    차별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불가촉천민의 입장이다. 오바마의 큰 뜻이 과연 미국사회에 받아들여질 것인가? 오바마는 운명적으로 미셸을 만났다. 그러자 가슴에 불이 일어났다. 미국사회의 어떤 약점을 본 것이다. 자신이 미국사회에 받아들여진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바꾸었다. 그런게 있어야만 한다.


    세상의 어떤 약점을 본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그와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부모도 없고 학벌도 없는 잡스가 미국의 중심부에 받아들여질까? 일단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 전화망을 해킹했다. 미국에 싸움을 걸었다. 미국과 잡스 사이에 매서운 금이 그어져버린 것이다.


    그는 확률을 높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왜? 그곳은 첨단의 곳이고 겁대가리 없이 첨단에 들이대는 자의 마음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기어이 만날 사람을 만났고 불이 일어났다. 해커가 첨단이었다. 뾰족한 첨단에 가 있으면 만날 사람이 만나진다. 봉건사회에 그곳은 궁정이었다. 이백은 궁정에서 쫓겨나며 두보를 만났다.


    44살의 이백이 궁궐에서 추방되어 낙양에 이르러 33살의 두보를 만났으니 옛 학자는 그 만남을 두고 청천에서 태양과 달이 충돌한 것과 같다고 했다. 한 때는 그곳이 사교계의 무도회였다. 요즘은 벤처다. 한 때는 PC통신에서 두루 만났다.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고 결혼으로는 배우자를 만나고 직장에서는 동료를 만난다.


    과연 만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만나려면 먼저 헤어져야 한다. 금을 그어야 한다. 둘 사이에 오작교가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 금을 적절히 갈아타야 한다. 해커짓이나 하던 시절에 그어진 잡스의 금이 발목을 잡았다. 워즈니악에게 갈 돈 5천달러를 떼먹은 잡스다. 잡스는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가 해고당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금은 옮겨져 있었다. 게임 체인지다. IBM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도전자 다윗 캐릭터에서 인류의 대표자 포지션으로 미션을 갈아탄 것이다. 왜? 픽사를 경영하면서 많은 천재들과 친해졌기 때문이다. 시야가 넓어졌다. 더 큰 도원결의가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에서 인으로 포지션을 바꾸어 성공했다.


    위대한 만남이 역사를 바꾸었다. 과연 만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차별하므로 우리 만나지 못한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따지고 남자니 여자니 분별하고 돈과 신분과 학벌로 장벽을 쌓으니 서로 만나지 못한다. 장벽이 허물어질 때 인간은 세상의 어떤 약점을 엿보게 되는 것이며 자신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장벽이 없어도 만나지 못한다. 섞여서 같아져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일베충을 차별해야 한다. 그래야 방해받지 않고 아는 사람끼리 조용하게 만날 수 있다. 우리 문화와 예절로 아닌 아저씨들을 차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문화와 예절이 진정한 만남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되지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그 문을 제어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인간은 전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환경에 지배되는 수동적인 동물도 아니다. 인간의 문제해결 능력은 침팬지보다 못하다. 약간의 난관이 있으면 다른 사람 얼굴을 쳐다볼 뿐 스스로 해결하려들지 않는다. 목사를 쳐다보고 스님을 쳐다보고 부모를 쳐다보고 스승을 쳐다본다. 그러다가 망한다.


    다윈이 갈파했듯이 인간은 원숭이와 다름없는 존재이며 프로이드가 충고했듯이 인간은 죄다 또라이들이다. 제정신 있는 사람은 없다. 전혀 없다. 대부분 분위기를 읽고 무의식 중에 본능에 응답하며 가는 곳 모르고 홀려서 군중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제법 작동하는 것은 인간의 탁월한 복제능력 덕이다.


    한 사람의 대표자가 바른 판단을 하면 일제히 복제한다. 그 한 사람은 노무현이다. 좋았다. 이명박이다. 망했다. 트럼프다. 변해야 산다. 누구를 복제하는지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인류가 여기까지 온 것은 간간이 지도자가 출현했고 무리가 그 지도자를 복제했기 때문이다. 절대 당신들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다.


    히틀러를 복제하다 망한다. 박정희를 따라하다 망한다. 홍준표 망하고 안철수 망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며 그렇다고 환경에 지배되는 동물도 아니며 인간은 게임의 동물이니 우리는 단지 게임의 종목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나쁜 게임을 하면 나빠지고 좋은 게임을 하면 좋아진다. 나쁜 친구에게 물들었다고 한다.


    부모들은 자녀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변명하지만 이미 나쁜 게임 안에 들어가 있다. 나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사회와 국가를 적대한다는 것이며 이는 본능의 작용이니 소년은 별도로 독립하여 자기 부족을 만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왜? 부모 역시 자식을 제압하여 자신의 부족원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명문대 보내려 하는 심리는 국가를 믿지 못하고 사회를 믿지 못하기에 원초적 불안에 빠져서 자기 부족을 일으켜 금 바깥의 존재인 사회와 국가와 대결하려는 것이다. 부모가 부족을 만들려고 자녀를 닥달하니 자녀도 부족을 만들려고 패거리행동을 한다. 나쁜 친구를 사귄게 아니라 실은 나쁜 부모를 만난 거다.


    집단과 나 사이에 금을 잘못 그으면 자녀가 그것을 복제한다. 사회를 적대하고 동료를 경쟁자로 보는 자본주의 경쟁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을 자녀에게 들키니 자녀도 불안해서 자기 패거리를 만들려고 한다. 부모의 심리적 불안이 자녀에게 복제된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읽아내고 그것을 복제한다.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면 상대방의 마음이 내게 복제된 거다. 자녀가 뚱한 표정으로 있으면 슬그머니 화가 난다.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낸다. 인간은 감정을 복제하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니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다. 한국인의 불행은 무의식적으로 이명박근혜의 나쁜 마음을 복제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처럼 나쁜 환경에서 자라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무현처럼 좋은 사람이 된다. 반면 안철수처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쁜 안철수가 된다. 위대한 만남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큰형의 영향을 받았다. 


    만날 사람을 만났기에 나쁜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강해졌다. 인간은 환경을 장악하고 극복할 수 있다. 이문열처럼 제압당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문열은 제압당한 거다. 왜? 약했기 때문이다. 왜? 자기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압되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려면 자기편이 있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만나야 한다. 조금씩 그 만남의 확률을 높여가야 한다. 일단 장기전을 선택해야 한다. 다음 단계의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승전결의 기에 서야 다음 단계의 계획이 나와주는 것이다. 첨단에 서고 전위에 서고 진보에 서서 세상과의 큰 승부를 걸어가야 기에 설 수 있다. 주도적으로 좋은 게임을 선택할 수 있다. 


    하부구조를 버리고 상부구조로 올라서라. 시장에서 먹히는 B급전략에 안주하지 말고 힘들어도 A급으로 밀어봐야 한다. B급은 돈을 벌게 하고 A급은 사람을 만나게 한다. 이외수는 애매하게 B급전략으로 가서 돈은 벌었는데 뒤늦게 사람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트윗을 날리며 애썼으나 화천군수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 


    자녀를 잘 키우는 부족만들기 게임은 나쁘고 천하를 바꾸는 진보게임은 좋다. 게임 체인지가 최초에 에너지를 유도한다. 큰 사람을 만났을 때, 참다운 진리를 만났을 때, 운명의 기로에 섰을 때, 역사의 네거리에 섰을 때가 게임을 바꿀 때다. 힌츠페터를 만난 운전기사 김사복처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당당한 길을 가야 한다.


    게임체인지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세상의 어떤 약점을 보고 내가 비빌 언덕을 포착하는 거다. 세상의 허술한 구멍은 많다. 자기편을 얻어 도원결의하면 구멍이 커진다. 당장은 어려워도 끝까지 가면 언젠가 내가 받아들여질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진리의 편에 서고, 첨단의 위치에 서서, 역사의 네거리에 터를 닦아야 한다.


    낡은 종목을 버리고 새 종목을 찾아야 한다. 문화와 예술과 트렌드에서 우리 그 진보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미리 그곳에 가서 자리잡고 기다려야 한다. 앞으로 어떤 종목이 뜰지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전으로 밀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 세상과의 한 판 싸움이다. 판을 짜서 에너지를 유도하고 제어하기다.



0.jpg


프로필 이미지 [레벨:9]systema

2017.09.20 (19:04:31)

좋은 글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647 조절장치 김동렬 2024-01-29 1267
6646 간섭 김동렬 2024-01-28 1523
6645 천공의 전쟁지령 김동렬 2024-01-27 2190
6644 이것과 저것 1 김동렬 2024-01-26 1539
6643 권력자의 심리 김동렬 2024-01-25 2041
6642 석가의 깨달음 김동렬 2024-01-25 1831
6641 이언주의 귀환 김동렬 2024-01-23 2416
6640 시정잡배 윤한 1 김동렬 2024-01-23 2174
6639 윤영조와 한사도 김동렬 2024-01-22 2164
6638 클린스만은 손절하자 김동렬 2024-01-21 2657
6637 입력과 출력 김동렬 2024-01-20 1527
6636 마리 앙투아네트 김건희 김동렬 2024-01-20 1889
6635 한동훈의 까불이 정치 1 김동렬 2024-01-19 2349
6634 긍정적 사고 김동렬 2024-01-17 1951
6633 한동훈의 본질 김동렬 2024-01-15 3273
6632 존재의 핸들 김동렬 2024-01-14 2110
6631 이론적 확신의 힘 김동렬 2024-01-13 2094
6630 오마이 한겨레 경향의 배신 이유 1 김동렬 2024-01-12 3187
6629 최동훈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김동렬 2024-01-11 2353
6628 읍참건희, 석열 동훈 비밀의 비밀 김동렬 2024-01-10 3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