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097 vote 1 2017.07.19 (16:58:10)

     

    구조론은 게임이론이다


    세상은 게임의 원리에 지배된다. 게임은 상대가 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다. 양자역학과 같다. 역시 둘의 관계에 정보를 싣는다. 게임은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어야만 한다. 정답이 정해져 있으면 게임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서로 모순된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한다. 정답은 없지만 대신 확률은 있다. 그러나 그 확률이 인과법칙에 맞게 작동하여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결정론의 세계가 아니다. 원인측에서 결과측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확률이 누적되면 방향성이 있으므로 역시 통제가능하다. 게임은 어느 한쪽이 항상 승리하면 안 된다. 패배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예측을 빗나가게 해야 한다. 미리 답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정답이 나오는 순간 그것을 파훼하는 공식이 등장한다.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해 계속 진보한다. 여기에는 방향성이 있다. 인간은 어떤 독립된 하나를 관측하는데 익숙할 뿐 게임의 장에 성립하는 상호작용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익숙해 있지 않다. 확률은 애매하다고 여긴다. 확률이야말로 명확하고 통제가능하다.


    구조론은 진보이론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사과와 바나나를 구분하는 세계이다. 사과와 바나나를 구분할 줄 알면 안다고 여긴다. 마차와 자동차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자동차를 안다고 여긴다. 정작 그 자동차를 운전할 줄은 모른다. 지식이 있되 지혜가 없다. 지식이 분류구분의 세계라면 지혜는 그 대상을 통제하는 액티비티activity의 세계다. 계에 에너지가 투입되고 상호작용이 계속되면 진보한다. 구조론은 모든 진보를 해명한다. 생물의 진화, 우주의 진화, 물질의 탄생, 문명의 발달, 역사의 진보, 예술의 발전, 자본의 팽창, 인격의 성숙을 모두 해명한다. 생물의 진화는 우연의 소산이 아니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상호작용을 계속하여 점차 환경을 장악한 정도를 높여온 것이다. 이는 자본이나 문명이나 예술이나 인격이나 정치라도 마찬가지다. 구조론은 합당한 진보전략을 제공하여 에너지를 가진 계가 계속 진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문명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여 나아간다. 에너지의 잠재한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다.



    구조론은 사건을 해명한다


    우리는 사물을 보는 눈을 갖고 있으나 사건을 보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 사물을 관측하여 그것을 언어화하여 타인과 약속할 수 있을 뿐 사건의 결을 따라 통제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사유는 사물의 관측에 기반한 약속에 맞추어져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개인의 사유보다 타인과의 소통을 통한 집단적 대응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곧 문제해결을 집단에 위임한다. 그 결과는 종교의 출현이다. 사물>관측>언어>약속>집단으로 가는 것은 자연에 맞선 인간측의 입장이다. 이는 수동적 대응에 불과하다. 능동적 통제라야 한다. 개인은 그렇게 문제를 집단에 떠넘길 수 있으나 리더는 그럴 수 없다. 리더가 문제를 집단에 떠넘기면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치닫는다. 사물>관측>언어>약속>집단으로 가는 퇴행에서 벗어나 사건>에너지>통제>확률>진보로 가는 선제대응이 필요하다. 능동적으로 자연의 대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이다. 환경에 대해 인간이 우위에 서는 것이다. 그 관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00.jpg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647 조절장치 김동렬 2024-01-29 1267
6646 간섭 김동렬 2024-01-28 1523
6645 천공의 전쟁지령 김동렬 2024-01-27 2189
6644 이것과 저것 1 김동렬 2024-01-26 1538
6643 권력자의 심리 김동렬 2024-01-25 2040
6642 석가의 깨달음 김동렬 2024-01-25 1829
6641 이언주의 귀환 김동렬 2024-01-23 2414
6640 시정잡배 윤한 1 김동렬 2024-01-23 2173
6639 윤영조와 한사도 김동렬 2024-01-22 2164
6638 클린스만은 손절하자 김동렬 2024-01-21 2656
6637 입력과 출력 김동렬 2024-01-20 1527
6636 마리 앙투아네트 김건희 김동렬 2024-01-20 1889
6635 한동훈의 까불이 정치 1 김동렬 2024-01-19 2347
6634 긍정적 사고 김동렬 2024-01-17 1950
6633 한동훈의 본질 김동렬 2024-01-15 3267
6632 존재의 핸들 김동렬 2024-01-14 2110
6631 이론적 확신의 힘 김동렬 2024-01-13 2092
6630 오마이 한겨레 경향의 배신 이유 1 김동렬 2024-01-12 3180
6629 최동훈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김동렬 2024-01-11 2353
6628 읍참건희, 석열 동훈 비밀의 비밀 김동렬 2024-01-10 3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