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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77 vote 0 2019.12.31 (11:35:34)

    모든 숭배는 우상숭배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신뢰할 수 없다. 원칙이 없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원칙이 있다면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칙의 출처는 어디일까? 왜 원칙이 필요하지? 상호작용 때문이다. 혼자 떠들 때는 상관없다.


    그런데 무전기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동안에는 말할 수 없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할 수 없다. 상호작용의 세계에는 원칙이 필요하고 그 원칙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믿음이다. 믿음이 삶의 일관성을 낳고, 일관성이 사회와의 긴밀한 연결을 낳고, 그 연결이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다.


    의미가 없으면 허무하고 허무하면 죽는다. 믿음이 없는 인간은 죽은 인간이다. 원칙이 없고 의리가 없는 인간이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자다. 뒤통수칠게 뻔하다. 그런 인간과는 합작할 수 없다. 총이 있어야 전장에 설 수 있고, 원칙이 있어야 함께 일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대상을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대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우상숭배를 반대한다. 그런데 우상이 뭐지? 성모상은 우상이 아닌가? 십자가는 우상이 아닌가? 성경은 우상이 아닌가? 십계명은 우상이 아닌가? 돌로 만들면 우상이고 글자로 지으면 괜찮고?


    종교는 그 자체로 우상이다. 행사를 치르고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우상숭배다. 불교는 불법승 삼보를 믿는다. 부처님을 믿든, 교리를 믿든, 승단을 믿든 모두 우상숭배다. 성령을 믿든, 성신을 믿든, 성자를 믿든 마찬가지다. 하느님을 섬기면 역시 우상숭배다. 인간에 의해 대상화되면 우상이다.


    종교인 중에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대상이 우상이다. 그 대상이 없어야 한다.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 중력은 둘 사이에 성립한다. 지구중심에만 중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주공간 어디라도 어떤 A와 B가 있으면 둘 사이에 중력은 작용하고 있다. A가 B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다.


    중력은 당기는 것이 아니고 신은 섬기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장 안에서 호흡할 뿐이다. 아기가 엄마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당기는 것도 아니다. 호르몬의 상호작용이 믿음을 이룬다. 상호작용은 둘 사이에 성립한다. 상호작용의 세계에 대상화 되는 타자는 없다. 아기에게 엄마는 남이 아니다.


    의사결정은 둘 사이에서 일어난다. 우주 안에 어떤 A만 있다면 중력은 없다. 인간이 없다면 신은 없다. 의사결정이 없다면 신은 없다. 호르몬의 공유가 없다면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없다. 라디오가 없으면 방송국은 불성립이다. 통화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동시에 송수화기를 들어야 성립한다. 


    신과 인간은 상호작용의 장 안에서 믿음으로 성립하며 믿음이 행위의 일관성을 낳고 일관성이 세상과의 연결을 낳고, 연결이 의미를 낳는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쾌락이니 행복이니 성공이니 하는 것은 의미를 경험하게 하는 미끼다. 쾌락도 행복도 성공도 의미없이는 허무하다.


    믿음이 없는 텅 빈 자가 무엇을 믿든 가짜다. 상호작용하지 않으므로 가짜다. 원칙이 없는 자의 믿음은 가짜다.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자의 믿음은 가짜다. 오히려 믿지 않으려고 믿는 척하는 것이다. 내가 며칠간 새벽기도를 빡세게 했으니까 일탈행위를 해도 눈감아 주겠지 하는 식의 거래다.


    개가 주인을 믿지만 가짜다. 주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가짜다. 천하의 고통을 내가 느끼지 못하면 가짜다. 중력의 연결이 아니면 상호작용은 가짜고 호르몬의 연결이 아니면 믿음은 가짜다. 개가 주인을 믿지만 대개 상호작용이 아닌 일방적인 추종이므로 가짜다. 신을 추종하므로 가짜다.


    십일조를 냈으니까, 기도를 했으니까 하고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끊어버리고 세상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지 않는다. 믿지 않으려고 믿는 척하는 보여주기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24시간 체제로 우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이 참된 믿음이다. 


    우주가 가는 방향으로 내가 가야 한다. 인류문명이 가는 방향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큰길을 함께 가야 한다. 대상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주체인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신이라는 우상을 버린 자가 신과 대화하며 함께 갈 수 있다. 신의 고통을 느낄 때 신과의 상호작용이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kilian

2019.12.31 (11:52:24)

"24시간 체제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이 믿음이다. 우주가 가는 방향으로 내가 가야 한다. 인류문명이 가는 방향으로 내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큰 길을 함께 가야 한다."

http://gujoron.com/xe/1153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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