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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92 vote 0 2019.08.02 (13:19:41)

    귀납은 없다


    구조론에서 하는 말은 구조론의 용어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은 구조론에 관심 없는 사람이 단편적으로 몇 가지 지식을 배워 써먹으려고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연역이냐 귀납이냐. 구조론은 이 문제를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정리하고 있다.


    각각의 체계가 있다. 인간의 지식을 존재론으로 볼 것인가, 인식론으로 볼 것인가다. 존재론은 자연의 객관적인 사실이다. 인식론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놓은 가상현실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철수와 사람 마음속의 철수가 과연 같은 것이냐다.


    구조론의 결론은 어떤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자연의 철수를 중심으로 사유해야 일관된 해답을 얻는다는 거다. 무엇이 다른가? 여기에 하나의 사과가 있다. 자연의 철수를 중심으로 본다면 사과가 사과인 이유는 내가 그 사과를 봤기 때문이다. 


    사과는 사건 속에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사과는 절대 독립적으로 자기 존재를 성립시키지 못한다. 사과의 확실한 존재 근거는 그 사과를 목격한 나다. 그렇다면 그 사과를 본 나는 과연 자연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추가된다. 연역이다.


    나의 존재는 나의 부모로부터 연역된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조부모로부터 연역된다. 궁극적으로는 빅뱅까지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버린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빅뱅으로부터 존재의 근거를 조달한다. 


    내가 봤으니까 사과이지 소가 봤으면 그것은 밥이다. 관계를 맺어야 존재다. 인식론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관계가 없다. 어차피 가상현실이니까. 족보가 없고 자궁이 없고 계통이 없다. 근거는 없다. 어디서 헛것을 봤다.


    귀신이라고 믿으면 귀신이다. 도깨비라고 생각하면 도깨비다. 예수가 처녀생식으로 태어났다고 믿으면 그런 거다. 고양이가 둔갑했다고 믿으면 그런 거다. 달착륙을 가짜로 믿으면 가짜다. 증명은? 필요 없다. 운 좋으면 맞고 틀리면 그만이다.  


    연역이냐 귀납이냐는 인간의 지식을 존재론의 체계로 곧 자연의 실재로 볼 것인가 인식론의 체계 곧 독립적인 가상현실로 볼 것인가 하는 근본문제에 달려 있다. 구조론 안에서는 존재론으로 보도록 정리되어 있다. 인식론은 안 쳐주는 것이다.


    지식은 마음속에 있는 가상현실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연존재라야 한다. 그러므로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없으며 사건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혀야 한다. 사과는 내가 봐야 한다. 환경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냥 눈으로 본 것은 지식이 아니다.


    도깨비, 귀신, 음모론, 요정, 사후세계, 천국, 환생, 부활, 윤회, 사탄, 천사, 아수라, 디바, 이매망량, 혼, 백, 령, 기 이런 것은 모두 인간에 의해 실제로 경험된 것이지만 뇌 안의 가상현실이지 지식이 아니다. 뇌 안에서는 가상현실로 기능하지만.


    귀신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는 귀신을 본 사람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뇌 안에서 활동하는 가상현실로 인간의 지적 판단에 쓰인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구조론에서는 지식이 아니다. 귀납적 지식은 일단 지식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자동차가 있다면 운전할 수 있어야 지식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아직 가상현실이지 지식이 아니다. 학교에서 누구로부터 배운 것이고 가르쳐준 사람에게는 지식이 맞다. 여기서 딜레마다. 운전해야 지식인데 운전하려면 운전할 줄 알아야 한다.


    지식을 얻을 방법이 없다. 아니다. 자전거 운전을 해봤다. 누구나 운전할 줄 아는 거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운전할 줄 안다. 이미 획득되어 있는 지식과 연결시킨다. 숫자를 1부터 연역하듯이 원초적인 지식과 연결시켜 연역하는 것이다.


    어제는 해가 동쪽에서 떴다. 오늘도 해가 동쪽에서 떴다.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라고 추측했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그 안에 질서가 있다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덮어씌운 것이다. 자연수 집합 안에 1, 2, 3이라는 숫자들이 모여 있다.


    어제가 1이고 오늘이 2라면 내일은 3이다. 이 구조를 알고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사실에서 보편적인 지식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숫자를 알고 있다. 보편적인 지식을 개별적인 사실에 적용한 거다. 뇌 안에서 그런 의사결정이 있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배후에 보편적인 원리가 있다는 선험적인 지식을 활용한 것이지 개별적인 사실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낸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자. 아기들은 자기 얼굴만 감춰놓고 아빠가 찾아내지 못할 것으로 여긴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다섯 살만 되면 신체 일부를 감춘다고 부모가 찾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난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알아낸 게 아니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는 다섯 살이면 연역적으로 안다. 세 살까지는 모른다. 귀납추론은 환상이며 사실은 연역이다. 인간은 다섯 살만 되어도 수학적 원리를 활용한다. 부분을 보고 추론하여 전체를 알아낸 게 아니라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안다.


    맹아단계의 집합론을 알고 있다. 아는 보편적 지식을 부분에 적용한 것이다. 그것이 뇌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꼬치꼬치 따지면 우주 안에 귀납은 없고 부분과 전체의 수학적 관계를 이용하는 연역에 근거한 귀납추론이 있을 뿐이다.


    학습에는 귀납이 쓰인다. 그러나 이미 있는 지식이다. 그 지식은 선생님에게 있거나 교과서에 있거나 친구에게 있는 것이 복제되며 그 과정은 연역이다. 보편적인 툴을 사용한다. 지식이 뇌 안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다.


    틀린 귀납 – 반복되는 부분의 사실에서 불변하는 전체의 원리를 알아냈다.


    바른 연역 – 다섯 살만 되면 부분과 전체의 수학적 관계를 알고 있으며 이미 알고 있는 보편원리를 개별적인 사실에 적용하여 지식을 확장시켰다.


    인간의 뇌구조 자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연역하여 확장하도록 되어 있다. 그게 인간과 개의 차이다. 개는 연역하지 못하므로 지식이 없다. 문제는 외부에서 주입된 단편적 지식을 어디까지 지식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자동차를 운전할 줄 모른다면 자동차에 관한 잡다한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존재는 사건이고 사건은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 지식일까? 그 단편적인 부스러기는 지식이 아니지만 언젠가 지식이 될 확률은 있다. 


    언젠가 핸들을 잡으면 그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부스러기 지식이 쓰일 수는 물론 없지만 어쩌다 아! 이게 그거구나. 하고 알아내게 된다. 단편적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쓰이면 단번에 지식으로 도약하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얽혀야 하며 부스러기들은 얽히지 않았으므로 지식이 아니지만 우연히 한 번 얽히면 단번에 지식으로 도약한다. 연애를 책으로 배워도 써먹을 일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도 실전을 경험하면 단번에 지식으로 도약한다.


    실전경험 없는 명문대 출신과 실전경험 있는 고졸이 붙으면 처음에는 고졸이 이기지만 몇 번 실전을 경험한 후 명문대 출신이 확실히 이겨버린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지식이 아니지만 현실과 접목되어 지식이 될 수 있는 소스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실전이다. 병만아! 주방에서 얻은 것은 재료이고 그것을 굽고 지지고 볶아야 요리가 된다. 학교에서 배운 귀납적 지식은 재료일 뿐 요리가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이니 지식은 맞다. 


    내 지식이 아닐 뿐. 경험해야 내 지식이 된다. 우주 안의 모든 지식은 수학적이며 수학이 연역이므로 연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식은 없다. 존재는 사건이므로 구조론은 사건 안에서 실제 기능하는 체계적인 지식만 지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민간요법 말이다. 뭐가 몸에 좋다는 식의 지식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어느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니 영빨이 서고 기도빨 좋더라. 이런 것을 지식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귀납추론의 병폐다. 어느 굿당에 가서 굿을 했더니 효험이 있더라.


    이것도 지식이냐고? 우주는 사건의 연결이므로 그 연결구조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만 지식으로 간주된다. 파편화된 부스러기들은 지식이 아니다. 그러나 좋은 지식을 갖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 부스러기도 단번에 지식으로 도약한다.


    경험이 많은 시골 할아버지와 체계적으로 이론을 배운 과학자가 만나면 단번에 지식은 폭증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경험 자체는 지식이 아니다. 체계 안으로 들어와야 지식이 된다. 그런데 핵심이 되는 체계는 선험적으로 뇌 안에 갖고 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본 것은 지식이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본 것도 지식이 아니다. 과거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또 만났다면? 자기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지도 몰랐던 기억이 튀어나온다. 주소가 만들어진 것이다. 연결되어야만 지식이다.


    지식은 전체와 부분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며 전체가 먼저고 부분은 나중이라는 것이 연역의 관점이고, 부분이 먼저고 전체는 나중이라는 것이 귀납의 관점이다. 부분에서 전체로 갈 수도 있다면 개나 소나 말이나 다 지식을 얻었을 것이다.


    개나 소나 말에게 지식이 없는 이유는 전체를 유지할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있다. 선험적 지식을 갖고 있다. 자신이 그런 보편원리를 곧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아기들은 어느 순간부터 안다.


    얼굴만 감추면 되는 숨바꼭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자신이 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지식은 선원리 후개별의 순서를 따르므로 보편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현장에서 귀납적 방법이 쓰이는 이유는 어차피 보편원리를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의사가 없는 시골에서는 민간요법이 먹힌다. 지식이 아니지만 지식 행세를 한다. 마음속의 가상현실로 기능한다.


    가상현실의 세계에는 귀신도 있고 도깨비도 있고 사후세계도 있고 천국도 있고 환생도 있고 윤회도 있고 평평한 지구도 있고 다 있다.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다. 어차피 가상현실인데.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이 출현하면 달라진다. 


    그 한 사람이 다 먹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코끼리의 배와 다리와 꼬리를 각각 만져보고 추론하여 코끼리라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은 귀납추론을 한 것이 아니라 원래 코끼리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모르면 그냥 천장과 기둥과 빗자루다. 


    코끼리 개념을 먼저 배우고 꼬리와 배와 다리를 만져보도록 하자. 경험은 중요하지만 개념을 알고 가야 한다. 그 먼저 알고 가는 개념은 결국 누구한테서 배운 것이다. 그러므로 연역이다. 최초로 코끼리라고 명명한 사람에게서 지식이 왔다.


    궁극적으로 동물에게 없는 인간 특유의 뇌기능에서 왔고 더 궁극적으로는 존재가 곧 사건이라는 자연의 원리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인간보다 먼저 있었다. 태초에 지식이 있었다. 그 지식이 복제되고 연결되어 풍부해진 것이 인간의 지식이다.


    귀납은 인식론을 이루며 인간의 뇌 안에 별도로 존재하는 가상현실이다. 그곳에 귀신도 있고 도깨비도 있고 내세도 있고 환생도 있고 별것이 다 있는데 그중 일부는 인간의 경험과 접목되어 지식으로 도약한다. 한꺼번에 도약하면 깨달음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8.03 (06:08:48)

"궁극적으로는 존재가 곧 사건이라는 자연의 원리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인간보다 먼저 있었다. 태초에 지식이 있었다. 그 지식이 복제되고 연결되어 풍부해진 것이 인간의 지식이다"

http://gujoron.com/xe/1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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