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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60 vote 0 2018.10.25 (15:22:28)

      
    의리는 결속이다

   
    의리는 팀의 결속이다. 가족 안에서 형제간의 결속과 부부간의 결속을 생각할 수 있다. 팀 안에서는 동료와의 결속이 의리가 된다. 에너지는 강한 결속에서 나온다. 파쇼fascio는 결속을 의미한다. 한때 파쇼가 성행한 이유는 실제로 거기서 에너지가 나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쇼는 결속할 수 없다. 이미 결속했기 때문이다. 


    주먹을 쥐면 힘이 나온다. 그러나 주먹을 쥐면 주먹을 쥘 수 없다. 이미 주먹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먹을 펼친 다음에 주먹을 쥐어야 한다. 문을 닫아걸면 에너지가 나온다. 개방을 반대하고 쇄국을 하면 일정한 정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나 그 에너지는 금방 고갈된다. 문을 닫아걸면 문을 닫아걸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열린 문을 닫을 수 있을 뿐 닫힌 문을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럼프는 문을 닫았다. 잠깐동안 미국인들은 행복했다. 그러나 이미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에 이제 미국은 문을 닫을 수 없다. 딜렘마다. 열면 에너지가 새나가서 손해본다. 닫으면 이익이 생기지만 금방 고갈된다. 문을 열면 강국의 식민지가 되어 죽는다. 


    문을 닫으면 북한처럼 고립되어 죽는다. 열어도 죽고 닫아도 죽는다. 그러므로 정교한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열되 보호해야 하고 닫되 다른 곳을 열어서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이쪽을 열고 저쪽을 닫으며 교통정리를 잘해야 한다. 그것이 의사결정구조다. 금리정책이든 재정정책이든 환율정책이든 열고 닫기를 잘해야 한다. 


    계속 열어도 망하고 계속 닫아도 망한다. 무작정 열기만 하면 된다거나 무작정 닫기만 해서 되는 것은 절대로 없다. 부동산이라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세금만 때린다고 되는게 아니고 무작정 집만 때려짓는다고 되는게 아니다. 정부가 통제권을 가지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은 밸런스다. 무엇보다 저울이 살아야만 한다.


    우파는 무작정 닫자고 하고 좌파는 무작정 열자고 한다. 우파는 닫아서 외국인을 쫓아내자고 하고 좌파는 열어서 난민을 받아들이자고 한다. 경제는 반대로 우파가 무작정 열자고 하고 좌파가 무작정 닫자고 한다.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저울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기울기 전에 먼저 저울이 존재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저울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동산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기 전에 정부가 통제권을 쥐고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것이 의리다. 의리는 저울이다. 의리는 내부결속이나 외부진출이 아니라 혹은 열림이나 닫힘이 아니라 그것을 판정하는 저울이다. 저울도 없는데 저울 눈금이 틀렸다니 하고 말로 떠드는건 허무한 거다. 


    우파든 좌파든 그러고들 있다. 누구도 저울을 돌보지 않는다. 천칭저울의 바늘을 비틀어서 자기쪽으로 가져오려고 기를 쓸 뿐 저울을 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의리는 부자간에도 있고 동료간에도 있고 부부간에도 있다. 우리는 부자유친이니 부부유별이니 군신유의니 하고 들었다. 다 필요없고 다만 저울이 하나 있어야 한다.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외부에서 들어온다. 그러므로 열어야 한다. 에너지는 닫아야 생긴다. 그냥 열기만 하면 에너지는 그냥 지나가 버린다. 에너지는 오른쪽으로 들어와서 왼쪽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개방을 해놓고도 남 좋은 일 시킬 뿐 이득을 챙기지 못한다. 문을 설치해서 자신이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


    역사에 흥한 나라들은 공통점이 있다. 대륙에 끼어서 옴쭉달싹 못하는 나라도 아니고 해양에 고립된 나라도 아니다. 아프리카는 대부분 좋은 항구가 없다. 남미는 대부분 문명의 중심축에서 너무 거리가 멀다. 격리되고 고립된 것이다. 문명의 중심축에 가깝고 좋은 항구를 갖추었으며 지리적으로 적절히 격리된 나라가 흥했다.


    대륙에서 가까운 섬나라거나 아니면 반도국가다. 그리스는 에게해를 중심으로 그리스 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양 쪽에 끼고 있다.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이 사실은 그리스의 내전이다. 케말 파샤에게 깨져서 아나톨리아를 잃고 그리스 영토가 축소되었기 때문에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나라가 저울처럼 생겨먹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양 팔에 끼고 문을 이루었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중심으로 지중해와 흑해에 양다리를 걸치고 나라가 문처럼 생겨먹었다. 키프로스의 구리광산과 흑해의 주석광산을 양팔에 끼고 중간에서 저울노릇이 상당하였던 것이다. 동쪽은 사막이고 북쪽은 산맥이다. 이정도 지정학적 위치라면 문명의 진보는 거저먹기다.


    이탈리아는 북으로 알프스가 막히고 3면은 바다로 막아서 들어오고 나가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스페인 또한 동쪽이 피레네로 막히고 나머지 3면이 바다여서 지브롤터로 아프리카를 연결하며 필요한 때 드나들 수 있다. 영국 또한 오랫동안 노르망디에 교두보를 설치해 두고 도버해협 양쪽을 동시에 지배하였던 것이다. 


    네덜란드도 옆에서 먹었다. 오른쪽의 독일과 왼쪽의 프랑스 사이에서 지정학적 어부지리를 취한 것이다. 반면 동유럽의 내륙국가들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수렁이라 희망이 없다. 과거에도 절망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중국의 변방에 위치해서 주변에 만만히 털어먹을 배후지가 없다. 저울이 없다.


    5천 년 만에 기회가 왔다.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이 충돌하는 지금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제법 저울노릇이 된다. 네덜란드가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였듯이 한국이 미국 조개와 중국 도요새를 동시에 잡는 어부가 될 수 있다. 문명충돌이 일어나는 지금 의사결정단위가 커져서 한국을 축으로 놓고 저울이 만들어졌다. 


    의리는 의사결정구조다. 의사결정구조는 대칭과 축으로 이루어진 저울이다. 열어도 안 되고 닫아도 안 되고 균형이 맞아도 안 되고 열고 닫기를 자유자재로 하되 필요한 때 밸런스를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좌우 밸런스를 맞추는게 아니라 튼튼한 저울 자체를 가져야 하며 때로는 좌를 밀어야 하고 때로는 우를 밀어야 한다.


    과연 저울이 있는가? 우선 의리가 있는가? 베테랑처럼 평소에는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가 결속을 필요로 할 때 누가 말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포지션을 찾아가서 역할을 찾아먹을 수 있는가다. 이심전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예컨대 이런 거다. 양상문 롯데 신임감독이 선수단 모아놓고 폼나게 한말씀을 했던 모양이다.


    기자들과 노가리 까기 좋아하는 자 중에 야구 잘하는 감독을 내가 못봤다. 인간은 말로 가르쳐서 되는 동물이 아니고 호르몬과 무의식으로 되는 동물이다. 무의식과 호르몬을 바꾸려면 환경을 맞게 세팅하고 고정된 역할을 주고 일정한 루틴을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저울이다. 감독은 무엇보다 팀의 방향성을 설계해야 한다.


    형님야구로 가든지 관리야구로 가든지 프런트 야구로 가든지 공격야구로 가든지 지키는 야구로 가든지 팀 전체의 치고나가는 방향성을 알려주고 속도를 조절하며 그 방향에 맞는 프런트와 감독과 코치와 선수와 선후배와 팬과 가족의 관계재조정을 통해서 걸맞는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팀의 스타일로 굳어지게 해야 한다.


    거기에 맞는 각자의 루틴을 지켜주고 각자의 할 일을 알려주고 그다음은 약속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 무의식이 세팅되고 호르몬이 나와서 분위기를 타고 흐름을 타고 시너지 효과로 기세를 얻어 치고 나가는 것이다.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간다. 그러므로 말이 필요없다. 형식을 보여주고 체감하게 하면 된다.


    형식을 만들어주고 내용은 스스로 채우게 해야지 감독이 낱낱이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 그 경우 내용을 건드리게 되는데 내용은 언제나 서로 충돌한다. 이것을 건드리면 저게 탈 나고 저것을 얻으면 이것이 빠져나간다. 의사결정능력 상실로 축이 움직여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므로 역설이 작동해서 의도대로 잘 안 되는 것이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생각나는대로 떠드는 자는 아는 자가 아니다. 아는 사람은 문제되는 부분이 아니라 그 부분이 일어나게 만든 사건의 앞단계를 건드린다. 서로 성격이 안 맞는 선수를 한 방에 집어넣어놓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고 말로 타이르면 넌센스다. 말로 하면 이미 잘못된 것이며 그 전에 방배치를 바꿔야 하는 거다. 


    말보다 구조개혁이 먼저다. 염경엽, 장정석, 한용덕은 그나마 뭔가를 보여줬다. 팀 안에 나름대로 저울을 만들었다. 의리는 이런 것이다. 내밀하게 작동하는 저울을 조직하는 것이다. 무의식과 호르몬을 건드리는 것이 의리다. 그 전에 환경을 바꾸는게 의리다. 스타일과 방향성을 구축하는게 의리다. 그렇게 저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영국과 네덜란드가 한번씩 뜬 것은 지리적으로 그것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그 나라들은 운이 좋았다. 산맥과 바다와 이웃나라가 적절히 저울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리적인 잇점을 저울로 삼아 필요한 때 치고 필요한 때 적절히 빠질 수 있다. 항구가 없는 나라들은 그럴 수 없다. 별 수가 없다.


    중앙아시아의 스탄나라들이 그러하다. 카자흐스탄이든 투르크메니스탄이든 아프가니스탄이든 바다가 없다. 우크라이나는 그나마 흑해가 있지만 보스포르스 해협에 막힌다. 결정적으로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저울이 깨져버린 것이다. 치고빠질 수 없다. 한 번 밀리면 일방적으로 밀린다. 중간에 멈추는 저울이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황토지대의 한족들은 유목민에게 황하에서 밀리면 양자강까지 계속 밀릴 뿐 중간에 쉬어갈만한 완충지대가 없다. 감독은 팀 안에 프런트와 코치와 선수들간에 역할분담을 통해서 그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팀 안에 바다를 만들고 산맥을 만들고 항구를 열어야 한다. 그런거 없이 말로 떠드는 자는 실패한다. 


    부부간에 그러한 물리적 균형장치가 없이 입으로 사랑을 말하면 보나마나 가짜다. 형제간에 그러한 물리적 균형장치가 없이 의리를 주장하면 가짜다. 마음으로 되는게 아니고 물리학으로 되는 것이다. 무사는 칼을 가져야 하고 선비는 붓을 가져야 하고 지도자는 저울을 가져야 한다. 물리적인 통제수단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임금과 신하 간에, 중앙과 지방 간에, 엘리트와 비엘리트 간에, 인문계와 이공계 간에, 경상도와 전라도 간에, 재벌과 중소기업들 간에 그러한 저울이 하나 있어야 한다. 말로 때우려 하는 자는 보나마나 가짜다. 물리적 구조를 갖춘 다음에 풀어놓아야 한다. 계속 풀어져 있으면 망한다. 비상이 걸리면 강력한 결속을 보여줘야 한다. 


    비상이 해제되면 다시 풀어져야 한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역할을 찾아 빈 자리를 메꾸어 수비하고 재빨리 이선으로 침투하여 동료의 패스를 받아야 한다. 자신을 전략 예비 포지션으로 풀어놓아야 그것이 가능하다. 지금 열심히 나대는 자는 자신에게 저울추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 자이며 그들은 의리가 없는 자이다.


    의리는 결속이다. 일단 결속해야 내부에 저울이 만들어진다. 일단 결속해야 산맥과 바다와 항구를 얻는다. 대칭의 축과 날개를 얻는다. 일단 공부해야 지혜를 얻는다. 그러나 너무 결속만 하면 답답해지고 너무 공부만 하면 창의하지 못한다. 일단 크게 결속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속도조절을 하고 동료와 박자를 맞추는 것이다. 


    일단 놀면 공부가 된다거나 일단 풀어놓으면 의리가 생긴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이등병은 먼저 결속을 배우고 베테랑이 되면 자유를 얻는다. 한중일 유교권이 잘나가는 이유는 일단 결속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하고 속도조절과 방향판단을 익혀야 한다. 뭉치는 법을 배운 다음에는 거리조절 능력을 익히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cintamani

2018.10.25 (15:51:04)

정말 아프리카는 항구도 없고, 그나마 있는 항구도 교역하기에 힘드네요.

아프리카는 부족주의 해체해도 힘들겠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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