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687 vote 0 2019.07.04 (15:18:31)

    
    “정부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평가함에 있어 가장 큰 오류가 있다면, 그 결과가 아니라 그 의도로 평가하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만의 말이다. 재정정책의 케인즈에 맞서 통화정책을 주장한 신자유주의 우상이지만 이 말은 맞는 말이다. 의도는 항상 반대로 된다.


    좋은 의도로 하는 정책이 나쁜 결과를 빚는 일은 흔히 있다. 의도와 결과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구조가 있다. 그 구조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를 담아내는 닫힌계가 있다. 구조와 에너지와 닫힌계를 연결하는 사건이 있다. 사건 속에서 에너지는 럭비공처럼 반대로 튄다.


    언제나 의도를 빗나가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칭이다. 사건 내부에 대칭이 있으면 통제되지 않는다. 의도는 위하여다. 결과는 의하여다. 결과가 의도와 반대로 되는 이유는 에너지를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장악하려면 계에 가두어야 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결과측의 정보다. 원인측의 정보는 없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난다. 엄마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온다. 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자궁이 있고 알이 있다. 사건의 원인은 그 안에 감추어져 있다. 사건은 계 안에서 에너지의 엮임에 의해 일어난다. 계도 보이지 않고 에너지도 보이지 않고 구조의 엮임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은폐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대칭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포착하는 것은 상대가 나와 맞서기 때문인데 자궁 속에 숨어서 열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언가 꿍꿍이 수작을 꾸미고 있으니 알 도리가 없다. 시간이 걸린다. 부족민은 아기가 왜 태어나는지 모른다. 10개월 전의 일을 어떻게 알아?


    바둑이라면 포석이다. 하수가 이쪽에 두면 고수는 저쪽에 둔다. 맞대응을 하지 않음으로 고수의 속내를 알 길이 없다. 포석의 위력이 효과를 보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원인을 모르는 두 번째 이유는 자궁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모두 연결되어 계를 이룬다. 계를 보지 못한다.


    알고 보니 저쪽 애들은 모두 사촌지간이더라. 알고 보니 모두 한패더라. 이 판에서 호구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면 내가 호구다. 알고 보니 다들 뒤로 연결되어 계를 이루었더라. 내막을 알았을 때는 이미 오링되어 있다. 의도가 반대로 되는 이유는 닫혀있지 않아 내부에 대칭이 있기 때문이다.


    열린계는 항상 의도가 반대로 된다. 에너지가 들어가는 뒷문이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상대가 맞대응을 하므로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즈나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프리드먼이나 둘 다 맞는 말을 하지만 둘 다 틀렸다. 부분은 맞는데 전체가 안 맞다.


    경제공황이 일어난 이유는 정부의 간섭 때문이 아니라 1차대전 때 유럽에 막대한 돈을 빌려준 미국의 돈줄이 갑자기 끊겨서다. 갑자기 찾아온 불황이 이상한 게 아니고 그동안의 호황이 이상한 것이다. 20년대 미국경제의 번영은 유럽을 착취하여 유럽의 부가 미국으로 이전된 것이다.


    그렇다. 뒷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닫힌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60년대 호황도 마찬가지다. 2차대전 승전국으로 도처에서 약탈한 미국의 착취가 80년대쯤 갑자기 중단된 것이다. 케인즈가 개입주의를 주장한 이유는 돈줄이 말랐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졌으므로 정부가 돈을 찍어내야 한다.


    프리드먼이 신자유주의를 주장한 이유도 같다. 착취대상이 사라졌으므로 정부가 돈을 찍어내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인간들은 기억력이 나빠서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난 세계대전을 까먹어 버린다. 미국이 자력으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남의 돈을 털어서 강도짓을 했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한때 영국이 번영한 이유는 남미의 초석광산을 독점하며 양질의 화약을 대량생산하여 세계를 통째로 털어먹었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서 질소를 합성할 수 있게 되자 다이너마이트가 쏟아지고 질소비료도 쏟아지고 맬서스의 인구론도 무너지고 초석광산은 의미 없게 된 것이다. 인정해야 한다.


    강도가 갑자기 가난해진 이유는 강도짓을 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을 직시하지 않고 재정이 어떻고 통화가 어떻고 하며 개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사건은 언제나 자궁이 있다. 사건은 감추어진 자궁 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난다. 결과가 나타날 때쯤이면 세월이 흘러 까먹는다.


    내부에 대칭이 있고 뒷문이 열려있으면 항상 의도와 반대로 된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문재인을 깠지만 결과는 그들의 의도와 반대로 되었다. 뒷문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대칭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위하여는 언제나 틀리고 의하여는 자궁을 세팅하고 뒷문을 잠그고 축을 틀어쥔 다음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7.05 (03:38:02)

"내부에 대칭이 있고 뒷문이 열려있으면 항상 의도와 반대로 된다."

http://gujoron.com/xe/1103373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6046 구조론의 도전 김동렬 2022-10-08 1800
6045 개 같은 인간들 2 김동렬 2022-10-07 2945
6044 예수의 본질 김동렬 2022-10-06 3005
6043 우리들의 일그러진 김동길 1 김동렬 2022-10-06 2359
6042 개념미술이 사기인 이유 김동렬 2022-10-05 1853
6041 한국 섹스교의 뿌리 1 김동렬 2022-10-05 2705
6040 개념미술은 사기다 김동렬 2022-10-04 2309
6039 개천절에 대한 생각 김동렬 2022-10-03 2572
6038 아스퍼거에 대한 생각 1 김동렬 2022-10-02 3232
6037 잠 자는 윤석열 image 4 김동렬 2022-10-02 3220
6036 소인배의 권력행동과 페미니즘 1 김동렬 2022-10-01 2866
6035 윤석열의 비밀, 김건희의 진실 1 김동렬 2022-09-30 2863
6034 이재명의 위기대응팀은? 2 김동렬 2022-09-29 2757
6033 구조의 힘 김동렬 2022-09-29 1776
6032 엘리트의 생존법 김동렬 2022-09-28 2574
6031 뒤집어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1 김동렬 2022-09-27 2447
6030 먹히지 않는 거짓말 윤석열 2 김동렬 2022-09-27 2773
6029 빛에 대한 추가 이야기 김동렬 2022-09-27 1791
6028 빛은 왜 빠른가? 김동렬 2022-09-26 1941
6027 쪽팔려 죽은 원술 김동렬 2022-09-26 2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