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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67 vote 0 2019.06.23 (20:47:57)


    뇌는 단축키를 쓴다


    전투 중이다. 상대의 펀치가 45도 각도로 올라오는 것을 보니 나의 턱을 노리고 어퍼컷을 쳐보겠다는 심산이군. 하고 생각하는 선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는 이미 뻗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판단하면 늦고 기계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맹수가 사냥할 때는 먼저 감정을 끌어올린다. 흥분해야 근육이 반응해준다.

   

    분노조절 장애라는 말이 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게 아니고 조절하지 않는 것이다. 원시의 사냥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분노하는 이유는 분노하지 않으면 사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능이라는 말이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먼저 분노했기 때문이고 자신의 분노를 유발한 상대방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나쁜 짓을 하려고 계략을 세우고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분노한다. 이미 분노했기 때문에 자기 책임은 없다고 믿는다.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뭔가 잘못했겠지. 잘못을 안 했다면 내가 왜 분노했겠느냐고? 이런 식이다. 그냥 원시의 본능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분노조절장애는 핑계고 덩치 큰 조폭에게 걸리면 이미 분노가 조절되어 있다. 혼나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다.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분노조절장애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단축키를 쓴다. 훈련된 전사는 조건반사처럼 움직인다. 미리 정해놓고 세트로 행동하는 것이다. 단축키는 가끔 에러를 일으킨다. 


    두려움이든 분노조절이든 고소공포증이든 일종의 단축키다. 단순히 이전에 했던 행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자기도 모르게 이미 행동해져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좋은 행동을 하고 그 기억으로 덮어씌우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고 반복하여 연습하면 해결된다. 문제는 불가능하다는 거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무대에 서지 못하므로 무대에서 잘 연주했던 좋은 기억을 쌓을 기회가 없다. 바깥이 두려워서 개집에서 나오지 않는 개가 있다. 개집을 부수어서라도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2층에서 내려오지 않는 개가 있다. 강형욱 훈련사는 그냥 개를 안고 계단을 내려왔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므로 물리력을 쓰는 수밖에 없다. 똑같은 상황을 재현하고 좋은 기억을 쌓아주는 방법밖에 없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고층으로 올라가서 편안하게 있는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방법이 없다. 뇌는 기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는 것이 약간의 도움은 될 수 있다.


    호연지기를 기르고 심호흡을 하고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은다는 느낌을 가지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최종관문은 같은 상황의 재현이다. 그 상황에서 벌벌 떨지 않고 잘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잘하면 그 기억이 깊은 인상을 남겨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반 트라우마라 하겠다.


    트라우마가 있으면 반 트라우마도 있다. 나쁜 기억의 상처가 있다면 좋은 기억의 선물도 있다. 좋은 기억으로 나쁜 기억을 덮어씌워야 한다. 문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는 동일한 상황을 재현하고 거기서 좋은 기억을 쌓으려 한다. 그러다가 나쁜 기억이 누적된다. 나쁜 상황 주변에서 얼쩡거리게 되는 것이다.

    

    정형돈은 한번 위축되면 계속 위축되어 말을 못 하고 반대로 한번 신이 나면 계속 깐죽거린다. 문제가 있다. 박명수는 의연하게 돌파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예민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상황을 돌파하는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면 문제해결이 쉬워진다. 자기암시 같은 것이 때로 기능한다는 말이다.


    명상을 하거나 좋았던 때를 떠올리거나 현장을 이탈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방법으로 그 상황을 탈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나쁜 기운을 덮어썼을 때는 거기에 굴복하지 말고 그게 뇌의 장난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탈출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거다. 무섭다면 무섭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대부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나는 형태로 해결된다.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상황을 만나거나 현장을 이탈하거나 무언가 새롭게 만나지 않으면 뇌는 인간에게 저주를 건다. 나쁜 기운으로 묶어버리려 한다. 억지로 빠져나오려고 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슬플 때는 슬퍼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 문제는 건강을 해치는 것이다.


    나쁜 기운 속에 머무르면 체온이 떨어지고 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 자신을 업시키지 않으면 입병이 나거나 두통을 앓거나 감기에 걸린다. 뇌의 장난이라는 사실을 알고 탈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불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중요하다. 뇌가 정보를 요구하는데 정보를 주지 않으면 가짜 정보를 생산하는 게 불안이다.   


    원시인은 두려움이 없다. 부족민 전사는 두려움이 없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온갖 정보가 뇌에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물론 체질적으로 타고 나기를 겁장이로 타고난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공부를 안 해서 뇌가 요구하는 정보와 체험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한국인에게만 화병이 있을까?


    화병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부족민의 아묵Amuk과 같다. 왜 인도네시아인만 아묵에 걸릴까? 아묵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아묵은 갑자기 미쳐 날뛰며 칼을 휘두르거나 자살하는 등의 증세다. 공황장애라는 말이 생기자 연예인 40명이 공황장애에 걸려버렸다.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두렵다고 인지하므로 두려운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없으면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게 인간이다. 물론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뇌가 어떤 것을 인지하면 그 행동을 구체화한다. 그러므로 뇌를 제압해야 한다. 호연지기를 길러서 신과 일대일로 대결하면 그런 자잘한 뇌의 테크닉들은 사라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9.06.23 (21:08:36)

이제부터 호연지기라는 말을 유행시켜야겠군요.
방씨일보 박살내고 자유한국당 박살내는게 바로 호연지기라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6.24 (03:01:56)

"단순히 이전에 했던 행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 같은 상황에서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고 반복하여 연습하면 해결된다."

http://gujoron.com/xe/1100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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