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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100 vote 0 2020.08.30 (20:27:00)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탕감해주지 말자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까주면 나만 손해다. 진정성 있게 말을 잘해야 한다는 것은 감정적 보상을 받으려는 비이성적인 태도다.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은 감정적인 보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게 길들여진 개의 심리임을 알아야 한다. 개는 보상을 좋아한다.


    남편의 ‘미안해’하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봄눈 녹듯이 녹았어요. 이러면 남편의 폭력은 재발된다. 장군이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면 그 병사는 죽는다. 병사의 부모 입장에서는 장군의 얕은 수법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김정은이 명절에 사탕 한 봉지 던져주면 그게 좋냐?


    은혜와 감사는 후진국의 처연한 풍경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던져지면 감동효녀가 아니라 미개한 관습이다. 누가 심청을 던지는가? 신파극 찍는 자들이 사람을 던진다. 감정선을 건드리고 싶어한다. 신문기사 제목은 점차 저급해진다. 감정을 건드리는 낚시성 제목이 판친다.


    ‘진심으로 사과하면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흔히 듣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고약하다고 여긴다. 사과하면 용서해 줄 정도의 일은 욕이나 한바탕해 주고 끝내지 법정으로 가져가지 마라. 절대성이냐 상대성이냐다. 상대적인 것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2차 가해를 부르는 기동이다. 사과를 한다. 용서를 한다. 이 그림이 아름답다. 그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입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평판을 높이고 싶다. 권력의지가 있다. 나쁘지 않다. 봉건사회라면 그렇다. 평판을 높이는게 중요하다. 가해자에게 곤장을 백 대 때리면 뭐 하나?


    내가 얻는 것이 없다. 가해자가 내 앞에서 사죄하고 만인이 지켜보는데 내가 용서해주면 평판이 올라간다. 좋지 아니한가? 내가 얻는게 있잖아. 사형수를 목매달아봤자 피해자가 얻는게 없지만 사형수를 용서하는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면 얻는게 있잖아. 사과받고 용서해주자.


    이게 후진국 모습이다. 피해자는 범죄자를 고발하는 행위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사회에 기여하는게 보상이다. 직접 사죄를 받아서 자기 평판을 올리겠다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은 사라진다. 대가를 챙겼으니까. 특히 정치범을 사적으로 용서한다는건 절대 있을 수 없다.


    광주학살의 피해자가 전두환을 용서한다면 당사자는 대인배로 칭찬을 듣겠지만 국가에는 해롭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구조론은 다르다. 구조론으로 보면 죗값을 치른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죄에 무슨 값이 있나? 소매치기는 백만 원이고 강도는 천만 원?


    천만 원 물어주면 강도질을 해도 용서되나? 죗값을 치르는 일은 절대로 없다. 범죄자를 교도소에 수용하는 이유는 통제수단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좋은 수단이 있다면 교도소를 없애고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교도소 수용보다 사회봉사가 더 좋겠다.


    흉악범은 수용할 수밖에 없지만 수용하는 비용이 엄청나다. 죄수 세 명을 감시하는데 교도관 한 명이 필요하다. 그 교도관 월급은 누가 주는데? 차라리 석방해주고 사회봉사를 시키는게 맞다. 과학적인 접근이라야 한다. 그래서 과연 범죄율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는가이다.


    선진국은 이 방법이 먹힌다. 후진국은 안 먹힌다. 욱하고 저지르는 양아치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고등교육을 받기 때문에 흉악범이 아니면 격리수용보다 사회봉사가 낫다. 죄는 용서되는 것도 아니고 죗값을 치르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물리력에 의해서 통제될 뿐이다.


    감정적인 대응이든 감정적인 신파극이든 감정적인 보상이건 감성팔이로 해결하려는 것은 후진국 관습이다. 과학적 근거를 따라야 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질 입자 힘 운동 량 순서로 권력은 하향한다. 대중이 권력의 전면에 나선다. 이때 대중의 주무기는 감정의 격동이다.


    과거 노빠들도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을 썼다. 희망돼지 같은 것이다. 어린이 저금통을 깬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선거전에 이런거 먹힌다. 그런데 경쟁이 붙는다. 저쪽에서도 비슷한 것을 갖고 나온다. 점점 유치해진다. 희망돼지 같은 걸 또 하겠다면 나는 단호히 반대한다. 


    그런건 한 번 써먹는 거다. 대중의 이목을 끌고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면 좋지 않다. 점점 유치해진다. 괴력난신과 음모론의 장이 선다. 대중이 전면에 등장할수록 대오는 정밀해져야 한다. 우르르 몰려 다니는 군중이 되면 안 된다. 강철대오는 울지 않는다.


    따박따박 전진할 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9.01 (04:18:39)

"감정적인 대응이든 감정적인 신파극이든 감정적인 보상이건 감성팔이로 해결하려는 것은 후진국 관습이다. 과학적 근거를 따라야 한다."

http://gujoron.com/xe/1232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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