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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86 vote 0 2018.12.20 (16:56:34)

      
    순정 애정 열정 우정 욕정


    사랑에는 순정과 애정과 열정과 우정과 욕정이 있다. 하긴 이런 구분 따위가 무에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냥 사랑이 있을 뿐이다. 아니다. 사랑은 없다. 사랑은 거짓말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거다. 사랑하는 사람은 당당하다. 솔로들이 찌그러져 있는 것과 비교하자면 말이다.


    당당하고 싶은 것이다. 부족민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사랑하지 않았다. 중매결혼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더랬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갑자기 모두가 사랑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부장제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탈주가 시작된 것이다.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박된 존재임을 알아채고 탈주함에 있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절차가 사랑이다. 옛날에는 그냥 살았다. 살았는데 돌아다니다가 문득 신작로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다시 길 가에서 서성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길 끝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도 거짓이고 행복도 거짓이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부족민은 말했다. 내가 봤어. 백인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나는 옷을 입고 싶은데 당신에게서 그 옷을 벗겨낼 방법이 없구나.


    순정은 자연스러운 사랑이다. 어미가 새끼를 사랑한다. 여인이 꽃을 사랑한다. 아이가 동물을 사랑한다. 순정은 로맨티시즘이다. 설레임이다. 열린 가능성에 대한 태도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로맨티시즘이다. 애정은 다르다. 애정은 충격적인 결핍의 발견이다.


    머스매들은 여자애들을 경멸하는게 보통이다. 여자애와 놀면 안 된다고 배운다. 남자다워야 한다고 배운다. 고추 떨어질라. 모르는 새 여자에게로 향하는 눈길을 멈추려고 한다. 고개를 돌리려 한다. 그런데 그녀의 웃는 얼굴이 잊어지지 않네.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한다. 실패다.


    다가갈 수 없다. 거울을 봤기 때문이다. 자신의 꾀죄죄한 몰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거절될 것이 뻔하다. 얼굴이 화끈해진다.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자신에게서 치명적인 결핍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애정이다. 애정은 열정으로 도약한다. 자신을 변하게 한다.


    갑자기 세수를 하고 3년 만에 양치질을 한다. 옷을 골라 입는다. 안 입던 속옷도 챙겨 입는다. 자신을 변화시키면 열정이다. 사랑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정은 변주한다. 함께 여행을 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 두어본다. 여기서 우정은 같은 남남 커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성별은 필요없다. 꽃을 사랑하든 강아지를 사랑하든 시를 사랑하든 음악을 사랑하든 취미활동이든 거기에 순정과 애정과 열정과 우정과 욕정의 진행단계가 있다. 욕정은 구체적 대상이 있다. 식욕과 성욕처럼 대상에 대해 직접적이다. 순정에서 시작하고 욕정으로 끝난다.


    에너지를 끌어오는 절차다. 사람을 사랑하든 문학을 사랑하든 예술을 사랑하든 마찬가지다. 결론은 완전성이다. 인간은 자신에게서 결핍을 발견하고 완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족민은 결핍이 없다. 완전하기 때문이다. 사냥을 나갔다가 백인의 옷을 보았다. 처음 결핍을 본 것이다.


    무언가 뜨거운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행복하다. 왕자이고 공주이기 때문이다. 결핍은 없다. 초등학교 첫 시험을 치르기 전에는 말이다. 자신에게서 결핍을 발견했을 때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은 완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으로는 완전할 수가 없다.


    식욕도 성욕도 완전해질 수 없다. 밥을 먹어도 배는 고프고 섹스를 해도 여전히 아프다. 배고픔은 자기 안의 감춰진 가능성 때문이다. 자기 안의 모든 가능성을 드러냈을 때 비로소 완전하다. 배는 물에 떠야 완전하고 선수는 시합에 나가야 완전하듯 가능성을 실현해야 완전하다.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야 완전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러므로 완전하고자 한다. 3대의 계통을 연결할 때 완전하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복제될 때 완전하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서서 둘을 연결하여 소통시킬 때 완전하다. 상대의 반응들을 끌어낼 때 완전하다.


    사건 속에서 완전하고 진보 속에서 완전하다. 움직일 때 완전하고 멈추면 불완전하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나아가게 한다. 세상의 중심으로 전진하게 한다.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뛰어들게 한다. 먼저 완전성을 이해하고 다음 자신의 결핍을 보고 다음 사랑의 대상에서 찾는다.


    순정에서 애정으로 열정으로 우정으로 욕정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순정에서 멈추면 안 된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다. 애정으로 나아가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에게서 결핍을 봐야 애착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열정으로 전진해야 아름답다.


    열정과 우정을 거쳐 욕정에 도달하지 않아도 좋다. 에너지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할 뿐 사랑으로 무언가를 획득하고 쟁취하는 것은 없다. 불씨는 꺼트리지 말고 계속 이어가는게 중요할 뿐 그 불로 고구마라도 구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무엇이든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의 가능성을 낱낱이 드러내기다. 악기가 숨은 현을 하나 감추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 열두 줄 가야금에 한 줄을 따로 빼놓을 이유가 없다. 모든 소리를 남김없이 토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소리부터 낮은 소리까지. 자신을 변화시킬 수가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8.12.21 (03:35:04)

"자신이 속박된 존재임을 알아채고 탈주함에 있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절차가 사랑이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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