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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530 vote 2 2017.10.10 (21:39:03)

     

    초인과 촌놈


    초인으로 번역되는 니체의 위버맨쉬가 영어로는 슈퍼맨 혹은 오버맨이라는데. 우습다. 뛰어넘으란다. 무엇을 뛰어넘는다는 말인가? 의사결정이다. 과연 의사결정할 수 있는가? 인간은 사건 속의 존재다. 사건은 서둘러 진행된다.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그 관성을 탈출할 수 있는가?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가? 지구 안에서 중력을 탈출할 수 있는가?


    초인은 사회에서 먹어준다는 도덕률이나 혹은 인간관계 속에서 꼬일대로 꼬여 지리멸렬해진 각자의 입장을 뛰어넘어 과감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겠다. 인간을 억압하는 것은 평판과 명성과 지위와 체면과 신분과 서열이다. 돈도 문제된다. 이를 넘어서야 한다. 사슬을 끊고 저 세계로 나아가기다. 그러나 니체는 어떻게 해야 초인이 되는지 말하지 않았다.


    탈출하라고만 했지 어떻게 해야 중력권을 탈출할 수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을 초인이라고 말한 건 니체의 병크다. 중력을 탈출하려면 그만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관성을 이기려면 역시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떻게 에너지를 끌어모을 수 있는가? 에너지를 모으는 수단은 깔때기다. 자연의 깔때기는 지형지물에 있는데 마음의 깔때기는 어디에 있는가?


    사회는 다양한 집단들로 조직된다. 집단은 일하는 집단이다. 집단의 일하는 구조가 있으니 곧 의사결정구조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떠올려도 좋다.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탈출할 수 없다. 자칫 지위를 잃고 평판을 잃고 명성을 잃고 돈을 잃고 힘을 잃는다. 체면을 잃고 신분을 잃고 서열이 뒤로 밀린다. 담대한 의사결정은 손해볼 각오를 필요로 한다.


    니체는 타고난 천재다. 24살에 일찌감치 교수가 되었다. 이웃에 살던 바그너와 친구가 되었다. 가진 것은 많고 잃을 것은 없다. 귀족의 정신을 소유한 엘리트다. 이쯤 되면 지위와 명성을 잃고 비참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할 일이 없다. 소박한 민중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나빠진 건강이 그의 맞수였다. 동료도 없고 연인도 없고 결혼도 없었다.


    루 살로메에게는 들이대다가 채였다. 책을 낼 때마다 젊은 시절의 친구들과 멀어졌고 바그너와도 틀어졌다. 사회는 끝내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초극하려면 시스템에 들지 않고 자신을 예비자원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사회의 어떤 약점을 보고 동료를 규합해서 맞대응을 해야 한다. 니체는 시스템의 어떤 약점을 본 거다. 우상에 지배되는 나약한 인간군상을 봤다.


    굴복하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간 점에서 니체도 촌놈이다. 그러나 병마와 싸웠을 뿐 시스템과 싸우지 않았다. 우상을 향하여 돌을 던지라고 말했을 뿐 시스템을 향해 돌을 던지지는 못했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혐오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공자와 다르다. 공자는 인간을 사랑했기에 시스템에 돌을 던졌다. 우상은 권력과 시스템에 있다.


    시스템의 약점을 본 사람이 초극할 수 있다. 시스템 바깥에 몸을 두어야 그 약점이 보인다. 그러려면 촌놈이 되어야 한다. 향원이 되면 안 된다. 향원은 시스템에 끼어서 납작해진 자다. 톱니바퀴에 끼어 그 톱니바퀴 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다. 너무 일찍 대학교수로 출세한 마광수 같다. 마광수 역시 우상을 향해 돌을 던졌지만 대학교수직을 때려치우지는 못했다.


    니체는 건강을 잃고 고립되었다. 마광수는 동료를 잃고 우울해졌다. 어느 면에서는 둘 다 촌놈이다. 시스템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게 그렇다. 다만 촌놈 특유의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니체는 미쳤고 마광수는 떠났다. 헌걸찬 기개를 보여주지 못하고. 동료와 팀을 이루고 함께 나아가야 했다. 시스템에 대드는 방법이다. 변방에서 중앙을 쳐야 진짜 촌놈이다.


    명성과 지위와 평판을 지키려고 기를 쓰는 자가 향원이다. 한 분야에서 작은 권력을 가지고 안주하는 자다. 향원은 위에 섬기는 보스가 있고 밑에 거느리는 부하가 있다. 뜻대로 의사결정을 못하고 대중의 의견을 따른다. 패거리의 의견을 자기 의견으로 삼는다. 대중에게도 아부하고 패거리에게도 아부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촌놈에게는 평판도 명성도 지위도 없다.


    터를 닦지 못하니 텃세를 부리지 못한다. 시골에서 서울로 옮겨가서 미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촌놈이다. 고행석 만화의 구영탄이다. 주성치 영화의 주성치 캐릭터도 촌놈이다. 구영탄은 시골에서 왔는데 서울살이에 적응을 못한다. 약삭빠르게 도시생활에 적응한 마구만과 다르다. 주성치는 대륙에서 왔는데 홍콩살이가 익숙하지 않다. 이런 사람에게 에너지가 있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라면 긴 칼을 휘두르며 온갖 폼을 다 잡는 가짜 사무라이 키쿠치요가 촌놈이다. 시골사람은 촌놈이 아니다. 도시로 와야 촌놈이 된다. 변방에서 뜻을 일으켜 중심을 치는 자가 촌놈이다. 신분상승을 꾀하며 동료를 규합하는 자가 촌놈이다. 동료를 배신하고 출세의 끈을 잡는 자는 향원이다. 개인의 콤플렉스에 매몰돼 있는 설까치는 촌놈이 아니다.


    변방에서 자기 나와바리를 닦고 주름잡으려는 진중권 부류가 향원이다. 진보정당을 한다지만 변방에서의 틈새전략이다. 특기를 살리는 인기있는 조연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감초 역할은 곤란하다. 곧 죽어도 주연을 노려야 한다. 틈새에 안주하지 말고 씩씩하게 나아가야 한다.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혼자로 곤란하고 의기투합해야 한다. 도원결의할 수 있어야 한다.


    공자의 군자 개념은 중용의 도를 익혀 균형감각을 얻은 사람이다. 세종과 강희제가 군자다. 세종은 주역을 공부해 음양의 이치를 터득하고 이를 한글창제에 반영했다. 강희제는 소수 만족으로 다수 한족을 해결해야 했다. 임금은 서로 대립하는 여러 신하의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어느 편에 들지 않고 중립적 위치에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곧 주역의 밸런스 개념이다.


    촌놈은 아래에 있으니 자유롭다. 군자는 위에 있기에 자유롭다. 둘 다 시스템에 들지 않는 점은 같다. 니체와 마광수 역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돈다. 세종과 강희제는 시스템을 장악하고 자유자재로 부린다. 세종과 강희제에 있는 그 무엇이 니체와 마광수에게 없다. 무엇인가? 에너지다. 공자에게는 그 에너지가 있는데 병약했던 니체에게는 그 에너지가 없다.


    구김살 없이 자란 알렉산더나 곽거병이 좋다. 해맑은 사람이다. 영웅은 두 가지 타입이 있다. 가슴 속에 불을 가지고 자기 본심을 숨기며 은인자중하다가 찬스를 만나면 단번에 급소를 물어뜯는 나폴레옹과 징기스칸 같은 도전적 영웅형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 왕자로 태어나 거리낌 없이 살다간 비극적 영웅형이 있다. 곽거병, 알렉산더, 카이사르다. 이들은 단명했다.


    이들 역시 시스템에 끼지 않는다. 곽거병은 황제의 조카인 데다 나이가 어려 개념이 없었다. 신나게 싸우다가 훌쩍 떠났다. 아쉬움을 남기고. 알렉산더 역시 왕자로 태어나 구김살이 없다. 석가는 왕자였기에 자유로웠고 세종과 강희제도 왕자시절은 자유로웠다. 임금이 되고 자유를 잃었지만. 구김살 없이 자라야 영웅이 된다. 이들도 시스템 바깥에서 성장한 촌놈이다.


    에너지는 동료를 얻는 데서 생긴다. 그러려면 균일해야 한다. 차별하면 장벽이 세워져 동료를 잃는다. 동료가 없으면 에너지가 없다. 니체에게 없고 마광수에게 없다. 구영탄과 주성치에게는 있는데 설까치에게는 없다. 설까치는 개인의 복수에 매몰되어 동료에게 어시스트 하지 않는다. 우상을 깰 수는 있어도 시스템을 치지는 못한다. 퇴계는 되어도 율곡은 못된다.


    에너지는 권력의 가능성에서 발생한다. 동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배우자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사랑의 열정이 샘솟듯이. 더욱 시스템 바깥에 있는 자는 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법이다. 시스템의 약점을 보았을 때 인간은 흥분한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 내가 죽더라도 동료가 대신 계속 갈 것을 믿기에 한 몸을 내던질 수 있다.


    세상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의기투합 못하고 도원결의 못하니 상대적인 에너지의 우위를 이루지 못한다. 에너지 낙차가 없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위에서 아래로 간다. 탑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바텀 포지션이면 글러먹었다. 탑을 못 잡으면 시스템에 치어 관성의 지배를 받고 이리저리 휘둘린다.


    페르시아를 상대하는 그리스군은 촌놈이었다. 그리스는 지형 자체가 촌락의 집합이다. 그들에게는 동료가 있다. 임금의 발등에 키스하는 페르시아 공무원들과 달랐다. 알렉산더의 부하들은 알렉산더를 동료로 여겼기에 인도로 쳐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카이사르의 로마군은 백인대에 신병을 넣지 않고 동료를 이루게 했으니 모두 같은 짬밥에 같은 군번이 된 셈이다.


    공업화된 북부 양키들에 맞선 남부 농민들은 당연히 촌놈이었다. 미국에 대든 일본은 자기네가 우월하다는 근거로 지들이 촌놈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촌놈이기에 반자이어택을 감행하고 카미카제에 뛰어들 에너지가 있다. 실상은 미국인들이 더 촌놈이었다. 그들은 아일랜드와 독일과 폴란드에서 방금 이민을 왔으므로 지켜야 할 평판도 지위도 명성도 뭣도 없었다.


    한족이 도시인이면 유목민은 촌놈이다. 전쟁은 언제나 북방 유목민이 남쪽 농경민을 공격하는 형태다. 촌놈이 도시인을 친다. 역사는 언제나 촌놈의 승리를 말하고 있다. 촌놈이 의사결정을 잘하기 때문이다. 떼거리가 많아 인원통제에 실패하는 한족은 패배한다. 팀워크가 견고한 소수의 동료가 의사결정을 잘해 다수의 떼거리를 이기는 것이 모든 전술의 기본이다.


    시스템에 들어가면 공무원이 된다. 관할구역이나 따지며 의사결정을 회피한다. 책임을 미룬다. 왜? 동료가 아니니까. 타자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촌놈은 동료가 있으니 끝도 없이 간다.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라도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촌놈이다.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 이문열도 젊었을 때는 촌놈이었다. 나름 에너지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기준선을 잘못 그었다. 곽거병은 구김살이 없는데 이문열은 빨갱이 구김살이 있었다. 곽거병은 부하도 동료로 대우했는데 이문열은 동료를 버렸다. 왜? 복수하려고. 우월주의에 빠져 삐딱선을 탄 거다. 동료를 얻는 것이 촌놈의 목적이다. 젊은이는 누구나 촌놈이다. 나이가 들며 점차 구김살이 생긴다.


    지위와 평판과 체면과 명성과 돈과 신분이 동료 사이를 갈가리 찢어놓는다. 곽거병도 오래 살았으면 타락했을 수 있고 체 게바라도 마찬가지다. 김일성도 일찍 죽었다면 나름 체 게바라다. 레닌은 늦깎이로 떠서 바로 죽었으니 타락할 찬스를 놓쳤다. 다들 그렇다. 성공하고 촌놈정신을 잃지 않는 노무현은 참으로 드물다. 씩씩하게 끝까지 가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없다.


    촌놈의 미학을 영상에 잘 담아낸 주성치도 타락해서 동료를 잃었다. 유덕화도 양조위도 홍금보도 오맹달도 주성치를 싫어한다고. 주성치 영화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 주성치가 잘난 도시인에게 구박받고 모욕당하는 장면이다. 그게 주성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콤플렉스 때문이다. 알렉산더와 곽거병과 세종은 콤플렉스가 없다.


    왕자니까. 카이사르도 콤플렉스가 없다. 워낙 유능하니까. 징기스칸은 콤플렉스가 없다. 그에게 패배를 안겨준 자무카가 죽었으니까. 만약 자무카가 살아있었다면 징기스칸도 추태를 부렸을 거다. 징기스칸은 친구를 살려주려고 했지만 자무카는 그 점을 직관하고 징기스칸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징기스칸은 과거를 떨쳐내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갔다.


    나폴레옹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해 추태를 부렸다. 황제가 되었는가 하면 함께 고생한 동료를 의심하여 제거하기도 했다. 가까운 친척들만 믿었고 그 친척들은 하나같이 나폴레옹을 배신했다. 그는 자신이 앞장서서 개혁한 시스템을 도로 후퇴시켰다. 조조는 친구인 원소를 제거하였고 역시 고향친구였던 허유를 죽였다. 연의는 허저가 죽인 것으로 했지만 아니다.


    사실은 조조가 친구를 죽인 것이다. 동료를 죽였을 때 위나라는 이미 끝난 상황이다. 사마씨가 승계했지만 도교에 빠져서 멸망했다. 조조가 자신에게 콤플렉스를 안겨준 유교를 버렸는데 진은 그 분위기로 계속 갔다. 진은 그냥 멸망한 정도가 아니라 팔왕의 난이라는 중국사 최대의 추태를 부린 끝에 다양한 오랑캐들을 끌어들여서 처참하게 망했으니 개쪽을 팔았다.


    수와 당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한족황제의 중국이 아니라 유목민 가한의 중국이다. 희랍인 조르바를 떠올릴 수도 있다. 거기에 동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발정난 개처럼 나대는 코미디언이 있을 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초인을 묘사하려고 했다. 조르바는 그냥 촌놈일 뿐 도시로 쳐들어가는 전사는 되지 못했다. 촌놈의 에너지는 있었으나 기껏해야 춤이나 춘다.


    조르바의 난잡한 행동을 문학적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조르바가 성매매를 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난동을 부려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읽어서 김삿갓이 조선왕조를 조롱하고 새로운 시대를 모색한 것이라고 미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김삿갓은 개인의 콤플렉스에 매몰되어 있었고 조르바는 그냥 촌뜨기다. 문학적 장치일 뿐 현실의 조르바는 새누리당이나 찍는다.


    독자는 심리적 위안을 원한다. 조르바의 마광수 행동이 겁먹은 당신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런 당신이 틀렸다. 큰 에너지를 일으켜야 한다. 자신을 위안하려고 하면 그게 자기소개다. 세상과의 싸움에 나서야 한다. 동료가 없으면 주저앉게 된다. 공자는 동료를 얻는 방법을 제시했다. 인과 지와 의와 신과 예로 동료를 얻게 된다. 그러나 퇴계는 동료를 얻지 못했다.


    추종자에게 아부했기 때문이다. 율곡은 동료를 얻었다. 따르는 세력이 너무 커져서 도리어 위태로웠을 정도다. 공자는 자로와 안회를 얻었고 맹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천하를 들썩일 정도가 되었다.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에너지를 조직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였다. 니체의 대항이 방향제시가 되고 조르바의 기행이 힌트가 되나 희미한 가능성을 본 정도다.


    비판적 지지를 외치며 세상을 향해 짱돌 하나 던지고 만족하는 소인배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 이상을 해내야 한다. 우리가 책임지고 우리가 바꿔야 한다. 이건 전초전이고 본 게임은 70억 인류를 책임지는 큰 판이다. 우리가 인류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니체는 별수 없는 초딩이니 노자의 재탕이다. 우상을 파괴하였거든 동료를 얻어 나아가 시스템을 갈아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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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2017.10.10 (22:51:21)

이 글은 구조론 회원들의 강령으로 읽힙니다

촌놈으로 한 번 약점을 보았으니 끝까지 가봐야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7.10.11 (07:53:32)

감사히 읽었습니다.
[레벨:0]제레미

2017.10.11 (11:07:56)

호연지기를 복제해 갑니다.
[레벨:6]부루

2017.10.11 (15:12:42)

조르바의 마광수행동...


이문열도 젊은 시절 바른 말 한 게 있지요.


김삿갓이 무슨 시대에 저항한 선비냐 대단하게 떠드는데 그게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한풀이 넋두니라 한 것에 불과...


조르바나 김삿갓이나 이들도 그냥 요새 세상에선 홍준표 찍었을 거 


우리는 호연지기로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7.10.11 (16:59:44)

좀 더 힘을 규합해서 중앙을 제대로 한번 쳐야하는디...


프로필 이미지 [레벨:6]블루

2017.10.11 (18:47:31)

이제껏 세상에 없던 글이네요.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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