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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655 vote 0 2019.01.15 (22:02:06)

      
    변화와 안정


    변화가 좋다는게 진보다. 안정이 좋다고 말하면 보수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진보와 보수가 별도로 있는게 아니고 오직 진보가 있을 뿐이며 보수는 진보에 의해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진보가 빛이라면 보수는 어둠이다. 빛은 광자가 있지만 어둠은 빛에 대칭되는 무엇이 없다. 진보는 실체가 있지만 보수는 실체가 없다.


    진보는 통일된 가치가 있고 보수는 없다. 보수의 가치는 그때그때 정해진다. 진보는 무엇을 하자는게 있고 보수는 그게 없고 그냥 진보를 반대한다. 일원론적 관점을 얻어야 한다. 이게 납득되어야 한다. 아직도 납득을 못했다는 분은 더 읽을 필요가 없다. '맞아. 확실히 빛은 있고 어둠은 없어.' 하고 납득해야 진도를 나갈 수 있다.


    새것은 실제로 있고 낡은 것은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신랑신부는 스스로 되는 것이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의해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아들이 장가들지 않았는데 혼자 시어머니가 될 수 없다. 변화가 좋은가 안정이 좋은가? 변화가 진보다. 변화가 좋다. 안정이 좋다는 사람은 관점에 문제가 있다. 타자성의 문제, 대상화의 문제다.


     변화가 좋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함시켜 전체를 바라본다. 내가 깨닫고 내가 성장하고 내가 합격하고 내가 승진하는 것은 좋은 변화다. 그러나 상대방이 깨닫고 상대방이 성장하고 상대방이 합격하고 상대방이 승진한다면 내게 좋지 않다. 변화보다 안정이 낫다는 사람은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비뚤어진 관점을 가졌다.


    나와 남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나는 여자가 좋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 사람이 말하는 여자는 상대방이다.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 내게 잘해주는 여자가 좋다는 거다. 이렇게 자신과 분리해서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이미 관점이 비뚤어져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는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다. 만약 주변에 이런 비뚤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엘리트에 들지 못하므로 쳐내야 한다. 주체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어떤 일본인이 나는 조선이 좋아 하고 말한다면? 그 일본인은 좋은 일본인일까? 일제강점기 소화시절에 조선여자가 내게 참 잘해줬지 이런 말을 예사로 한다면?


    지한파라고 주장하며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본인이 실제로는 한국을 얕잡아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나는 여성을 존중한다고 말하면 자신에게 잘해주는 어떤 여성을 존중한다는 말이다. 트럼프가 여성을 존중하는게 사실이라 해도 타자화하고 대상화했기 때문에 여성비하다. 원래 봉건귀족들은 하인들에게 잘해준다.


    히틀러도 하인들에게 친절한 사람이다.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하인들에게 고압적으로 행동하면 보나마나 커피에 독을 타거나 침을 뱉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백인 노예주가 충직한 흑인 하인을 좋아한다는 식이다. 국가의 탄생이라는 극우영화가 있는데 자상한 백인 주인과 충성스러운 흑인 노예가 등장한다.


    그 영화는 흑인을 존중하는 영화일까? 천만에. 그 영화는 흑인을 모욕하고 있다.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순간 이미 비뚤어져 있다. 우리가 일원론의 사유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변화는 좋은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쁜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금과 변하지 않는 통조림이 좋다는 거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며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개를 사랑하는 사람일까? 이런 점에서 3분만 대화해 보면 그 사람이 대화상대가 되는 엘리트인지 쓰레기인지 분별할 수 있다. 주체의 관점으로 보면 변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는 반지로 가공할 수 없다. 가공하는 과정이 이미 변화인 것이다. 


    변하지 않는 금은 채굴할 수도 없다. 금의 채굴과정이 이미 변화다. 변하지 않는 와인은 술을 빚을 수 없다. 발효되지 않으므로 술이 되지도 않는다. 변하지 않는 통조림은 만들 수도 없다. 바다의 참치가 변해서 참치통조림이 된다. 변해야 존재가 성립한다. 나와 대상을 분리하고 밖에서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 


    이원론의 사고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부분이 아닌 전체로 봐야 한다. 전체로 보면 변화가 좋다. 변화는 에너지를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존재는 무너지고 만다. 지구는 도는데 돌지 않는 것은 지구에서 이탈한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죽는다. 사회화되지 않는 인간은 감옥으로 격리된다. 변하지 않으면 치인다. 


    세상은 에너지의 존재이며 변화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변화를 지지하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지진아는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가 싫다는 말은 자신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류에 뒤처진 인간이라는 자기소개다. 우주도 진화하고 생물도 진화하고 문명도 진화하고 자본도 진화한다. 


    세상 모두가 진보하는데 홀로 진보하지 않으면 곧 퇴보하는 것이다. 퇴행하면 죽는다. 부분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진리는 보편성이다. 특수성은 해당되지 않으므로 논외다. 바퀴가 돌아도 바퀴의 축은 돌지 않는다. 아니다. 축도 돈다. 축이 돌지 않는 것은 마차이고 축이 도는 것은 자동차다. 엔진이 축을 돌린다.


    변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니다. 모두 변한다. 부분은 변하지 않으나 전체가 변하므로 부분의 불변은 무시된다. 마차 바퀴축이 돌지 않아도 마차가 가면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이 진리의 보편성이다. 보편성으로 보면 세상은 변한다. 우주가 변화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연이 변한다.


    진보는 일체의 차별주의에 반대한다. 통합해야 에너지를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다. 에너지를 태울 수 있는 구조가 진보다. 보수는 그 진보를 반대한다. 정체성이 없다. 보수는 통합을 반대하지만 모든 통합을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다가 자기도 분열되어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말거다. 


    진보는 일체의 차별을 반대한다는, 에너지를 태울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한다는 한 가지 방향을 찍어 말할 수 있지만 보수는 그게 없다. 보수는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머리는 하나지만 손발은 여럿이기 때문이다. 기관차는 하나지만 객차는 여럿이다. 엔진은 하나고 바퀴는 여럿이다. 보수는 일관되게 한 방향을 가리킬 수 없다.


    일단은 대화상대가 되어야 한다.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사람은 비뚤어진 사람이므로 어른들의 대화에 끼워줄 수 없다. 3분만 대화해보면 글자 배운 사람이 상종할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분간된다. 2원론적 흑백논리 분열주의 사유를 극복해야 한다. 분열주의 사유를 하므로 분열을 기대하고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다.


    시작과 종결이 있고 원인과 결과가 있고 전체와 부분이 있고 머리와 꼬리가 있고 선두와 후미가 있다. 진보와 보수가 있다. 일원론과 이원론이 있다. 보편성과 특수성이 있다. 시작, 원인, 전체, 머리, 선두는 좋은 것이고 종결, 결과, 부분, 꼬리, 후미는 좋지 않은 것이다. 진보 일원 보편은 좋은 것이고 보수 이원 특수는 좋지 않다. 


    시작 원인 전체 머리 선두 진보 일원 보편은 에너지를 태울 수 있으므로 좋은 것이고 종결 결과 부분 꼬리 후미 보수 이원 특수는 에너지를 태울 수 없으므로 좋지 않은 것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것이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좋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아니다. 무조건 절대 좋지 않은 것이다. 


    부분적으로 좋다는 것은 언어의 문제다. 도둑질하기에는 밤이 좋지 않느냐 하는 식이다. 도둑놈에게 좋은 것은 좋은게 아니다. 낱낱이 따지고 보면 절대 안 좋지만 언어의 한계로 낱낱이 따지지 못하므로 두루뭉수리로 넘어가는 것이며 대충 보면 부분적으로 좋지만 잘 보면 절대로 좋지 않다. 얼굴이 미남인 강도가 있다 치자.


    얼굴은 좋잖아 하고 말할 수 있다. 아니다. 얼굴만 따로 논하기 없다.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인데 그건 좋지 않느냐? 아니다. 더 고약하다. 전체가 나쁘면 다 나쁜 것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되는데 진리는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 51+49가 얼마냐는 물음에 99라고 답해놓고 근사치니까 세모를 달라는 식이다. 세모 점수는 없다.


    언어의 문제를 사실의 문제로 바꿔치기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말로는 예쁜 것을 보고 밉상이라고 해도 아이러니가 되는데 진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언어는 그때그때 맥락을 따라가면 되지만 진리는 그런거 없다. 진리는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언어는 융통성이 있지만 진리는 융통성이 없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1.16 (03:52:19)

"언어는 그때그때 맥락을 따라가면 되지만 진리는 그런거 없다. 진리는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 http://gujoron.com/xe/1054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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