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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878 vote 0 2018.03.27 (17:13:24)

 

    사건은 모두 연결되어 통짜덩어리로 있다. 우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려고 하지만 사건으로 보면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먼저 나쁜 것을 처리해야 하고, 나쁜 짓을 하기 위해 먼저 좋은 것을 조달해야 한다. 사기꾼은 좋은 일을 해서 신뢰를 얻고 노동자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좋다 나쁘다는 철학자의 언어가 될 수 없다.


    행복과 불행,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사랑과 증오, 선행과 악행도 마찬가지로 철학자의 언어가 될 수 없다. 이는 상대평가들이다. 상대어는 철학자의 언어가 아니다.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 가수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표현하는데 성공했느냐가 중요하다. 춤꾼은 자신이 원하는 동작을 구현했느냐가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컨트롤 했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절대평가다. 행복은 더한 행복이 있고 불행은 더한 불행이 있다. 사랑은 더한 사랑이 있고 증오는 더한 증오가 있다. 더할 수 있는 것은 상대평가다. 가치 없다. 절대평가의 세계는 더하지 않고 그걸로 끝낸다. 좋은 자동차라면 핸들을 꺾는 만큼 차가 움직여줘야 한다. 더해도 안 되고 덜해도 안 되고 딱 거기까지. 커브를 만나 핸들을 꺾는 만큼 차가 돌아주면 된다.


   상대평가는 상대방을 이기려는 마음을 바닥에 깔고 있다. 숨은 전제로 있다. 틀려먹었다. 그것은 철학이 될 수 없다. 철학은 절대평가다. 궁수가 과녁을 맞추듯 정확하게 겨냥하여 명중시키면 된다. 손자병법은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이기지만 오자병법은 많은 병력으로 적은 병력을 이긴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이기려면 간첩을 보내 적을 파악해야 한다.


  많은 병력으로 적은 병력을 이기려면 훈련하여 부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손자병법이 먹히는지는 어떤 군대를 만났는지가 결정한다. 오자병법은 언제나 먹힌다. 일단 아군의 병력이 많은데 훈련까지 잘 되어 있다면 무적이다. 손자병법의 성공은 상대적이나 오자병법의 성공은 절대적이다. 단, 지휘관이 부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병사는 총을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지휘관은 부하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악사는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화가는 안료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절대평가의 세계다. 상대평가의 세계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더 많이 번 사람이 있고, 아무리 출세해도 더 많이 출세한 사람이 있다. 절대평가의 세계는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면 된다. 운전자는 차를 다룰 수 있으면 된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 삶을 절대평가로 조직해놓지 않기 때문이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원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글쟁이는 내가 만족하는 글을 썼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원이 내부에 있다. 악사는 내가 원하는 소리를 끌어냈느냐가 기준이다. 에너지원이 내부에 있다. 그러므로 불행하지 않다. 내 행복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세상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모순이다. 모순을 처리하는 과정에 모순이 사라지는 만큼 손실이 일어난다. 에너지가 모순을 처리하는 방법은 대칭을 쓰는 것이다. 100이 있어야 하는데 99다. 처음부터 100일 수 없다. 100이면 임계에 도달하여 폭발하기 때문이다. 99인데 외부에서 1을 빌려준다. 100이 채워지면 반응이 시작된다. 외력에 의해 사건이 격발되는 것이다.


    모순이 붕괴하며 에너지가 작동한다. 외부에서 빌려준 1은 돌아간다. 그렇다면 99가 남아야 한다. 아니다. 98이 남는다. 외부에서 온 1이 대칭을 일으켜 1을 빼간다. 대칭원리에 의해 계는 항상 짝수로 작동한다. 반드시 손실이 일어난다. 98의 짝수가 대칭을 이룬다. 대칭은 사건을 거치며 또 다른 대칭으로 갈아타지만 관성의 법칙으로 또 다른 불균형이 일어난다.


    그 과정을 5회 반복하며 각 단계에서 손실을 일으킨다. 에너지의 작동은 모순의 해소이므로 반드시 손실을 일으킨다. 모순이 해소되었다는 것은 무언가 잃어먹었다는 의미다.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다. 제거된 만큼 손실이 일어난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의해 손실된 에너지가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닫힌계 바깥으로 나간다. 통제되는 대칭구조 밖으로 새나갔다.


    닫힌계라고 하지만 사건범위가 닫혀있을 뿐 고립계는 아니다. 에너지는 활발하게 드나든다. 대칭이 닫혔다. 대칭은 짝수이므로 움직이면 항상 자투리가 남고 그만큼 손실은 필연이다. 사건 바깥으로 조금 삐져나간다. 최대한 손실을 줄이면서 사건을 통제하는게 중요하다. 내 입에 맞는 떡만 받아먹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받지 말고 주는 사람의 위치에 서야 한다.


    받는 데는 철학이 필요 없다. 그냥 받으면 된다. 주는 데는 철학이 필요하다. 강아지에게 밥을 줘도 잘못 주면 강아지들끼리 싸운다. 아기는 받기만 한다. 아기는 철학이 필요 없다. 철학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이성을 사귈 때다. 연인은 서로를 통제하려 한다. 선악 중에서 선택하려고 하므로 커플은 깨진다. 선악의 상대평가에 길들여진 사람은 통제되는 사람을 찾는다.


    만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쁜 남자를 만난다. 통제가능성의 절대평가를 배운 사람은 상호작용이 긴밀한 사람을 찾는다. 상호작용이 긴밀하면 선악을 넘어 문제가 해결된다. 합이 맞을 때까지 긴밀하게 밀당을 주고받으면 어느 순간 통제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악기 다루듯이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절대로 해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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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김미욱

2018.03.28 (07:33:48)

사귐 철학의 정석같은 멋진 글입니다. 이런 글은 직법적 체험을 바탕으로 읽어야 제대로 이해되는 법이죠. 검증되지 않믄 감정과 어설픈 다짐은 많은 이야기거리는 남길지언정 에너지는 부여하지 않죠. 세익스피어가 문득 읽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슈에

2018.03.28 (12:51:11)

성범죄자들이 착하게 생긴 남성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착하게 생겼으니 내 말 잘 듣겠지... 하다가 뒤통수 맞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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