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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621 vote 0 2020.12.18 (12:06:28)


    인간의 한계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언어는 전제와 진술로 조직된다. 전제의 전제가 있다. 사건의 최초 출발단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건의 기승전 단계가 틀어져 있는데 결 단계에 와서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의견차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소통의 단절 문제다.


    대화가 안 되는게 문제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장벽이 있다. 엘리트가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대중은 여럿이고 엘리트는 하나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는 힘들고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엘리트가 먼저 변해야 한다.


    예컨대 이런 거다. 의식 있는 젊은 스님이 조계종을 개혁하려고 한다. 토굴에서 수행만 하는 노스님을 설득하려고 한다. 표싸움을 해야 하니까. 설득되는가? 설득이 안 된다. 노스님은 말한다. ‘쟤는 아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더 이상 말을 붙여볼 여지가 없다.


    ‘뭐가 아니죠?’ ‘아냐. 아니라구. 돼먹지 않았어.’ 장벽이다. 끝이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단이 없다.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거지? 요플레를 사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스님은 이가 없다. 밥을 못 먹는다. 초코파이와 말랑젤리와 요플레로 겨우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젊은 사람에게 요플레 사다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해? 그런건 말을 안 해도 챙겨 와야지. 대부분 이런 사소한 걸로 틀어지는 것이다. 말로 하면 되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 의견차이가 있는게 아니고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지역 간에도, 계급 간에도, 성별 간에도, 국가 간에도 이런 게 있다. 본심을 털어놓지 못하고 꽉 막혀 있다. 정치인이 대중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엘리트가 먼저 눈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 토박이 정치인들의 강점이 이런 데 있다.


    정청래만 해도 눈치가 있어서 지역구 마포주민의 요플레가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민주당 금뺏지들은 모른다. 관심도 없다. 소통이 안 된다. 정치인이 바른말을 하더라도 요플레를 사갖고 와서 말을 붙여야 한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난 다음에 말을 꺼내야 한다.


    말이 앞서면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쟤는 아냐.’ 그걸로 끝이다. 개혁은 호르몬과의 싸움이다. 다들 상처가 있다. 등을 돌리고 있다. 의견차이가 아니다. 이런 사소한 걸로 얼굴 붉히기 싫어서 아예 상종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친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식인과 대중의 반목


    다 필요 없고 중요한건 요플레다. 정치의 요플레는 무엇일까?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하는 방법은? 역할 나누기다. 진보든 보수든 다 개소리다. 결국 역할을 줄 수 있는가? 역할 나누기로 함께 할 수 있는가? 동료에게 패스를 주는가의 문제다.


    황교익은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네티즌들에게 욕을 먹는다. 괜히 밉상으로 찍혀서 욕먹는 셀럽들 많다. 공통점은 철학의 부재다. 철학이 없으면 치고 나가는 방향성이 없다. 언어가 자기소개로 된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내세우게 된다. 대화는 핑퐁게임이 된다.


    괜히 서로 면박을 준다. 말하다가 보면 서로 말을 받아치게 된다. 그러다가 빈정 상한다. 상처를 줄 의도는 없는데. 그래서 망한다. 기생충 서민도 그런 식으로 몰락해 갔다. 의도하지 않게 일이 커진 것이다. 철학이 없으면 현재를 해석할 뿐 미래를 예견하지 못한다.


    네티즌들에게 역할을 나눠주지 못한다. 정치의 요플레는 철학이고, 철학은 방향이고, 방향은 미래고, 미래는 역할이다. 이걸 갖춘 다음 유권자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내가 옳으니까 나를 따르라거나 표를 달라는 식이라면 대중을 소외시킨다. 인간소외 일어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정치인은 가는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다음 단계를 제시해야 한다. 백종원은 뭔가 제공하는게 있다. 소비자 입장을 배려하는게 있다. 장사 해 본 사람이다. 네티즌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 황교익은 그게 없다. 밑바닥 경험이 부족한 귀족 출신이다.


    황교익은 시시콜콜 아는게 많다. 그딴건 몰라도 되는데. 상관없잖아. 그렇다. 상관이 있어야 한다. 상관을 만들려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 치고 나가는 방향이 있고 대중과의 역할 나누기가 있어야 한다.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약으로 먹는다.


    일본인은 눈으로 먹는다. 어느 나라든 음식에 대한 관점이 있다. 맛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냥 좋은 음식을 먹자는 식이라면 대중이 납득하지 못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한국음식은 튼튼한 쇠숟가락과 쇠젓가락으로 무장하고 생선가시들을 발라낸다.


    게껍질을 뜯는다. 돌격하는 것이다. 조리된 음식이 내게로 오는게 아니라 덜 조리된 음식을 향해 내가 쳐들어간다. 며칠씩 고아서 과잉조리된 것을 앉아서 입에 쑤셔 넣기만 하는 귀족요리와 다르다. 귀족요리는 대개 할아버지 음식이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치아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음식은 오징어처럼 질기고, 엿처럼 입천장에 달라붙는다. 젊은이의 음식이다. 일단 강하다. 맛이 강하고 향이 강하다. 보다 토속적이다. 자연 속으로 한 걸음 다가선다.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 한국의 다양한 나물이 그러하다. 


    영양가는 없다. 맛도 없다. 그런데 강렬함이 있다. 입에서 녹지 않는다. 다양한 변주가 그 안에 있다. 음악이라면 재즈다. 즉흥연주다. 한국요리는 조리사의 손끝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쌈을 먹는다면 먹는 사람의 손바닥 위의 즉흥연주다. 자유로움이 거기에 있다. 


    주도권이 있다. 요리사가 해준 것을 수동적으로 삼키는게 아니다. 직접 굽는다. 직접 쌈을 싼다. 숟가락으로 파고 젓가락으로 후빈다. 전투적이다. 김치를 밥 위에 올린다. 밥을 국에 말고 반찬으로 균형을 맞춘다. 소비자 입 안에서 요리가 최종 완성되는 것이다. 


    이건 몇년도산 어느 지방의 어떤 재료를 썼군 하고 퀴즈맞추기 하는 프랑스 요리와 다르다. 일본은 마이너스 법을 쓴다. 다른 나라의 요리를 가져와서 거기서 몇 가지를 빼면 일본요리다. 소스가 아니라 재료에서 맛을 내므로 가격이 비싸다. 만두와 만쥬의 차이다. 


    만두에서 소를 빼고 팥소를 넣으면 만쥬다. 만두 속에 열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만쥬는 재료가 하나다. 열 가지가 한 가지로 줄었으므로 약간의 차이라도 맛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본요리는 재료를 좋은 것으로 써야 한다. 일본요리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일본요리의 치고 나가는 방향성이 있다. 소비자가 참견할 꼬투리가 있다. 그런게 있어야 한다. 만두 속은 식감을 위한 것이고 맛은 만두 속에 포함되는 고기맛이다. 우리가 맛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미노산이다. 한국요리는 양념맛이고 중국요리는 거의 소스맛이다. 


    한국요리에는 맛 이상의 무엇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논리에 고객이 납득하는가이다. 일본요리는 요리사가 설명해준다. 이건 참치의 어느 부위고 어쩌고저쩌고. 설명맛이 있다. 아!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떡거리면 맛있게 느껴진다. 그렇다. 맛이란 주관적이다.


    대개 설명맛이며 소비자가 논리에 납득하느냐가 중요하다. 요리를 대하는 자세문제다. 일본요리는 거의 도시락이다. 패스트푸드다. 설명맛은 남녀의 데이트에 적합하다. 처음 만난 사람과 얼굴 마주보기가 민망하니까 요리사를 쳐다보고 설명해주는 맛을 즐긴다. 


    홍어의 독한 맛을 독으로 여길지 약으로 여길지는 설명맛 조미료에 달려 있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철학이 있다는 것은 방향성이 있다는 말이다. 납득된다는 말이다. 참여한다. 일본요리는 좋은 재료를 쓰면 되고 중국요리는 더 좋은 소스 쓰면 된다. 


    한국요리는? 그걸 말해줘야 한다. 황교익이 말해주지 않는 그것 말이다. 한국요리는 더 많은 자유를 주면 된다. 많은 반찬 중에서 직접 굽고 고르고 쌈을 싸게 한다. 햄버거는 그냥 먹으면 된다. 한국요리는 밥과 찌개와 반찬의 균형을 위해 끝없이 판단해야 한다. 


    철학을 말해주고 방향을 제시하면 고객은 따른다. 지식인과 대중의 괴리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도권을 생산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넘겨줘야 한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 곤란하다. 지식인이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치고 나가는 방향성이 없어서 대중이 참여할 꼬투리가 없다.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할을 나눠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가짜다. 밑바닥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라는 호르몬에 지배되는 동물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레벨:6]목양

2020.12.18 (15:30:56)

오늘은 동양의 맛에 대한 정의를 알고갑니다.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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