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선택하는 자는 하수요 대응하는 자가 고수다. 선택은 나와 맞선 상대방에 대한 행동이요 대응은 나와 상대방을 통일하는 토대를 경영하고 에너지를 조율하는 것이다. 제갈량이 남만의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것은 대응하는 것이다. 이창호가 상대방의 대마를 잡지 않고 반집승을 꾀하는 것은 대응하는 것이다. 


    반면 상대방의 대마가 크지 못하게 미리 밟아두는 것은 선택이다. 상대방의 대마를 달고가며 키워서 먹는 것이 대응이다. 선택하면 마음은 편하지만 대신 대응능력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상부구조가 개입해서 도로 원위치 되기 다반사다. 맞서는 적의 부재가 내부의 밸런스를 무너뜨려 외부변수의 개입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맞대응하면 내부적으로 밸런스가 유지되어 상부구조가 개입하지 못하므로 자신의 의도대로 판을 꾸려갈 수 있다. 선택은 귀납의 방법이요 대응은 연역의 방법이다. 귀납은 결과를 상대하므로 언제나 후수가 되지만 연역은 에너지를 틀어쥐므로 언제나 선수가 된다. 선택은 약자의 수동적 수비요 대응은 강자의 능동적인 공격이다.


    자신이 아무리 바른 선택을 해도 환경이 나빠지면 별수가 없지만 대응은 환경을 변화시키므로 답이 있다. 제갈량의 칠종칠금처럼 지속적으로 이겨가는 수뿐이다. 적을 제거하기보다 적을 달고 가면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대응은 상대방을 어쩌는게 아니라 나 자신의 에너지를 관리하며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은 나의 에너지를 관리하는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상대방을 죽이는게 아니라 반대로 나를 키우는 것이며 나를 키우려면 상대방을 받침돌로 이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을 죽이기보다 상대방을 제압하여 달고가는게 유리하다. 선택하면 사건은 종결되고 에너지 흐름이 끊겨서 원위치가 되므로 2차전에 불리하다.


    대응하면 사건이 이어지므로 분위기가 살아있어 기세를 이어간다. 이번 게임에서 얻은 관성의 힘을 다음 게임에 써먹는다. 각운동량을 잃지 않고 가속도를 유지한다. 선택하면 연애 때 잘해주다가 신혼 첫날부터 태도를 바꾸는 마초 남편처럼 갑을관계가 역전되기 다반사지만 대응하면 계속 연애상태이므로 관계가 변치 않는다.

 

    입자의 관점이냐 시스템의 관점이냐다. 입자는 둘 중에서 선택된다. 시스템은 장악되고 관리된다. 시스템을 내편으로 만들고 환경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쪽으로 길이 나야 한다. 그러려면 멈추지 말고 계속 싸워야 한다. 그런데 좁은 구역에서는 반대로 선택의 방법이 먹힌다. 조직의 말단부에서는 선택의 방법이 먹힌다.


    고립되고 격리된 지역은 경쟁자가 많지 않으므로 적을 제거하는 자가 이긴다. 그러나 천하대란이 일어나면 적은 끝도 없이 등장한다. 적을 죽여 없애기보다 제압해 아군에 편입시키는게 유리하다. 항우는 항복한 20만 진나라 병사를 황토지대 협곡에 묻어버렸다가 망했다. 제갈량은 맹획을 7번이나 다시 놓아주었다. 그래서 흥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친구를 선택하고 대학을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파트너를 선택한다. 아니다. 선택은 미성년자의 것이다. 어른이 되면 대응한다. 더 이상의 선택은 없다. CEO는 언제라도 대응한다. 리더는 언제라도 맞대응한다. 대통령은 언제라도 맞대응한다. 문재인은 북한과 미국 중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국에 긴밀하게 대응할 뿐이다. 홍준표는 북한을 버리고 미국을 선택한다. 태극기부대는 박근혜를 선택하고 촛불시민은 불의에 대응한다. 약자는 선택하고 강자는 대응한다. 선택은 내부를 바라보고 대응은 외부를 바라본다. 선택은 결과측에 서고 대응은 원인측에 선다. 어린이는 선택하고 어른은 대응한다. 


    하수는 선택하고 고수는 대응한다. 국지전은 선택하고 전면전은 대응한다. 고립된 곳에서는 선택이 먹히고 천하대란이 일어나면 대응이 먹힌다. 단기전은 선택하고 장기전은 대응한다. 선택은 나와 맞선 상대방을 처리하고 대응은 공통된 배후의 에너지를 조율한다. 선택은 입자에 대한 행동이고 대응은 시스템에 대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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