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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56 vote 0 2020.05.02 (19:50:20)

      
    철학은 잔인하다


   '천지불인'이라고 했다. 철학은 잔인하다. 진리는 잔인하다. 사정 봐주는 것이 없고 융통성이라곤 없다. 노자든 장자든 마르크스든 플라톤이든 존 듀이든 누구든 살면서 많은 말을 했을 터이니 더러는 맞는 말도 있고 틀리는 말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다 틀렸다. 일단 언어가 아니다. 언어가 아니므로 논외다. 그것이 철학의 세계다. 


    철학은 처음 와서 언어를 세우는 작업이다. 언어가 틀렸으면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니 논할 것도 없다. 원칙을 세우고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거든 전부 버리고 새로 작업해야 한다. 노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르겠다는 말이다. 모르면 닥쳐! 노자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언어가 없으니 말할 수 없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 했다.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므로 닥쳐야 한다. 진리 앞에서 정직하게 맞선 사람은 오직 공자와 니체 두 사람이 있을 뿐이며 니체의 초인사상은 개인의 관점이니 소승의 부류이고 퇴계의 부류다. 개인의 관점에 언어는 소용없다. 혼잣말은 말이 아니다.


    혼자 도를 닦든 초인이 되든 삽질을 하든 누가 물어봤냐고? 초인이든 슈퍼맨이든 외계인이든 그게 지 사정이지 왜 내 앞에서 얼쩡거린다는 말인가?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이 없다면 당최 말을 꺼낼 이유가 없다. 행복과 불행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무 차이도 없다. 성공과 실패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무 차이도 없다. 


    그러므로 말하지 말라. 행복이든 불행이든 성공이든 실패든 차이가 없으므로 말하지 말라. 두 사람이 공유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행복은 너의 불행이라거나 나의 성공은 너의 실패라거나 이렇게 되면 말할 수 있다. 내가 행복의 방법으로 너에게 개입했으므로 말할 자격이 있다. 사랑과 사랑하지 않음은 똑같다. 


    어떤 사람이 수석을 사랑한다. 분재를 사랑한다. 도자기를 사랑한다. 등산을 사랑한다. 낚시를 사랑한다. 동물을 사랑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무 차이가 없다. 오직 내가 네게 사랑이라는 형태로 개입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 너의 사랑으로 복제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 사랑하든 삽질하든 행복하든 성공하든 그러다가 뒈지든 말든 말하지 말라. 너와 내가 그것을 공유할 때 비로소 언어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초인이든 슈퍼맨이든 외계인이든 내 사정이 아니다. 닥쳐!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고 대칭되고 복제되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므로 소승은 발언권이 없다. 퇴계는 발언권이 없다. 니체는 발언권이 없다. 닥쳐야 한다. 자기소개는 필요 없다. 나의 사랑이 너의 사랑으로 복제되는가? 나의 성공이 너의 실패로 침범되는가? 여기서 언어가 출발한다. 철학은 언어를 일으키는 작업이다. 이 세계는 치열하다. 중의학 같은 것을 떠들면 안 된다. 물론 치료는 된다.


    그런데 말이다. 중의학이든 한의학이든 언어가 없다. 말이 안 통한다. 서구인들은 비웃는다. 치료가 된다는 것은 플러스 관점이다. 과학은 마이너스에 의해 작동한다. 하나가 틀리면 다 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째로 폐기된다. 아예 상대해주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불성립이다. 중의학 언어는 양의학 관점에서 언어가 아니다.


    그런 단어 안 쓴다. 사람 취급도 안 한다. 원숭이 보듯 한다. 그런 개수작을 하는 한 서구인들은 동양인을 멸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동등한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본다. 말이 통해야 사람이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말을 잘라버린다. 그것이 철학의 세계다. 철학이 다르면 언어가 공유되지 않는 것이다.


    존 듀이 말 중에 맞는 말도 더러 있겠지만 애초에 그건 철학이 아니다. 진지한 사람의 대화상대가 될 수 없다. 경험이나 실용 같은 것은 철학의 포기다. 양의학으로 못 고치니 한방으로 해보겠다는 말과 같다. 그것도 때로는 먹힌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의 한계요 인류의 실패다. 그렇다. 인류의 도전은 더러 실패하기도 한다.


    실패한다고 포기하면 그게 야만이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철학은 양보가 없다. 타협이 없다. 사생결단이다. 진리는 하나이며 일원이며 이원이란 단어는 없다. 2면 버금이니 차다. 2차론이라고 해야 한다. 다원론이라는 단어도 불성립이다. 다양이면 이미 원을 포기한 것이다. 일원론만 성립되고 나머지는 언어가 아니다. 


    합리와 실용, 진보와 보수, 진리와 경험, 일원론과 다원론, 진화론과 창조론, 과학과 종교는 애초에 언어가 다르다. 과학자와 종교인의 대화는 불성립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화는 불성립이다. 철학과 처세술은 대화가 불성립이다. 공자가 철학이면 노자는 철학이 아니다. 원론과 응용은 다른 것이다. 형이상과 형이하는 다르다.


    모르겠는가? 지혜를 합치려면 프로토콜을 맞추어야 하며 문명의 기준은 하나뿐이다. 개인이 각자 구석에 짱박혀서 요령껏 해 먹는 것도 좋으나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1+2=3이 수학이지 '얼마까지 보고 오셨어요?' '얼마까지 맞춰드릴까요?' 이런건 수학이 아니다. 프래그머티즘은 철학의 죽음을 선포한 반철학이지 철학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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