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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적 가치’ 하면 이광요와 마하티르를 꼽을 수 있다. 넓게 보면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와 수카르노의 ‘교도민주주의’도 이 범주에 속한다.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어용철학이다.

마하티르의 퇴임을 앞두고 말레이시아의 대학에는 마하티르학과가 생기고 학생들은 6500페이지 짜리 마하티르전서를 학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무리들의 원조라 할 김일성이 지하에서 통곡하겠다.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떠나서 이들은 한묶음이다. 김일성이나 박정희나 사상적으로 보면 형제지간이다. 아세안은 근본이 ‘엽전’이므로 민주주의를 하지 말고 반드시 독재를 해야만 한다는 사상이다.

‘아세아의 수치’라 할 이 터무니 없는 발상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이 이광요와의 논쟁으로 유명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왜 DJ가 위대한가? 역사적 의미로 보면 노벨상수상이나 햇볕정책은 작은 것이고 이광요와의 논쟁이 더 크다.

DJ는 아세아가 가는 방향을 바꾸려 했던 것이다. 아세아가 잘못 들어선 길을 바로잡으므로서 아세아가 세계사에 기여할 기회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평가되어야 한다.

『근태형은 좀 과단성있는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노무현의 목을 졸라서라도 전투병 파병은 저지해야 한다. 다 못해도 그거 하나는 잘 할 수 있지 싶은데!』

로마에서 로마의 법을 따르지 말라
보편가치와 특수가치가 충돌할 때는 보편가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옳다. 민주주의는 보편가치다. 민족문화에 기초한 아세아의 특수성은 특수가치다. 둘이 충돌한다면 세계가 널리 인정한 민주주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아적 가치’라는 단어는 매력적이다. 이 매력적인 단어를 이광요나 마하티르같은 떨거지가 선점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쉽다.  

물론 민족문화의 특수성도 존중되어야 한다. 허나 이는 서구인이 아세아를 방문할 때 서구인의 자세여야 하지, 우리가 서구에다 아세아의 특수성을 강요해서 안된다. 비유하자면 미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때는 김치를 먹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젓가락질도 연습해야 하지만, 우리가 미국인에게 강제로 고추장을 퍼먹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들은 개고기 먹는 한국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입에 개고기를 쑤셔넣어서는 안된다. 그렇다치고 현실은 어떤가? 어쩌면 우리는 너무 신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겸손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월드컵 사강 코리아다. 주눅들 필요는 없다. 알아서 기는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김치에 고추장을 좀 멕여줘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손님과 주인의 불균등관계로 본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다. 우리가 주인이다. 이제는 친구 대 친구의 균등관계로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로마의 법에 순종할 이유는 없다. 왜? 부시가 말 한번 잘했다. ‘그래! 우리는 친구 아이가?’ 친구한테는 실례해도 되고 폐를 끼쳐도 된다. 친구가 잘못을 저지르려 한다면 귀싸대기를 갈겨서 정신을 차리게 해줘야 한다. 친구끼리는 보통 그렇게 한다.   

진리는 공변된 것이니 임자가 따로 없다
이광요와 김대중의 아세아적 가치 논쟁은 ‘독재냐 민주냐’를 두고 벌어진 것이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두고 논쟁해보자. 아세아의 정신이 더 진리에 가깝다. 부시의 전쟁책동은 그들의 편협한 기독교문화가 낳은 일방통행식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도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기독교적 사고는 창세에서 말세까지 단선적사고다. 거기에는 피드백 개념이 없다. 불교의 윤회논리에는 출력측의 입력전환이라는 가역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유(柔)가 강(剛)을 이기는 노자의 논리도 역시 피드백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동양사상에는 시행착오를 통한 단계적 오류시정개념이 있는 것이다. 부시의 기독교원리주의에는 그것이 없다. 선과 악의 이분법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단세포 논리다. 그런 식으로는 2003년 이 복잡다대한 지구촌의 리더 역할을 맡을 자격이 없다.

진리는 공변된 것이니 임자가 따로 없다. 민주주의는 희랍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서구인의 것이기 앞서 세계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자나 석가가 설파한 동양 특유의 평화정신도 한국인의 것이기 앞서 지구촌 인류 모두의 것이다.

‘독재냐 민주냐’로 보면 민주주의가 보편가치다. ‘전쟁이냐 평화냐’로 보면 평화가 보편가치다. 그들이 선점한 민주주의를 우리가 배웠다. 이제는 우리가 선점한 평화주의를 그들이 배울 차례이다. 이제는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부시에게 들이댈 때다.

왜? 우리는 친구잖아. 친구가 비뚤어진 길을 가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선 안되지. 잘못된 친구는 귀싸대기를 후려쳐서라도 바로잡아 줘야지!

『똥싸개 트리오의 원조 박똥부터 퇴치해야 한다』

왜 전투병을 파병하지 말아야 하는가?
나는 2003년 한국의 당면과제가 박정희콤플렉스를 퇴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부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식으로 박정희귀신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는 대한민국은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박정희를 극복하므로서 대한민국의 가는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결국 파병문제도 박정희귀신과의 싸움이다.

이번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노무현은 결국 ‘철학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노무현정부에도 확고한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철학은 ‘길게 보고 넓게 본다’는 것이다. 선장 혼자만 나침반을 보고 있어선 안된다. 대한민국호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선원과 선객 모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의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自屈之心)을 발하여, 우리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다. 삼천만의 우리민족이 옛날 그리스나 로마가 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경제력도 과학기술도 아니다. 인류가 불행한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기르는 것은 문화이다. 최고의 문화를 건설하려면 국민 모두가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 [백범, 나의 소원]

『백범과 노무현은 닮았다. 김구노선의 계승은 노무현의 숙명이다.』

왜 전투병을 파병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민족에겐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우리민족만의 사업이 있다. 지금 그 사업에 착수해야한다. 나는 백범에게 그렇게 배웠다. 노무현 역시 백범으로부터 그렇게 배웠으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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