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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516 vote 0 2004.02.03 (13:39:32)

『 포토만평.. 한나라당의 공천면접이 대략 웃겼다 하오. 범생이와 얼짱들이 면접보러 옴 』

말이란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죠. 저희가 박주현수석과 대화했을 때 누군가가 몰래 녹음을 해서 폭로했다면 저희들은 아마 서프 여러분께 돌멩이 맞고 쫓겨갔을 겁니다. 노대통령을 비난하는 심한 말을 많이 했지요.

그렇게 해야만 저희들의 뜻이 만분의 일이라도 전달될까 해서였습니다. 사석에서는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만 그게 조중동의 보도를 타서 ‘아’가 ‘어’로 변하면 의외의 파장을 낳습니다. 어떻게 보면 김수환 추기경도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위치에 따라 처신이 달라야 하는 법, 김수환추기경은 그 분의 무게감이 가지는 만큼 응당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왕 손석춘이 탄핵을 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라면 나라에 공이 많은 원로라도, 젊은 서생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면 낙향을 했던 것과 같지요.

잘못을 인정해서 낙향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약진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하여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김수환을 희생시키는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방향타를 바로잡으려 했다면, 역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 바른 처신입니다.

쓴소리라면 백기완선생이 전매특허입니다. 제가 예전에 백기완선생이 노무현대통령을 씹었다는 소리를 듣고 다른 사이트에서 했던 말을 인용합니다.

예컨대 목수가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목수가 될 뿐이고, 개도 깨달을 수는 있지만 개가 깨달으면 훌륭한 사냥개가 될 뿐이고, 각자가 주어진 자기 그릇 안에서 그 완성을 향해 줄달음칠 뿐이라는 말입니다.  

백기완을 한 사람의 목수로 보면 도목수이죠. 목수의 대장은 목수들의 세계 안에서는 ‘왕’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통령과도 맞장을 뜹니다. 목수 백기완이 대통령 노무현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다면 대통령의 체면을 고려해서 상석을 양보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러나 많은 목수들이 지켜보는 앞이라면 ‘목수들의 왕’ 백기완과 ‘국가의 왕’ 노무현이 대등한 위치가 되므로 고개를 숙여서 안되는 거죠. 고개를 숙이면 목수들의 체면을 짓밟는 행동이 됩니다. 요는 그러한 ‘대표성을 띠는 공적인 자리’인가 아니면 사적인 자리인가입니다.

물론 백기완이 정치를 하겠다고 국회의원에 출마를 해서, 즉 그 ‘목수의 세계’를 벗어나서도 계속 왕초 행세를 하다가는 박살이 나는거죠. 그러므로 사람은 애초에 그 자기의 영역범위를 잘 정해 놓아야 합니다.

누구나 그 정해진 동그라미 안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그 완성에서 자부심을 얻는 것이며 그 자부심으로 하여 임금님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백기완이 그 삶의 일관성으로 하여 그 주어진 동그라미 안에서 완성된 사람이라면, 그 완성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노무현과 맞짱을 뜰 수 있습니다. 그 삶의 일관성이 담보하는 바 그 삶과 그 자세는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미학이라고 합니다.  

흔히 주제파악을 하라고 하죠. 요는 그 주제를 넘어섰는가입니다. 김수환추기경이 사석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우리가 개입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식화 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더구나 누군가가 탄핵을 해버렸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됩니다.

그 동그라미 바깥으로 나와버렸다는 거죠. 우리가 김수환을 어떻게 대접할 것이냐의 차원이 아니라 개혁세력의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김수환을 희생시키는 방법으로 모종의 액션을 취할 것이냐의 차원이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기경의 어깨를 밟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대중은 물과 같습니다. 때로는 급류를 이루고 때로는 폭포를 이루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로 노릇을 하려면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바깥에서 외치는 백기완의 쓴소리는 들어줄만 하지만 안방에서 에헴하는 김수환의 쓴소리는 사실 많은 오버이트 쏠림이 있었소이다.


DJ와 노무현의 바둑
이창호국수가 바둑을 두었는데 케이블TV 바둑방송에서 이창호국수를 불러다놓고 복기를 한다. 사회자가 이창호에게 묻는다. ‘이 수는 왜 여기에 두었죠?’ 이 상황에서 이창호는 무어라고 대답을 할까? 그는 머리를 긁적거릴 뿐이다.

이창호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대가 이창호라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창호국수는 TV에서 한번도 재미있는 해설을 해준 적이 없다. 고수의 머리싸움이란 원래 그렇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검토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타켓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멋들어진 해설이 나온다면 하수들의 바둑이다. 고수들의 바둑은 원래 해설 자체가 그다지 필요가 없다. 작전을 걸어서 점수를 뽑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수를 쓰지 않으므로써 효과를 얻는다.

전여옥 식의 ‘꼼수, 역전극, 술수, 뒤통수 치는 수법,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수법, 포커판에서 거짓배팅 따위’는 없다. 그러나 노무현과 DJ가 아무 생각 없었다고 믿는 것은 이창호가 아무 생각없이 아무데나 두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이창호라면 적의 완착을 응징하기만 해도 이기는데 무엇하러 꼼수를 쓰겠는가? 응징한다는 것도 그렇다. 구태여 목을 비틀고 숨통을 끊어줄 필요도 없다. 상대방이 두는 대로 그냥 척척 받아주기만 해도 저절로 응징이 된다.

DJ와 노무현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검토하고 있다. 두분 다 자신에게 유리한 최적의 수를 두고 있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단지 무리를 하지 않을 뿐이다. 무리를 하지 않으므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정치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다. 자신이 만든 민주당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단지 개입하지 않는 방법으로 개입하고, 의중을 숨기는 방법으로 의중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아먹으니까.

중요한건 타이밍이다. 고수는 보통사람 보다 약간 빠르게 움직이므로 막상 사건이 터졌을 때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후수를 두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고수는 항상 선수를 둔다.

선수를 잡은 사람이 1을 움직이면 후수에 몰린 사람은 그 2배를 움직여야 한다. 그러므로 선수를 두는 사람의 움직임은 잘 포착되지 않는다. 선수잡은 사람이 눈만 껌벅하면 후수에 몰린 사람은 2미터를 공중으로 날아서 피하는 식이다.

고수가 선수를 둘 때에는 그 겨냥이 보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그게 선수임을 모르는 것이다. 노무현이 여의도에 가서 지지자들 모아놓고 선거운동 했다고 믿는 하수들에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무현이 무엇을 얻었지?

고수는 이겨놓고 싸운다. 이미 이겨 놓았는데 여의도에 모인 노빠들이 노무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지? 무슨 ‘국민참여0415’인지 하고 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노사모 동원해서 선거 이긴다'는 바보같은 생각을 노무현이 했을 것으로 믿는다면 진짜 아둔한거다.

이미 이겨 놓았는데 국참0415가 할 일이 뭐 있어? 필자는 여의도 발언을 두고 ‘대포용정책의 예고’라고 말했다. 즉 외곽을 때리는 방법으로 DJ를 포함한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원래 시나리오는 많지 않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이것인지 저것인지는 바닥에 까놓은 패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올려놓은 판돈을 보고 판단한다. 시민혁명이라는 발언이 까놓은 패라고 믿는 하수들은 오판을 할 것이고, 판돈의 액수라고 아는 고수들에게는 이심전심으로 의중이 전달된다.

DJ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심에서 벗어나려 한 것은 명백하다. 김홍일의 복당을 DJ가 말리지 않은 것은 게임의 대상이 정동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동영이 민주당을 접수한다면 DJ의 운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임박한 민주당의 패배를 ‘노무현과 DJ의 대결’에서 DJ가 패한 것으로 세상이 받아들이면 꼴이 우습게 되지만, 노무현이 아닌 정동영이 민주당을 접수해주면 김홍일이라는 짐을 정동영에게 떠넘긴 셈이 되는 것이다. (정동영만 함흥차사 역할로 피곤해진다)

민주당이 노무현에 의해 붕괴된다면.. 민주당은 반드시 몇으로 쪼개진다. 그 쪼개진 몇몇의 극렬한 행동이 DJ의 운신에 부담을 준다. 그들은 DJ의 이름을 팔아 극단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DJ는 홍일을 빼는 방법으로 그 책임을 면한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이 정동영에 의해 접수된다면.. 민주당의 잔존세력은 여럿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로 뭉친다. 정범구의 복당, 한화갑의 분기탱천, 김홍일의 복당이 다 그러한 구심력이 작용한 결과이다.

노무현은 민주당을 이빨로 물어뜯지만 정동영은 통째로 삼킨다. 이빨로 물어 뜯는다면 상처가 남으므로 피해야 하지만, 통째로 삼키면 뒷탈은 적다. 정동영이 쳐들어 온다면 차라리 김홍일이 민주당에 복당하는 것이 맞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김홍일이 탈당한 채로 정동영이 민주당을 접수한다면 김홍일은 상당히 뻘쭘해질 것이 아닌가?)

전쟁의 법칙이 그러하다. 이쪽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이 침략할 때는 흩어져 숨는 것이 목숨을 보전하는 길이 된다. 반대로 이쪽 사정을 잘 아는 적이 침략해 올 때는 모여있는 것이 이익이 된다. 흩어져 숨어 봤자 찾아낼 것이 뻔하니까.

모여 있으면 모두 죽이든가 모두 살리든가 둘 중 하나인데, 모두 죽일 수 없으므로 모두가 살게 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김홍일의 복당으로 정균환, 박상천의 정치생명은 조금 더 단축되었다는 점이다. 임자없는 빈 집에서 여우가 왕노릇 하다가 호랑이주인에게 쫓겨가게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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