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709 vote 0 2019.08.30 (00:20:39)

      

    매끄러운 우주론


    자연스러운 토론을 방해하는 것은 종교의 간섭이다. 종교의 도발을 방어하느라 억지논리가 동원되게 되었다. 종교는 잊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자. 우리 우주는 매끄러운 우주다. 거친 우주와 대비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필자가 지어낸 말이다. 희귀한 지구 가설을 검토하자. 지구는 생태계의 진화에 적합한 별인가?


    물론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진화했으니까. 그러나 대단히 진화하지 못했다. 캄브리아기 이후 5억년간 진화했을 뿐 나머지 30억년은 그다지 진도를 뺀 것이 없다. 벼락치기 수업을 한 셈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구가 조금 더 컸다면? 육지가 조금 더 넓었다면? 남극과 그린랜드가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있었다면?


    아쉬움이 있다는 말이다. 바다가 좁고 대륙이 넓으면 물이 부족해서 사막이 되므로 곤란하다. 바다가 태양열의 90퍼센트를 흡수하여 온도조절을 하는데 만약 바다가 작다면 극지방은 춥고 적도는 뜨거워서 생물이 살기 어려울 것이다. 바닷물은 대류를 통해 적도의 열을 중위도로 실어나른다. 그래서 겨울에는 내륙지역만 춥다.


    대륙이 모두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이 중요하다. 호주와 그린란드처럼 대륙이 혼자 동떨어져 있다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다양한 생명이 등장한다는 거. 하나는 경쟁이 없어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대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캥거루와 같은 다양성은 감소하고 대신 사자와 같은 맹수가 등장한 것이다.


    호주나 마다카스카르에는 대형 맹수가 없다. 호주에는 딩고가 있고 마다가스카르에는 포사가 있지만 딩고는 개의 무리이고 포사는 살쾡이보다 조금 큰 고양이과 동물이다. 진화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보다 작은 행성이 여러 개 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만약 지구의 모든 대륙이 붙어서 한 덩어리라면 진화는 곤란해진다.


    일단 사막이 많아서 생물이 살 수가 없다. 진화가 너무 치열해져서 결정적인 진화를 못 한다. 진화하려면 격리가 필요하다. 대륙이 죄다 붙으면 생태계는 단조롭게 된다. 특이한 동물은 없다. 반대로 떨어지면? 특이한 종은 있지만 진화할 이유가 없다. 환경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에 포유동물 종류가 적듯이 말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리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137억 년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만화로 치면 드래곤볼에 나오는 괴상한 우주인이 있어야 한다. 초사이어인도 있고 초능력 외계인도 있고. 서로 격리된 다양한 우주가 연결되어 있다고 치자. 우주의 어떤 구역에는 천사가 살고 다른 구역은 마귀가 산다.


    천국도 있고 내세도 있고 별게 다 있다. 그런데 없다. 우리 우주는 137억 년이라는 빗자루에 의해 쓸려나간 것이다. 다양성을 잃었다. 우주 안에 괴상한 특수영역은 없다. 관측가능한 우주 안에는 모두 균일하고 답답하고 획일적이다. 우주에 특이구조가 없다. 격리된 특수구역이 있다면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을 텐데. 획일적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지구는 희귀한 것이 맞다. 은하계 전체로 보면 지구와 같은 것이 더 있겠지만 지구와 통신할 수 있는 구역 안에서는 희귀하다. 적당히 넓은 바다에 의해 그리고 적당히 연결된 대륙에 의해 그러면서 적당한 격리에 의해 진화를 얻어낸 것이 맞다. 물론 이걸로 지적설계 이러면 황당한 것이고 사실이 그렇다.


    설계가 아니라 밸런스다. 설계는 무언가 있어야 하지만 밸런스는 무언가 없어야 한다. 즉 우주는 최소화되어 있고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다. 단, 밸런스는 전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통제되어 있다. 우주는 지적 설계에 의해 인간이 살도록 특별히 배려된 것이 아니라 밸런스에 의해 인간의 방해자가 확률적으로 제거된 것이다. 


    희귀한 지구 가설은 부분적으로 맞다. 적어도 이 구역 안에서는 희귀하다. 일단 태양계 안에는 지구가 하나뿐이다. 태양 주변 15광년 안은 거의 수색해 봤지만 비슷한 것도 없다. 그 바깥은 알 수 없지만 뭔가 근사한 것이 있을 확률은 적다. 특수구조나 특수구역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정도의 환경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만큼 생명이 진화한 별이 있을 확률은 인류가 현재 갖고 있는 망원경으로 조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거의 절망적이다. 허블망원경의 성능을 백만 배 뛰어넘는 더 좋은 망원경이 만들어지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이 전파와 이동으로 교류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는 외계인이 없어야 밸런스가 맞는 것이다. 


    매끄러운 우주론은 예민한 우주론이며 아슬아슬한 우주론이다. 우주 안에 격리된 특수구역이 없다는 말이다. 모두 137억 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예컨대 원소번호 126번 외에 다른 물질은 없다는 거다. 우주는 광막하므로 원소의 종류는 백억 곱하기 백억 곱하기 백억 종쯤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원소는 수소로 시작한다.


    외계인이 지구로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은 지구의 모든 대륙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어서 진화가 방해된다는 말과 같다. 대륙은 모두 떨어져 있다. 격리가 진화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자궁으로 보호받듯이 격리에 의해 보호된다. 물론 보호만 있고 경쟁이 없으면 진화도 없다. 그러므로 대륙은 홍해와 베링해로 가늘게 연결된다.


    우주의 모든 원소는 양성자와 중성자와 음전하로 되어 있다. 우주가 광막하므로 양성자 중성자 전자 외에 백억 개쯤 무슨 자가 있지 않을까? 자연계의 모든 힘은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이다. 이들은 통일되어 근원이 하나다. 사대 힘 외에 천억 개의 힘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왜 천억 곱하기 천억 개의 서로 다른 힘은 없는가?


    왜 기본입자의 숫자는 천억 개 곱하기 천억 개가 아닌가? 왜 양성자 중성자 음전자 외에 무슨 자들이 천억 개 곱하기 천억 개가 아닌가? 이래서는 단조롭다. 마귀와 사탄과 요정과 천사와 아수라와 디바의 숨 쉬고 빈대 붙을 구역은 어디에 있는가? 이래서는 우주 한 구역에 별도로 천국을 설치하고 지옥을 운영하기가 난망이다.


    왜 전기장과 자기장 외에 백만 개의 장이 추가로 더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우주에 인간만 외롭게 있다고 말하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전기장과 자기장 외에 백만 개의 장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면 당황하지 않는다. 왜 중력 강력 전자기력 약력 외에 천억 개의 힘이 없느냐고 물으면 놀라지 않을까? 고거이 참으로 이상하구만.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안 해보는 것일까? 왜 원소번호는 고작 126개밖에 안되냐 말이다. 얄궂은 원소가 백억 개쯤 있다면 뭐 레고블럭으로 장난감을 만들어도 재미날 텐데 말이다. 원소번호 126개 중에 써먹을 원소는 몇 안 된다. 수소, 탄소, 산소, 철, 황, 금, 구리 정도가 쓸만하고 나머지는 입시문제를 어렵게 하는데만 쓰인다. 


    슘듐륨늄븀튬귬 하면서 끝말잇기를 괴롭힐 뿐이다. 영양가 없잖아. 수학 때문이다. 구조가 개입하면 엉망이 된다. 대칭을 만들어야 하므로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우주는 몇 가지 기본패턴을 만들어놓고 사골이 되도록 우려먹을 뿐 창의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다. 드래곤볼 만화에 나오는 괴물의 다양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도깨비도 없고 허깨비도 없고 요괴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연옥도 없다. 그것들을 먹여살릴 우주 안의 은밀한 구역이 없다. 망가진 것이다. 우주 안에 격리되어 보존된 천연기념물 구역이 없다. 특수구역이 없다. 다른은하가 많지만 우리은하와 비슷할 것이다. 우리은하에 없는 게 다른 은하에 있을 확률이 그다지 없다.


    뭣도 없고 뭣도 없고 뭣도 없다. 단조롭게도 기본입자의 종류는 백억 개가 안 되고 원소의 종류도 백억 개가 안 되고 힘의 종류도 백억 개가 안 되고 전자의 종류도 백억 개가 안 되고 자기장의 종류도 백억 개가 안 되고 시간의 종류도 백억 개가 안 되고 공간의 종류도 한 개뿐이다. 왜 이렇게 텅 비었냐고? 우주는 졸라리 크다며?


    작다. 우주가 큰 것이 아니라 사실은 광속이 느리다. 구조론으로 보면 더 좁아진다. 시간의 종류는 하나뿐, 공간의 종류도 하나뿐이다. 힘의 종류도 통합되어 궁극적으로 하나, 자기장도 통합되어 하나, 물질도 하나, 기본입자도 하나, 최종적으로는 모두 하나가 된다. 하나가 움직여서 관계를 맺으므로 둘이 되지만 본래 하나다.


    하나뿐이므로 부분에서 일어난 일이 전체에 파급된다. 거미줄은 하나의 중심에 연결되므로 부분에서 오는 신호가 전체에 전달된다. 모두 빅뱅에 잡힌다.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는 아슬아슬하고 예민하고 매끄럽다. 흠집이 나면 안 된다. 살짝 건드려도 터져버리는 수가 있다. 격리되고 차단되는 장치가 없다. 


    사물로 보면 여럿이지만 사건으로 보면 한 줄에 꿰어진다. 그러므로 우주는 희귀한 것이 맞다. 어쩌면 유일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중우주설은 편리한 심리적 도피일 수 있다. 구조론으로 보면 수평의 공간에 다중우주가 들어서는 게 아니라 수직의 차원에 사건의 다른 단계가 들어선다. 우리우주 하나만 있다면 쓸쓸하지 않은가? 


    걱정 붙들어 매시라. 공간의 평면에는 다른 신통한 것이 없지만 사건의 단계에는 아직 쓸만한 것이 남아있다. 게임 속의 아바타들이 평면공간을 늘리려 하는 건 의미 없다. 그건 프로그램이 만드는 것이며 유저가 로그인을 하면 게임회사가 서버를 만들어준다. 게임서버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게임회사만 돈 번다.


    많은 게임서버가 있어봤자 신통한 일은 없다. 게임사가 맵을 바꾸지 않는 한 별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대를 붙들어 매시라. 게임서버를 잘못 골라서 그렇고 다른 서버에는 뭔가 기대할 만한 것이 있다는 망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어차피 게임회사는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이익은 효율에서 나오고 다양성은 이익에 반한다.


    그렇다면 사유를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꿔야 한다. 다른 서버들에 희망을 걸지 말고 게임회사로 쳐들어가는 것이 어떨까? 만 서버의 아바타들이여 단결하라. 사건의 단계로 보면 아직 인류가 탐구하지 못한 영역이 더 있는 것이다. 우주는 넓지만 넓다고 신통한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그다지 없다. 공간의 넓음으로 도피하지 말라. 


    막연히 다중우주를 말하는 것은 원소번호 126번 밖에 100억 개쯤 뭐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다른 우주에서는 1+2=3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식의 막연한 상상이다. 근거 없는 상상은 배척하자. 과학은 유의미한 부분만 논해야 한다. 수학은 모든 것을 단순화시킨다. 사건은 단계를 거치며 단계의 문 앞에서 원위치 되는 것이다.


    세상의 근본은 대칭이고 대칭은 균일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수 있다면 저쪽에서 이쪽으로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밸런스다. 밸런스는 1로 2를 통제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다양성은 획기적으로 감소한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가 한 줄에 꿰어지는 것이며 지적설계는 필요 없는 것이다. 밸런스가 매끄러운 우주를 만든다.


    덧셈의 사고냐 뺄셈의 사고냐가 중요하다. 균형이 맞으려면 누가 개입하여 손봐줘야 하는 게 아니고 균형성 그 자체가 내재되어야 한다. 우주는 외부의 손이라 할 지적설계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손이라 할 균형성에 의해 구조되었으므로 원래 매끄럽고 아슬아슬하고 희귀하다. 외부가 아닌 내부를 바라봐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8.31 (03:34:45)

"균형이 맞으려면 누가 개입하여 손봐줘야 하는게 아니고 균형성 그 자체가 내재되어야 한다."

http://gujoron.com/xe/1118868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306 비트코인과 구조론 2 김동렬 2023-05-12 2810
6305 사건의 키를 찾아라 김동렬 2023-05-11 2356
6304 상호의존성 감소 김동렬 2023-05-10 2466
6303 게임이론과 등가원리 김동렬 2023-05-09 2363
6302 한빛미디어 박태웅 4 김동렬 2023-05-09 3229
6301 신의 입장 김동렬 2023-05-08 2144
6300 찰스와 영국 원숭이들 1 김동렬 2023-05-07 2841
6299 신의 죽음 김동렬 2023-05-07 2205
6298 모나리자의 진실 image 김동렬 2023-05-07 2062
6297 상호의존성 김동렬 2023-05-06 1839
6296 게임의 구조 김동렬 2023-05-05 2017
6295 간첩 태영호 김동렬 2023-05-04 2307
6294 부리야트는 부여다? 김동렬 2023-05-04 2808
6293 구조론의 깨달음 김동렬 2023-05-03 2067
6292 신동엽 공중파 퇴출하라 김동렬 2023-05-02 3227
6291 노동의 슬픔 김동렬 2023-05-02 2118
6290 0의 발견과 구조론 김동렬 2023-05-01 2028
6289 구조론 3분 요약 김동렬 2023-04-29 2111
6288 현대차와 정의선 김동렬 2023-04-28 3102
6287 동원력과 생산력 김동렬 2023-04-27 2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