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3384 vote 0 2004.03.13 (11:30:08)

● 죄송합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2월 18일 그 운명의 밤에, 몽에게 뒤통수 맞고 얼떨떨해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큰 고통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환멸을 느낍니다. 이런 인간이란 것들과 한 하늘 아래에서 살아줄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이 아름다운 별을 저 덜된 '인간'이라는 것들에게 맡겨도 좋다는 말인가? 슬플 뿐입니다.

 

● 사도바오로님 말씀대로 저들의 큰 승리요 우리의 명백한 패배입니다. 이 패배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마사다에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오늘의 이 패배를 유전자에 새겨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은 '상고나온 놈이 대통령 되면 탄핵받는다'는 전례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노무현은 다시 일어서겠지만 오늘의 치욕을 되물릴 수는 없습니다. 오점은 오점대로 남을 것입니다. 이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스페인의 민주화 과정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우리가 박정희의 망령에 시달리듯, 그들은 독재자 프랑코의 망령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1981년 일단의 무장군인들이 의사당에 난입하여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댔고 이 장면이 전국에 텔레비젼으로 생중계 되었습니다.

2004년 한국에서는 일단의 난닝구들이 경호권을 휘두르며 의사당에 난입하여 마구잡이로 금뺏지를 던져대었고 이 장면은 텔레비젼으로 전국에 생중계 되었습니다.

1981년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일이 2004년 한국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여파로 1981년 이후 곤잘레스 수상의 사회노동당이 4차례 연속집권에 성공하였고, 수구세력들은 더 이상 스페인에 발붙이지 못했습니다.

2004년 한국에서는 금뺏지 자폭사건의 여파로 열린우리당이 4차례 연속집권에 성공할 것입니다. 수구세력들은 이제 발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탄핵을 감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스페인의 경우를 떠올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저들이 대체로 바보지만 아주 바보는 아닌 이상, 이 거대한 분노를 예측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왜 일제히 절벽에서 점프하는 바보짓을 저질렀을까요?

잡히는 가닥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총선은 없다'시나리오입니다.  

명백한 쿠데타입니다. 그들은 지금 총선을 보이콧할 빌미를 만드는 중입니다. 일단 저질러보고 잘 되면 개헌까지 밀어붙일 속셈입니다. 국정혼란을 유도해놓고, 다음 수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아래쪽의 난닝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발적으로 밀어붙였겠지만 적어도 윗선에서는 밤의 아방궁에 모여 내각제개헌단계까지 시나리오를 짰다고 봅니다.

둘은 '노무현이 무섭다' 시나리오입니다. 그들은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아니라 탄핵을 빌미로 총선때 까지 40여일간 노무현을 국민으로부터 격리시킨 것입니다. 대통령을 청와대에 유폐시켜 노무현의 선거개입을 원천봉쇄 하는데 성공한 거지요.

그만큼 그들은 노무현을 무서워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노무현이 호랑이였던 거지요. 노무현이 무심코 한마디를 던질 때 마다 지지율이 폭락하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국민이라는 더 무서운 호랑이를 불러들였다는 사실을 여즉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국민이 호랑이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증명해 주어야 합니다. 노무현 보다 국민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 노무현은 과연 오늘의 상황을 예측, 혹은 각오했을까요? 여기에 대한 저의 답변은 '그렇다'입니다. 국민경선 직후 노무현은 덕평수련원에서 노사모 회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당선되어 청와대로 들어가면 여러분은 뭐할거죠?"

노사모들이 화답합니다.

"감시, 감시, 감시!"

이때 노무현은 노사모들이 매우 섭섭했다고 측근들에게 토로했다고 합니다.

"감시라니? 정작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노무현을 청와대로 밀어넣어 놓고 이제 우리 할일은 끝났다며 손털고 일어서려는 노사모를 노무현은 야속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전해듣고 저는 대통령 당선 직후 노사모 해체에 반대했습니다.

"노무현 5년 내내 전쟁일 것이다. 노사모가 있으면 역풍을 받아 총선에 불리하겠지만 그 역풍을 감수하고서라도 노사모를 필요로 할 정도로 절박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도 저는 대통령이 원망스럽습니다. 노무현, 당신은 상고나온 사람의 대표선수입니다. 모범을 남기고 성공사례를 창출해야 합니다. 우리는 승리하겠지만 그래도 탄핵은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터럭 만큼의 오점도 없이 완벽하게 성공해주기 바랬습니다.

그 성공으로 하여 "역시 상고나온 사람이 하니 더 잘 되네."하는 칭찬을 듣기 바랬습니다. 그리하여 더 많은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가슴을 펴고 활개치며 사는 그런 세상을 저는 꿈꾸었던 것입니다.

 

● 판이 뒤집어지고 세상이 바뀔 때는 절대 조금씩 바뀌지 않습니다. 아주 많이 바뀝니다. DJ도 유탄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노무현도 원상회복이 안되는 깊은 내상을 입을 것입니다.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지식인들도, 사태를 안이하게 생각한 논객들도 대체로 묵사발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평범한 네티즌으로 돌아가 저 자신의 두뇌를 포맷하고 원점에서 다시 리부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왜적의 침략을 받아 명나라군대의 힘을 빌리려면 지휘권을 넘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이려면 지휘권을 넘겨주는 수모를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의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민단체와 한총련과 노조의 도움을 바란다면 그들에게 지휘권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투쟁의 주체는 노사모가 아니라 시민단체입니다.

시민단체와 한총련과 노조가 개입한다면 그들은 양비론으로 나올 것입니다. 당장에 한겨레의 손석춘부터 "노무현이 잘못했지만 그래도..." 하고 말을 꺼냅니다. 감수해야 합니다. 탄핵을 당한 것으로 우리는 이미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 고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얄밉게 나오는 시민단체와 한총련과 노조에 고개숙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라도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 적들은 지금 국정운영에 협력하겠다며 고총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회담을 하자 이건데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고총리가 주제넘게 '정치'를 하려든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체의 회담이나 타협은 없습니다. 타협의 '타'자라도 꺼내는 자가 있다면 적들에게 욕을 당하기 전에 우리 손으로 모가지를 비틀어버려야 합니다.

 

● 적들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합니다. 정치 모라토리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노무현 개인의 문제로 만들려는 술책입니다. '한놈만 패'전략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천만에요.

스페인의 경우를 말씀드렸듯이 본질은 박정희독재의 후유증입니다. 비스마르크의 철혈독재 후유증이 히틀러의 반동을 낳았듯이, 프랑코의 후유증이 1981년의 쿠데타를 낳았듯이 죽은 박정희의 망령이 한국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노무현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민혁명 발언이 한번 해보는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독재자의 망령은 반드시 부활할 것이며, 어떻게든 한번의 정면승부를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대한민국 안에서 노무현이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죽은 박정희귀신의 난동.. 정말 지긋지긋 합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떼내고 갑시다. 이번에도 이 귀신을 떼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245 존재와 구조 김동렬 2011-04-15 10708
2244 경쟁과 비경쟁 7 김동렬 2011-04-06 13420
2243 let it be 김동렬 2011-04-05 23567
2242 부바키키영어 image 8 김동렬 2011-03-25 13407
2241 구조론은 비경쟁이다. 4 김동렬 2011-03-21 12012
2240 연역모형의 완성 image 3 김동렬 2011-03-09 16430
2239 다섯 에너지 장 모형 image 5 김동렬 2011-03-07 14108
2238 진정한 창의 3 김동렬 2011-03-03 14454
2237 낳음과 성장 image 1 김동렬 2011-02-25 15647
2236 모형을 사용하는 사유 5 김동렬 2011-02-25 13561
2235 부처를 넘어서 image 5 김동렬 2011-02-23 14007
2234 깨달음의 구조 image 2 김동렬 2011-02-18 11831
2233 어떤 문답 1 김동렬 2011-02-13 13913
2232 손자병법 대 손빈병법 image 3 김동렬 2011-02-11 21691
2231 화성인 바이러스 철없는 아내편 image 6 김동렬 2011-02-08 22023
2230 손자병법과 로마교범 image 4 김동렬 2011-02-08 13909
2229 조조의 리더십 image 김동렬 2011-02-02 16981
2228 징기스칸에서 스티브 잡스까지 image 김동렬 2011-02-02 12593
2227 전쟁의 형태 image 1 김동렬 2011-01-31 16260
2226 현대의 조직전 image 2 김동렬 2011-01-28 12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