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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540 vote 0 2003.12.15 (20:26:15)

친일파와 애국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식인이라면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언론인이라면 모가지를 뎅강 잘라야 한다. 이것이 ‘드골 식’이다. 해방정국에서 우리의 판단기준으로 말하면 ‘복수론’의 논리가 상당히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 조병옥이 애국자? 김일성 덕에 반공해서 살아남은 자들 심판해야 한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고향에 강씨 집안이라고 있었어.양반인데 대대로 우리 가족을 괴롭혔지.할아버지를 몰매 때리기도 하고.아버님이 어린 마음에 깊이 사무치셨던 모양이야.중국에서도 본국에 돌아가면 강가놈 원수 갚겠다 되뇌셨을 정도야. [아들 김신의 증언]

김구선생이 사적인 복수를 운운하다니.. 모르는 사람이라면 충격받을 만한 이야기다.(선생은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 토전양량을 타살하고 그 피를 마셨다.)

‘예기’에 이르기를 父之警 弗與共業天 見弟之擺 不反兵吏遊之擺 不同國..이라 했으니, 어버이의 원수는 한 하늘을 함께 할 수 없는 즉 반드시 죽여야 하고, 형제의 원수는 집에 가서 무기를 가져올 여유도 없으니 무기를 휴대하고 있다가 발견하는 즉시 죽여야 하며,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 살 수 없으니 원수가 국내 어디엔가 숨어 있다면 찾아내서 죽여야 한다는 말이다.

복수론..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는데 .. 구한말까지만 해도 집안과 집안이, 혹은 가문과 가문이 조상대대로 원수가 져서 복수를 주고받는 일이 많았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때 복수는 권리이자 의무로서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초법적인 관행이었다.

625를 전후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들이 다 이념 때문에 벌어진 것만은 아니다. 복수극일 수 있다. 옛날에는 집성촌이었다. 최씨마을과 박씨마을이 조상대대로 원수지간이라면 최씨문중에서 한 사람이 독립군으로 가면 박씨문중에서 한 사람은 친일파가 되곤 하는 식으로 되기 바련이다.

일가붙이 중에서 한 명만 ‘순사벼슬’을 해도 동리사람 전체가 순사가 된 듯이 거들먹거리는 풍속이 있었던 것이다. 시국이 변하면 일가친척들 중 한 명이 친일파이거나 혹은 독립군이었다는 이유로 마을 전체가 피를 보는 일이 당연시 되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한 사람이라도 살려두면 훗날 복수를 당할까봐 아주 몰살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625 때의 집단학살로 까지 이어졌다. 왜 이 점이 중요한가?

해방이 되었다. 무법천지다. 일제 치하에서 순사노릇 하던 사람들이 복수를 당하게 된다. 학살당한 독립군 가족들이 몽둥이 들고 몰려와서 사람을 잡는다. 이때 친일분자를 누가 보호해 주어야 하는가? 국가가 굳이 나서서 친일파들의 공민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

두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복수가 정당한 관행으로 인정받던 시대에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친일파들의 공민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친일파에게 피해를 당한 독립군 가족이 사적으로 복수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의 정당한 복수(?)를 제지할 명분이 있는가이다.

해방정국에서 친일파와 애국자를 가리는 기준은 이 ‘복수의 논리’가 상당히 작용하였다. 이는 이 시대의 우리가 판단하는 가치기준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박정희는 친일파가 아닐 수 있다. 왜? 박정희에게 사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처단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므로 국가가 박정희를 보호할 부담을 지는 일도 없기 때문에 박정희는 논외가 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떤 독립군이 친일파 한 놈을 잡아와서

독립군 : “이 사람이 내 아버지를 죽였소. 내가 이 사람을 처단하겠소!”

이때 제 3자가 개입하여 하소연한다.  

제 3자 : “나는 이 사람에게 큰 은혜를 입었소! 나를 봐서 살려주시오!”

복수론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은혜론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복수를 당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구조를 요청하면 살려주는 것이 도리이다. 친일파의 수괴 인촌 김성수나 계초 방응모 같은 악당들이 처단되지 않는 이유는 이렇듯 신세진 사람이 많아서이다.

물론 신세진 사람보다 피해 입은 사람이 더 많다면 공론에 따라 결정되는 거지만. 여기서 주요한 점은 해방정국에서 친일파와 애국자를 가리는 기준은 이런 식의 봉건적인 복수론과 은혜론에 매몰되어 있었으며 이는 지금 시대에 논의되는 ‘역사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논의라는 점이다.

봉건의 논리로 말하면 처단되어야 할 친일파는 많지 않다. 춘원 이광수가 친일했지만 누구에게 원수진 일은 없을 수 있고, 돈 많은 김성수나 방응모 역시 누구에게 사적으로 원수진 일이 없는 이상 처단대상에서 제외된다.

우리는 ‘드골 식’의 가치기준으로 친일파를 심판해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역사는 흐르고 세상은 달라졌다. 지금 우리의 친일파 판별기준은 복수론이 아니다. 지금은 친일파에게 복수하겠다고 낫들고 덤벼드는 사람도 없다. 반민특위의 명분과 기준을 들이댈 때가 아니다.

우리는 복수의 논리가 아니라 역사의 가치기준을 들이대야 한다. 역사는 유사한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고 있다. 박정희일당의 친일행위를 규명하고 심판함이 장래 우리 민족의 이익에 부합하면 곧 옳다는 것이 역사의 방식이다.

역사에는 역사의 방식이 있다. 박정희가 친일파이면 조병옥도 친일파이다. 조병옥이 친일파가 아니기 위해서는 박정희도 친일파가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박정희가 퍼뜨린 군사문화는 곧 박정희가 친일한 데 따른 폐해이다.

우리가 군사문화의 잔재에 힘겨워 한다면 이는 곧 친일의 잔재에 고통받음이며 이는 조병옥들의 친일행위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역사는 이런 식으로 증언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었으므로 우리는 정당하게 추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병옥 장택상들이 애국자라는 논리는 김일성정권의 이념공세에 맞서기 위한 어용논리에 불과하다. 방응모 김성수 서정주 김활란들, 반공해서 살아남은 자들 아닌가? 저승에 가서 김일성 앞에 엎드려서는 '아이고 형님 덕분에 살았수!' 할 넘들이다.


김혁규의 배신과 추미애의 배신
무엇이 배신일까? 배신은 믿음을 뒤엎는 것이다. 믿음은 무엇인가? 왜 믿음을 필요로 하는가? 그 믿음의 주체는 누구인가? 배신에 대칭되는 말은 '의리'다. 의리는 또 무엇인가? 왜 의리를 필요로 하는가? 그 의리의 주체는 누구인가?

YS는 자유당을 배신한 공로로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거쳐 총재까지 되었다. 한국에서는 배신하면 출세한다? 천만에!

이문옥은 양심선언을 통해 소속집단을 배신했다. 사회는 이문옥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김근태의 양심선언도 평가받지 못했다. 한국인은 의리를 중히 여기고 배신자를 싫어한다?

착각해서 안된다. 돌아가는 판 전체를 보아야 한다. 그 안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요는 배신으로 하여 문제가 유발되었는가 아니면 문제가 해결되었는가이다. 추미애, 김경재, 조순형들의 배신은 새로이 문제를 야기한 경우이다. 이건 피곤한거다. 반면 김혁규의 배신(?)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건 차원이 다른 거다.

과연 그런가? 추미애의 배신은 나쁘고 김혁규의 배신은 선한가?

YS의 배신으로 자유당은 붕괴되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김근태의 양심선언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복잡해졌을 수도 있다. 정몽준의 배신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며, 김민석의 배신은 사태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므로 배신인가 의리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여부를 보아야 한다. 그 문제해결의 기준은 '공익' 곧 '공동체의 이익'과 일치하는가의 여부이다.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애물을 제거한 경우 높이 평가된다. 이 경우 한국인은 응분의 보상을 한다. 반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을 경우 한국인은 배신자를 가혹하게 응징한다. 그러므로 과연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

무엇이 의리인가? 명분이 있는 즉 공동체의 이익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의리다.

YS의 삼당야합이 공동체 다수의 이익과 일치한다면 위대한 결단이고, 사사로운 이익을 쫓은 결과라면 배신이다. 정답은 오직 역사만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할 일이다. 역사를 모르는 자가 주장하는 의리는 조폭의 의리에 불과한 것이다.

입 닥치고 역사를 공부하라!



아래 글은 2001. 3. 26 한겨레신문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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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에게] ‘친일’ 조병옥 면죄부 칼럼 유감

지난 19일치 신경림 시인의 `삶이 있는 풍경-살고 싶은 나라가 되려면''(6면)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개인적으로 친일행각이 별로 보이지 않는” 유석 조병옥을 “범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하는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라며 터무니 없는 관용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1년 8월25일 삼천리사 주최 임전대책협의회에서 죽음으로써 일본에 보답한다는 각계 명사 120명 결의 아래 신흥우, 윤치호, 장덕수, 최린, 이광수, 주요한 등 친일 거두들과 자리를 함께 한 조병옥은 자못 비장한 어조로 소신발언에 목청을 돋궈 부민관 중강당을 제압했다.

“우리는 오늘 제국의 신민으로서 이 마당에 모였습니다. 전 세계를 통하여 역사적 드라마가 전개되는 현 단계에 있어서 유사 이래 처음 위급존망지추에 입각한 제국의 위정자로서는 조선인이 과연 절대적으로 제국신민으로서 현하 국책에 협동하느냐 않느냐 함에 있어서 조선민중에 대해서 듣고 싶은 대답이 많을 줄 압니다. (…)그러나 조선민중은 아무 요구도 없이 무조건으로 협동하여 전승해서 동아공영권 건설에 매진함으로써 위정자에게 안심을 줄 것입니다. (…)성전이 관철된 뒤의 전쟁은 민족적 투쟁에 있는데 그것은 세계를 이분하여 백색인종과 유색인종의 투쟁인 것입니다. 요컨대 이 모임의 목적은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제국신민으로서 국책에 절대 협력할 것, 그리하여 위정자로 하여금 안심케 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바쳐 무조건 친일에 일로매진하자는 이처럼 열띤 유석의 주장을 두고 60년이 지난 오늘 고작 `범친일파''쯤으로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일까. 당시 삼천리사의 발기로 전시보국단체 임전대책협의회가 결성되자 이 단체의 위원 35명 가운데 조선일보 후신 <조광> 발행인 방응모도 들어 있어 윤치호, 이광수와 함께 전비 조달차 가두에 나서기까지 했다. 조선일보 전무 유석이 앞서 방응모를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육당의 친일이 거의 혼자만의 매국이었다면 유석의 그것은 훨씬 더 조직적·지능적 배족(背族)이었다. 한데도 그는 스스로 참회한 적이 전무하였다.

임중빈/문학평론가·인물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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