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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490 vote 0 2004.04.14 (18: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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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칼을 휘둘렀다. 그들이 사용한 칼은 노무현이 국민을 위해 당신의 손에서 내려놓은 칼이었다. 그 칼은 국민의 손에 쥐어져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들이 중간에서 그 칼을 낚아챈 것이다. 그들은 왜 노무현을 찔렀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했을까? 우리가 미처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노무현에 의해 탄로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지역주의는 막연한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 공포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잇다.
 
유권자의 30프로가 탄핵에 찬성한 바 있다. 30프로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 30프로는 TK라는 좁은 지역에 몰려있다. 그들의 본거지에서는 70프로 이상이 탄핵찬성이었다.
 
처음 그들은 자기네가 다수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곧 소수로 몰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탄핵이 범죄임을 알아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죄인이 되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 벌을 받게 될까?
 
처음에는 탄핵찬성 철회로 대응했다. 한 때는 TK조차도 대부분 탄핵반대로 돌아섰다. 그러나 촛불이 가라앉자 음지에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본심은 이렇다.
 
“탄핵에 찬성한다. 다만 승산이 없으므로 탄핵지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역주의를 이용하여 세를 결집하고 방어태세를 취해야겠다. 혹시 저들이 한때 탄핵을 찬성했다는 이유로 나를 해칠지도 모르니까.”
 
이건 논리가 아니라 심리다. 그들은 박근혜의 눈물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정동영의 실언에 분노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이다.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무엇인가?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숫자는 가짜라는 말이다. 그들은 촛불의 기세에 눌려 일단 유보했을 뿐 내심 여전히 탄핵을 지지하고 있다. 여전히 헌재로또를 긁어봐야겠다는 심산이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지역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이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니다. 지역주의는 논리가 아니다. 생존본능이다. 원초적인 두려움에 기초한 본능적인 방어기제다.
 
지역주의를 겪어보지 못한 수도권의 젊은이들은 잘 모른다. 많은 젊은이들은 촛불의 위력에 저들이 굴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이 지역이라는 울타리에 얼마나 강하게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지역주의는 강하지만 꺾을 수 있다. 악랄하게 싸워야 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여론은 압도적으로 우리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탄핵당연합의 과반수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젊은 층이 투표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싸웠다. 촛불을 들었다. 목놓아 외쳤다. 싸워서 이겼다. 여론에서 이겨놓고도 막상 투표에서 진다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닌가? 내일 투표하지 않으면 또 4년간 한숨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지금 상황은 민노당의 1석을 위해 우리당의 5석을 한나라당에 헌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도 민노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석을 위해 5석을 내준다면 이건 너무나 손해보는 장사다.
 
제휴하자는 거다. 전국구를 양보할테니 지역구는 돌려달라는 거다. 일단 힘을 합쳐서 우리 + 민노 합이 과반수를 넘기면 선거법을 개정해서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릴 수 있다. 비례 대표가 100석으로 늘면 4년후 민노당은 70석 이상 얻는다.
 
3.12를 주문한다. 서로 돕자는 거다. 3번과 12번을 찍으면 4년후 민노당은 70석이다. 그러나 12.12를 찍으면 4년후에도 민노당은 10석 미만이다.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겠는가?
 
 
민노당은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정치는 제휴다. 제휴에 성공해야 한다. 우리당과 싸우면 제휴가 안되는 당이라는 인상을 얻는다. 이래서는 누가 민노당을 위해 비례대표 100석 선거법개정에 나서겠는가?
 
 
민노당 일부의 무정부주의 성향이 문제다. 그들은 이념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을 따라 민노당으로 간 것이다. 대통령을 무시하기로는 민노당이 더하다.
 
장기표만 봐도 알 수 있다. 얼굴 표정이 조순형을 빼닮아 있다. 장기표를 판박이 하고 있는 진중권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세 사람은 소속 당이 다르지만 자신이 대통령 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믿는 점에서 같다.
 
 
다른건 다 좋지만 서프는 머리 나쁜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언제라도 대중과 함께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져도 명성을 얻지만 대중은 패배할 경우 얻는 것이 없다.
 
대중이 참여로 얻는 반대급부는 승리의 기쁨 밖에 없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대중과 함께 간다. 서프는 이겨야만 존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겨왔고 앞으로도 이기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모 대기업은 전사적으로 1번이라고 한다. 친구는 오늘 하루동안 꼭 투표에 참여하라는 말을 1백번 들었다고 한다. 부당하다. 억울하다. 그 대기업은 한나라당이 1당 되면 어떤 이익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리도 집요하다는 말인가?
 
 
조선일보는 오늘 우리당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일당이 될 것이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들의 허튼 생각을 보기좋게 깨부셔줘야 우리의 승리가 된다.
 
 
● 지난 90년 3당야합이후 수십명의 열사가 분신자결을 했다. YS가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살릴 수 있는 목숨이었다. 탄핵이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적들이 과반수를 이루어 대통령 하야하라고 압력을 넣는 나날이 계속된다면 3당야합 직후처럼 된다. 국민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병든 정치 고치고 싶은가? 그러면 투표하라! [유지담 선관위원장]
 
 
● 우리에게는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세가지 유리한 변수가 있다.
 
첫째는 1인 2표제다.
“나는 찍어줄 당이 없어서 투표안해!”에는 “무슨 소리야! 1인 2표제가 있는데.”로 응징!
 
둘째는 탄핵이다.
“정책이 별로라서 투표 안해.” 에는 ”얼씨구! 탄핵보다 더 큰 정책이 있나?“로 정리!
 
세째는 인터넷 학습효과다.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다 똑같애!”에는 “야! 넌 인터넷 5년에 배운게 없냐?”로 해결!
 
이렇게 유리한 변수가 세가지나 있는데도 젊은 층의 투표기피로 진다면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룰 것만 같다. 악착같이 싸워서 우리 세상을 만들자.
 

[아침을 열며]평형이탈의 책임(경향신문)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이 대표를 뽑는 유일한 수단인데 그 결과는 늘 신통치 않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비극이다. 후보자들이 정직하고 유권자들이 현명하다면 선거야말로 공동체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가장 뛰어난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설사 한번의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다음번에는 더 나은 새로운 사람을 뽑을 수 있으므로, 선거는 거듭하면 할수록 민주주의 공동체를 더욱 살찌게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국제투기꾼이라는 일부 폄하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치경제학자 못지않은 탁견에 ‘열린 사회’를 위한 실천의지까지 겸비한 조지 소로스는 ‘평형이탈’이라는 단어로 그같은 ‘정치의 타락’을 설명한다. 금융시장이 시장참여자들의 오류성과 반사성 때문에 평형으로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이탈하면서 ‘붕(boom)/꽝(bust)’을 반복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정치판에서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먼저 후보자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식견과 능력을 내보이고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 등을 통해 알아낸 유권자들의 희망에 맞게 자신의 주장을 각색한다. 그렇게 되면 후보자들의 주장과 유권자들의 희망은 일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치는 억지로 짜맞춘 것이기 때문에 당선자는 당연히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정치에 실망하게 되고, 정치인들은 점점 더 허황된 약속을 하게 되면서 평형이탈의 상황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붕’과 ‘꽝’의 정치판유권자들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를 뽑아야만 한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후보자들도 유권자들의 개인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서로 상충하는 개인들의 이익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당선과 권력유지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특정 이익들과 은밀한 거래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과정이 더 타락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무관심할 때다. 즉 그들은 후보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해치지 않는 한 어떤 속임수나 거짓말에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로스의 독해법에 따른다면 한국의 유권자는 내일 다시 한번 심판대에 선다. 정치인들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심판대에 선다는 것은 정치인들로부터는 원래부터 정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의 평형을 맞추는 것은 언제나 유권자의 몫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권자들은 그다지 현명했다고 할 수 없다.
 
한푼의 가치도 없는 지역주의 등에 매몰돼 선거를 통해 악화(惡貨)를 추려내는 반복작업에 실패함으로써 정치는 계속해서 평형이탈의 진폭을 오히려 넓혀 왔고, 그 결과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헌법적 쿠데타’를 자행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시 소로스의 공식을 차용한다면 이건 누가 보더라도 ‘꽝!’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유권자들의 의지로부터 떨어져도 너무 멀리 떨어져 나가버린 이들 정치꾼들, 혹은 정치세력을 응징하지 못한다면 평형이탈은 더욱 가속화되어 한국정치는 끝내 붕괴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선택의 본질 물어야그럼에도 4·15 총선판은 쿠데타가 발생한 지 채 한달도 되지 않은 지금 또다시 옛날처럼 온갖 속임수와 거짓말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공판장과 컨테이너 당사가 그렇고, 백팔배와 삼보일배가 그렇고, 민생투어들이 다 그렇다.
 
변화와 진보를 택한 민주주의의 운명을 구체제가 임명한 법관 몇 사람의 손에 내던져둔 채 만번의 큰 절을 하고 백말의 눈물을 쏟은들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최종 책임이 유권자의 몫이라는 건 이번에도 다시 진리다.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속는 체해 왔으므로 선거를 하루 앞둔 이제는 다시 선택의 본질을 물어야 한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www.khan.co.kr 강기석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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