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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762 vote 0 2004.03.31 (11:52:28)

‘할 말은 하는 신문’.. 조선일보 슬로건이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신문입니다. 그 결과는? 망했습니다. 신문이야 팔리겠지만 그들의 목적인 정권탈취는 보기좋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왜? 그 할말을 아껴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27일 부산 서면 촛불시위현장 문성근 오른쪽은 서프 독자님. 』

또 있죠. 남프라이즈. 할 말은 하는 사이트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요. 그 결과는? 망했습니다. 물론 사이트는 돌아갑니다. 그만하면 성공이죠. 정치목적의 달성에 실패해서 그렇지.

세상에 꿩먹고 알먹는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습니다. 반드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포기하겠습니까?

송만기? 홍싸대기? 김경재? 그 사람들은 할말을 하고 사는 겁니다. 집안에 어른이 없으니 말년 병장처럼 된거죠. 언론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거죠.

탄핵을 통과시킨 193명? 그 사람들도 할 짓을 한거죠. 그들은 소원 풀었습니다. 아마 여한이 없을 겁니다. 역사에 이름 씩이나 올렸으니. 말년병장병에 걸린 겁니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말년병장도 좋지 않고, 상병왕고도 좋지 않고, 이등병도 좋지 않고, 휴가에서 막 돌아온 일병이 딱 좋습니다. 일병처럼 빨빨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할 말을 아껴야 합니다. 전략적인 고려를 해야 합니다.

길게 내다보고 참는 자가 이기는 겁니다. 그래서 할 말을 참았더니 속이 상해서 글을 못 쓰겠군요.

요 며칠 우울한 소식 많습니다.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모두 상쇄됩니다. 추미애의 인기는 박근혜와 충돌하여 서로 상쇄됩니다. 지금은 박근혜나 추미애 한쪽이 죽으면 판이 기울어져서 오히려 더 위험하지요.

헌재의 탄핵소추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말이 많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낙관할 일이지만 낙관해서 안되고, 부질없이 위기감을 고취해도 안되고, 약간의 불안감을 남겨놓은채 이대로 긴장하고 가는 겁니다.

유불리를 떠나서 사안 자체의 중대성을 인정해야 하니까요. 스트레스에 강한 쪽이 승리합니다. 스트레스를 풀지 맙시다. 엄살이라도 좋으니 단단히 긴장하고 갑시다.

● 차떼기 책떼기에 사람떼기까지 나왔군요. 지역구는 전부 변호사 아니면 검사, 전국구는 전부 교수.. 이거 망합니다. 제가 말했죠. 정당에는 난닝구도 있어야 하고 계보도 있어야 한다고. 정당은 정당다워야 합니다. 이만기도 있어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이래서 망한 겁니다. 다양성이 죽은 거지요. 개혁당출신의 우리당 비례대표 후보들.. 개인적으로는 자질이 모자라는 분들도 상당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다양성의 면에서 매우 건강한 겁니다. 변호사 아니면 교수.. 이건 건강하지 않은 거에요. 편식이죠. 차라리 공무원시험을 칠 것이지.

● 도올이 지면을 잃었군요. 인터넷에 쓰면 되는데 인간이 '펌'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답니다. 자기 글을 퍼날라 달라는 뜻인거 같은데.. 그래서 퍼왔습니다. 누가 가서 좀 가르쳐줘요.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도올고성)

법이란 조문이 아니다.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법이란 인간이 군집생활을 영위하면서 그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질서를 역동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약속체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것은 에토스요 노모스다.

법이란 실정법만 아니라 자연법도 있는 것이요, 성문법만 아니라 불문법도 있는 것이다. 일제식민지를 통하여 수용된 대륙법계열의 성문법만을 우리나라 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법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결여를 의미하는 치졸한 발상일 뿐이다.

헌법이란 반드시 헌법이 규정하고자 하는 정체(政體)의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헌법은, 피비린내나는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미국의 성문헌법이나 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왕권을 제약하고 국민의 권리를 확대해나간 영국의 불문헌법과는 달리, 역사적 체험의 축적이 없이 일시에 몇명의 제헌위원이 탁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1948. 7. 17. 공포).

그것은 헌법학자 뢰벤슈타인의 말대로, 신체가 의복에 맞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서랍속에 보관되어 있는 아무도 입지않는 명목적 의복과도 같은 것이다.

우금치에서 흘린 10만 동학군의 선혈, 4.19의 의혈, 5.18항쟁의 분혈의 수레바퀴가 2세기를 쌓아올린 민주(民主) 공든탑의 총체적 운명이 오늘 이 시각 9명의 단순한 해석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작금의 사태야말로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대의 위헌사태라고 나 도올은 감언한다.

천일의 앤.에라스무스의 모가지에도, 최수운?해월의 모가지에도 망나니의 도끼는 어김없이 내려쳐졌다. 그릇된 명(命)이라도 한번 떨어진 모가지는 다시 붙을 수 없다.

헌재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리라는 모든 감언이설의 배면에 망나니도끼에 대한 기대와 암약이 도사리고 있다면 조선의 민중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망나니의 도끼는 헌법을 불살라버릴 것이다. 헌법 그 자체를 국민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이탈시켜버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평온한 총선의 논리로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탄핵정국이 근원적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분노를 수그러뜨리면 안된다.

바로 이 시각 우리 민중의 함성! 그것 이상의 헌법은 없다. 우리는 헌법을 새롭게 써야한다! 빛나는 광장으로 나서라! 그리고 락밴드 킹 크림슨의 ‘에피타프’(碑銘)의 마지막 구절을 되씹어 보아라!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다. 민중이 우리의 헌장을 만들지 않는다면 모든 지식은 죽음의 키스일 뿐. 모든 인간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니!”    출처: www.dosu.org

민중이 알아듣는 쉬운 언어로 말해서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바보가 셋 있는데 일찌기 원효성사가 그러했고 그 다음은 노무현과 김용옥이다.

인터뷰 부분 발췌입니다.

나보고 나가라는 얘기 같은데 내가 절필을 하면 했지 어떤 적당한 타협 속에서 내 글을 계속 쓸 생각은 없다 그랬더니 그 분이 새로 들어오신 사장이 내 기사를 읽더라고. 읽고 "그렇다고 해서 국장단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을 내가 지시할 수 는 없다. 다시 실어라 지시할 수는 없다"고 해서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중략)

설사 치우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골고루 싣는다고 하는 것이 치우치지 않는 것이지, 어떻게 그 개별적인 문장이 치우치지 않는 문장이 어딨겠냐. 내 글이 안 치우친다면 딴 글은 딴 편으로 치우칠 수 밖에 없는데 당신은 백화점 운영하는 식으로 지적 사업을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치우친다고 하는, 내가 솔직히 말 했어요, 우리가 겉으로 얘기하는 '조선일보' 같은 경우에도 조선일보가 엄청난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치우침을 밀고 있기 때문에 장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 나름대로 지적인 사업은 어떠한 벤처가 없으면 지적인 사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은 벤처가 없이,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로 새로 들어와서 장사를 하려는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는 장사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중략)

오늘 글은 특별히 헌법이라고 하는 국민적 인식에 관한 추상적인, 굉장히 과격하기는 하지만 글이 치우치는 글은 아닙니다. 과격하다고 하는 것이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근원적이지 치우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략)

인터넷으로 유포가 되겠지요. 강의에서 오늘 얘기를 했고 학생들이 퍼다나른다더라구. 난 그게 뭔 얘긴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이 글은 오늘 글은 아마 유포가 될 것 같고 이렇게 해서 제가 도올고송, 북소리. 결국 뭐 북소리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북돋는다는 것인데 우리 역사의 진보를 북돋는다는 소리로서 썼던 것인데 이제 그 북소리는 당분간 안 들리겠죠. (중략)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역사가 여태까지 모든 어떠한 우리사회의 합리적 진보를 위해서 동학 이래 아주 구체적으로 근대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 150년 동안 진행돼온 결과가 오늘 단순하게 몇몇의 재판관의 법조문의 해석으로 모든 것이 역사가 귀결된다고 하는, 판결된다고 하는 이러한 사태 자체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워온 결과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서글픈 사태고 이 서글픈 사태는 헌재 재판관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거기에는 상당한 위험한 요소들이 많이 내재한다고 보고 있고, 어떠한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우리 역사의 모든 문제가 걸려 있는 탄핵이라고 하는 이 정국을 타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이것이 무산됨으로써, 어떠한 방식으로든 무산됨으로써 법관의 부담도 덜고 정계의 부담도 더는 것이 정당한 수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고려대학교 교수들의 시국선언이라든가 서울대학교의 시국성명도, 대대적으로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일어설 것을 촉구합니다. 지금 절대 어떤 법조문의 해석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불문헌법의 전통에 있어서는, 컨스티튜션이라는 것도 헌법도 불문헌법이 있거든요, 미국이 성문헌법의 대표적인 건데 불문헌법의 경우는 마그나카르타 이래 오늘날 저 같은 사상가가 쓰고 있는 칼럼이나 신문 사설까지도 헌법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법이라는 것을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법은 이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게 있고, 그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법이라는 것은 헌법 자체가 우리 역사적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1948년 7월17일날 유진오 머리에서 나왔고 그 다음에 몇몇 제헌위헌들이 만든, 일시적으로 만든 픽션입니다. 우리 역사의 스트러글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을 헌법학에서는 명목적 헌법이라고 합니다.

실질적인 헌법이 아니고 명목적 헌법, 그러니까 헌법이라는 게, 사람 옷과 몸이 이렇게 맞아야 법인데 그래서 사람들의 몸이 크거나 하면 고치고 하는 것인데,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전부 자기들이 어떤 옷을 입었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시민들이 전부 헌법을 외우고 있어요. 그래서 뭔가 잘못되면 민권투쟁이라는 게 헌법을 어멘드먼트, 그것을 수정하는 것이 민권운동입니다. 그만큼 법이 생활화돼 있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거의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 백명에게 물어보면 거의 단 한 사람도 헌법을 알고 있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한 헌법이라는 것은 진짜 우리 삶의 헌법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한 헌법, 그러니까 뭐냐면 어린애가 아직 크지도 않았는데 1948년에 거대한 성인의 옷을, 완벽한 옷을 만들어놓고 그 어린애가 클 때까지 서랍속에 보관해둔 헌법이라는 거죠. 이게 레빈슈타인이라는 헌법학자가 한 말인데, 그런 헌법이라는 말이거든요. 아시아의 헌법들이 대개 다 그렇습니다.

그러한 헌법에 해석으로써 우리 역사의 진로가 결정될 수는 없다는 거에요. 이것은 내가 사상가로서 목숨걸고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이런 내용을 오늘 쓴 겁니다. 그리고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거고. 이거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헌법재판관의 해석에 의해서 이 사태가 결정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위헌입니다. 그것이 위헌입니다.

법에 대한 인식이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이것이 70%가 넘는, 최소한 70%가 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싫어하든지 좋아하든지 간에 우리당을 선호하든지 안 하든 간에 나는 한나라당이 훌륭한 사람이 나와서 훌륭하게 의석을 차지해서 좋은 일하면 오케이, 노 프러블럼.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위 말해서 70%가 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호나 당에 입장과는 무관하게 국민의 70%가 커먼센스를 갖고 반대하고 있는 이 상황에, 소위 말해서 그러한 국민들의 보이스야말로 양심의 소리야말로 이 시대 최상위의 헌법이라는 말이지요. 법이라는 개념은 실정법만 법이 아니라 자연법 사상, 자연법 사상이 없으면 실정법은 의미가 없습니다. 천부인권설 이것은 절대 법의 대전제인데, 그것은 실정법의 개념이 아니에요.

그러한 자연법 사상이라는 게 우리도 이퇴계의 사단사상으로부터 인간의 양심의, 그러니까 이퇴계가 인간에게는 사단이라고 하는 어떠한 철저한 도덕적 원리가 인간에게 내재한다고 했을 때, 그러한 것들이 자연법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러한 법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 최상위 헌법이라는 것이죠.

그것은 영국의 헌법학자들이 전부다 동의하고 있는 100%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에요.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헌법의 해석을 기다리라, 그것도 9명의 재판관, 그것도 모든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좌우지간 6명이 무조건 찬동만 하면 결정된다는 이 사태가 나는 근원적 난센스라고 생각하고, 근원적 위헌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우리 역사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 기회에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총선은 새로운 법을 만드는 사람을 뽑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나 오늘 조선일보 칭찬을 했다니까 사장한테.(웃음) 당신 눈에는 (조선일보가) 공정하고 보수인듯 보여도 그 사람들은 벤처를 하는데 당신은 벤처를 안 하는게 문제다 그랬거든. 사장한테.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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