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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400 vote 0 2002.10.21 (18:28:17)

유용주 '겉멋들린 문인은 싫다'


지난해부터 한겨레신문에 ‘노동일기’를 연재하는 유용주 시인이 최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며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9월 ‘MBC 느낌표!’의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그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가 선정도서로 뽑힌 게 큰 계기가 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을 통해 책이 소개된다는 건 작가 입장에선 즐거운 일임이 분명하다. 책도 많이 팔려 나가고 ‘대중적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냉철하게 본다면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선풍적 독서운동에 불과하다’거나 ‘유명 저자의 책들을 우선해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기는 이유다. 유용주 시인은 스스로도 자신의 경우를 “거품 현상”이라며 “빨리 거품이 사라지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시인은 그리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의 작품세계 또한 기존 베스트셀러 작가와는 다른 점들이 많다. 핍진한 노동자의 삶을 살아오면서 모진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려는 역동적 의지가 담겨있으며, 과거 노동운동문학과는 달리 뛰어난 서정성과 진성성으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 시인은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세상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살아온 그의 삶의 기록을 문학으로 형상화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유 시인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심경과 시인이 되려 했던 이유, 문단 중앙집권화에 대한 평가,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해 진솔한 견해를 밝혔다.


(1) 좀 지난 얘기지만 선생님께서 쓰신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가 MBC느낌표! 9월의 선정도서로 선 정되셨을 때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또 책은 많이 판매되는 지도 궁금합니다.


=좀 자존심 상하는 고백이지만 기쁜 건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고 그 동안 펴냈던 책도 팔리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많이 했습니다. 느낌표에 선정된 산문집은 10월 둘째 주 현재, 전국 주요 서점(온라인과 오프라인 포함해서) 베스트 셀러 종합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을 거품으로 보고 있는데요, 빨리 거품이 사라지고 본래의 제 자리로 복귀했으면 합니다.


(2) 현재 한겨레에 연재되는 '노동일기2'를 보면 시인이 되기 위해 피눈물나는 노력을 하셨고 많은 곡절과 파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왜 시인이 되고 싶으셨습니까.


=글쎄요, 상당히 어렵고 대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 하나는 걸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고생하고 살아왔다는 게 자랑일 수도 없고 내세울 수도 없는 겁니다. 어렵게 살았다는 것도 다 상대적인 얘기지요.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이 훨씬 많은 게 사실입니다. 시인이 되고 싶은 열망보다는 파란과 곡절 많은 인생사를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겠지요. 그것보다는 가까운 친구도 없었고 하소연할 상대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 시와 사귀고 시에게 하소연 할 수밖에 없는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 작가가 되시고 나서 여러 가지로 달라진 점들이 있으셨을 텐데요. 예를 들면 사회적 신분이라든지, 심적인 변화, 또는 문학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변화 등말입니다.


=사회적인 신분이라고요? 전혀 달라진 게 없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나 관련 출판업자나 언론에 계시는 분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작가 대접은 받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밑바닥을 헤매고 있고 전업주부로 생활 전선에서 고투하고 있습니다. 늘 맨 처음 문학을 접했을 때 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편해지지 않으려고 저 자신에게 채찍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측은지심과 연민을 가지고 다가서려고 합니다. 저보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또 그들의 삶을 문학 작품 속에 투철하게 그려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4) 문단이나 신문보도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은 노동문학의 새로운 전형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것이 전투적이었고 저항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거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선생님 글은 자전적 소설이나 산문에서 노동자의 핍진한 삶을 상당히 서정적이면서도 화려하다할 정도의 비유로 그려내고 계십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단의 평가나 신문 보도에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칭찬이 되었든 비판이 되었든 모든 것이 제 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감수하려고 합니다. 무릇 반항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겠지요. 다만 목소리만 높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단점이자 장점이겠지요. 잘못된 세상에 대해 꾸짖으려면 우선 제 자신 잘못된 점에 대해서 준열하게 반성하고 난 다음에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서정적이고 화려한 문장이 삶의 진정성을 감추고 덧칠하는 데 쓰인다면 그것 또한 독이 될 겁니다. 잘못된 세상에 대해서 꾸짖고 저항하는 문학이 참된 문학이지요. 저는 서정적이고 화려한 비유보다 거친 삶을 택하겠습니다.


(5) 고은 시인이 얼마 전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없다"는 일갈로 시적 절실성이 감소되는 시인들의 현실을 한탄했습니다. 선생님도 대단한 주량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고은 시인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냥, 문인들이 옛날에 비해 흥취가 많이 없어진 게 아닌가 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술을 많이 먹는 것으로 문학의 진정성이 얻어지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소문만 바람에 떠다닐 뿐, 제 자신 대단한 주량가가 못됩니다. 겨우 학생주 수준이지요.


저는 술과 겉멋에 걸신들린 문인들에 대해 넌덜머리가 나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는 내팽개쳐 놓고 술과 여자와 문단 언저리에서 하염없이 배회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 그런 이유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살았지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위해 밥과 잠자리가 되어주지 못한 문학은 한낱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술이 장애가 된다면 저는 단연코 술을 끊고 맨 정신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학보다 삶이 먼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저는 글을 쓸 때 단 한 번도 술에 취해서 써 본 적이 없습니다.


(6) 지난 3월 '문단의 중앙집중화를 거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문학인회'가 창립돼 화제를 불렀습니다. 아무래도 문단의 중앙(서울) 독점, 지역문예지에 대한 폄하 등 우리나라 문단의 폐단이 이러한 현상을 낳은 게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지금은 비록 한겨레에 연재 글을 쓰고 계시 긴 하지만, 서산이란 하나의 '지역'에 살고 계신데요. 중앙집권적 문단 풍토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이지요. 그러나 넓게 보면 서울도 하나의 지역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중앙(서울) 문학이 존재했던가요? 다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지역 작가들이 서울에 올라가서 살아갈 뿐이지요. 제 생각으로는 우리 문학이 더 지역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말은 경계를 구획 짓는 게 아니고 문인들 마음 속에 변방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인들은 저마다 하나씩 우주를 품고 사는데 무엇이 두려워 한 곳에 모여 살아야 하는지요. 모르긴 해도, 중앙(서울)에 살면서 많은 집단을 만드는 것을 보면 문학 이외의 무슨 꿍꿍이속이 있지 않나 의심도 해 봅니다. 외롭기로 작정을 하면, 편해지지요. 무명으로 살면서도 떳떳하다면, 잊혀진다는 사실에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당당해질 수 있을 겁니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한 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틈이 없어지고, 틈이 없으면 바람이 들어갈 수 없지요.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은 썩기 마련입니다.


(7) 지난 1996년 내신 '크나큰 침묵'이 가장 최근의 시집인데요. 시집을 내실 계획은? 또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 지 궁금합니다.


=연재가 끝나는 대로 그 동안 써 놨던 시를 정리하고 새로운 작품을 써서 시집을 낼 예정입니다. 급하게 서두르지는 않겠습니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쓰고 싶은 것만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많은 작품을 쓰기보다는 단 한 작품을 쓰더라도 제 마음속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은데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건방진 발언이지요.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정진해야 되겠지요.


(8)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학생을 비롯해서 일반인 등 참 많습니다.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지요.


=저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화 <챔피언>에서 김현치 관장이 김득구 선수에게 한 말입니다. '거울을 자주 보아라. 그 거울 속에 네가 상대해야 할 적이 있다'고 한 말. 오랜만에 맞아보는 시원한 죽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적은 우리 안에 숨어있는 자기 자신들이지요. 또 하나는 아끼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우리 시골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버릇처럼 하신 말씀, '죽으면 다 썩어 없어질 몸, 아껴서 무엇하나'였습니다. 각자 자기 앞에 주어진 삶 속에서 완전 연소하시기를 바랍니다. 완전연소하지 못한 자동차에서 시커먼 매연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유용주 시인 약력>


1960년 전북 장수 출생/199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시 <목수>외 2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1997년 제15회 신동엽 창작기금을 수혜받음/시집에 <가장 가벼운 짐>, <크나큰 침묵>, 소설집 <마린을 찾아서>, 산문집으로는<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등이 있다


하니리포터 황봄 기자 /bohemian38@hotmail.com






편집시각 2002.10.21(월) 11:2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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