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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166 vote 0 2017.06.27 (11:51:14)

     

    진리가 있다


    세상에는 진리가 있다. 그물의 기둥줄처럼 모두 연결시켜 하나로 모아내는 근원의 법칙이 있다. 그것은 의사결정원리라 할 것이니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의사결정의 관문을 피해갈 수는 없다. 자궁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사람이 없고, 알껍질을 깨지 않고 날아오른 새가 없듯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탄생의 과정을 한 번은 거치기 마련이다.


    거기서 딱 걸린다. 거기에 연결과 분리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으니 곧 얽힘과 풀림이다. 구조의 구構는 공간의 얽힘이요, 조造는 시간의 진행이라 만물은 공간의 대칭으로 얽히고 시간의 호응으로 풀어진다. 대칭과 호응이 베틀의 씨줄날줄처럼 세상을 직조하는 것이니 비로소 만물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알아야 할 첫 번째 단서는 사건의 방향성이다.


    날줄을 먼저 걸고 씨줄이 나중 가니 이 법칙은 엄정하여 결코 뒤집을 수 없다. 공간이 먼저 가고 시간이 나중 간다. 얽힘이 먼저 가고 풀림이 나중 간다. 뱀의 머리가 먼저 가고 꼬리가 뒤따르듯이 이는 절대의 법칙이라 곧 엔트로피다. 탑을 쌓기는 어렵고 탑을 허물기는 쉽다. 탑을 쌓기는 연결이니 연결은 어떤 둘의 연결이라 일단 둘이 필요한 것이다.


    대들보 하나만 빼도 건물은 무너지기 마련이라 탑의 해체에는 하나가 소용된다. 쌓기의 둘과 허물기의 하나로 인한 비용차이가 방향성을 낳는다. 세상은 2에서 1로 간다. 그 역은 없다. 2에는 1이 들어있어 비용의 자체조달이 가능하지만, 1에는 2가 들어있지 않아 비용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탑을 허무는 비용은 탑 안에서 자체조달이 가능한 것이다.


    탑을 쌓는 비용은 탑 안에서 자체조달이 불가능하다. 외부에서 들여와야 한다. 안과 밖 사이에 경계를 정하여 비용의 조달방법을 추적하면 사건의 방향성을 알아챌 수 있다. 그 방향성을 단서로 삼아서 사건의 진행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비용이 들어가니 그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지가 만물의 잠금을 파훼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연결하나 분리하나 더하고 빼면 같으니 이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그러나 그 더하고 빼는 데 들어간 의사결정비용은 계산되지 않은 게 실패다. 구조론의 중핵은 그 비용은 애초에 주어진 자원 안에서 조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닫힌계 개념이다. 일단 닫아걸고 게임을 시작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세곡을 운반하되 그 운반비용은 따로 지불되지 않는다.


    그 운반될 세곡 안에서 지출한다. 그렇다면? 운반에 동원된 노동자는 자기 몫의 세곡을 따로 빼서 팔아먹고 출발해야 가볍다. 봉건왕조 시대라면 세곡의 반이 운반중에 비용으로 손실된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일단 반을 팔아먹고 반만 서울까지 운반하면 된다. 이것이 구조론이다. 운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조직하는 것이다.


    의사결정비용의 문제야말로 존재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것이니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딱 걸린다. 국회가 예산을 틀어쥐고 행정부를 통제하듯이, 고용주가 임금을 가지고 노동자를 통제하듯이, 비용문제를 가지고 존재를 통제할 수 있으니 근원의 해법이 된다. 요는 방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방향은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이다. 이걸로 미래를 예견할 수도 있다.


    정치는 의사결정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트럼프의 깡패방법이 힐러리의 신사방법보다 의사결정비용이 싸게 먹힌다고 미국 유권자는 판단한 것이다. 반면 안철수의 거짓말정치가 문재인의 진실정치보다 비용이 더 비싸게 먹힌다고 한국 유권자는 판단한 것이다. 왜? 거짓말은 때가 되면 반드시 비용을 청구한다는 사실을 박근혜가 직접 입증했거든.


    경제는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작동한다. 곧 시장원리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효율을 따르고 진화가 효율을 따른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 효율이 단순효율이 아니라 집단의 의사결정비용 측면에서의 효율이고 또 유전자의 복제 차원에서의 효율이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무엇이든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이를 결이라 한다. 결 따라간다. 존재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5회에 걸쳐 대칭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절감하니 곧 다섯 개의 매개변수가 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그것이다. 무거운 돌을 운반하기 어렵지만 지렛대를 쓰면 편하듯이 대칭을 쓰면 편하다. 대칭은 천칭과 같아 50 대 50의 균형이 맞을 때 나비 한 마리의 작은 힘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대칭에 가두면 어린이의 작은 힘으로도 천하를 움직일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은 평등으로 맞서고, 노동자와 사용자는 조합으로 맞서고, 국민과 정부는 인권으로 맞서고, 여당과 야당은 정책으로 맞서며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대칭되게 조직하면 극도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으니 다스림이 이루어진다 할 것이다. 이를 거스르고 역주행을 시도하는 바보들이 있다.


    탑은 쌓기가 무너뜨리기보다 어렵다. 쉬운 방법을 써야 한다. 북한을 다스리더라도 매질을 더하는 채찍방법으로 통제하기보다 주던 지원을 끊는 햇볕방법으로 통제해야 한다. 단, 그냥 무언가를 주는 방법으로는 전혀 통제되지 않으니 받는 사람이 입을 닦아버리면 그만이다. 주던 것을 끊는 방법으로 통제해야 한다. 끊어서 충격이 가도록 충분하게 줘야 한다.


    의사결정에는 방향성이 있다. 결합은 어렵고 분리는 쉽다. 자연은 결합에서 분리의 방향으로 간다. 진화에도 방향성이 있고, 정치에도 방향성이 있다. 국민은 의사결정하기 쉬운 방향으로 가고 진화는 복제하기 쉬운 방향으로 간다. 닫힌계는 주어진 자원한도 안에서 비용을 자체해결하는 것이다. 그것이 원초적인 게임의 룰이다. 먼저 닫힌계를 지정해야 한다.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경계를 정하면 에너지의 출입에 따른 방향성이 보인다.에너지 보존에 따라 자원총량은 같으나 중간에 비용손실이 일어나므로 그만큼 구조가 깨져 있으니 사건이 종결된 후에는 더 분리되어 있다. 도처에서 연결이 끊어져 있다. 이를 되돌려 전과 같이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외력이 개입해야 한다. 노인을 젊은이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자연은 차라리 젊은 자식을 낳는 방법을 쓴다. 헌 것을 고쳐쓰지 않고 새 것을 복제한다. 부분적으로는 고쳐쓰기도 한다. 비축된 에너지를 사용한 역주행도 흔히 있다. 그러나 계를 크게 잡고 보면 반드시 엔트로피를 지킨다. 주사위를 한 번 던지면 확률을 따르지만 만 번 던지면 방향성을 따른다. 외부 에너지의 출입을 감시할 수 있도록 계를 크게 잡아야 한다.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보면 백만대군이 질서정연하게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반면 범위를 좁혀 단기전으로 보고 국지전으로 보면 항상 뒷문이 열려 있어 은밀히 에너지가 출입하여 엔트로피를 어기니 뒤죽박죽이 되어 오리무중이 된다. 단기적으로는 안철수가 이기고 홍준표가 뜨는 것이다.


    천하를 보는 눈을 훈련해야 한다. 호연지기를 얻어야 한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면 방향성이 보인다. 세상은 선과 악이 뒤섞여 혼탁한 것이 아니라 결국 정해진 설계대로 간다. 각본대로 간다. 악의 얼굴을 한 조연들이 구석구석에 짱박혀 있어서 잠시 애드립을 넣기도 하지만 사건의 전체과정에서는 다 용해되고 만다. 악이 악을 쳐서 악을 무력화시킨다.


    성경의 욥기를 인용할 수 있다. 평생 착한 일만 해온 욥은 왜 하느님으로부터 징벌 받았을까? 네 시작은 비록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하였으니 욥 개인은 모진 풍파를 겪었으나 욕의 족보는 결코 꺾이지 않으니 인간의 원죄는 개인의 결함을 의미하고 구원은 족보의 연결을 통한 결함의 극복이라 인간은 부분에서 비참을 면할 수 없지만 전체에서 해결된다.


    부분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얻을 일이다. 그것이 대표성이다. 완전한 것은 족보밖에 없다. 족보는 사건의 기승전결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끊으면 불완전해진다. 너와 나 사이에 경계를 정한 즉 불완전하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즉 불완전을 피할 수 없다. 회사는 커가는 동안만 완전하고, 어린이는 자라는 동안에만 완전한 것이다.


    역사는 진보하는 동안에만 완전하다. 생명은 호흡을 멈출 때 죽고, 문명은 진보를 멈출 때 죽고, 인간은 꿈을 잃을 때 죽는다. 그것은 동적 균형이니 모든 제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은 지구의 중력에 의탁한 것이라 이미 죽어있는 것이며 움직이되 정속주행하는 것은 닥치는 외력에 꺾이니 죽음이 예비된 것이요. 달리면서 가속하고 있는 동안만 완전하다.


    멈추어도 안 되고 일정해도 안 된다. 움직이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속도를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운동량을 조직하여 언제든지 외력의 작용에 대응할 수 있는 상태에 자신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가만있는 것은 결국 죽고 움직이는 것은 재수 없으면 죽는다. 움직이되 가속이 걸린 자만 난관을 피해갈 수 있다. 선제대응하여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훈련하여 직관적으로 자신이 동적균형상태에 있는지, 진보의 흐름에 몸을 태우고 있는지, 달리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피할 수 있는 정도의 각운동량을 조직해놓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중의 역설로 그것은 가능하니 먼저 정지한 것을 움직이고 다시 그 움직이는 것을 움직여야 한다. 비로소 진정한 태연함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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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라는 표현의 의미는 이것 하나만 알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아야 한다면 그것이 지식이 될지언정 진리는 아닙니다. 그 하나는 방향성이니 사건을 추적하는 첫 번째 단서가 됩니다. 엔트로피는 그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며 구조론은 그 방향성이 구체적으로 다섯 개의 대칭으로 조직되니 곧 사건의 진행단계에 따라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 가지 모습으로 연출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 그 상황에 맞는 대칭을 조직하며 맞서면 해결됩니다. 질에는 질로, 입자에는 입자로, 힘에는 힘으로, 운동에는 운동으로, 량에는 량으로 맞서되 먼저 그것의 자궁을 조직해야 하는 법이니 상대방의 입자에 이쪽의 입자로 맞서고자 하나 자궁이 없어 입자를 조달하지 못하니 질로 상승하여 자궁을 세팅해 둔 후에라야 입자로 맞설 수 있으며 그러한 선점이 없이 상대방의 힘에 이쪽의 힘으로 맞서려고 하다가 힘을 동원하지 못하고 운동상태에서 지리멸렬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하지만 그러려면 한 단계 앞서가서 미리 입자를 세팅해 두어야 비로소 힘의 동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방향성입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맞선다고 말은 하지만 이미 늦어서 눈에 눈을 동원하지 못하고 이에 이를 조달하지 못합니다. 전날 밤에 미리 와서 떡밥을 뿌려놓지 않으면 일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방향성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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