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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532 vote 1 2017.04.05 (20:09:06)

    우리는 말을 배웠지만 단어를 익혔을 뿐 문법을 학습하지 않았다. 더욱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 문법은 배우지 않아도 그냥 안다. 생각하는 방법 역시 배우지 않고 그냥 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들 생각하는 방법을 맞게 쓰고 있는가? 다들 어떤 도구를 쓰는 거지?


    그런데 왜 나와 생각하는게 다르지? 위爲하여는 뭔가 위태롭고 의依하여는 뭔가 의지가 된다. 그것은 느낌이다. 상하좌우, 고저장단처럼 ‘의위依爲’는 짝지어져 대칭된다. of, by, for는 그냥 안다. of가 깔고 앉은 의자라면 by는 코앞의 모니터이고 for는 출입문쯤 된다. 거리가 다르다.


    그래서 ‘국민의’가 앞이다. 감각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 감각도 복제된다. 최초의 근거를 찾는게 중요하다. 최초의 근거를 생각해본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탈레스도 있다. 탈레스는 성급하게 완성된 모형을 제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조금 더 파고들어가서 논리적 근거를 찾았다.


    탈레스는 그냥 직관적으로 찍은 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이 구조론적이다. 그 성과가 3일치법이다. 여기에 근대성의 싹이 있다. 서유기나 수호지는 에피소드가 옴니버스로 이어져서 이야기가 끝도 없이 늘어진다.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나 아라비안 나이트도 그렇다. 뭔가 허술하다.


    집을 짓되 대문도 없고 마당도 없이 방만 계속 만들어내는 식이다. 제자리서 뱅뱅 돌게 된다. 발전이 없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건의 완결성이라는 어떤 본질을 찾아냈다. 그러나 더 발전시키지 못했다. 중요한 힌트를 던져주었을 뿐 꽃을 피우지 못했다.


    4원소설은 턱도 없는 이야기다. 자체 완결성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일치법에서 하나의 사건을 주장했지만 4원소설은 이미 물, 불, 흙, 공기로 4개의 사건이다. 8개나 16개는 안 된다는 근거가 없다. 구조론이 밝히는 우주의 절대근거는 오직 하나이니 그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물, 불, 흙, 공기의 고유한 속성이 우주의 근거다.
    ◎ 데카르트 = 운동과 그 운동을 내포한 관성이 근거다.
    ◎ 뉴턴 = 운동을 연출하는 절대시공이 근거다.
    ◎ 아인슈타인 = 관측자와의 관계가 근거다.
    ◎ 구조론 = 에너지의 방향성이 근거다.


    존재가 사유의 근거다. 그것이 존재하므로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가 뭐지? 존재는 인간이 지목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관측자의 관점이다. 관측자가 개입하면 오류다. 존재의 이면에 사건이 있다. 사건이 근거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가 최종근거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의 방향성이 근거다. 더 이상은 없다. 왜? 근거를 찾는다는 것은 통제가능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통제된 것은 질서, 통제되지 않는 것은 무질서다. 무질서이나 질서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 에너지다. 에너지의 방향성을 통제하여 무질서를 질서로 전환한다.


    어떤 둘이 엮여 있으면 모순이므로 방향성이 생긴다. 곧 사건이 격발된다. 관성계가 만들어지면 곧 존재다. 거기서 관측자와의 관계가 생긴다. 시공간은 관측자와의 관계를 객관화 한다. 탈레스는 물을 말했다. 사실은 에너지를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에너지의 성질을 물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이지 탈레스는 물의 성질로 비유하여 표현될 수 있는 어떤 미지의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듯이 에너지는 일정한 조건에서 방향을 만들어낸다. 물의 수압이 일정하게 걸리듯이 계를 만들어낸다. 공간은 크기가 있고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방향이 있다.


    최종근거는 시공간보다 더 먼저여야 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안 되고 방향을 만들어내는 그것이어야 한다. TPO(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라는 것이 있다. 면접을 보든 데이트를 하든 이 세 가지를 고려하여 거기에 맞는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 일본에서 많이 쓰는 말인 듯 하다.


    “TPO란 원래 경찰이 사용하는 보고서 작성요령으로, 사건기록의 중요한 3요소인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꽤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다.[검색]”


    시간과 장소는 원래 있고 거기에 존재가 아파트분양권을 얻어서 입주해 있는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려면 에너지가 작동해야 하고 에너지 작동의 결과로 공간과 시간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다. 존재가 그냥 우두커니 있는 것은 인간의 관측이고 사실은 각운동량을 보존하고 있다.


    내부에서 활발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구조론 이해의 첫걸음은 객관화 하는 것이다. 관측자를 배제해야 한다.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이런건 관측자가 개입한 바 가짜다. 존재라는 것도 역시 관측자에 대해 존재하는 것이다. 관측자와 관측대상 둘이 계를 형성한다는건 아인슈타인의 갈파다.


    ‘나를 비워라. 나를 내려놓아라.’ 이런건 스님들이 노상 하는 말이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나를 배제하면 주어가 실종되어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때는 미지수 X를 도입하면 되는데 그게 훈련되어 있지 않다. 계系 혹은 장場이라고 해도 되는데 한국말은 두 글자가 보통이라 익숙하지 않다.


    인간의 맞은 편에 존재가 있다. 존재는 갖추어져 있다. 갖추어져 있는 것은 그대로 있다. 우리가 노려야 하는 것은 변화다. 농성하는 적군을 요격하려면 성 밖으로 유인하여 끌어내야 한다. 존재 속에 숨은 물질의 내적 질서를 끌어내는 방법은 사건에 올려태우는 것이다. 관측자의 개입이다.


    관측자를 배제하고 온전히 존재 내부에서 어떤 질서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질서가 아니면 무질서다. 무질서는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바뀌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척력에서 인력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길목이다. 거기에 포착해야 할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다.


    양자역학 역시 에너지의 방향성으로 설명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조론이 그러니깐. 필자가 양자역학을 연구해서 알아낸게 아니다. 방향을 만들려면 최소 두 개의 지점을 설정해야 한다. 점을 한 개 찍으면 방향이 없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왼쪽도 없고 오른쪽도 없다. 그래서 둘이다.


    움직이는 두 개의 방향 →←이 엮여 互자 모양을 이룬 것이 구조론의 모형이다. 우리는 운동을 →로 이해하지만 이런 운동은 없다는게 필자가 17살 때 알아채서 스스로 깨달음을 선언한 근거다. 우주 안에 A에서 B로 가는건 없다. 모든 운동은 →←며 互에 가깝다. 위치가 없다는 말이다.


    위치가 생기면 크기가 생기고 크기가 생기면 무한대가 생겨서 골치아파진다. 무한대는 플러스인데 구조론은 마이너스이므로 일단 배제한다. 즉 통제가능성이다. 광속이 무한하다면 질량도 무한대가 되어서 곤란해진다. 발산하는 것이다. 통제가 안 된다는 말이다. 통제된다는 전제를 깐다.


    왜? 어쨌든 우리가 눈으로 보는 우주는 존재하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얌전히 있다는 말이다. 즉 통제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에너지는 통제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즉 ←→이면 안 되는 거다. 우주는 ←→일까 아니면 →←일까? 둘 중에서 결론을 내려야 했다. →←다.


    우리는 입자에 기대를 건다. 어떤 위치가 있다는 거다. 존재는 특정한 시공간적 위치에 있다. 그러면 곤란해진다. 무한대의 압박을 피할 수 없다. 전자는 공간적 위치를 찾을 수 없다. 그게 있으면 안 된다. 우주는 입자의 집합이 아니다. 애초에 집합이 아니다. 구조론은 복제가 집합을 대신한다.


    우주는 →←이며 정확히는 무질서 ←→에서 사건이 격발되면 질서 →←로 바뀐다. ←→는 통제되지 않는 상태이며 무질서 ←→에서 질서 →←로 바꿀 수 있는 상태가 에너지다. 가솔린을 태우면 가스들은 실린더 안에서 ←→로 존재한다. 피스톤을 밀어내면서 →←로 바뀌어야 운동에너지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16가지 소립자들은 모두 →←로 봐야하며 관측하는 순간에 ←→에서 →←로 바뀐다. 어쨌든 초끈이론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양자역학의 성과들이 구조론의 기본설정과 유사하다는 점을 여러분은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어려울게 없다. 구조론은 원체 간단하니까.


    데카르트와 뉴턴은 운동으로 죄다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운동으로 설명하려니 절대시공이 필요해졌다. 그걸 있다고 치고 계산해보니 맞다. 절대시공이 있다고 선언되었다. 근데 빛의 성질이 입자와 파동 두 가지를 겸하니 곤란해졌다. 아인슈타인이 관측자의 개입을 들이대서 이를 파훼했다.


    구조론은 원래부터 관측자를 배제하고 시작한다. 그건 당연히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하여니깐. 빨간 것을 보고 빨갛다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건 파란 것과 비교된 거니깐. 비교해서 말하면 안 된다. 상대어는 곤란하고 절대어로 말해야 한다. 빨간색을 연출하는 내적 질서는?


    가시광선의 파장이 있다. 뭐든 내부에 자체질서가 있다. 물리학자들이 전자를 입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부질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자를 붙잡아서 망치로 깨뜨리면 뭔가 부스러기라도 나온다는 식이다. 우주에는 오직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을 뿐이다. 확신방향이냐 수렴방향이냐다.


20170108_234810.jpg


     이런거 꼬맹이때 당연히 생각해봤어야 합니다. 구조론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런 것을 소싯적에 생각해보지 않은 거지요. '선과 악이라는 것은 도대체 뭘 근거로 그따위 수작을 하는 거지?' 집단의 방향성이 근거가 됩니다. 근데 집단의 방향성이 있는거 맞어? 내가 집단의 일원인게 맞어? 만약 집단의 방향성이 있는게 맞다면 진보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과연 세상이 진보하는게 맞어? 이런 생각을 해봤냐는 거지요. 그런거 없이 그냥 착한게 선이고 나쁜게 악이라는 식이면 곤란하지요. 착한건 뭐고 나쁜건 뭔데? 결국 자기 감정을 근거로 자기소개 하는 거죠. 감옥에 있는 폭력배들은 대부분 '맞을 짓을 했다'고 상대방 탓을 합니다. 왜? 나를 화나게 했으니깐. 진짜로 화가 났다니깐. 화라는 감정이 났다는게 근거죠. 그런건 인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화내랬냐고. 화를 내면 안 되죠. 집단이 존재하고 그 집단은 진보하는 집단이며 내가 그 집단의 일원이고 집단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할 때 관성의 법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 집단의 방향성을 따라가는 것이 선이고 역주행은 악입니다.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 걸려있다는 거죠. 그냥 선이다 악이다 하는건 말도 안 되는 수작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7.04.05 (22:04:45)

존재라는 사건이 있고, 관측이라는 사건이 또 있으므로, 관측으로 존재를 이해하려고 달려들면, 이중사건을 이해하려는 것이 되므로, 관측은 배제되어야 한다. 


관측을 배제하면 눈에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라고? 그러니깐 3명이 동의하면 일단 그거라고 치는거. 적어도 나라는 특수성은 배제되니깐 객관적으로 되는거. 왜 3명이냐고? 반사 쓰는 놈 때문에.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4.05 (23:34:15)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관측을 전혀 안 하는게 아니고 

관측으로 얻은 자료를 근거에서 배제한다는 말입니다.

관측된 사실을 단서로 추론을 하는 거죠.

사과 한 개 더하기 한 개는 두개인데

그게 사과냐 배냐 밤이냐 호두냐는 무시합니다.

관측이 특정사실을 캐는 데는 시간절약의 도움을 주지만

보편적인 진리를 찾는 데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경찰이 범인을 찍는 데는 관측이 시간절약에 도움을 줍니다.

관측으로 얻은 단서를 토대로 딱 봐도 치정사건이네 하고 찍는 거죠.

근데 그게 확률적 단서이지 백퍼센트 증거는 아니거든요.

보편적인 진리를 찾으려면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해야 합니다.

1+1이 2라는 것은 숫자 1을 정의할 때 일치와 연동의 법칙에 의해서 

연역적으로 결정되는 거지 경험적으로 세어보니 두개네 이게 아닙니다.

그 사이에 도깨비가 장난을 쳤을지 모르잖아요.

숫자 1을 정의하는 순간 이미 1+1=2라는게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딱 세어봤다니깐.. 이런건 의미가 없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7.04.06 (13:10:52)

메커니즘을 세울 수 있는 범위와 단위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밀실에서의 단독범행과 공동범행은 메커니즘이 다르니깐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4.06 (13:25:28)

글쎄요.

깡통을 흔들어 봅니다.

딸랑딸랑 하고 소리가 난다면 

깡통 안에 뭐가 들어있는 겁니다.

깡통을 흔들어보고 

"아 깡통 안에 뭔가 들었구나."

이건 관측이 들어간 겁니다.

깡통을 흔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는가?

알기 뭘 알어? 모르죠!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게 구조론입니다.

흔들어봤다고 해도 백퍼센트 믿을 수 있는건 아닙니다.

아닌 것을 전부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입니다.

A 아니면 B로 좁힌 다음 

B가 아니므로 A다 하고 추론하는게 구조론입니다.

내가 봤더니 A가 맞네 이건 아니죠.

잘못 봤을 수도 있다는 말씀.

아무거나 구조론으로 알 수 있는건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라도 알아내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무한동력이 가짜다 하는건 실험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동력이 뭔지를 엄격히 정의하면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대부분 동력이라는 단어 뜻을 모르니까 대화가 안 되는 거죠.

관성은 그냥 그 상태입니다.

관성이 아닌 것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관성이라는 거죠.

그 상태가 아닌 것을 배제하면 그 상태가 남습니다.

내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외부를 전부 잘라냈을 때 남는 것이 내부입니다.

정상에 서면 거기가 정상이라는 증거는 없고

대신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선등자들이 남겨놓은 

가스통이나 깃발이나 삼각대나 이런걸 보고

여기가 정상이로구나 하고 기념사진을 찍어대겠지만 

텐징 노르가이와 힐러리가 올랐을 때는 

정상이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죠.

그러나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가 부재했으므로 

역으로 거기가 정상이라는 추론이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7.04.06 (13:55:17)

'아닌게 아니므로 이다'라. 

세월호가 자빠져도 급변침에 의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증거는 적지만, 

잠수함이나 고래에 의해 부딪친 것은 아니라는 증거는 많으므로

급변침에 의했다는 것이 맞을 확률이 높다라고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배가 잠수함이나 암초에 부딪치면 배가 작살이 난다는 건 분명하므로. 


이는 불분명한 것과 분명한 것이 공존한다고 여겨질 때 분명한 것을 배제함으로써 

불분명한것이 오히려 분명해지는 것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데이터가 없는 원인과 데이터가 있는 원인에서,

데이터가 있는 원인을 배제하기라고도 할 수 있을듯 하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4.06 (14:15:00)

정답을 찾으려는 플러스보다

오답을 배제하는 마이너스를 훈련해야 합니다.

물론 점쟁이가 똥점을 맞출 때는 정답을 찍는게 빠릅니다.

오답을 하나하나 배제하다가는 어느 천년에.

그러나 진리를 구하는 자는 오답을 배제하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7.04.06 (16:14:08)

리더가 집단을 향해 '예스'는 할 수 없고, '노'만 할 수 있다는 말의 이유와 함께 정리하느라고 혼났는데,


리더가 어떤 것을 '판단'할 때는 말 그대로 그것이 '판단할 꺼리'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아직 맞는지 틀리는지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판단'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거죠. 

뻔히 아는 거면 판단할 이유가 없죠. 


반면 '노'라는 것은 이미 검증이 끝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은 검증을 통해서 결과를 받아봤다는 거죠. 


'노'는 증명이 가능한데, 예스는 증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리더가 '예스'라고 하면 자기가 그 증명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아직 모르는 걸 책임진다는건 불가능. 

검증됐다는 것은 이미 집단안에서 합의됐다는 의미. 합의됐으므로 책임은 집단이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는 최초에 한번은 예스를 해야겠죠. 

일단 '범인은 반드시 있다'라고 '예스'하고 이후에 범인이 아닌 놈을 배제하는거. 


이런게 과학하는 방식이기도 한듯하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4.06 (16:44:40)

구조론의 예스와 노를 

그냥 우리의 일상어로 보면 곤란하구요.

NO는 현재상태를 말합니다.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거죠.

뭐든 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상태를 유지하는데는 에너지가 필요없죠.

뭔가 어떻게 하려고 하면 에너지가 드는데 

그 에너지를 가져오는 자가 리더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리더가 다른 사람의 제안에

YES를 하는 순간 리더가 아닌 거죠.

두목이 누구에게 무언가 받는 순간 두목이 아닙니다.

두목에게 뭔가를 준 사람이 두목인 거죠.

집단은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고 

YES는 그 상태에서 이탈을 의미합니다.

NO는 현상유지입니다.

이탈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야기는 안나왔으므로 논외.

NO는 가능하지요.

외부에서 뭔가 들어올 경우 받으면 리더가 아닙니다.

외부개입을 거부하면 리더가 맞죠.

즉 거부권만 행사할 수 있고 찬성권은 발언권이 없는 거에요.

물론 현실에서는 리더가 YES를 할 수 있죠.

그러나 예컨대 지도자가 남북통일을 하자고 하면 

니가 무슨 자격으로? 북한은 원하지 않는데? 

그걸 하자고 하는 순간, 하자고 애걸하는 순간 갑을관계 역전

그 순간 리더가 아닌 거죠.

이는 물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고 현실에 함부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원리가 그렇다는 거지 한국말은 아가 어가 되고 그러니깐.

권력의 본질 혹은 속성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면 안 됩니다.

현실에서는 집단위에 대집단 있고 그 위에 또 있고 그렇지만

즉 동장 위에 시장 있고 시장 위에 도지사 있고 도지사 위에 대통령 있고

대통령 위에 트럼프 있고 그러므로

동장이 시장님의 제안에 YES 해도 되지만

구조론은 극도로 단순화된 가상의 계를 설정하고 이론적으로 들어갑니다.

주는 쪽이 갑이고 받는 쪽이 을이며

YES는 받으니까 을이라는 거죠.

예컨대 대통령이 국민의 제안에 YES를 계속하면

권위가 떨어져서 박근혜꼴 나는 겁니다.

목에 힘주고 계속 NO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외부에 가상적을 두고 

김정은 제안에 NO 하는 형식을 취해야 합니다.

박근혜는 아베의 제안에 YES 했다가 망했지요.

국민 - 그네야 자백해라.

그네 - YES. .. 깜방행.

국민이 하라는 담화문 발표하고 사죄하고 결국 감옥행.

NO를 해야 사는데 탄핵된건 NO에 실패한 거죠.

군대를 동원해서 NO 하는 계엄선포 방법이 남아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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