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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219 vote 0 2018.07.18 (13:35:39)


    신의 입장


    필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다. 아껴두었던 말이다. 입이 근질거렸다. 에너지는 소년기에 형성되는 법이다. 유년의 나는야 제멋대로 행복했다. 봄만 되면 춘궁기에 어머니가 밥을 굶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마냥 행복했다. 소, 돼지, 토끼, 염소, 강아지와 친구였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마구 행복했다. 그러다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비애를 맛보았다. 인간에 대한 회의다. 제대로 된 사람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랬다. 혹부리도 많고 손에 갈고리를 차고 있는 상이군인도 많고 깡통 하나씩 차고 10여 명씩 몰려다니는 떼거지도 많았다. 얼빠진 사람에 넋나간 사람에 하여간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마누라를 패죽인다며 도끼 들고 쫓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코찔찔이 아이들도 머리에 헌 데가 나 있기 다반사다. 기계충 땜통도 하나씩 달고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 하나가 없었다. 7살 소년의 눈에 그랬다.


    행복과 비참 사이에서 에너지는 극적으로 고양되는 법이다. 이미 볼 것을 봐버렸다. 금단의 열매를 먹어버린 셈이다. 인간 존재가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행복타령 하지만 행복은 유년기에 충분하게 맛본 다음이다. 시큰둥할밖에. 세상은 신의 실패작이니 차라리 부숴버리는 게 낫겠다. 신이 창피하다. 홍수로 싹 밀어버리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노아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사람들의 행위동기는 대개 타인과의 비교에서 얻어진다. 보통은 자기보다 못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겨냥한다. 만만한 타깃을 찾아내고야 만다. 엘리트는 대중을 경멸하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진중권들이다. 대중은 소수자나 약자를 괴롭히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어떻게든 약자를 찾아내고야 만다. 다문화든 조선족이든 자기보다 못하다 싶은 만만한 대상을 겨누면서 의기양양해 한다. 보통 그렇게 살더라.


    인간에게 힘을 주는 근원은 신분상승 의지다. 권력의지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그것은 계통을 만드는 것이다. 계통은 3대까지 가줘야 의미가 있다. 1대는 족장이니 그들은 주변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 2대는 왕이니 권력서열을 만든다. 남을 짓밟고 올라선다. 3대는 왕자이니 비로소 심중에 있는 자기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 이는 비유로 말하는 거다. 인간은 3대가 되고 싶은 것이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와주니까.


    좋은 평판을 얻고 주변의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은 일대다. 그들은 에너지가 없다. 눈치나 보다가 끝난다. 출세지향주의자는 이대다. 에너지가 있지만 범위가 좁아 호연지기가 없다. 경쟁자를 이기려 한다. 남을 의식하면 이미 진 거다. 삼대는 원래부터 왕자다. 왕자는 평판을 구하지 않고 경쟁자도 없다. 판이 다 정리되어 있다. 3대에게는 왕국이 주어져 있고 그 왕국에 흥미가 있다. 그런데 이 왕국은 비참이었다.


    아기는 누구나 왕자요 공주다. 내게도 왕국이 주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내멋대로 행복했는데 자세히 내막을 들여다보니 온통 비참이었다. 인간세상의 약점을 봐버린 이상 내게는 약점을 들켜버린 신이야말로 만만한 존재였다. 때려줄 만한 존재였다. 남들이 자기보다 못한 지위에 있는 소수자나 약자를 찾아 눈을 흘길 때 나는 신을 흠씬 때려주기로 했다. 신이 가장 만만했다. 신을 이겨버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졌다.


    왕창 깨졌다. 신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럴 때 신의 입장을 이해하게도 된다. 조잡한 그림을 졸업작품이라고 내걸어 놓은 불쌍한 미대생을 보면 저렇게 그리느니 자살해버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품없는 세상을 작품이라고 내놓고 창피해하는 신을 보노라면 내가 저 양반 입장이라도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살 두살 살아가다 보면 그런 신을 이해하게도 된다.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신은 내 바깥의 타자가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했다는 거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는 지극한 마음을 얻는 것이며 그것은 다른 것이다. 왕자의 마음을 얻었을 때 내게도 정복할 땅이 남겨져 있다는 안도감이다. 아버지 필립의 위세에 조바심 느꼈던 알렉산더의 마음이며 거침없이 흉노를 토벌했던 곽거병의 마음이기도 하다. 왕자의 마음으로 바꾸자 다른 것이 보였다. 신의 부끄러움은 나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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