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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601 vote 0 2020.01.19 (09:43:18)

      
    구조론은 언어감각이다

   
    위하여의 위는 할 위다. 위하여는 '하다'가 두 번 반복된 것이다. '하고자하여', '하려고하여'가 된다. 왜 했지? 할려고 했지. 왜 그랬지? 그러려고 그랬지. 왜 먹었지? 먹으려고 먹었지. 이건 답이 아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잘 모를 때 둘러대는 말이다. 과학적인 탐구에는 부적절하다. 


    사건이 있으면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인간의 작위에는 목적이 있다. 이건 다른 것이다. 위하여는 인간의 작위에 따른 행위의 목적을 제시하는 말이다. 과학적인 탐구에 위하여를 쓰면 안 된다. 어떤 일을 한다면 원인이 있다. 집을 짓는다면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왕 집을 짓기로 했다면 잘 지어야 한다. 


    위하여는 집을 짓는 이유가 아니라 집을 몇 층까지 지으려고 계획했느냐는 목적을 설명한다.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진행과정에서 소용된다. 위하여는 어떤 일의 원인이 아니라 진행과정의 방법을 설명한다. 공부를 하는 원인이 아니고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맞을까 하는 계획을 말한다. 문제는 인간의 어법이다.


    위하여는 결과를 원인으로 도치한다. 이건 속임수다. 위하여는 진행과정을 설명할 뿐 원인을 설명하는 말에 쓰이면 안 된다. 결과가 원인이 될 수 없지만 결과의 예측이 현재의 진행에 참고가 될 수는 있다. 과학적인 탐구를 하려면 이런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충 둘러대지 말고 말을 똑부러지게 잘해야 한다.


    일상적인 대화에는 위하여라고 해도 되지만 철학적안 사유는 위하여를 배척해야 한다. 원인은 의하여다. 이때 원인은 어떤 하나가 아니다. 지목되는 대상이 아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 이런 식으로 대상을 지목될 수 없다. 우주 안의 모든 원인이 그러하다. 그러나 보통은 어떤 대상을 지목하여 말한다. 


    그게 말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게 다 김일성의 남침 때문이지. 이렇게 말하면 편하다. 그냥 김일성만 때리면 된다. 남북관계에서 힘의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 밸런스를 만든 냉전을 말해야 한다. 동서냉전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려면 일이 커진다. 말하기 쉽게 말하려고 쓰는 꼼수가 위하여다.


    어떤 지목된 대상은 어떤 경우에도 진짜 원인이 될 수 없다. 관측자와 대칭되어 평행선을 그릴 뿐이다. 반드시 상대방의 맞대응이 있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게 다 사대주의 때문이지. 이게 다 당쟁 때문이지. 이게 다 선조임금 때문이지. 이게 다 명성황후 때문이지. 이게 다 노론 때문이지. 남탓하기 쉽잖아.

 

    남탓하기 쉽기 때문에 인간은 남탓한다.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대상을 지목하는 자는 지성인이 아니다. 이게 다 유태인 때문이지. 이게 다 조국 때문이지. 말은 쉽지만 비열하다. 그리고 천박하다. 그것은 소인배의 언어다. 편의적으로 그런 말을 쓸 수는 있겠지만 과학과 안 맞는 어법이다.


    뭐든 지목하면 안 된다. 모든 원인은 둘 사이의 밸런스다. 그 밸런스의 축이 지목되는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말하기 좋은 가짜다. 인간은 진실에 관심이 없고 말하기 좋은 것을 말할 뿐이다. 어떤 둘이 계를 이루고 나란했는데 그 나란함이 깨진 것이 사건의 원인이다. 그것이 에너지를 만들어냐는 원천이다.


    구조는 얽힘이다. 얽혀서 나란해졌는데 그 얽힘이 풀리면서 총은 격발되고 활시위는 놓여지고 기어코 일은 벌어지는 것이다. 왜 싹이 트지? 씨앗 때문이야. 그 씨앗이 어쨌길래? 비를 맞아서지. 봄비가 씨앗의 어떤 뇌관을 격발한 것이다. 보통은 씨앗 때문이라고 해도 되지만 과학가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어떤 둘이 계를 이루고 나란할 때 외력이 작용하면 내부에 축이 형성되고 그 축이 움직여서 본래의 나란한 상태를 회복하려는 복원력이 작동한 것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다. 그것이 에너지다. 복원력이 작동하려면 계가 있어야 한다. 계가 진짜 원인이다. 계는 둘이 하나를 공유한다. 남북이 휴전선을 공유한다.


    세상에 문제가 있는 이유는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유하면 별일이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언제나 사유를 주장하는 것이고 그런데 지구를 공유한다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나름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구를 떠나 다른 별로 이주한다면 그들이 싫어하는 사회주의자들 안 보고 살 수 있다.  


    일정한 조건에서 외력이 작용하여 계 내부의 모순이 발생하면 축을 이동시켜 바로잡는 것이 사건의 원인이다. 계는 둘의 밸런스고 축은 하나이며 보통은 그 하나를 원인으로 친다. 그 하나는 둘의 밸런스가 작용하여 도출한 축의 하나다. 우리는 단지 남들 앞에서 지목하기 쉬우므로 그 도출된 하나에 주목한다.


    어떤 하나가 갑자기 작용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가 왜 작용하지? 화약이 왜 폭발하지? 영감이 왜 화를 내지? 그 배후에 그 하나를 움직인 뭔가 있다. 뇌관을 때린 공이가 있고 그 공이를 때린 노리쇠가 있다. 화가 나게 한 공기가 있다. 분위기가 있다. 호르몬의 작용을 끌어낸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 


    언어를 바로잡아야 한다. 언어를 바꾸면 관점이 바뀌고 사유가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뀐다. 밸런스에 주목해야 한다. 중도다 중용이다 하여 밸런스에 주목하는 태도는 있어왔다. 막연히 균형을 유지하는 소극적 태도는 답이 아니다. 계를 이루고 균형의 축을 움직여서 선제적으로 치고나가야 한다. 


    문제를 일으켜야 한다. 사건을 주도해야 한다. 불을 끄는게 아니라 반대로 불을 질러야 한다. 500년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변방의 조선왕조는 그저 불만 끄면 되었지만 매년 무슨 일이 터지는 중앙의 한국은 불을 질러야 한다. 에너지를 틀어쥐고 사건을 끌고 가는 주체의 관점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1.20 (04:01:35)

"계를 이루고 균형의 축을 움직여서 선제적으로 치고나가야 한다. 문제를 일으켜야 한다. 사건을 주도해야 한다. 불을 끄는게 아니라 반대로 불을 질러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르네

2020.01.20 (12:56:45)

대칭의 요구(깨진 대칭의 회복 과정)에서 에너지와 힘(약한상호작용, 강력, 전자기력)이 유도됩니다. 대칭을 회복시키는 것이 상호작용입니다.
[레벨:3]파워구조

2020.02.09 (07:26:38)

계와 축,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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