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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70 vote 0 2019.04.29 (23:42:10)

    구조와 사건


    사물의 구조는 누구나 알고 있다. 사건의 구조를 모를 뿐이다. 아니다. 사물의 구조와 사건의 구조는 같다. 사물이 탄생하는 데는 합당한 절차가 있고 그 절차는 에너지가 지나가며 의사결정을 한 흔적을 남긴다. 에너지가 통과할 때 사건을 성립시킨다. 모든 사물은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 칼은 손잡이가 있고 칼질을 반영하고 있다.

    

    젓가락은 그 젓가락을 쥐는 손가락을 닮고 숟가락은 그 숟가락으로 먹는 입술을 반영하고 있다. 자동차는 그 자동차를 운전하는 인간을 반영한다. 주먹으로 때리다가 망치로 바꾼다. 망치는 주먹을 닮아 있다. 사물에도 사건이 스며들어 있다. 사물에 스며 있는 사건을 알아채고서야 진정으로 그 사물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사건은 발생하고 전개하고 종결한다. 그 과정에 의사결정이 있다. 그 전에 세팅된다. 에너지를 유도하는 절차이다. 사물이 그 물건을 쓰는 인간의 행동을 반영하듯이 사건은 그 사건을 촉발하는 에너지의 형태를 반영한다. 에너지 속에는 사건이 차곡차곡 접혀 있고 반대로 사건 속에는 에너지가 풀어져 있다. 에너지가 최종보스다.


    에너지는 잠복한 가능성이다. 인간이 직접 대면하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이 지나가고 남는 것은 사물이다. 밥을 먹어도 에너지를 먹는 것이다. 밥을 먹는 행동은 사건이며 남는 것은 그릇이다. 그릇에 밥의 흔적이 있고 밥에 에너지의 흔적이 있다. 이들 사이에 공유하는 것이 구조다. 에너지>사건>사물로 가면서 구조를 공유한다.


    사건은 배치>촉발>결정>전개>종결한다. 배치는 환경이 설정되고 계가 세팅되고 에너지가 유도되는 것이다. 촉발은 의사결정의 시작점을 지정하는 것이다. 야구공이 배트에 맞는게 배치라면 공이 배트에 맞아 방향이 꺾이는 회절의 시작점의 탄생이 촉발이다. 결정은 시작점에서 진행하는 방향을 결정한다. 각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전개는 시간적인 사건의 진행이고 종결로 사건은 끝난다. 빛이 프리즘에서 굴절된다면 입사각과 출사각 사이에 중심점이 있다. 중심점이 도출되는 과정이 배치라면 중심점이 촉발하고 출사각이 결정하며 진행하는 것이 전개다. 빛이 프리즘을 빠져나가 사건은 종결된다. 배치, 촉발, 결정이 공간의 사정이면 전개와 종결은 시간이다.


    검색해 봤더니 사건을 발생>발전>소멸 3단계로 구분한 게 있더라. 구조론에서 사건은 event다. event는 주사위가 공중에 던져진 것이다. 이때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다. 공중에 던진 주사위에 손대면 반칙이다. 사건을 발생>발전>소멸로 보는 관점은 주사위에 손을 댄 것이니 반칙행위다. 사건이 더 큰 사건으로 발전하면 안된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발전하면 두 가지 사건이다. 대부분의 오류는 몇 가지 연속된 사건을 두루뭉수리로 뒤섞어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난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게 발생이면 타자가 친 것이 발전이고 공이 날아가다 멈춘 것이 소멸이다. 틀렸다. 투수가 던진 사건과 타자가 친 사건은 따로 구분해 판단하는 게 이치에 맞다.


    투수가 던질 때 에너지가 입력되고 타자가 휘두를 때 추가로 에너지가 입력된다. 에너지가 2회 입력되면 2개의 사건이다. 주사위를 던진다는 말은 1회의 에너지 입력으로 논한다는 말이다. 야구공이 날아간 홈런공의 비거리는 투수의 힘과 타자의 힘이 합쳐졌으므로 공과 방망이가 맞아서 이루어진 계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바르다. 


    생의 철학에서 실존주의로 또 구조주의로 이어지는 근대철학의 맥락은 죽은 사물이 아닌 살아있는 사건으로 보는 관점이다. 다만 그 관점에 철저하지 못했다. 인간의 생은 공간이 아닌 시간의 사정이다. 실존도 마찬가지다. 본질에 대해 실존이다. 본질은 공간의 사정이고 현실은 시공간 사정이다. 자연히 사건과 연결되는 것이다.


    서구 구조주의 철학이 주목한 인간의 마음과 행동 및 언어, 부족민의 문화활동, 인간관계 등은 공통적으로 인간과 집단의 의사결정에 대한 것이며 역시 사건과 연결된다. 생의 철학과 실존주의 철학과 구조주의 철학을 더 큰 단위로 보면 그것은 사건인 게다. 니체 이후로 인류는 한 방향으로 달려왔다. 여기서 맥락을 포착할 일이다. 


    다만 생을 보고 실존을 보고 구조를 보면서도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사건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코끼리의 몸통을 보지 못했지만 귀와 꼬리, 발 뒤꿈치 정도는 본 것이다. 에너지가 계를 이루면 사건이 일어난다. 일정한 조건에서 사건에 갇힐 수 있다. 무중력 공간에서 탄성이 무한대 야구공이 벽에 맞아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 상태로 구조에 갇혀버리면 사물이다. 물질은 에너지가 일정한 조건에서 구조에 갇힌 것이다. 팽이가 계속 돌고 있거나 지구가 태양 주변의 타원궤도에 붙잡힌 것도 마찬가지다. 소립자는 스핀에 갇힌다. 풀리면 빛이 된다. 사건은 갇힌 것이 풀리는 절차다. 물질은 초고압과 같은 특수한 조건에서 단단하게 결박되어 갇힌 것이다.


    보통은 풀린다. 주사위를 던진다면 역시 손에서 풀리는 것이다. 갇히려면 정확한 일치를 필요로 하는데 외부압력이 없다면 우연히 맞아서 갇힐 확률보다 우연히 풀릴 확률이 높다. 그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어원으로 보면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는 뜻이니 안에 갇혀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능성이다. 계의 통제가능성이 에너지다.


    사업이 술술 풀린다고 말한다. 일은 풀리는 것이다. 사건은 일이다. 자동차가 달리든 인생을 살아가든 음악을 연주하든 소설을 쓰든 국정을 운영하든 모든 일은 풀리는 과정이다. 국민의 이상주의를 풀면 정치가 되고, 마음속 생각을 풀면 문학이 되고, 설계를 풀어내면 건축이 되고, 가솔린의 에너지를 풀어내면 자동차의 질주다.


    풀어내므로 소모되어 사라지고 종결된다. 사건은 종결되므로 완전성이 있다. 완전성을 탐구하는 것은 미학이다. 사건의 철학은 완전성의 철학이면서 미학의 철학이다. 완전할 때 사건은 증폭되고 복제되고 전달된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매개한다. 이 매개의 고리로 천하는 널리 망라된다. 맥락은 그러한 연결가능성에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4.30 (04:31:39)

"사건의 철학은 완전성의 철학이면서 미학의 철학이다. 완전할 때 사건은 증폭되고 복제되고 전달된다."

http://gujoron.com/xe/108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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