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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75 vote 0 2010.11.10 (18: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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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상황을 결정지을 수 있느냐가 정신이다. 호랑이를 만나고서야 살고싶은 욕망이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살고 싶은 것은 항상 그러하다. 그러나 호랑이를 만나고서야 인간은 살고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달리던 자동차를 갑자기 멈춰세우면 관성의 법칙이 드러난다. 승객들의 몸이 일제히 앞으로 쏠리는 것이다. 그러나 관성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관성은 원래부터 그 버스에 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속도와 관성이 같았기 때문에 상쇄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호랑이를 만난 사람에게 갑작스레 생존욕망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삶의 일관성과 항상성이라는 관성의 법칙이 이전부터 계속 작동하고 있었는데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한 관성의 법칙을 설정하는 것이 정신이다. 생존욕구가 갑작스레 작동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정신을 차린 것이다.


  인간은 환경을 장악하고 지배하려 한다. 정신차린다는 것은 환경 앞에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호랑이와 맞닥들인 모순상황에서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고자 하는 정신이 생존욕구로 표현된다.


  환경과 인간의 대결구도에서 인간이 우위에 서는 것이 존엄이며, 이를 위하여 자기를 통제하는 것이 자유고, 능동적으로 대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랑이고, 그것을 현실화 하는 것이 성취고, 그 결과로 얻는 것이 행복이다.


  논리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는 폐기되고 입체적인 모형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다. 존엄 안에 자유가 있고, 자유 안에 사랑이 있고, 사랑 안에 성취가 있고, 성취 안에 행복이 포함되어야 한다. 여러 욕망이 따로따로 존재한다면 가짜다.


  만약 인간에게 존엄욕, 자유욕, 사랑욕, 성취욕, 행복욕이 별도로 존재한다면 서로 충돌을 일으켜 복잡해진다.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마음은 입체적 모형에 의해 통합되므로 이들이 서로 충돌하는 일은 없다. 성취와 행복이 충돌할 수는 없다. 행복은 성취 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성취와 사랑이 충돌할 수도 없다. 성취는 사랑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욕망은 오직 존엄 하나 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이를 환경 앞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낸 것이다. 존엄은 환경과 인간의 대결에서 인간이 포지션의 우위에 서는 것이다. 


  존엄은 자아존중감, 혹은 자존감, 또는 자존심, 자긍심, 자부심, 긍지, 떳떳함, 당당함, 마땅함, 자연스러움 등으로 표현된다. 우월감이나 우쭐댐은 대상과 비교된 것이므로 존엄이 될 수 없다. 그 비교대상을 그만 놓아버려야 한다. 존엄은 정상이며 정상에는 비교대상이 없다.


  비교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였다가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2차적으로 나의 행동을 결정하려는 태도이다. 그 자체로 이미 상대방에 종속된 것이며 이는 패배자의 마음이다.


  존엄은 상대방 위로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나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세상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신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신의 마음에 연동시키는 것이다.


  모든 차별은 상대방에게 자극을 가하여 상대방이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훔치려는 치사한 계략이다. 물론 본인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의도 형태로 이미 개입해 있다. 상대방이 반응하여 자신의 다음 행동을 결정해 줄 때까지 폭력적 자극은 계속된다.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모든 행동은 존엄한 것이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타인을 자극하는 모든 행동은 비루한 것이다. 창의하여 타인에게 영감을 주었을 때 최초 하나의 아이디어가 또다른 아이디어를 낳는 형태로 증폭되어 세력화 되는 것이며 그 진보와 발전의 선두에 서는 것이 존엄이다. 


  막연한 존중의 강조는 허무하다. 중요한 것은 대상이 반응하는가이다. 연쇄반응의 과정에서 크게 세력화 되어 집단이 나아갈 방향성이 제시되는가이다.


  하나의 반응은 또다른 반응을 낳고 연쇄적으로 파급되어 크게 세력화 된다. 만약 대통령이 농민의 대표를 만나 협상하고 뭔가 반대급부를 내놓았다면, 빈민의 대표도 요구조건을 내걸고 면담을 요청할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의 대표도 요구조건을 내걸고 면담을 요청할 것이고, 네티즌의 대표도 요구조건을 내걸고 면담을 요청할 것이다. 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는 것이다. 결단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일이 점점 커져가는 과정에서 집단이 나아갈 방향성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존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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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자존감은 일의 전체과정을 체험함에 따라, 언론이라는, 전문직 종사자라는, 정치라는, 지식인 집단이라는 브로커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얻어진다. 누구의 말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으로 모두 판단하는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 말이다.


  미술교육을 한다면 어떨까? 어린이는 주어진 주제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은 평가를 한다. 점수를 채점하고 상을 준다. 학부모는 칭찬을 하는 역할이다. 이렇게 역할이 나누어져 있으면 교육은 실패다. ‘넌 그리기만 하면 돼!’ 하는 식이라면 창의력이 설 자리가 없다. 자존감이 살아날 수 없다.


  그리기 전의 주제채택부터 그리기 위한 도구의 확보, 그리기 작업, 그린 후의 전시와 평가가 이루어지는 1 사이클 전체과정을 모두 체험해야 한다. 거기서 자신감이 얻어지는 것이다. 그냥 모방하여 나도 그릴 수 있다는건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창의는 그리기 위한 도구의 확보과정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감과 도화지가 주어져 있다면 이미 창의는 사망하고 난 다음이다.


  왜냐하면 모든 천재들은 기존의 정해진 과정을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단계를 공략하는 수법을 쓰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물감과 다른 도화지와 다른 소재를 채택해야 진정한 창의가 가능하다. 그리기 이전의 준비과정을 생략하고 그리기 하나로 승부를 낸다면 교사가 채점하기는 편하겠지만 경쟁만 치열하게 할 뿐 거기서 얻어지는 창의는 없다. 그리기 기교가 늘 수 있지만 기교 따위는 학원에서 금방 배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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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0.11.10 (20:34:02)

마트료시까를 보고 러시아의 생존능력의 상징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보았는데, 
구조와 마트료시카의 관계를 이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번 설명을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그것이 왜 안정된 구조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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