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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707 vote 0 2010.09.21 (22:29:09)

 

 

  질이란 무엇인가?


  이런걸 논리라고 하는데, 시작과 끝, 앞과 뒤, 원인과 결과, 아침과 저녁, 음과 양처럼 원래 하나로 세팅되어 있는 것을 뜯어서 늘어놓은 것이 논리다. 이걸 다시 합쳐놓은 것은 이론이다.


  논리는 분석에 사용된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보려면 뜯어봐야 하는데, 뜯었다가 다시 조립해서 원상복구 시켜야 하므로, 뜯을 때 어떻게 뜯었는지 잘 적어놓았다가 그걸 보고 조립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시간논리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체와 부분의 공간논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통 시간논리에 따른 인과율 뜯기법으로 뜯는다. 일의 시간적 순서만 적어놓고 공간적 방향을 적지 않아서 애를 먹는게 보통이다. 회로도나 설계도를 보면 순서와 방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체가 움직이면 부분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원인과 결과의 시간논리는 원인과 결과 둘로 설명해도 충분하지만, 거기에 전체와 부분의 공간논리를 보태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시간의 순서논리에 공간의 방향논리를 더한 것이 구조론이다. 인과율을 공간개념으로 해석하여 발달시킨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논리를 전개할 때 보통 입자 개념으로부터 추론을 시작한다. 이는 입자가 주로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고체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체의 경우 이것이 불분명하다. 태풍이라면 눈에 보이는 입자형태는 나중에 생겨난 것이고 본래는 온도차가 있었을 뿐이다. 원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쏟아진 서울의 300밀리 기습호우 물폭탄도 그러하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딱 입자가 보인다. 원인이 뭐냐고 물으면 이 위성사진을 보여주고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납득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뭔가 찝찝함이 남아있다.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야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그 북쪽에 초가을부터 갑자기 팽창한 겨울성 시베리아 고기압과 초가을까지 남아서 태풍 영향으로 확대된 북태평양 고기압의 만남이 만든 기압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건은 입자가 아닌 만남에서 시작된다.


20100921162004550.jpg 

 [입자는 가운데 하얗고 동그란 것이 보인다. 콕 찍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위 아래에 각각 포진한 두 고기압의 만남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해줘도 모른다. 만남으로 설명하면 시큰둥해 하며 짜증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진실은 만남이다. 입자는 그 다음에 온다.]



  뭐든 입자로부터 설명을 시작하면 일단 거부하고 한 단계 더 파헤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구조를 아는 사람의 태도이다.


  꽃이 핀다면 씨앗이라는 입자에서 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아기가 탄생한다면 역시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수정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혹은 눈에 보이는 아기의 탄생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건은 입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고 모든 사건은 만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씨앗이 흙과 만나야 싹을 틔우고, 봄과 만나야 싹을 틔우고, 물과 만나야 싹을 틔운다. 흙을 만나지 않으면, 물과 만나지 않으면, 온도와 만나지 않으면 씨앗은 결코 싹트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질 개념은 어떤 사건의 시작점을 입자의 전단계, 즉 만남이 사건을 촉발한다는 개념이다. 감기에 걸린 원인은 물론 감기 원인균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문인지만, 조금 더 파헤쳐보면 감기에 걸린 진짜 이유는 그 바이러스와 어떻게든 만났기 때문이다. 집에 콕 박혀 있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모든 사건은 입자에서 시작되고 씨앗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보통 알려진 인과논리고, 고정관념이고 편견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든 사건은 그 이전에 만남에서 시작되고, 그 입자는 만남의 현장에서 접촉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이 질 개념이다. 질은 결합한다고 했는데 이는 서로 다른 둘을 만나게 한다는 뜻이다.


  질은 만남이다 이렇게 보면 된다. 야구팬은 야구장에서 만나고 축구팬은 축구장에서 만난다. 교도소에서 만나면 범죄자가 되고 국회에서 만나면 정치인이 된다. 어디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그 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정상에서 만나면 양질이 되고 바닥에서 만나면 저질이 된다.


  질을 잘 모르는 이유는 모든 사건이 어떤 둘의 만남 형태로 촉발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이를 입체적 모형으로 머리 속에 세팅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격이 결정된다. 구조를 알고자 한다면 이걸 절감하고 뼈에 새겨놔야 한다. 무조건 만남이 일번이다.


  우리는 보통 입자 단위로 생각한다. ‘이것이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것이 다 이명박 때문이다.’ ‘이게 다 히틀러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누구 사람 탓을 하는건 입자 개념이다. 수구꼴통이 흔히 말하는 거 있다. 살인자는 사형시키면 되고, 소매치기는 손목을 잘라버리면 되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건 입자 개념에 매몰된 거다. 가난한 이유는 지가 게으르기 때문이고, 부자인 이유는 지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입자 개념에 매몰된 사고이다. 아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일본이 잘 사는 것은 일본인이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이고 한국이 가난한 이유는 한국인이 열등한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거품붕괴 이후 일본경제가 죽을 쑤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많이 줄었지만 옛날에는 그런 생각이 많이 퍼져 있었다. 수구꼴통들은 아직도 그 수준이다.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서구문명과 만났기 때문이고, 이는 고래잡이 하던 서양 배가 일본 나카사키에 들러 쌀과 물을 조달하려 했기 때문이고, 그러다가 16세기부터 필리핀에서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항로가 개척되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만남이 원인이다. 한국인이 먼저 서양문물을 만났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만남은 둘 이상의 만남인데, 둘 이상을 생각하자면 벌써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둘 이상을 생각하려면 골치가 아프니까 그냥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 입자 집착이다.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은 대개 입자이고 입자로 생각하는게 편하긴 하다.


  처음 어떤 닫힌계가 있고(이것이 없으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 닫힌 계에 긴장의 형태로 밀도가 걸리면 질이고(계에 밀도가 걸리면 만남이 일어남), 여기에 심이 투입되면 입자가 만들어지고(보통은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밀도를 가하면 저절로 심이 생겨남) 우리 눈에 보이는 사건은 입자부터 시작되지만 그 이전에 질의 단계가 분명히 있다.


  모든 사건은 만남에서 시작되며, 만남의 조건이 있고, 그것은 닫힌계에 밀도가 걸린 상태이며, 이것이 질이다. 열린계에서는 만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가 만나지 못해서 인류가 멸종한다. 그때 하필 사자가 눈앞에 출현하였고, 사자에 쫓기다가 막다른 벼랑에 몰린 아담과 이브가 만나서 힘을 합치게 되고 하는 식으로 어떤 바운더리의 닫힘에 의해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 질이다. 소설이나 영화도 항상 만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닫힌계에 밀도가 걸리면 전체가 균일해진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있다면 균일하지 않다. 그러나 그 비행기에 폭탄테러범이 나타나면 갑자기 평등해진다. 부자도 한 목숨, 가난뱅이도 한 목숨이다. 열린계는 폭탄테러범이 나타나도 균일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자는 재빨리 경호원을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은 닫힌계고 부자는 경호원을 부를 수 없고 따라서 테러범 앞에서 평등하다.


  흩어진 양떼의 간격은 제멋대로이지만 늑대가 나타나면 간격은 균일해진다. 닫힌계에 외력이 작용하면 자체의 밀도가 균일해지면서 입자가 탄생한다. 상놈과 양반은 차별이 있지만 서양문물이 들어오니까 갑자기 균일해져서 양반상놈 없는 평등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다시 불균일해졌지만 625라는 잿더미로 외력이 작용하니 다시 균일해졌다. 그래도 다시 불균일해졌지만 인터넷이라는 신문명 앞에서는 다시 균일해져서 부자라도 트위터에 팔로워가 없다.


  닫힌계에 외력이 작용하면 밀도가 균일해지며 힘이 전달되고 여기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밀도가 균일하지 않으면 외력의 작용에 의한 반작용이 제멋대로 진행하므로 공간의 방향성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닫힌계 안에서는 반드시 밀도가 균일해지기 때문에 내부에 심이 생겨나 입자가 되고 또 날이 생겨나 힘이 되고 또 심에서 날로 전개하며 운동이 진행되고, 날 1과 날 2의 편차에서 양이 드러나고 그러한 구조의 단계를 진행하면서 일정한 방향성이 생겨난다.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진흙탕 싸움을 해도 대한민국호는 전진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물고기가 꼬리를 제멋대로 쳐도 앞으로만 가듯이 사건이 한 방향으로 전개되므로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방향을 명확히 알게 된다. 입자부터는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정리하면


  ● 시간순서의 인과율 외에 공간의 작용반작용 방향성 논리가 있다.

 

  ● 입자가 사건의 시작이라고 믿지만 만남이 사건의 진짜 시작이다.


  ● 어떤 둘이 만나 최초 사건을 유발하게 하는 기본조건이 질이다.


  ● 닫힌계에 외력이 작용해 내부 밀도가 균일해지며 심이 들어선다.


  ● 심이 서면 입자가 생기고 날로 전개하며 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하여간 원인이 뭐냐고 물으면 무조건 어떤 딱딱한, 눈에 보이는, 하나의 형태, 덩어리를 지목하는게 편하다. 그냥 누구를 지목하며 ‘저것 때문이다’고 탓하면 된다. 이거 먹힌다. 그러나 마녀사냥이 되기 십상이다. 그게 진실이 아니다.


  아는 사람은 넘어가지 않는다. 좀 아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만남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둘이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물론 사람들은 이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만남이 모든 일의 진짜 원인이고 만나게 하는 조건이 질이다. 만나야 할 것이 만나면 반드시 반응이 일어나 그 안에 입자가 생기고 그 입자 안에 다시 밸런스의 대칭이 생겨 각각 심과 날을 이룬다. 날 1에서 2로 진행하며 일을 하고 뭔가 결과를 남긴다.



 

 

 

 

http://gujoron.com




[레벨:5]희정

2010.10.01 (19:25:12)

허거걱~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제가 그도록 궁금해 했던 질에 대해서 강론하셨군요.
아주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을 해 주시니  이제사 뭔가 풀리는것 같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왜 그 명칭을 '질'이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한자의 뜻이 그런게 있는지? 이런거까지 여쭙는게 무척 죄송하지만요.
[레벨:8]Quantum

2017.09.07 (09:57:35)

"질을 잘 모르는 이유는 모든 사건이 어떤 둘의 만남 형태로 촉발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이를 입체적 모형으로 머리 속에 세팅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격이 결정된다. 구조를 알고자 한다면 이걸 절감하고 뼈에 새겨놔야 한다. 무조건 만남이 일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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