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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076 vote 0 2017.08.03 (18:04:03)

     

    존재론과 인식론


    구조론은 존재론이다. 구조론은 말 그대로 구조에 대한 이론이다. 구조가 집적하면 메커니즘이 되고 시스템이 된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메커니즘이론 혹은 시스템이론이기도 하다. 시스템은 계에 에너지를 태운다. 최종적으로는 에너지이론이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이며 의사결정은 에너지의 방향성을 따른다. 곧 엔트로피다. 구조론은 궁극적으로 에너지이론이며 에너지의 본질은 엔트로피로 알려진 방향성이다. 구조론은 에너지의 방향성 결정이 의사결정비용에 달렸음을 주목한다.


    의사결정비용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따라 사건은 진행한다. 사건은 기승전결의 진행과정을 거친다. 기승전결은 한시작법에서 차용한 것이고 구조론 용어로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대칭이므로 효율을 담보한다.


    질은 안팎의 대칭, 입자는 중심과 전체의 대칭, 힘은 축의 이동에 따른 가속도 대칭, 운동은 거리와 시간의 대칭, 량은 그 대칭의 붕괴과정에서의 대칭이다. 에너지는 밖에서 들어오니 안팎으로 대칭되고, 외력에 대해 한 점이 대표하니 축이 있다.


    이는 정지상태이고 운동상태에는 가속도가 걸려있으므로 각운동량의 대칭이 힘이며 그러한 변화의 시간적 진행과정에서의 대칭이 운동이다. 최종적으로 대칭이 붕괴하여 어긋난 부분이 계에서 이탈하면 남는 부분에서 대칭이 성립하니 량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에너지 작용은 5회에 걸쳐 대칭을 일으킨다. 천칭 저울은 대칭되어 있다. 나비 한 마리가 앉아도 저울은 완전히 기울어진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형태가 대칭인 것이며 대칭이 변화에 적용된다.


    우리는 정지한 사물에서 대칭을 찾지만, 자연은 변화하니 변화단계에 따라 다섯 가지 대칭이 있다. 이 순서를 적용해 바라보는 것이 존재론이다. 구조론이 곧 존재론인데 굳이 이를 구분해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건 인식론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사건의 기승전결을 따라야 하지만 자연을 관찰하면 결전승기로 뒤집어지기 다반사다. 에너지 작용측을 못 보고 수용측만 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발병하는 과정을 못 보고 환자의 증상만을 보기 때문이다. 환자의 증상은 결과이다.


    원인측을 봐야 한다. 사건의 원인측을 볼 수 없다. 바이러스가 작아서 안 보이기 때문이다. 범인이 칼로 찌르는 장면을 볼 수 없다. 사건을 포착했을 때 범인은 이미 도주했기 때문이다. 물론 CC카메라가 있으면 달라진다. 존재론이 CC카메라다.


    일상적으로 우리의 언어는 철저하게 인식론의 귀납에 맞춰져 있다. 존재론은 연역이다. 연역할 수 없다. 연역하려면 미리 답을 알고가야 하는데 미리 답을 알려줄 리가 없다. 그런데 수학은 특별히 연역이다. 수학자들은 답을 알고 문제를 낸다.


    우리는 수학의 방법으로 사물을 보는 훈련이 안 되어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보이는 대로 관측하면 인식론이다. 여기서 존재론이냐 인식론이냐는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 결과에서 원인을 거꾸로 되짚는 것이 인식론이다. 인식론은 항상 오류다.


    귀납이기 때문이다. 형사가 범인을 추적하는 것은 단서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므로 오류가능성을 인정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오류 없이 완벽하게 추리하는 형사가 있다면 세상에 이명박 같은 범죄가 있겠는가? 범인은 다 잡힐 텐데.


    존재론 – 배경, 실체, 연관, 이행, 귀결
    인식론 – 지각, 수용, 분석, 종합, 응용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에너지 개념이고 배경, 실체, 연관, 이행, 귀결은 사건 개념이다. 둘은 같다. 질이 배경이고, 입자가 실체, 힘이 연관, 운동이 이행, 량이 귀결이다. 같은데 배경, 실체, 연관, 이행, 귀결을 필자가 먼저 정했기에 같이 쓴다.


    중요한 것은 구조를 분석하면 자신도 모르게 인식론을 따라 지각, 수용, 분석, 종합, 응용으로 간다는 거다. 사건을 추리하려면 단서를 잡아야 하고 단서는 지각되기 때문이다. 지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범인이 누군지를 모르니까.


    그러나 범인을 찾았다면 배경, 실체, 연관, 이행, 귀결의 순서로 현장검증을 해봐야 사건의 내막을 확정 지을 수 있다. 인식론은 오류이지만 답을 모르므로 쓰지 않을 수 없다. 단 오류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시행착오, 오류시정을 거쳐야 한다.


    지각은 환자의 몸에 나타난 붉은 반점이다. 혹은 체온이 올랐다거나 여러 가지 인간의 신체감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상이다. 보이는 것들이다. 수용은 그렇게 지각된 데이터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전달경로를 추적하는 거다. 분석은 분류다.


    종합은 말 그대로 종합이다. 응용은 다른 사건에 적용해 검증해보는 것이다. 이 순서로 추리할 수 있으나 답이 맞다는 보장은 없다. 운이 좋으면 범인을 짚어낼 수 있다. 베테랑 형사라면 이 수법으로 추려내서 용의자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이를 검증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으니 반대쪽을 보면 된다. 지각, 수용, 분석, 종합, 응용은 피해자를 관측한 것이고 용의자를 지목한 다음 거꾸로 존재론을 적용하여 배경, 실체, 연관, 이행, 귀결로 추궁하면 범행동기를 맞게 짚어낼 수 있다.


    범행동기는 돈이나 치정이나 원한이나 간에 모두 에너지다. 물질적 돈 에너지거나 원한의 심리적 에너지거나 모두 에너지다. 에너지는 바깥에서 들어오므로 배경을 찾아야 한다. 혼자는 에너지가 안 생기고 어떤 둘의 만남에서 에너지가 생긴다.


    실체는 결정적으로 얽혀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공범끼리 감옥에서 만났다면 배경이고 은행털이를 계획했다면 실체다. 주범과 종범으로 역할을 나누는 것이 연관이고 실행하는 것이 이행이며 도주는 귀결이다. 범인과 피해자는 다섯 번 만난다.


    어떤 이유로 둘은 하나의 공간에 공존하게 된다. 그것이 배경의 만남이다. 두 번째 어떤 구체적인 사물을 두고 충돌하며 만난다. 실체다. 세 번째 한쪽은 가해하고 한쪽은 피해입으며 만나니 연관이다. 네 번째 시간적 진행에서 만나니 이행이다.


    마지막으로 범인이 이탈하는 과정에서 만나니 귀결이다. 그러므로 형사는 사건을 추리할 수 있다. 이탈과정에서 발자국을 남긴다. 그것이 단서가 된다. 그 단서를 지각한다. 지각, 수용, 분석, 종합, 응용의 순서로 추리하여 범인을 체포한다.


    존재론은 자연의 사건이 에너지를 풀어놓는 순서, 인식론은 인간의 관측이 자연의 진실에 도달하는 순서다. 자연의 에너지 풀어놓기는 저절로 되고 인간의 진실찾기는 잘 안 된다. 단 사건의 반대쪽을 보는 훈련을 한다면 진실에 이르게 된다.


    존재론과 인식론을 모두 공부해야 하지만 인식론은 존재론을 찾아가는 수단으로만 써야 한다. 사용하고 폐기해야 한다. 인식론을 근거로 무언가 주장하면 안 된다. 귀납적 지식은 연역의 검증을 거쳐야 하며 가설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구조론이라고 론을 붙인 뜻은 다윈의 진화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같다. 론은 A면 B다의 메커니즘을 갖춘다. 진화론이면 유전자다. 구조론이면 복제다. 사건이면 기승전결이다. 자본론이면 토대와 상부구조다. 마음이라면 잠재의식이다.


    E라면 MC제곱이다. 3이면 1+2다. 어떤 엮인 것을 풀어서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이 론이다. 그러므로 론에는 순서가 있다. 존재론이든 인식론이든 순서를 따진다. 존재론은 자연의 에너지를 맨 앞에 세운다. 인식론은 관측값을 맨 앞에 세운다.


    그것은 존재다. 있다는 것은 현재 있다는 것이며 사건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존재는 한자어 존재存在보다 being에 가깝다. 존存은 명목적 존재이고, 재在는 특정한 장소에 소재하니 existence와 같다. 사물의 존재냐 사건의 전개냐다.


    사물의 존재를 모든 추론의 궁극적 근거로 삼는 게 보통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것의 근거는 에너지이며, 사물의 존재 개념에는 관측자인 인간이 개입되며 이미 왜곡된 것이다.


    존재론은 에너지론이어야 한다. 존재라는 한자어에는 being의 현재진행 느낌이 약하다. 존재는 에너지를 태우고 호흡하며 모두 연결 되어 있고 개별적 존재는 없다. 존재론의 관점은 전체에서 부분을 바라보는 것이고 에너지를 앞세우는 거다.


    만유의 연결되어 있음을 봐야 한다. 정상에 서서 전모를 보기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관측자인 나와 대칭 시킨다는 것이니 나와 몸집이 비슷한 것을 잘 본다. 크거나 작은 것을 못 본다. 관측자가 개입하면 망하니 이는 양자역학이다.


 - 근래 쓰는 글은 정리할 목적으로 요약하여 다시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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