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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034 vote 0 2011.04.18 (20:57:08)

 

 

구조론으로 본 다중지능

◎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분류


- 언어지능
- 논리수학지능
- 인간친화지능
- 자기성찰지능
- 공간지능
- 음악지능
- 신체운동지능
- 자연지능


다중지능이론이 탁월한 아이디어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맹랑한 주장에 불과하다. 분류해놓은 각각의 항목들은 전혀 근거가 없다. 차라리 좌뇌로 우뇌를 구분하는 것이 그나마 해부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예컨대 ‘공간지능’이라는 것은 남자들에게 더 유리한 것으로 성차별의 소지가 상당하다. 그림으로 말하면 남자아이들은 비교적 입체적으로 그리고, 여자아이는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경향이 있다. 좁은 공간에서 주차를 잘 못하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이는 남자들의 경우 들판에서 사냥을 해야 하므로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는데 뛰어나기 때문이다. 강아지풀을 흔들면 고양이는 바로 달려들지만 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남자들의 뇌는 고양이와 같아서 움직이는 것에 잘 반응한다.


장난감을 선택해도 총이나 칼과 같이 움직이며 노는 것, 또는 어떤 대상에 물리적으로 타격하여 작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자아아의 장난감이 동적인데 비해 여자아이의 장난감은 상대적으로 더 정적이다. 옛날에는 남녀간에 뇌기능의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 우세했으나, 최근에는 태내에서 호르몬의 차이로 인하여 남녀간의 뇌구조의 차이가 일찍 결정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패션이나 가구의 디자인이라면 아무래도 색감이 뛰어난 여성이 유리하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미세한 색깔의 차이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가 그날따라 신경을 써서 화장을 해도 남자는 눈치채지 못한다. 뇌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응한다는 것은 긴장한다는 것인데, 남자들의 뇌는 고양이와 같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잘 긴장하지 않는다.


언어지능의 경우 단순히 말을 잘하기로는 여자가 뛰어나다. 남자아이는 말을 늦게 배우고 말더듬이도 많다. 남자가 말을 안 하고 있는 것은 성격이 과묵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자들은 이를 남자의 침묵시위로 오해하곤 한다. 실은 표현력 부족이다. 그 상황에서 남자도 속으로는 꽤 답답하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시나 소설을 잘 짓는 것은 전혀 아니다. 수다장이처럼 말을 빨리 할 뿐이다. 시를 지으려면 소리나 의미에 대칭원리를 적용하여 긴장을 끌어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 또한 선천적인 소질의 차이가 있으나 말하는 능력과 다르다. 하나의 언어영역 안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수학으로 논하면 동양인들이 셈을 잘하지만 진정한 수학은 계산이 아니다. 어쨌든 동양인들이 셈을 잘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현대수학은 고도의 추상적 사고를 요하는 점에서 패턴분석 능력에 달려있지 단순 계산력과 상관없다. 정의, 분류, 비교를 잘해야 진짜 수학을 잘 하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계산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수학의 본질은 패턴분석이다.


말을 더듬는다면 아무래도 대인관계가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 경우 인간친화지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인간친화를 잘 하는 사람은 대개 말주변이 좋고 우스개를 잘 하거나, 노래나 그림, 춤, 오락, 도박 등 잡기에 뛰어난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낯선 사람과도 금새 말을 붙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있다.


한국인들은 존댓말 함정 때문에 형님아우 서열 따지느라 대인관계가 안 된다. 혹시 윗사람에게 반말하는 실수를 저지를까봐 조심하다가 말을 못붙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남녀간에 내외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더 힘들다.


자기성찰지능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바보도 어떤 책임감있는 위치에 오르면 일관성을 지켜 대외적으로 신용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맏이가 더 도덕적이고 차남이나 삼남은 혁명가적 기질이 있다. 역사적으로 크게 일을 벌이는 모험가는 차남인 경우가 많다.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이해하는가는 인생 전체를 총괄하는 일관된 전략을 세우느냐이고 이는 자신을 부족의 리더로 여기기 때문이며 주변으로부터 비교와 멸시를 당해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기를 성찰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음악지능으로 보면 절대음감이 있어도 음악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있다. 단지 소리를 듣고 음이름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소리가 몇 헤르쯔인지를 아는 것이다. 절대음감이 있는 사람은 소리로 들은 것을 눈으로 보듯이 시각화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신체운동지능이라는 것도 운동은 소뇌의 영향을 크게 받으므로 애초에 구분이 다른 것이다. 대뇌의 능력이 여러 정보를 합성하는 능력이라면 소뇌의 능력은 불필요한 정보의 간섭을 배제하는 능력이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은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불필요한 노이즈 정보들을 잘 차단한다.


훈련된 선수들은 기계처럼 정확하게 타격해내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타고난 곡예사인 물개를 이길 수는 없다. 이는 대뇌의 사고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동물들이 올림픽을 연다면 인간 종은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할 것이다.


파브르나 다윈이 과연 자연탐구지능이 뛰어난 사람일까? 그들을 자연에 내버려두면 생존의 달인 베어그릴스처럼 살아남을 것인가? 천만에! 전혀 아니다. 파브르나 다윈이 자연을 탐구한 이유는 우연히 남들이 그 길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금을 주웠다면 그는 황금탐구지능이 뛰어난 사람일까? 아니다. 다른 사람이 주워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주워간 것이다. 자연탐구라는 개념은 아무래도 밖으로 나돌아다녀야 하는 남자들에게 유리한 개념이다.


야생의 자연을 잘 탐구하는 사람이 집안의 분위기를 잘 탐구할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사이에 어떤 마찰이 일어났는지, 누구와 누구가 불화이고 누구와 누구가 친한지, 누가 아픈지, 누가 우울한지 잘 알아낼까?


어린이집이라면 그 어린이집이 하나의 자연이다. 어린이집은 인공구조물이므로 자연이 아니다? 천만에! 자연탐구가 아니라 환경탐구가 맞을 것이다. 그 환경에는 인공적인 환경도 포함된다. 강아지도 집안의 미묘한 분위기를 잘 포착하는 능력이 있다. 때로는 사람보다 뛰어날 때도 있다.


왜 이들은 8가지인가? 하워드 가드너가 그냥 멋대로 정한 것이다. 백가지가 될 수도 있고 천가지가 될 수도 있다. 3가지나 5가지로 할 수도 있지만 좀 있어보이는 척 하려고 하다보니 8이라는 숫자가 나온 것이다.


하워드 가드너의 분류는 전혀 근거가 없는 엉터리지만 다중지능이라는 개념 자체는 유효하다. 기존의 IQ테스트는 테스트할 수 있는 것만 테스트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의 상당부분은 테스트 자체가 불가능하다. 객관식 문제로 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조론적 관점에서 지능을 분류하자면 일단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질 - 긴장하는 능력,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
입자 - 여러 정보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핵심을 도출하는 능력,
힘 - 외부의 작용에 대항하는 능력, 한 곳에 집중하는 능력.
운동 - 변화하는 능력, 눈치보는 능력, 분위기파악.
양 - 절대적인 능력, 절대음감, 단순기억, 계산능력


지능이란 무엇일까? 뇌에 투입된 빛과 소리의 자극을 복제하여 재현하는 능력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그날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을 잘 못하는 원시인이 초원을 돌아다니다가 뭔가 신나는 일을 경험했다면 그것을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 했을까?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생은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엄마에게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입이 없으니 말을 할 수 없고 따라서 말을 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그날 있었던 일을 대개 기억하지 않는다. 단지 먹이를 얻었거나 공격을 받았거나 한 것, 생존과 관련된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지능은 그날 자신이 본 것을 기억하였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려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공유했을 때 뿐이다. 진정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참된 사랑을 설명한다는 것은 백퍼센트 불가능이다. 이는 연속극이나 영화나 소설 따위에 묘사된 사랑이 얼마나 저급한지 보면 알 수 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비슷한 다른 경험을 원용하는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사실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뽑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추상능력이다. 지능의 가장 큰 부분은 추상능력이며 그 외의 부분은 의미없다.


시각적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은 답을 외어서 객관식 시험문제의 정답을 맞힐 수 있겠지만 공무원 시험에나 잘 붙을 뿐, 승진시험에나 유리할 뿐, 그걸로 실제의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추상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적으로 저지른다.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실은 같은 사건임을 꿰뚫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중지능의 여러 요소들은 큰 의미없는 것이다. 오직 추상능력, 추론능력, 추리능력 하나가 소용될 뿐이다. 문제는 이를 테스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도형이나 그림 따위를 늘어놓고 비슷한 것을 찾으라는 식으로 IQ테스트를 하지만 극히 일부의 능력을 테스트할 뿐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첫번째 대응은 그 사건에 내가 대응할 것인가의 여부다. 즉 그것이 중요한가를 아는 것이다. 눈앞에서 사고가 벌어져 사람이 다쳤는데 모른척 하고 그냥 지나가는게 개인에게는 낫겠지만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혹은 사이코패스라서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잘 살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은 큰 일을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일의 중요도를 판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을 구하거나 혹은 구하지 못하여 크게 후회하는 사람이 나중 크게 성공하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긴장하는 능력이다.


나라가 망했는데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태연한 친일파들은 나라를 구하는 큰 일을 할 수 없다. 뇌가 그 부분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할 일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하고, 슬퍼할 일에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야 한다. 사소한 일에만 분노한다면 자격이 없다.


모욕을 당해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사람은 남의 노예로 살게 된다. 노예노릇이 편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줄 아는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이 중요한 것임을 아는 것이다.


필자는 만유인력을 처음 배웠을 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후 세상에 필자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겁기 때문인데, 그게 아니라 실은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내가 사물을 보는 방법이, 세상을 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사과가 무겁다는 것은 사과 자체의 성질이다. 사물을 바라볼 때 그 대상 자체의 내재한 속성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관점 자체가 틀려먹었다는 것이다. 사과는 빨갛고, 막대기는 길쭉하고, 연탄은 검고, 불은 뜨겁다고 알면 그 사물 자체의 내재한 속성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틀렸다면 근본적으로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지 않았다. 내게는 만유인력이 우주가 뒤집어진 사건인데 지구의 그들은 태평스러웠다. 나의 우주는 뒤집어졌는데 그들의 우주는 전혀 뒤집어지지 않았다.


하긴 구한말 조선사람들은 나라가 망해도 아무 생각없이 잘 살았다. 나라가 망하고 십년, 십오년 세월이 흘러 1919년에야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3.1만세를 부른 것이다. 칼에 찔렸는데 10년만에, 혹은 십오년만에 아프다고 말한 셈이다.


만유인력을 배우는 순간 사물자체의 속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관점 자체가 틀렸다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추상하는 능력이다. 예컨대 한의학은 전부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 판단한다. 어떤 것은 성질이 차고 어떤 것은 성질이 뜨겁다는 식이다.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 판단하는 것은 전혀 과학이 아니다.


검은 것은 검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하면 그것은 전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만유인력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다. 그래도 우주가 뒤집어지지 않았다는 말인가?


만유인력의 관점을 도입한다면, 종합적인 관계망의 질서 안에서 각자의 주어진 포지션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여덟사람이 모여 있다면 그 중에 한 넘은 길쭉이요, 한 넘은 뚱뚱이요, 한 넘은 넙죽이요, 한 넘은 땅꼬마요, 한 넘은 헐랭이요, 한 넘은 쥐새끼요, 한 넘은 말상이요, 한 넘은 짱구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각자의 내재한 속성으로 본 것이다. 각자 타고난 것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나 포지션으로 보면 한 넘은 공격수, 한 넘은 수비수, 한 넘은 골키퍼다. 한 넘은 구단주요, 한넘은 감독이요, 한넘은 코치요, 한 넘은 선수요, 한넘은 심판이요, 한 넘은 관객이다. 이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전체적인 얼개의 구조 안에서 각자의 위치를 가지고 전부 한 줄에 꿰어 이야기해야지 그냥 각기 그 자체의 성질로 말하면 안 된다.


불은 뜨겁지 않고 물은 차갑지 않다. 그것은 착각이요 넌센스다. 붉은 색은 붉지 않고, 푸른색은 푸르지 않으며, 검은 것은 검지 않고, 흰 것은 희지 않다. 왜? 색맹이니까. 왜? 외계인은 자외선과 적외선도 볼 수 있으니까. 지구인 기준으로 말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건 비과학적이다. 바둑판의 검은돌이 검을 필요는 없으며 흰 돌이 흰빛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냥 OX로 대체해도 된다.


붉은 색과 푸른색과 노란색을 통일하는 전체의 파장 안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정답이다. 결국 지능이 높은가 낮은가는 이렇듯 전체의 판도와 윤곽을 끌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전체의 판도와 윤곽 안에서 각자의 위치를 지정하여 알 수 있는가에 달려있으며, 한 번 그것을 보는 눈이 얻어지면 이후 쉽게 판단하게 된다.


음악가는 음악의 전체적인 구도 안에서 각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김태원 쯤 되는 대가의 안목이면 어떤 아마추어 음악가라도 척 보면 어느 포지션에 와 있는지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구도의 얼개가 머리 속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결국 이렇듯 머리에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다. 지능이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며 이는 추론능력이다.


만유인력을 배웠을 때 나는 태어나서 내가 지금껏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 전체가 비뚤어졌음을 알았다. 만유인력은 지구가 비뚤어졌다는 것인데 내게는 우주가 비뚤어지고, 생각이 비뚤어지고, 소통이 비뚤어지고, 채널이 비뚤어진 것이다. 지구의 인간들은 고장난 라디오처럼 잡음이 심한 잘못된 채널로 소통하며 버럭버럭 인상을 쓰고 악을 쓰고 그러고들 있었다.


우주에 만유인력이라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사유에도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소한 일에서 내 인생 전체를 바로잡을 어떤 단서를 얻은 것이다. 이것이 어려워 보이지만 각자 자기 전문분야에서는 쉽다.


누구라도 자기 분야에서는 그 분야의 만유인력을 알 수 있다. 농사짓는 농민이라면 농업의 만유인력이 있을 것이요, 흙을 굽는 도공이라면 불의 만유인력을 알 고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머리 속에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전면화하여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하는가의 문제가 걸려있을 뿐이며, 인간은 대개 언어의 도움을 얻어 그 문제를 해결한다. 교육받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부분의 지식과 전체의 지식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능의 핵심은 서로 다른 분야를 총괄하여 종합하는 능력인데 다중지능 개념은 거꾸로 이를 낱낱이 떼놓은 것이며, 떼놓기로 하면 백 가지로도 뗄 수 있고, 천 가지로도 뗄 수 있는데 왜 하필 8개냐다.


◎ 기존의 IQ개념 - 광범위한 지적 능력 중에서 측정하기 편한 몇 가지만 측정하므로 편협하다.


◎ 다중지능 개념 -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여러가지를 줏어섬기는데 그 각각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 구조론적 관점 - 여러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추론능력 한 가지가 중요하며 그 하나는 각자의 다양한 전문 분야 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리하면 기존의 IQ개념은 전체 백 중에서 50만 강조하고 나머지 50을 버리는 잘못된 것이며, 다중지능 개념은 그 잃어버린 나머지 50을 찾는다며 이러저리 헤집어놓았을 뿐 종잡을 수 없게 된 것이며, 구조론적 관점은 각자 자신의 뇌가 반응하는 전문분야 안에서 하나의 중심을 찾아 100을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다양성 안에 중요한 한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에서 그 하나를 발견하면 작가가 되고, 건물에서 발견하면 건축가가 되고, 색채나 형태에서 발견하면 디자이너가 되고, 소리에서 발견하면 음악가가 되고, 기계에서 발견하면 기술자가 된다.


각자의 뇌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다. 분명히 말하면 남자의 뇌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고, 여자의 뇌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고, 게이의 뇌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다. 특정직업군에 동성애자 비율이 많은 것은 확실하며, 그 이유는 동성애자의 경우 남자와 여자의 장점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차별을 하거나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다양한 능력을 고루 사용하지 못하여 그 사회가 경쟁력에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후진국의 경우 새로운 기술을 창의하기보다 선진국이 개발한 기술을 따라잡는것이 더 효율적이다. 즉 누군가가 서구에 유학하여 신기술을 배워와서 재빨리 보급하는 것이 창의하는 것보다 더 이득인 것이다. 그러므로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관료형 두뇌를 가진 사람이 활약을 한다.


확실히 한국에서는 창의적인 인재보다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인맥이 넓은 사람이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한국이 GDP 2만불 이하의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먹히는 논리다. 선진국이 되면 배워올 것이 없다. 이젠 창의해야 한다. 지금 공부하는 십대들이 성인이 되면 한국 앞에 어느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한국이 가장 앞서가게 된다.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 법이며 동성애자라도 한 가지 재주가 있다면 떠받들어야 한다.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다 필요없고 이제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할 따름이다. 창의하려면 전체의 그림을 머리에 그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매우 어렵지만 자기 전문분야 안에서는 쉽다. 자기 뇌가 잘 반응하는 부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뇌는 소리에 반응하고, 어떤 사람의 뇌는 색깔에 반응하고, 어떤 사람의 뇌는 맛이나 냄새에 반응한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의 뇌가 반응하는 대상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얻어내는 추론능력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다양성을 주장하며 잡다하게 이것저것 줏어섬긴다고 해서 되는 것은 없다.


다중지능은 전혀 근거가 없다. 8가지 분류 안에 음악지능이 들어있다는 것은 웃긴 것이다. 음악만 해도 작사와 작곡이 다르고, 가창력이 다르고, 연주자는 또 다르다. 김태원이 잘하는 것과 이승철이 잘하는 것은 다르다.


음악지능이 있으면, 미술지능이 있어야 할테고, 미술도 그리는 것과 색칠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다. 입시미술의 석고상 그리기는 남자에게 유리할 지도 모른다. 연필그림이 아니라 색칠하기로 하면 여자의 합격률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음악지능 미술지능이 있으면 오락지능, 우스개지능, 잔소리지능, 말대꾸지능도 있을 것이다. 말대꾸만 구단인 사람도 있더라. 추론하는 것이 진짜이며 그 추론은 모든 분야에 두루 적용된다.


그냥 추론하는 능력을 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뇌가 반응하는 분야에서 기승전결의 전체과정을 경험하고 이해하면 추론할 수 있게 된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밭에 난 야채만 보고도 식탁에 앉은 사람의 반응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그저 조미료나 뿌려대고 있을 것이다.


자기 아이의 지능을 높이고 싶은가? 먼저 이것 저것 해보고 자기 아이의 뇌가 잘 반응하는 전문분야를 찾아라. 그 분야의 기승전결이 진행되는 사건의 전체과정을 두루 경험하게 하라. 어떤 대상의 내재한 속성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도 안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찾는 훈련을 하라.


그림을 그린다면 그냥 모델을 가져다놓고 그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처음 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 소재의 선택, 모델의 선정, 그리기의 진행, 그린 후의 전시와 평가, 그에 따른 포상과 칭찬까지 전체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승전결 진행의 각 단계 중에서 어느 단계이든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는 실력이 딸리는 사람은 소재의 선택을 기발하게 잘하는 방법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 또는 밑그림을 못그려도 색칠을 잘하여 만회할 수 있다. 또는 그림을 못 그려도 거기에 이야기를 보태어 첨가함으로써 또다른 형태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기승전결의 각 단계에 만회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어떤가? 모델도 주어져 있고 소재도 정해져 있고 아이는 그냥 그리기만 한다. 평가기준도 정해져 있다. 평가는 선생님이 하고 칭찬은 학부모가 한다. 역할이 나누어져 있으며 한 가지 역할만 하게 된다. 창의력이 발전할 틈이 없다. 전체의 구도를 보지 못하게 된다. 추론할 수 없게 된다.


구조론적 관점은 다양성 안에서 한 가지 핵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창의력이 존중되는 시대에는 다 잘할 필요없고 하나만 잘하면 된다. 그 다음 자신의 하나와 다른 사람의 하나를 접목하면 된다. 스티브 잡스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지혜를 잘 조합하는 사람이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머리에 그려가지고 선장 노릇을 한 것이다.


http://gujoron.com




[레벨:15]오세

2011.04.18 (22: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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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 긴장하는 능력,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
정신차릴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구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4.18 (22:32:07)

 

어떤 하나의 단서를 얻으면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하오.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유는

그것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면서 떠나지 않고 반복하여 생각나기 때문이오.

 

어쨌든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한테 뺨 맞은 사건도 잊지 않고 있고 (야! 하고 뺨을 쳤기 때문에 야당이 되었소.)

 

한 살 때의 일도 기억하는 것이 있소.

아기때 고무신 오른쪽 왼쪽을 바꿔신지 않으려고 노력한 기억도 있고.

 

내가 첫 참외서리를 했을 때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이 과연 내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칠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게 맞았소.

 

[레벨:15]오세

2011.04.18 (22: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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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엄마 품에서 떨어져 혼자 자보겠다고 어두컴컴한 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홀연히 '나'의 존재를 깨달은 기억.

구로공단 앞을 지날 때의 매쾨한 최루탄 냄새와 대자보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벽보들, 그리고 전두환에게 '독재자'라고 일갈한 아버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본 광주민주화운동 화보집의 시체사진들

울 엄마가 참교육 학부모회라고 담임 앞에서 깝치다 뺨맞은 기억

신은 사랑이다라는 말에 그렇지 하며 고개를 주억거린 기억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들 사이에 주먹으로 형성된 암묵적 서열과 공포를 마주했던 기억

..

.

.

.

 

 

이 모든 것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더이다.

소설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처럼 전체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더이다.

 

 

[레벨:12]김대성

2011.04.18 (23:35:16)

전송됨 : 페이스북

 여담이지만, 나는 신발 왼쪽 오른쪽을 바꿔신고 다니기를 잘했고(바빠서 신발에 신경을 못씀), 그게 맞춰서 신어야 한단는거 자체도 몰랐소.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듯도 하오. '별거 아니지 않나?' 속도 편하게.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1.04.18 (22:48:42)

요즘 유행하는 다중지능이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엉터리 행태들에 대해서 할말이 많아

한번 말을 하고 싶었는데 (워낙 뻘짓들이라 뭐라 하기도 내참.  

무슨 지문으로 다중지능을 알아내어 애들 미래 점치기 유행 혈안되어 수십만원씩 쓰는 부모들...)

항상 필요할 때 시원하게 하십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1.04.19 (02:56:37)

하나의 씨앗을 발견하는 것이오.


소설 얘기가 나서 하는 말인데, 소설의 첫문장에서 소설 전체가 다 끝나는 경우가 많소. 하나의 기준점을 세우고, 글을 이어나아가다 보면, 작가가 글을 써며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쓴 글이 스스로 뱀처럼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스믈스믈 기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소. 말하자면 글이 글을 쓰는 것이오.


반전이 있는 소설도 있지만, 결국은 최초의 설정한 방향 안에서의 반전일 뿐이오. 결국 콩 심은데 콩이 나는 게요. 콩 심은데, 물을 적게주거나, 바람이 불어서 망치거나 성장이 더딜 수는 있지만, 콩 심은데 팥이 나오는 법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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