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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35 vote 0 2019.12.16 (17:47:46)

    지식을 구하는 자세


    무릇 안다는 것은 나로부터 대상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결에는 순서가 있다. 1을 모르는 사람에게 2를 먼저 가르칠 수는 없다. 10진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구구셈을 가르칠 수 없다. 지식은 기왕에 알고 있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것에 도달하는 것이다. 경로의 확보가 먼저다. 그러므로 지식은 '일이관지'하고 '문일지십'하는 것이다.


    그것이 체계적인 앎이다. 계통을 따라가는 것이어야 한다. 단편적인 앎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다. 파편화된 부스러기 지식은 부족민의 봉건적이고 미신적인 태도를 낳는다. 주술을 숭상하고 괴력난신을 추종하게 한다. 비뚤어지고 만다. 만유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소가 있고 족보가 있다. 네트워크가 있다. 대상에 접근하는 경로가 있다.


    동쪽을 안다면 서쪽을 알 수 있고, 동서를 안다면 남북도 알 수 있다. 동서남북 상하원근은 관측자인 인간과 상관없이 자체의 질서를 갖추고 있다. 동쪽만 빼먹자고 해도 서쪽이 살살 따라온다. 진정한 지식은 이렇듯 대상 자체의 논리로 전개해야 한다. 왜? 거기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는게 힘이라 했다. 인간은 그 힘을 추구하는 것이다.


   동쪽만 배우고 서쪽을 날로 먹으니 효율적이다. 가성비가 좋다. 그것이 힘이다. 자체의 논리는 사건에 의해 성립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기가 승을 이기고 승이 전을 이기고 전이 결을 이긴다. 거기에 힘이 있다. 에너지 낙차가 있다. 일이관지하여 하나를 배우고 열을 깨닫는 효율성이 있다. 사물에는 그런 힘이 없다. 그런데 힘을 원한다.


    힘이 있다고 선언해 버린다. 황금에는 힘이 있어. 다이아몬드에는 힘이 있지. 마력이 숨어 있어. 그런거 없다. 황금에 힘이 있는게 아니라 황금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차별에 힘이 작동하는 것이다. 사물에는 자체논리가 없다. 그러므로 힘이 없다. 인간은 힘을 추구하므로 진정한 힘을 얻지 못한다. 힘은 사물에 없고 사건이 연결에 있다.


    사물로 보면 소금과 설탕은 아무 관계가 없다. 연결고리가 없다. 설탕은 알아도 소금은 모른다. 로미오는 알아도 줄리엣은 모른다. 사건으로 보면 소금과 설탕은 같은 요리에 사용된다. 요리를 배우면 소금도 알고 설탕도 안다. 로미오는 아는데 줄리엣은 모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건의 전개가 만유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되는 것이다. 


    사건의 연결고리를 따라 일이관지하여 하나를 듣고 열을 알게 되니 깨달음이다. 문제는 우리의 언어습관이다. 대개 관측자가 개입한다. 관측자인 사람이 대상을 건드려서 반응을 알아보는 형태로 지식을 구한다. 그 경우 상대성의 덫에 걸린다. 이런 태도로는 주술과 봉건과 괴력난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길을 잃고 혼미해져 버린다. 


    체계를 잃고 계통을 잃고 족보를 잃는다. 하나를 배우면 동시에 하나를 잊어먹게 된다. 빛은 있어도 어둠은 없다. 관측자로 보면 빛도 있고 어둠도 있다. 눈이 부시면 빛이 있고 눈앞이 캄캄하면 어둠이 있다. 천만에. 빛은 입자가 있지만 어둠은 입자가 없다. 동쪽을 배우면 서쪽까지 알고 남북까지 전진해야 하는데 자기에게로 되돌아온다. 


    밖으로 연결되지 않고 끝없이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덫에 갇혀버린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니 전진이 없다. 달팽이처럼 좁은 공간에 말려버린다.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모든 거짓 주장에는 이런 성질이 있다. 음모론이 그러하다. 논리가 외부로 뻗어가지 않고 회전문처럼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이 순환의 오류다. 


    인간은 힘을 원한다. 힘을 포착했는데 끌어내지를 못한다. 그냥 힘이 있다고 선언해 버린다. 모든 주술과 음모론과 무한동력과 괴력난신과 미신의 공통점이다. 힘은 연결에 있다. 엔진에 힘이 있는게 아니라 엔진과 바퀴의 연결에 힘이 있다. 자석에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무한동력에 매달린다. 자석에는 힘이 없다. 자기장의 연결에 힘이 있다.


    내가 A를 쳤는데 그 반응이 내게 되돌아오면 안 된다. 내가 A를 치면 A가 B를 치고 B가 C를 쳐야 한다. 계속 뻗어나가야 한다. 그럴 때 동쪽을 보고 서쪽을 안다. 동서를 보고 남북을 안다. 고저장단에 완급경중, 미추선악, 시비곡직까지 모두 안다. 한 줄에 꿰어서 전체를 모두 알게 된다. 사건은 격발되어 일방향으로 계속 전개해야 한다.


    빛은 있고 어둠은 없듯이 선은 있고 악은 없다. 진보는 있고 보수는 없다. 사랑은 있고 증오는 없다. 내가 선을 치면 선은 악을 치지만 내가 악을 치면 악은 선을 치지 않는다. 흐지부지 된다. 내가 머리를 건드리면 머리는 꼬리로 전달하지만 내가 꼬리를 건드리면 꼬리는 머리를 건드리지 않는다. 사건은 머리에서 꼬리의 일방향으로 간다.


    빛을 조절하여 어둠을 통제할 수 있지만 어둠을 조절하여 빛을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둠은 빛에 딸린 종속개념일 뿐 자연의 존재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은 인간의 사회성을 반영하여 존재가 있지만 악은 선의 종속개념일 뿐 존재가 없다. 호르몬을 이용하여 선을 조절할 수 있지만 악을 조절할 수 없다. 악은 선의 부재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수순이 있고 순서가 있다. 차례가 있다. 방향성이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른다. 한 방향으로 꿰어져 있다. 순서를 그르치면 안 된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로 갈 뿐 그 역방향은 없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결과에서 원인으로 못 간다. 시간은 언제나 미래로 갈 뿐 역주행은 없다.


    무릇 학문하는 자는 인간과 대칭시켜 인간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지 말고 즉 대상에 작용하여 되돌아오는 것을 보지 말고 대상 자체에 내재한 논리를 따라가야 한다. 대구는 이쁘고 부산은 밉다는 식으로 인간을 개입시켜 분열시키지 말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대전 찍고 대구 거쳐 다음은 부산 하는 식으로 자체의 경로를 따라야 한다.


    인간을 개입시키면 연결이 끊어지고 낱낱이 쪼개져서 써먹지 못하는 부스러기 지식이 된다. 자체의 에너지 흐름을 따라가면 전부 연결되어 하나의 통짜덩어리가 된다. 이쁜 것은 새끼고 못생긴건 어미다 이러면 안 되고 앞서 가는 것은 어미고 따라가는 것은 새끼다 하는 식으로 내부서열 위주로 말해야 한다. 이것이 과학의 객관적 어법이다. 


    자체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면 지식이 뻗어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말려버린다. 부족민은 모든 존재를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한다. 실용주의 덫에 갇혀버린다. 당장 쓸모있는 것만 추구하다가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을 따라가야 멀리까지 전진해서 쓸모있는 것을 만나게 된다. 


    학문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은 인간이 쓸모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나를 관련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나의 힘을 원한다. 힘은 어딘가에 있다고 믿게 된다. 괴력난신을 추종하고 주술과 미신과 음모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힘은 어딘가에 있는게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에 있다. 힘은 A와 B와 C로 연결되는 루트를 단축시킨다.


    지름길을 찾으면 곧 힘이다. 최단경로가 힘이다. 그러므로 힘을 찾으려면 계속 연결시켜야 한다. 힘은 황금에 없고 다이아몬드에 없고 초능력에 없고 마법에도 없고 만병통치약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다. 나는 콜라가 좋다고 말하면 안 된다. 햄버거에는 콜라가 어울린다고 말해야 한다. 나를 배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결이 보인다. 


    내가 느낀 것에 주목하면 안 된다. 자체의 내재된 질서를 추적해야 한다. 사물은 나와 연결되고 사건은 자체적인 연결망을 가진다. 사물을 이것저것 주워섬기며 열거하지 말고 사건 자체의 대칭을 추적해야 한다. 지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사물에는 머리와 꼬리가 없다. 사건의 머리와 꼬리를 잘 분별하되 머리에 주목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2.17 (03:52:24)

"나를 배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 보인다. 내가 느낀 것에 주목하면 안 된다. 자체의 내재된 질서를 추적해야 한다."

http://gujoron.com/xe/1149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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