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02 vote 0 2019.12.12 (23:58:12)


    공자가 위대한 이유


    어릴 때는 철학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는데 고딩 때 한동안 닥치는대로 읽어보고 실망했다. 유치해서 끝까지 읽어줄 수가 없었다. 파스칼의 팡세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니, 무슨 잠못이루는 밤을 위하여 어쩌구 하는게 유치원 꼬마가 세세세 하는 수준이다. '놀고 있네. 장난하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창피하지도 않나? 다 큰 어른이 어떻게 저런 수준이하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 헤르만 헤세는 철학자 축에도 못들겠지만 말하자면 초등학교 3학년쯤 되겠고, 니체는 그냥 중이병 환자다. 딱 중학교 이학년 수준이다. 중 3이 그런 소리 하면 애들이 비웃는다. 마르크스가 잠시 관심을 끌었지만 고 1 수준이다. 논리전개가 지극히 조잡하다. 


    난해한 현대철학은 당시에 아예 소개되지도 않았고 도서관에 꽂혀 있는 철학서적이란게 대략 그 수준이었다. 대개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페이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거다 하고 눈이 번쩍할 그런 글귀는 발견할 수 없었다. 공자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돌이켜 보니 공자가 홀로 우뚝할 뿐 나머지는 쓰레기다. 


    점잖은 사람의 대화에 끼워줄 수 없다. 공자가 위대한 이유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교는 사실 콘텐츠가 빈곤하다. 불교의 화엄경이라면 일단 방대하다. 뭔가 잔뜩 씨부려놨다. 대략 형편없지만 말이다. 별거 없고 그냥 큰 숫자 이름대기 놀이다. 공자는 단지 손을 들어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다. 태도를 강조했을 뿐이다. 


    그는 진지했다. 그는 선생이었고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보는 방향이 다르다. 나머지는 다들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 있다. 호승심이 문제다. 애초에 가르치는 자의 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전자의 자세다. 삐딱한 자세로 시비걸며 나의 초식을 당할 자가 누구인가? 이런다. 도장깨기 이소룡인가? 


    그 포즈가 어설프다. 영화니까 먹히지 그게 현실이라면 얼마나 웃기는가? 비참한 거다. 웃기고 자빠졌어. 하여간 이기려면 센 놈이 필요하다. 최종보스는 무엇인가? 플라톤의 이데아는 신이라는 단어를 대체하는 개념이다. 소크라테스는 솔직하게 말했다가 달려들어갔다. 플라톤은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그나마 소크라테스는 순진했던 거다.


    신탁을 했는데 돈을 조금 냈기 때문에 신녀가 OX로 답해준다. 친구가 여사제에게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인가? 점괘는 YES로 나왔다. 확인할겸 안다하는 사람을 만나 묻고 다녔다. 만나보니 다들 형편없다. 도대체 아는 넘이 없잖아. 아는게 없다는걸 나는 알고 있으니 현명한가? 필자가 느낀 것도 같은 것이다.


    도대체 아는 넘이 없네. 알고 모르고 이전에 진지한 넘이 없네. 장난하지 말고. 말싸움에 이기려 들지 말고. 아는게 있어야 한다. 뭔가 강력한 한 방이 있어야 한다. 플라톤이 뭔가를 생각해냈다.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이데아를 넣어보자. 이데아로 대체하면 말이 된다. 문장이 자연스럽다. 그냥 신을 대체할 단어 하나 만든 것이다.


    그걸 이데아로 하든 삼데아로 하든 상관없다. 인간에게는 그저 단어가 필요할 뿐이다. 던져주면 덥썩 물어간다. 개가 뼈다귀를 반기듯이 말이다. 이데아는 최종보스다. 무엇인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위태롭다. 종교인들의 신과 충돌한다. 소크라테스처럼 달려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데아는 타협적이다. 신이야말로 이데아의 정수지.


    원자론은 필연적으로 종교인과 충돌하지만 이데아론은 종교와 화합이 잘 된다. 어떤 물질과도 잘 반응하여 화합물을 만드는 미세먼지 주범 황처럼 이데아는 고분고분한 단어다. 좋잖아. 이런 타락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공자가 경계한 괴력난신 정신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논리싸움에서 이기는 최종보스는?


    노자의 무위다. 원자론이 유면 이데아론은 무다. 무가 유를 이긴다. 유를 떠들면 종교인의 신과 충돌하므로 소크라테스처럼 죽는다. 무를 떠들면 플라톤처럼 산다. 그러나 교활한 레토릭일 뿐 진짜로 무위를 실천한 사람은 공자다. 노자는 위험하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은 소피스트들을 한 방에 잠 재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이 문장을 도덕경 첫 머리에 박아버렸다. 누가 이 괴물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유는 있고 있는 것은 움직이며 그러므로 논파당한다. 무는 없으므로 논파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장난이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로지 상대를 이기는 말싸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게임에 치트키 쓰지 말자. 무위자연도 일종의 치트키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얍삽한 짓이다. 공자는 단지 프로세스를 제시했을 뿐 상대를 제압할 결정적인 한 방을 만들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혁명개념도 상대를 침묵시킬 한 방 개념으로 고안된 신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에서 핵을 쓰는 것이다. 진지한 대화를 가로막는 소인배의 생떼쓰기와 같다. 아기들은 다들 만능 핵 한 방을 갖고 있다.


    그것은 뒹굴기다. 울고 뒹굴면 만사형통이다. 할아버지도 뒹구는 손자를 이길 수 없다. 두 손 두 발 다 든다. 언제까지 그 따위로 너절하게 살 것인가? 공자는 그것이 없다. 말싸움에서 이기려들지 말고 진지한 자세로 진리를 보려고 해야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들은 공통적으로 원자론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쪼개기 없기 이런거다.


    건드리기 없기, 금 넘어가기 없기, 상자 열어보기 없기. 이런 식이다. 원자론이 영감을 주지만 얄궂은 아이디어일 뿐이다. 종교인의 신으로 때우는 짓거리나 과학자가 원자개념으로 때우는 짓거리나 철학자가 이데아로 원큐에 해결보는 짓이나 도교와 불교가 무나 도 같은 얄궂은 단어로 얼버무리는 짓이나 같다. 상대를 이겨먹는 말재주다.


    예컨대 이런 거다. 어떤 사람은 최종 치트키로 뿐이라는 단어를 개발했는데 나는 오직 뭐뭐할 뿐, 너는 다만 뭐뭐할 뿐, 세상은 오직 뭐뭐할 뿐, 뿐뿐뿐 이러면서 나의 뿐사상을 당할자가 누구냐? 이렇게 상대의 말문을 틀어막는 기술을 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 이런 초딩짓을 하고 있는게 김용옥의 몸철학에 영향받았나 싶더라.


    신기루를 쫓으며 단어 하나로 조지려는 얄팍한 생각. 그렇지 않다. 진리는 강물과 같다. 자신을 거대한 에너지 흐름에 태워야 한다. 오직 방향만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이 큰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막다른 어떤 것을 지목하여 가리키면 안 된다. 개념을 자신의 맞은 편에 놓고 대칭을 세우면 안 된다. 그럴 때 막힌다. 길이 끊어진다.


    결정적 한 방, 큰 거 한 장, 최종보스, 만능 치트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무한동력, 초능력, 신, 외계인, 이데아, 원자, 혁명, 무위자연, 기, 몸, 뿐 이런 조잡한 거 들고 나오면 안 된다. 진지해야 한다. 인간의 반대편에 대칭되어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곤란하다. 연속되어 있어야 한다. 대상에 작용하여 에너지가 되돌아오는 것은 모두 가짜다. 


    연결되지 않고 끊어지기 때문이다. 대상이 있으면 에너지는 반응하며 되돌아온다. 진리는 A면 B다의 형태다. 내가 컵을 때리면 컵이 나를 때린다. 이때 되돌아온다. 갇혀버린다. 옴쭉달싹 못한다. 연결되지 않는다. 흐름이 끊어진다. 숨이 막힌다. 틀렸다. 그것이 컵이든 원자든 소립자든 신이든 이데아든 무위든 혁명이든 뭐든 다 안 된다. 


    내가 A를 치면 A는 B를 친다. 여기에 방향성이 있다. 마땅히 진리는 이런 형태여야 한다. 한 방향으로 계속 가는 거다. 괴력난신을 배제하고, 삿된 것을 물리치고, 소인배의 호승심을 배제하고, 대칭으로 맞서지 말고, 막다른 것을 배제하면 남는 것은 방향이다. 그 방향으로 계속 간다. 가서 어디에 도달하는게 아니라 계속 가는 것이 길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2.13 (10:02:06)

"공자는 단지 손을 들어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다. 태도를 강조했을 뿐이다. 그는 진지했다. 그는 선생이었고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벨:3]LBori

2019.12.13 (10:48:54)

강한 울림이 느껴집니다.

매일 매일 틀어지는 나의 방향을

오늘도 또한번 튜닝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레벨:2]제리

2019.12.13 (11:09:16)

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떤 물질과도 잘 반응하여 화합물을 만드는 황처럼 이데아는 고분고분한 단어다. 좋잖아. 이런 교활한 타락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http://gujoron.com/xe/1148630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507 전율하는 인간 김동렬 2023-10-09 3194
6506 정신병자 하나가 인류 죽인다 - 이팔전쟁 김동렬 2023-10-08 3114
6505 황선홍과 비뚤어진 한국인들 김동렬 2023-10-08 3647
6504 인간의 진실 김동렬 2023-10-07 2343
6503 권력의 근거 김동렬 2023-10-06 2506
6502 위험한 찌아찌아 한글장사 김동렬 2023-10-05 3307
6501 지적설계와 인공지능 도약 김동렬 2023-10-05 2654
6500 인간의 의미 김동렬 2023-10-04 2327
6499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다 김동렬 2023-10-03 3158
6498 21세기 천동설 김동렬 2023-10-02 2045
6497 하나의 단일자 김동렬 2023-10-02 2039
6496 수준이하의 과학자들 김동렬 2023-10-01 2820
6495 신의 입장 2 김동렬 2023-09-30 2444
6494 인류원리 7 김동렬 2023-09-29 2103
6493 인류원리 6 신과 인간 김동렬 2023-09-27 2844
6492 한동훈의 정치뇌물 김동렬 2023-09-27 3249
6491 인류원리 5 김동렬 2023-09-26 2598
6490 검찰망국 한국인들 3 김동렬 2023-09-26 3409
6489 인류원리 4 김동렬 2023-09-25 2059
6488 인류원리 3 김동렬 2023-09-25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