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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306 vote 0 2017.03.03 (16:17:31)

     

    생물의 진화와 구조론


    생물은 일찌감치 탄생했다. 근래 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생물은 지구 탄생과 거의 동시에 생겨났다고 한다. 심해 열수구에서 우연히 RNA와 DNA가 만들어져서 자기복제를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20억년간 생물은 진화하지 못했다. 생물이되 무생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20억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의미있는 진화가 일어났다. 핵막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로소 역할분담이 가능해졌다. 유전물질을 전달하면 곧 생물이라고 정의하지만 구조론적 관점에서는 역할분담과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생물의 의미가 ‘의사결정’이면 현상유지는 의미없다.


    진핵생물은 하나의 세포 안에서 세포핵과 기타등등 사이에 역할분담이 있다. 핵막이 등장함으로써 내부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무엇인가? 이전에는 외부환경의 자극에 대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핵막이 등장하자 생물은 능동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에서 입자로의 도약이다. 입자를 이루는 코어가 없어도 외력을 이용해서 입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태풍이라면 외부에서 더운 공기가 계속 유입되어야 한다. 외부의 환경적 조건에 의해 우연히 입자형태가 성립되지만 그 상태가 유지되지는 못한다.


    태풍은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해체된다. 태풍이 능동적으로 살길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태풍을 유지하게 하는 조건은 순전히 외부에서 결정된다. 진핵생물은 구조론적으로 볼때 코어를 임의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외력의 강약에 따라 코어 위치를 바꾼다.


    생물은 이 상태에서 더 진화하지 못했다. 또 20억년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5억7천만년 전에 캄브리아기 생물대혁명이 일어났다. 질≫입자≫힘으로의 전개다. 질은 43억년 전에 곧 거의 지구탄생과 동시에 일어난 유전자의 등장이다. 입자는 20억년 후의 진핵생물이다.


    힘은 5억7천만년전 캄브리아기 생물대폭발이다. 15개의 동물문이 갑자기 등장했다고 한다. 선캄브리아기부터 그 맹아단계가 있었다고도 한다.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구조론으로는 핵이 두 개 등장하는 것이다. 핵은 하나여야 하므로 둘이서 입자를 교대한다.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보다 발달된 눈을 가진 포식자의 등장 혹은 그 포식자의 사냥실력이다. 원시생물체의 고민은 방향판단이다. 눈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다. 섬모를 움직여 이동할 수 있지만 아메바처럼 아무데로나 막가거나 물에 떠다니는 것이다.


    적이나 혹은 먹잇감이 나타났을때 전략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머리와 꼬리를 정해야 한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한쪽은 유인하고 다른 쪽은 덥쳐야 한다. 꼬리를 흔들어 적을 유인하고 머리를 움직여 먹이를 삼켜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구조론의 기본적인 고민은 1이냐 아니냐다. 버섯과 이끼는 1이면서 1이 아니다. 버섯 균사체를 둘로 잘라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끼도 마찬가지다. 사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 등장한 큰빗이끼벌레 같다. 커다란 공처럼 생겨먹었는데 그게 한 넘이 아니라 패거리들이다.


zz.jpg


    큰빗이끼벌레는 하나인데 하나가 아니며 외력에 대해 1로 대응하지 못한다.


    여럿인데 하나처럼 보이지만 뇌가 없으니 하나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여럿으로 흩어져 있으면 포식자에게 먹힌다. 뭉쳐 있으면 생존에 유리하지만 뇌가 없어 조직적인 대응은 못한다. 어쩌다 덩어리져서 하나의 군집을 이루었을 뿐 하나의 단일한 조직체가 아닌 것이다.


    머리냐 꼬리냐를 정해야 한다.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안철수와 그 패거리들은 그게 안 된다. 박지원 소원대로 문재인이 대표를 양보했으면 민주당은 큰빗이끼벌레가 되어 망한다. 발달된 눈이 등장하자 외부에 대해 일대일이 가능해졌다.


    머리와 꼬리가 구분되고 방향판단이 가능해졌으며 뇌가 있어 조직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 이에 몸집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머리와 꼬리가 없다면 몸집을 키워도 통제가 안 된다. 캄브리아기에 생물이 갑자기 커져서 삼엽충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 전에는 죄다 작았다.


    이런 점은 매우 중요하다. 대만사람은 좋은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본토로 돌아갈 생각 때문이다. 누가 좋은 집을 지으면 이웃들이 와서 한 마디 한다. “자네는 여기에 눌러앉을 생각인가?”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 한다. 저축만 하고 투자를 하지 않으니 경제는 죽어간다.


    투자한다는 것은 눌러산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해외에 사는 한인교포들에게도 이와같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눌러살 사람은 큰 집을 짓고, 현지인 친구를 사귀고 사교계로 진출한다. 몸집을 키워 세력을 만든다. 눌러살 생각이 없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돈다. 


    생물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핵이 두 개 생겨야 한다. 두 핵이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역할을 분담하고 또 교대해야 한다. 그럴 때 강고한 세력이 형성되는 것이며 곧 눌러앉아 텃세를 부리게 되는 것이다. 몸집을 키우고 외연을 확장한다. 그곳에 뿌리내리는 전략 선택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뿌리내리려는 생각이 있다면 패권세력을 기르고 당내에 주류와 비주류의 역할분담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눈이 있어야 하고 외력에 대해 일대일 대응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당은 이념이 눈이 된다. 머리와 꼬리로 나누어 방향판단이 가능해진다.


    안희정짓이 무엇인가? 표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어 방향판단이 불가능하다. 대연정이라면 누가 머리가 되고 누가 꼬리가 된다는 말인가? 앞도 없고 뒤도 없다. 아메바처럼 앞뒤없는 생물은 전략적 대응을 하지 못한다. 외력에 흔들려 떠돈다.


    질입자힘까지 왔으니 다음은 운동이다. 운동을 가능케 한 것은 척추다. 량은 항온동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가지 관점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짚신벌레 안에도 질입자힘운동량은 있다. 50억년의 큰 사이클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정치든 경제든 이렇게 간다.


    20170108_234810.jpg


    질은 요리사가 밀가루반죽을 하듯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습니다. 입자는 내부에 코어가 있어야 합니다. 힘은 코어를 이동시켜야 하므로 제법 덩치가 있어야 합니다. 눈과 뇌가 생겨나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동물 종이 한꺼번에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술이라도 평면 2D에서 입체 3D로 도약하면 건축이나 조각이나 패션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가 생겨납니다.


[레벨:4]암흑이

2017.03.04 (10:45:26)

제가 2의 법칙인 질과 입자에 대해서는 이 사이트를 알기 전에도 알았는데 구조론에서 5의 법칙인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말하니 도통 이해가 안 가더군요.


질은 도화지고
입자는 연필이죠


여기까지는 그림이 형성되는데 최소로 필요한 조건이죠.
벽지든 뭐든 간에 손때라도 묻어야 그게 흔적이 남걸랑요.


어쨌든 제가 알던 이원성의 세계는 질이랑 입자랑 있으면 끝인데
힘 운동 량은 완성된 그림에 뭐를 덧붙이는 거라 의미가 없었죠.
근데 복사에너지를 생각해보니 그게 이해가 되더군요.
그림이 완성되면 완성된 그림에 뭔가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새로 그리는 거죠.
이전에 그리던 패턴을 복사해서 새로운 그림에 대입시키고 뭔가를 덧붙이죠.


질 입자 힘의 그림


질 - 배경(부재)
입자 - 풍경(존재)
힘 - 명암(부재와 존재의 패턴)


복사 에너지를 알고
힘 운동 량이 각자의 어떤 역할을 가지는지는 모르나
질 입자 힘으로 최초의 그림을 그리고 두 번째 그림은 질 입자 힘의 패턴을 복제해서 다르게 그린 것이죠.
둘째 그림이 첫째 그림보다 잘 나오던 못 나오던 차이가 존재한다면 분석을 통해서 더 나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게 기법이 되어 버리는 거죠.


질 - 배경(부재)
입자 - 풍경(존재)
힘 - 명암(부재와 존재의 패턴)


힘 - 기존의 그림(부재)
운동 - 새로운 그림(존재)
량 - 기법(부재와 존재의 패턴)


처음에는 백지와 연필의 차이로 그림을 그림(최초의 에너지)
다음에는 기존의 그림과 새로운 그림의 차이로 그림을 그림(복사 에너지)
그리고 기법이 생김(구조)


다트를 던져보면 첫 번째 결과물과 두 번째 결과물의 차이가 나오고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피드백을 하죠.


질입자.png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7.03.04 (11:00:54)

대부분 입자만 알고 질을 모릅니다.

안다는 사람도 아는척 할 뿐 아는게 아니죠.


둘이서 말다툼을 하면 무조건 입자를 말하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입자는 이름이 있고 질은 이름이 없거든요.


연필은 누구나 아는 건데 도화지는 고수만 아는 겁니다.

대부분 노자부류가 그러한데 도화지를 모르면서 아는척 합니다.


잘 모르니까 무나 허나 비나 부나 부정하는 표현을 씁니다.

누가 입자를 말하면 '입자가 아닌 그것' 이렇게 말하죠.


누가 연필을 말하면 도화지로 받아치지 않고

연필이 아닌 그것.. 이런 식으로 해괴하게 말하는 거죠. 


불교에서 무명이라며 무를 쓰거나 

도교에서 비상도라고 해서 비를 쓰는 것은 아는게 아닙니다.


상대를 제압할 의도로 아는척 폼을 잡아보는 거죠.

색즉시공하여 대칭적으로 아는 것은 아직 아는 것이 아닙니다.


대칭을 넘어 호응까지 가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죠. 

난 자동차를 알지. 어쭈 난 도로도 아는뎅.


정작 운전은 할줄 모릅니다.

자동차를 아는데 운전할줄 모르는 사람은 


자동차를 아는게 아니라 자동차와 배와 비행기를 구분할줄 아는 거죠.

그런 사람은 도로를 알고 있는게 아닙니다.


도로는 운전해본 사람만 아는 겁니다.

대칭적으로 아는 것은 아는게 아닙니다. 


호응으로 알아야 아는 겁니다.

대칭적으로 아는 것은 자동차와 마차를 대비시키고


자동차와 배를 대응시키고 그런 식으로 아는 거죠.

호응적으로 아는 것은 그 자동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는 거죠.


대부분 뭔가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칭을 내세웁니다.

여자와 남자, 흑인과 백인, 동양과 서양 


이런 식으로 대칭시켜 아는 사람은 아직 모르는 사람입니다.

질과 입자를 대칭적으로 이해한다면 여전히 모르는 거죠.


밖에서 아느냐 안에서 아느냐입니다.

밖에서 아는건 눈으로 보고 아는 건데 관점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안에서 아는건 운전해보고 아는 건데 통제가능성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관점의 문제는 상대성 영역이므로 아는게 아닙니다.


통제가능성은 절대성 영역이므로 아는 거죠.

즉 안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거죠. 


난 짜장면을 안다고 하면 그 짜장면을 먹어봤어야 합니다.

이건 짬뽕이거 저건 짜장이지 하고 그림책에서 구분 하는 것은 다섯살 꼬마죠.


공직자가 말실수로 짤리고 그러는 것은 

통제가능성 위주로 말해야 하는데 그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아는 것은 관점이 개입해서 

상대가 다른 관점으로 받아치므로 논쟁이 교착됩니다.

[레벨:4]암흑이

2017.03.04 (12:28:21)

둘이서 입자를 가지고 말 다툼을 하는데 화회를 하고 합의를 하면

그것이 선이고 사회의 시스템이군요.


아무래도 대칭에서 호응으로 관점을 넘기지 못하는 것은
권선징악 악과 선이 명료하게 나누어져 있다고 착각하는 거겠죠.
저 또한 절대성이라는 것을 선행에서 찾아 보려고 애썼지만
그게 허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다음 단계를 찾게 되더군요.

저 자신을 놓고 봤을 때 패턴은 동일합니다.
권선징악을 알기 전에는 열정이 없었지만
알고 나니 열정이 생기고
그게 허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다시 열정이 사라졌죠.
앞으로 남은 건 시간의 호응이며
그것을 알게 된다면 다시 열정이 생깁니다.
다만 호응이라는 녀석은 통제 가능성 즉 실력을 요구하는데
그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호응과 저는 어색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력은 혼자서 갖출게 아니며
만남이나 사건 같은 외력(입자)과 충돌해야 합니다.


공간에서 이것을 선택하고 저것을 거절하라는 말에는 ‘조까!’ 한 방을 날려주지만, 시간에서의 호응은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다.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시간의 호응은 단지 공간의 대칭이 싫기 때문에 같이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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