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03 vote 0 2020.08.28 (20:52:42)

    진심어린 사과는 우주 안에 없다


   NC가 지명했던 선수의 영입을 철회했다. 피해자는 이런 결과를 원했을까? 보복하고 싶었을까? NC는 무엇을 얻었을까? 모두가 패자고 승자는 없다. 피해자는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 그런데 진심 어린 사과라는 것은 우주 안에 없다. 결국 답은 없는 것이다. KBO를 해체할밖에.


  필자는 NC구단에서 일어난 사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은 반복된다.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진심 어린 사과는 피해자 입장이고 KBO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진심 어린 사과로 NC구단은 선수 한 명을 얻고 피해자는 만족하겠지만 사건은 다른 데서 재발한다. 


   일본에서는 오사카의 PL학원고가 폭력으로 유명하다. 재일교포가 많다는 설이 있다. 86년에 왕따로 사망사고가 일어난 후 2013년까지 야구부 폭력이 계속되다가 지금은 휴부가 되었다. 20년 동안 해결을 못 하다가 결국 폐부하게 되었다. PL학원고라고 사과를 안 했을까? 


   사망사건까지 있었는데도? 진심 어린 사과를 했는데도 반복된 것이다. 20년간 해결을 못 하다가 결국 야구부를 폭파한 것은 원래 이게 안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당사자 차원이고 이와 별개로 KBO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언제까지 선수만 희생시킬 것인가?


   PL학원고도 무수히 사죄했을 텐데 전부 거짓사과였다고 봐야 한다. 진심 어린 거짓말과 세련된 연기가 있을 뿐이다. SNS 시대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꺾어놓으려는 권력의지가 있다. 피해자는 무기가 생겼고 인간은 무기가 생기면 반드시 휘두른다. 여기서부터 물리학이다.


   말릴 수 없다. 흥분하면 답이 없다. 구조론은 통제가능성을 판단한다. 통제수단이 없다. 거리에 CC카메라가 쫙 깔린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일밖에. 선배가 후배를 때린다. 맞은 후배가 또 다른 후배를 때린다. 후배가 폭로한다. 


   때린 자는 반성하지 않는다. 나는 맞고도 참았는데. 다들 그렇게 하니까 원래 그렇게 하는 줄 알고 그랬는데.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해도 시키니까 한 거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해결보든가 구단에서 담당직원을 두고 조직적으로 나서든가 해야 한다.


   에이전트를 고용하든가 반드시 중재자를 끼워야 한다. 푸이그가 사고를 쳤다면 에이전트가 대신 해결했을 것이다. 많은 경우 돈이 진정성이다. 트럼프도 돈으로 무마한 것이다. 결국 뒤탈이 났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만나면 거의 틀어진다. 진정성? 그런 것은 원래 없다.


   말이란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직접 대면하면 양쪽 다 흥분해서 아와 어의 차이를 따지다가 폭발한다. 절대 중재자 없이 당사자가 만나면 안 된다. 전문가가 나서서 가해자가 할 말을 미리 연습시켜야 한다. 연습 되지 않은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해자가 '나도 선배들한테 맞다 보니 실수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고 변명하면 가해자는 그걸 사죄로 여기지만 피해자는 핑계로 여긴다. 더 흥분하게 된다. 장난하냐? 그걸 사과라고 하는 말이야? 감정이 격앙되면 수습은 불가다.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운동부에 그런 선수가 있겠는가? 삼국지의 한 장면이다. 조조가 여포를 잡았는데 여포의 오른팔과 왼팔은 장료와 고순이었다. 장료는 말이 청산유수였다. 목숨을 구걸하는 여포를 맹비난해서 조조의 눈에 들었다. 장료는 살았다. 그런데 함진영의 고순은 과묵한 사람이었다. 


   전투 중에도 오로지 고함을 지르는 함!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700명으로 이루어진 노궁부대 함진영을 함 한마디로 부렸다. 조조가 고순은 몇 마디 질문을 던졌으나 고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과묵한 사람이다. 고순은 진궁과 함께 죽었다. 말을 못 해서 죽었다. 


   이런 문제는 반드시 전문가의 중재가 필요한데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은 누가 자리를 주선해 줘서 해결된다. 일반인들은 연습해 본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 한다. 당황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엉뚱한 말을 한다. 말실수를 저질러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어서 나온다. 


   사과를 여러 번 해본 사람이 넙죽넙죽 사과는 잘하지만, 재범을 저지른다. 사과를 안 하는 사람이 타격받아서 그 일을 잊지 않기 때문에 재범을 저지르지 않는다. 사과를 잘하는 사람은 심리적 타격이 전혀 없다. 나도 사과를 할 줄 모른다. 숨이 턱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인생에 사과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시피 하다. 그럴 일을 만들지 않는다. 단지 말을 못 해서 못한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분노를 유발하는 일은 필자에게 흔히 있다. 그래서 나는 사차원 그레인키를 이해한다. 그레인키에게 사과를 받아내기는 어려울 거다. 


   나는 사과를 넙죽넙죽 잘하는 비위 좋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과를 받았다고 용서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 사람이 처한 형편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미통당이 사과한다면 받아들이겠는가? 전두환이 사죄를 하면 받아들여야 하나? 요식행위고 환경이 바뀌면 표변한다.


   세상이 변했다. SNS시대에 피해자는 무기가 생긴데다 세상을 바꿀 찬스를 놓칠 이유가 없다. 별거 아니지만 내가 떠들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 가만있지 않는다. KBO가 나서서 중재팀을 두어야 한다. 사과해도 변호사 끼고, 전문가 끼고, 중재인 두고 해야 진정성이 있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사과의 말이 쉽게 나온다.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 직접 만나서 사과하면 용서한다는 것은 절대 좋은 대응이 아니다. 사람을 굴복시키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 전두환을 무릎 꿇리는 그림을 연출하여 쾌감을 느끼는 형태로 보상받으려고 한다면 좋지 않다. 


   나라면 전두환에게 살려달라고 빌지 말고 당당하게 총 맞고 죽으라고 권하겠다. 많은 경우 심리적 보상보다는 차라리 물질적인 배상이 낫다. 진실된 참회를 보고 싶겠지만 속임수 연기에 넘어가서 나중에 분통을 터뜨리게 된다. 진실로 참회하는 자는 사죄의 말을 잘 못 한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와장창@#$%^&*. 30년 전에 틀어지고 이후 30년 동안 생각해 봤는데 그때 내가 뭐라고 말했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마 눈을 마주치지 않는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8.29 (04:57:53)

" 세상이 변했다. SNS시대에 피해자는 무기가 생긴데다 세상을 바꿀 찬스를 놓칠 이유가 없다."

http://gujoron.com/xe/1231937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566 짐 차노스와 일론 머스크 김동렬 2023-11-25 1294
6565 테크노 낙관주의 비판 1 김동렬 2023-11-24 1154
6564 백마 타고 오는 사람 1 김동렬 2023-11-24 1446
6563 전두환 11월에 죽다 1 김동렬 2023-11-23 1617
6562 중국 축구 수수께끼 풀렸다 1 김동렬 2023-11-23 1516
6561 클린스만 잘한다 김동렬 2023-11-23 1133
6560 의사결정 원리 김동렬 2023-11-22 1177
6559 한국인들에게 고함 1 김동렬 2023-11-22 1642
6558 허세의 종말 3 김동렬 2023-11-21 1607
6557 인류 최고의 발명 1 김동렬 2023-11-20 1761
6556 클린스만의 명암 김동렬 2023-11-20 1469
6555 시공간은 휘어지지 않는다 김동렬 2023-11-19 1351
6554 LG 구광모 회장 잘할까? 김동렬 2023-11-19 1348
6553 인간의 응답 김동렬 2023-11-16 1880
6552 재벌야구 실패 차명석 야구 성공 김동렬 2023-11-16 1712
6551 신의 진화 김동렬 2023-11-15 1458
6550 인요한님 맞을래요 김동렬 2023-11-14 2037
6549 염경엽 야구의 해악 김동렬 2023-11-14 1463
6548 슈뢰딩거의 고양이 3 김동렬 2023-11-13 1901
6547 인간의 비극 김동렬 2023-11-12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