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67 vote 0 2021.01.10 (18:57:18)

    자유에는 방향이 있다


     자유는 에너지다. 에너지는 방향이 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원인에는 결과가 따르고, 행위에는 맞대응이 따르고, 게임에는 승패가 따른다. 쌍방의 맞대응에 의한 피아간의 상호작용은 게임의 법칙에 지배된다. 우리는 이기는 게임을 해야 한다. 지면 퇴출된다.


    자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미 게임에 참여해 있는 상태다. 어린이는 가정이라는 게임에 속해 있고, 국민은 국가라는 게임에 속해 있고, 직원은 회사라는 게임에 속해 있다. 게임 속에 있으므로 제약이 따른다. 축구 선수는 어느 방향이든 패스를 날릴 수 있다. 


    어린이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다. 회사원은 업무 시간에 땡땡이를 칠 수 있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게임에는 감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단은 자유롭게 헤딩을 했는데 퇴장당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은 날아갔다. 


    자유에 책임이 따르는 것은 맞다. 그런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감독이 선수에게 하는 말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미 게임에 속해 있기 때문에 게임의 규칙을 따른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권력을 준 다음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처분한다. 처분의 기준은 생산력이다. 집단의 목적은 생산력의 제고이므로 생산성이 기대치에 미달하면 처분한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는 이유는 사회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솔로보다 커플이 낫다.


    커플이 되었는데 이득이 손실보다 작으면 깨진다. 빵점을 맞으면 용돈을 깎아버린다. 숙제를 안 하고 노는 것은 자유지만 백 점을 맞아와야 한다. 공을 차는 것은 자유지만 골을 못 넣으면 벤치 신세다. 박치기는 자유지만 마테라치가 월드컵을 들고 약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말하는 사회적 자유는 다른 것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는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게임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직 게임에 들어가지 않았다. 게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어른들의 자유다. 


    누구든 게임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겨야 한다. 술을 마시면 술을 이겨야 하고 담배를 피우면 담배를 이겨야 한다. 술에 지면 알코올중독자가 된다. 담배에 지면 중독된다. 게임의 목적은 생산성이므로 지는 게임은 필요가 없다. 자유는 본인이 의사결정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결정권을 빼앗긴다. 카지노가 나를 결정한다. 술이 나를 통제한다. 거꾸로 결정을 당한다. 권력을 상대방에게 빼앗긴다. 이기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다. 무조건 내가 이기는 구조를 만들고 게임을 해야 한다. 도박꾼은 도박에 지고, 술꾼은 술에 진다.


    술이 결정하고, 도박판이 결정하고, 마약이 결정한다. 내가 이기면 다음 게임에 초대되고 지면 결박된다. 자유를 빼앗긴다. 이익은 게임의 주최측이 가져간다. 경마장과 같다. 결국 모든 돈은 마사회가 가져간다. 일부는 세금으로 국가가 가져간다. 게임은 상대가 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맞대응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표현하면 상대방도 표현한다. 내가 집회하면 상대방도 집회를 한다. 누가 이기는가? 머리 좋은 놈이 이긴다. 젊은 놈이 이기고 강자가 이긴다. 자유는 공평하지가 않다.


    자유는 강자에게 유리하다. 젊은이에게 유리하다. 노동자 계급이 자유주의에 회의적인 이유다. 결국은 주최측이 이익을 가져간다. 주최측은 누구인가? 인류문명이다.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은 문명이라는 게임의 주최측이 옥석구분에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서로 경쟁시켜 놓고 똑똑한 자를 선별한다. 자유는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재주있고, 강한 자를 감별하는 장치다. 자유국가가 독재국가보다 강한 이유는 이 시스템이 똑똑이와 머저리를 잘 걸러내기 때문이다. 게임은 이기거나 진다. 51 대 49다. 양의 피드백을 이룬다.

 

    음의 피드백이면 시스템이 붕괴한다.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은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양의 피드백을 도출했다는 증거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후진국에 자유가 없는 이유는 자유를 찾다가 멸망하기 때문이다. 구소련처럼 자유를 찾다가 망한다. 


    중국이 개방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자유는 좋은 집단에 좋은 것이다. 뉴욕이나 LA는 좋은 집단이므로 리버럴하다. 뉴욕의 평균 아이큐는 120이고 텍사스는 85라는 설이 있다. 미국 남부의 기독교 벨트는 상대적으로 질이 좋지 않은 집단이므로 분위기가 억압적이다.


    결국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집단의 생산성이다. 전시에는 자유가 제한된다. 배급제 때문이다. 전시는 생산성이 낮으므로 자유가 없다. 리버럴한 자유는 생산성이 높은 젊고 똑똑하고 강한 집단 특히 선진국 중에서도 뉴욕이나 LA와 같은 대도시 주민의 특권인 것이다.


    촌놈들은 자유가 없다. 생산성이 낮은 지역은 자유를 줘도 교회에 결박된다. 놀아라 해도 어디 안 가고 교회에 모여 있다.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 우리는 세 가지 자유를 구분할 수 있다. 주최측이 게임을 설계하는 진정한 자유, 선수가 게임에 참가하는 사회적 자유. 


    게임에 참가한 선수의 개인적 자유다. 공통점은 생산성의 제고라는 전제를 가진다. 생산성이 비용을 초과하면 자유롭고 비용이 생산성을 초과하면 저절로 교회에 결박되고, 가부장에 결박되고, 재벌에 억압되고, 기득권에 결박된다. 제 발로 찾아가 국힘당 노예가 된다.


    진정한 자유는 주최측의 자유다. 주최측은 게임을 설계한다. 창의하고 창업하고 낳는다. 자유는 권력과 동의어다. 창의한 자에게 권력이 있다. 소유권, 선점권, 특허권, 저작권 따위다. 자녀를 낳은 부모에게도 권력이 주어진다. 회사를 창업한 사장들도 권력이 있다. 


    부하를 거느린 보스에게도 권력이 있다. 주최측의 자유다. 그들은 도박장을 열고 타짜를 고용하고 선수를 모은 다음 수수료를 뜨는 기술을 쓴다. 마사회나 정선카지노나 은행이나 보험회사나 후진국의 독점재벌이 쓰는 기술이다. 절대로 망하지 않는 구조를 만든다.


    그러다가 권력측에 밉보여 털리기도 한다. 국가도 일종의 그런 것이다. 최종보스의 기술이다. 자신은 나서지 않고 부하를 내보낸다. 부하를 꺾으면 돈으로 회유해서 고용해 버린다. 박정희가 차지철과 김재규를 경쟁시키는 기술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이득은 내거다.


    국민이 여야를 경쟁시키는 것도 같다. 어느 당이 이기든 이득은 최종적으로 국민에게로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자유는 게임에 참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자유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들이다. 진보진영의 리버벌한 자유다. 


    이들은 도시에 거주하며 민주당을 지지한다. 젊고 똑똑하고 힘이 넘친다. 이들은 주최측이 아니다. 단지 자신이 승산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한 번은 게임에 져도 반복하면 결국 게임에 이긴다. 초반에는 고생하지만 경험치가 쌓여 베테랑이 되면서 자유를 얻는다. 


    초반에는 에너지가 있으므로 고생을 감수하고, 중반에는 베테랑이 되어 승리하므로 자유를 즐긴다. 늘그막에는 지는 게임을 해야 하므로 말로는 자유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타인을 억압한다. 실력으로 이기지 않고 구조를 비틀어서 반칙을 한다. 기득권 텃세행동이다.


    자신의 실력을 플러스하기보다 상대의 기회를 마이너스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고 거저먹는다. 게임을 기피한다. 이들은 자유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유의 파괴자다. 이들은 되도록 게임의 총량을 줄이려고 한다. 인생을 서울대 입시와 강남입성만으로 결판낸다.


    옛날에는 탄생할 때 양반이냐 상놈이냐 신분제도 한 번으로 게임을 끝내려고 했다. 혹은 피부색으로 결정하자. 남녀 성별로 결정하자. 경상도냐 전라도냐 지역으로 결판내자. 등등 싸우지 않고 거저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 이들의 당명은 자유당인데 자유의 적이다.


    세 번째 자유는 게임에 참여한 상태에서 주어지는 개인적 자유다. 자유에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세 번째 자유에 해당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시스템을 장악하고 게임에 진입한 선수들을 길들이기 하는 것이다. 겁을 줘서 상대를 고분고분하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자유에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은 생산성의 증대 방향이다. 효율이 비용을 초과하면 자유가 있다. 높은 자유와 중간 자유와 낮은 자유가 있다. 높은 자유는 게임을 관리하는 주최측이며, 중간 자유는 게임을 앞둔 젊은이들이며, 낮은 자유는 이미 게임에 뛰어든 자다. 


    감옥 안에도 자유는 있다. 방귀 뀔 자유와 하품할 자유가 있다. 그다지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자유는 에너지다. 에너지는 방향이 있다. 에너지는 효율적인 방향으로 기동한다. 비효율로 가면 에너지 손실로 죽기 때문이다. 연비가 나쁜 차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만다.


    자유를 원하거든 이기는 방향으로 가라. 에너지는 운동의 원인이다. 운동하는 방향이 있다. 에너지는 외부의 개입이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저절로 움직일 수 있는 코스는 제한되어 있다. 우주공간에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은 특별히 제한되어져 있다.


    우주공간에서 방향을 바꾸려면 먼저 에너지가 중심의 코어를 향하도록 구조를 세팅해야 한다. -><- 의 형태로 작용과 반작용을 조직해야 한다. 이 상태에서 다시 하나를 꺾어야 한다. 처음부터 어떤 -> 방향으로 힘을 작용할 수 없다. 지구에서는 중력 덕에 가능하다. 


    우주에는 중력이 없다. 지렛대의 받침점이 없다. 힘을 특정한 방향으로 보낼 수 없다. 만약 우주 공간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힘을 가하고자 한다면 먼저 중심으로 힘을 보냈다가 반작용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제한이 따른다.


    주최측의 자유 – 생존권, 인권, 행복추구권, 소유권, 선점권, 저작권, 특허권

    진정한 자유, 깨달음의 자유, 창의하는 자의 자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우위, 창업한 자의 자유, 보스의 자유, 절대적인 권력적 우위, 부하를 경쟁시킨 다음 어느 쪽이 이기든 이득은 자신을 향하도록 구조를 설계한다. 이는 자연법칙에 근거한다. 닫힌계에서 에너지의 방향을 정할 때 에너지는 반드시 중심의 코어를 거쳐 가므로 코어를 지배하는 자는 에너지를 컨트롤할 수 있다.


    사회적 자유 –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리버럴한 자유

    상대가 있는 게임에 참여할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이 자유는 젊고 똑똑하고 강한 사람에게만 크게 열려 있다. 생산력이 높은 도시민이 리버럴한 자유를 누린다. 게임에 이기면 자유를 얻고 지면 퇴출된다. 한번은 져도 반복하면 경험치가 쌓여 결국은 이긴다. 51 대 49로 양의 피드백이 일어나도록 승률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 자유 – 사생활의 자유

    가정이든 국가든 회사든 어느 집단에 소속된 사람이 집단을 대리하여 의사결정하는 자유가 있다. 마음대로 할 수는 있지만 결과가 나쁘면 혼난다. 개인은 집단의 일원이며 언제든 집단을 대리하고 대표할 수 있다. 단 의사결정을 잘해야 한다. 자유를 누리고 백 점을 맞으면 된다. 빵점을 맞으면 다음날 용돈이 없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이 경우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주최측의 자유는 인간의 고유한 권력이며 사회적 자유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며 개인적 자유는 사생활이다. 자유는 생산성의 증대라는 일방향으로 작동한다. 자유의 시스템은 똑똑한 집단을 발굴하여 인류의 진보에 기여한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를 싫어한다. 


    어차피 자기에게는 돌아오는게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차라리 기득권의 노예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들의 당명은 자유당인 이유는 자유를 정당에 위탁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유위탁당이다. 즉 자유가 없는 것이다. 자유는 에너지를 컨트롤하는 시스템이다.


    자유는 막연히 외칠게 아니라 시스템을 굴려 효율을 증명하면 된다. 애초에 그럴 기회가 없으므로 된다. 유럽처럼 나라가 잘게 쪼개져야 자유가 흥하는 이유다. 실험이 많기 때문이다. 자유가 억압보다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된다. 흥할 자유만 흥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747 직관 논리 믿음 new 김동렬 2024-03-29 98
6746 윤석열 심판이냐 이재명 심판이냐 new 김동렬 2024-03-28 436
6745 한동훈 최후의 발악 1 김동렬 2024-03-28 703
6744 지구촌의 빡대가리들 김동렬 2024-03-28 637
6743 윤석열 잘 들어라. 2 김동렬 2024-03-27 1359
6742 한동훈의 늙은 침팬지 행동 김동렬 2024-03-26 1046
6741 박근혜에게 매달리는 한동훈 2 김동렬 2024-03-26 1136
6740 조국돌풍의 이유 1 김동렬 2024-03-25 1471
6739 직관의 힘 김동렬 2024-03-25 635
6738 말 한마디로 판세가 바뀐다고? 1 김동렬 2024-03-25 836
6737 김씨 흉노설 image 김동렬 2024-03-24 888
6736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김동렬 2024-03-24 1050
6735 신의 직관 김동렬 2024-03-23 847
6734 바보를 바보라고 불러야 한다 김동렬 2024-03-22 1026
6733 인류문명 김동렬 2024-03-22 619
6732 조국인싸 동훈아싸 image 김동렬 2024-03-22 1155
6731 과학자의 조국 image 1 김동렬 2024-03-21 1059
6730 조국이냐 한동훈이냐 김동렬 2024-03-21 1050
6729 바보가 너무나 많아 김동렬 2024-03-21 812
6728 밸런스와 엔트로피 김동렬 2024-03-20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