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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803 vote 1 2018.05.18 (16:43:48)

 

    삶의 의미는 미학에 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는 시간적인 인과의 형태를 가진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자식에게 투자한 만큼 효도로 보상받겠다는 식이다. 준 만큼 받거나 혹은 이자 쳐서 받아내면 그게 의미다. 투자했는데도 보상받지 못하면 그것이 허무다. 허무를 극복하고 의미를 모색하는게 철학이지만 인간은 결국 보상받지 못하고 죽는다.


    동물은 새끼가 자라면 버린다. 어미 개는 두어 달 키우고 새끼 강아지를 쫓아낸다. 동물은 보상받지 않는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생 80년 투자의 보상을 받아내는데 성공하는 사람 많지 않다. 의미를 찾는 것은 보상을 찾는 건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맹랑함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자. 의미를 찾는 것은 부모를 찾는 것이다.


    숨은 전제를 찾는 것이다. 원인에서 결과를 찾는게 아니라 결과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당신 존재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이 의미다. 당신은 버려진 채 고아로 태어났다.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개는 두 달이면 새끼를 버리지만 인간은 15살까지는 키워준다. 10살만 되면 자녀를 버리는 부족민이 있다지만 문명사회에서는 다르다.


    갈수록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는 기간이 길어진다. 인간은 자라서 부모가 된다. 부모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녀에게 미션을 전달한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가는 계보를 완성하기다. 그래서 얻어지는 것은 족보의 그 자체다. 그렇다. 인간은 족보를 찾는 존재다. 족보를 만들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족보가 숨은 전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신의 손끝이 닿듯이 연결을 완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임무의 수행이며 임무를 완성시키면 미학이 드러난다. 미학을 완성시키는 것이 의미다. 기사도의 미학은 자신이 섬기는 주군의 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기사의 임무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것이라 전율이 있고 의미가 있다.


    선비의 미학은 무엇인가? 형가는 자객이다. 그것은 선비의 미학이 아니다. 혼자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자서는 복수를 완성했다. 그것이 선비의 미학은 아니다. 아름답지가 않다. 퇴계는 시골에서 완장 찬 샌님이다. 역시 선비의 미학은 아니다. 만만한 곳에서 주름잡는 짓이다. 주군을 위해 죽는 것은 일본의 충신장이다. 역시 선비의 미학은 아니다.


    관우가 유비를 찾아가는 것이 멋있지만 선비의 미학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행동에 불과하다. 백호 임제는 칼 한 자루와 거문고 하나를 매고 천하를 주유하였다. 개인의 예술적 취향일 뿐 선비의 미학은 아니다. 그렇다. 미학은 형가에게 있고 오자서에게도 있고 퇴계에게도 있고 관우에게도 있고 충신장에도 있고 임백호에게도 있지만 선비의 미학은 아니다.


    기사도가 미학인 이유는 그것이 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섬기는 주군의 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서화담과 황진이의 로맨스는 선비의 미학을 추구한 것이다. 주군의 부인을 사랑하려면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대부가 기생과 연애하면 당연히 평판이 깎인다. 잃는 것이 있어야 한다. 거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운명이 개입한다. 신이 개입한다. 심판대에 선다. 거기에 미학이 있다. 의미는 그렇게 세상의 중심과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이지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다. 춘향과 몽룡의 만남은 조선왕조 분위기에 가당치 않다. 불가능하므로 아름다움이 있다.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둘 뿐 만나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긴장된 운명의 현을 건드려야 한다.


    악사가 팽팽하게 긴장된 현을 튕기듯이 긴장된 운명의 현을 건드려 천하에 큰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 미학이다. 당신은 운명적으로 운명의 장소에서 운명의 시점에 운명의 사람을 만날 수 있나? 선비의 미학이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보상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미학을 추구한다. 만남에 미학이 있다. 하나의 만남이 다른 만남으로 연결해 족보를 만든다.


    생물학적 족보가 아닌 미학의 족보다. 관우가 유비를 찾아간 것은 미학이 아니지만 유비 관우 장비 셋이 도원에서 만난 것은 미학이다. 퇴계가 시골에서 완장질 한 것은 미학이 아니지만 거기서 누군가를 기다린 것은 미학이다. 형가가 자객질을 한 것은 미학이 아니지만 운명을 시험한 것은 미학이다. 운명을 시험하고 사건의 족보를 만드는 것이 미학이다.


    하나의 사건이 더 많은 사건으로 이어진다면 사건과 사건의 연결에 족보가 있고 미학이 있다. 그것은 운명을 거스르는 만남으로 가능하다.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불가능한 임무여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보상받으려는 것이니 미학이 아니다. 신의 개입을 끌어내고 민중의 개입을 끌어내고 천하의 개입을 끌어내는 만남이 미학이겠다.  

    

    운명적인 만남으로 신의 개입을 끌어내고 민중의 개입을 끌어내어 센세이션을 일으킬 때 에너지는 극적으로 증폭된다. 사건은 다른 사건으로 복제된다. 거기에 사건의 족보가 있고 미학이 있다. 아름다운 완성이 있다. 의미는 그곳에 있다. 만나 무언가 이루는데 있지 않고 만남의 완성에 있다. 미학적인 만남으로 우리는 적어도 사건을 연결시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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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다원이

2018.05.18 (22:34:31)

다른 그 무엇이 아닌, 구조론 자체의 원리에 따른 궁극의 완전성의 추구. 그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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