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7483 vote 0 2014.03.18 (23:54:30)

    그대가 순수한 어린이였을 때 처음 본 세상은 호주머니 속의 공깃돌과 같이 만만한 것이었다. 세상은 좋은 놀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는 겁 먹지 않는다. 등 뒤에 지켜보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떳떳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어느날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대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였을 때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나 쉽지가 않다. 온통 찢어져 있고 사방으로 끊어져 있다. 움켜잡으려 하면 부서져 버리고, 찾으려 하면 숨어버린다.


    세상을 공깃돌처럼 만만하게 다루려면 자신도 세상만큼 커져야 한다. 끊어진 것을 다시 이어야 한다. 낱낱이 이어서 커다란 형태를 일으켜세울때 마침내 세상과 내가 대등해진다. 가능한가? 겉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면 가능하다. 과연 연결되어 있는가?


    감히 그렇다고 말한 사람이 예수다. 보이지 않게 사랑으로 링크되어 있다. 또 공자다. 보이지 않게 인의로 연결되어 있다. 인仁은 아는 사람과 연결하고, 의義는 모르는 사람과도 연결한다. 사람 사람이 연결될 뿐 아니라 사람과 자연도 연결되어 망라된다. 그것은 노자의 도道다.


    도는 길이며 길은 잇는다. 이어서 하나가 된다. 내 안에 연결될 주소지가 있다면 그것은 덕德이다. 도는 회로와 같고 덕은 반도체와 같다. 도의 스위치를 켤 때 덕의 전구에 불이 켜진다. 그리하여 세상과 내가 대등해지면 신 앞에서의 단독자로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연출된 그림이 있다. 인간과 세상이 현악기의 활과 현처럼 어우러진 풍경이다. 인간은 돌멩이나 그루터기처럼 부러지고 단절되어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팽팽하게 조여진 악기의 현처럼 긴장되게 링크된 팔팔하게 살아있는 존재다. 살짝 건드려도 깊은 소리를 토한다.


    그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다.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서 그려보인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에서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상호작용이다. 에너지의 순환이다. 철학의 대전제는 이렇듯 모두 연결되어 에너지를 태우고 상호작용하는 커다란 그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악보의 작은 음 하나에도 교향곡 전체의 엄중한 긴장이 걸려있다. 김연아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작은 동작에도 전체의 동그라미가 숨어 있다. 결코 넘어지지 않는 세그웨이의 자이로스코프처럼 팔팔하게 움직이므로 오히려 안정되고 탄탄하다. 한 점이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다.


    그러한 관점과 시야가 철학의 대전제가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교향곡의 음과 음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면? 김연아의 동작 하나하나가 실은 없어도 되는 군더더기라면? 활과 현이 만나지 않는다면? 세상과 나의 관계가 팽팽하지 않다면?


    내 안에 쉴새없이 돌아가는 자이로스코프가 없다면? 철학은 존재가 없다. 예수의 사랑이 없고, 공자의 인의가 없고, 노자의 도덕이 없다. 회로에 반도체 없고 세그웨이에 자이로스코프 없다. 바이얼린에 현이 없고, 피리에 리드가 없고, 교향곡에 화음이 없고, 그림에 소실점 없다.


    산에 정상이 있다는 것은 그 산의 전체가 한 덩어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산이 커다란 한 덩어리를 이루지 않는다면? 그 산의 정상은 없는 것이다. 학문의 정상인 철학은 없는 것이다. 인터넷처럼 죄다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포털사이트는 필요없는 거다.


    ‘아니야 내 생각은 달라!’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철학의 부정이다. 세상은 이 철학과 저 철학의 싸움이 아니라 철학과 비철학의 싸움이다. 세상은 이 이념과 저 이념의 투쟁이 아니라 이념과 비이념의 투쟁이다. 철학은 하나, 이념은 하나, 이상주의는 하나다.


    끊어져 있다면 의미가 없다.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 아니 그 전에 의미라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없다면? 의미가 연결이라면 가치는 연결하는 센터다. 도는 연결하고 덕은 연결되는 센터다. 도는 링크이고 덕은 사이트다. 링크가 없고 사이트가 없다면 인터넷도 없는 거다.


    존재는 가치의 그물코를 의미의 라인으로 연결한 하나의 네트워크다. 우주 안의 모든 물질은 빅뱅의 한 점에서 나왔다. 특이점이 없다면? 존재도 없고 물질도 없고 우주도 없는 거다. 인류는 모두 아담과 이브에게서 나왔다. 아담과 이브가 없었다면? 인류도 그대도 없는 거다.


    다른 철학을 말하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철학의 부정이다. 산의 정상을 부정하면 산의 존재가 부정된다. 산이 부정될 때 바다도 부정된다. 부분을 다르게 한다면서 실제로는 전체를 부인하고 있다. 잎을 부정한다면서 실제로는 뿌리를 부정하고 있다. 결국 자기부정까지 간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본래의 완전을 지향한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이며 본래의 연결을 지향한다. 마침내 소통에 의해 완전해진다. 막연한 소통이 아니라 제 소리를 내는 소통, 화음이 이루어지는 소통, 완전한 소통이어야 한다. 철학의 최종결론은 상호작용에 따른 소통이다.


    무작정 떠들어대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치려면 급소를 쳐야 소통이고, 연주하려면 화음을 이루어야 소통이며, 그리려면 소실점을 그려야 소통이고, 만나려면 대표자를 만나야 소통이다. 팀 안에서 맞는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소통이다. 마침내 전구에 불이 켜져야 소통이다.


    예수와 공자와 노자와 플라톤과 다빈치가 서로 다른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철학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고, 공자는 사회 안의 연결지점을 짚어냈고, 노자는 자연 안의 연결지점을 짚어냈다. 플라톤은 그것을 구상했고 다빈치는 그려냈다.


    문제는 비철학이다. 이상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비철학이다. 연결을 부정하는 것은 비철학이다. 돈으로 끊고, 힘으로 끊고, 차별로 끊고, 반칙으로 끊고, 무지로 끊는다. 끊는 것은 비철학이요 잇는 것은 철학이다. 다양성을 강조하며 다양하게 끊지 말라. 그것은 비철학이다.


    ###


    단세포들의 공식은 세상을 물질과 정신으로 나누고 물질을 자본편, 정신을 철학편으로 대칭시키는 것이다. 그게 끊는 행위다. 정신은 물질을 연주한다. 철학은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자본을 적대하는게 아니라 다스리는 것이다. 자본을 때려잡는게 아니라 제 위치를 찾아준다.   


[레벨:11]큰바위

2014.03.19 (00:38:07)

모든 인간은 철학자다. 

모든 인간은 신학자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철학을 거부하고, 신학을 거부한다.


스스로 포기하는 거다. 


그런 사람은 신을 논할 자격이 없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차우

2014.03.19 (09:24:06)

진보와 비진보의 투쟁.

[레벨:1]이경희

2014.03.19 (10:10:04)

말씀 감사합니다.

[레벨:5]msc

2014.03.19 (10:16:48)

철학,,,,철학,,,,소통인가....?아니면 존재인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3.19 (10:42:11)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철은 자석에 붙는데 왜 금은 붙지 않을까요?

사실은 금도 붙습니다. 


철은 일방향으로 붙고 

금은 양방향으로 붙는데 양방향으로 붙으면 상쇄돼서 자력이 관측되지 않는거지요. 


원래 모든 존재는 고유한 자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감추어지거나 그렇지 않거나입니다. 


모든 사람의 내부에 사랑이 있지만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면 그게 보이지 않는 거지요. 


철학은 그러한 잠재된 가능성을 일정한 방향으로 끌어내는 것입니다. 

자기애를 타자애로 바꾸고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소통이고 그 결과는 존재입니다.

막연한 소통이 아니라 방향성있는, 상호작용하는 존재라는 거지요. 


그것은 채팅처럼 계속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만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막연하게 소통하자고 할게 아니라 일단 카톡을 깔아야 한다는 거죠. 



[레벨:11]큰바위

2014.03.19 (18:57:42)

막연하게나마 소통을 하려는 사람은 그래도 좀 낫습니다. 

죽은 채로 걍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요. 


금은 양방향으로 붙는데 양방향으로 붙으면 상쇄돼서 자력이 관측되지 않는거.

그러기에 잠재된 가능성을 일정한 방향으로 끌어내는 거. - 이런 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발상의 글을 자꾸 세상에 내보내시면 

귀 있는 사람들이 들을 겁니다. 




[레벨:1]poison

2014.03.19 (12:15:33)

철학은 싸우지 않는다

싸우는 건 철학이란 간판으로 밥벌이하는 사람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6746 구조론 동영상 1 김동렬 2010-03-22 196447
6745 LK99 과학 사기단 image 김동렬 2023-08-07 70980
6744 진보와 보수 2 김동렬 2013-07-18 58185
6743 진화에서 진보로 3 김동렬 2013-12-03 58077
6742 '돈오'와 구조론 image 2 김동렬 2013-01-17 55984
6741 소통의 이유 image 4 김동렬 2012-01-19 55385
6740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image 13 김동렬 2013-08-15 54924
6739 관계를 창의하라 image 1 김동렬 2012-10-29 48565
6738 답 - 이태리가구와 북유럽가구 image 8 김동렬 2013-01-04 45435
6737 독자 제위께 - 사람이 다르다. image 17 김동렬 2012-03-28 44584
6736 청포도가 길쭉한 이유 image 3 김동렬 2012-02-21 42029
6735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image 3 김동렬 2012-11-27 41960
6734 구조론교과서를 펴내며 image 3 김동렬 2017-01-08 41811
6733 아줌마패션의 문제 image 12 김동렬 2009-06-10 41590
6732 포지션의 겹침 image 김동렬 2011-07-08 41079
6731 정의와 평등 image 김동렬 2013-08-22 40781
6730 비대칭의 제어 김동렬 2013-07-17 38803
6729 구조론의 이해 image 6 김동렬 2012-05-03 38713
6728 비판적 긍정주의 image 6 김동렬 2013-05-16 37865
» 세상은 철학과 비철학의 투쟁이다. 7 김동렬 2014-03-18 37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