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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590 vote 0 2009.02.18 (19:59:25)

신해철에게 조언한다면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씌어졌습니다.]

글쎄요. 꼴이 우스워지기는 했지만 사건 자체는 별 일이 아닙니다. 물의에 대해서는 공인(?)된 자세로 사과할 필요가 있겠지만, 한동안 조용히 엎드리고 있으면 다 지나간 일이 되겠지요.

저는 연예인이 특별히 공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연예인은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고, 도덕을 연마해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아마 그의 교육관(?)과 배치되지도 않을 거고.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은 확실히 문제가 있지만, 그 또한 연예인보다는 기획사라든가 그런 광고를 제지하지 못하는 소비자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사의 공동책임입니다.

연예인의 대부업체 광고를 비난하려면, 광고를 허용한 정당부터 비판해야겠지요. 아니면 애초에 법을 뜯어고쳐서 대부업을 허용하지 말든지. 광고출연만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본질은 따로 있지요. 신해철이 광고를 해서가 아니라는 말. 대중이 연예인을 타깃으로 삼는 이유는 만만하기 때문입니다. 왜 연예인이 우리 사회에서 만만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이 점이 사건의 본질.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이라는데 왜 대통령이 연예인의 위신 하나를 지켜주지 못하고, 연예인이 사회의 만만한 존재로 되어 홍어 거시기로 당하고 있는데도 무력하게 보고만 있느냐입니다.

신해철이 빚이 많다는건 문제입니다. 신용을 지켜야지요. 그러나 이 또한 사사로운 이유가 있을테니 제 3자인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 사건이 개인화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왜 우리 사회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게 되었지요? 패리스 힐튼이라면 사생활까지 상품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김장훈이나 신해철 역시 그의 사적인 선행이나 정치성향까지 상품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게 본질. 연예인이 예술을 떠나서 사생활을 상품화하고 선행을 상품화 하고 정치노선을 상품화한다면 다치는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장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연예인은 세력화 되어야 합니다. 연예인 노조가 있다면 노조 차원에서 무리한 행동을 하는 연예인을 내부적으로 징계하고 외부에 대해서는 보호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지 못할까요? 징계도 없고 보호도 없고.

가수협회 따위가 있겠지만 존재감 없고.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연예인은 지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으며 만약 있다면 그 증거로 먼저 연예인 노조 혹은 그에 준하는 조직이 전면에 나서서 상황을 관리합니다.

신해철이 단기적으로 이 사건을 덮으려 하거나 혹은 자존심을 내세워서 고집을 피우거나 한다면 문제입니다. 보통 사람이 잘못해서 잘못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 하려고 해서 문제입니다.

왜 정당화 하려고 하느냐 하면 본인은 잘못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본인이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그의 교육관과도 배치되지 않을거고. 연예인도 먹고 살아야 할 것이니까. 뭘 잘못했지요?

빚 때문에 그랬다는 변명은 더 치졸할 뿐. 결론은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캐릭터나 입지나 사회적인 포지션을 분명하게 부각하는 것입니다. ‘난 이런 사람이야’ 하는게 있어야 하겠지요.

문제의 핵심을 볼까요? 우리 사회에서 신분을 관리해주는 조직이라면 정당, 종교, 학교, 노조, 시민단체가 있는데 말하자면 이들은 성역이지요. 그런데 신해철은 어떤 정당, 종교, 학교, 노조, 단체가 보호해주지요?

신해철은 노조원으로서 회비를 낸 적이 없고, 정당인 신분으로 활동한 적이 없고, 종교가 뒷배를 봐줄 일은 아니고, 강단의 교수 신분도 아니고. 이게 핵심입니다. 자 신해철이 도덕적으로 행세해서 어떤 이득을 얻지요?

신해철은 얻은 것이 없습니다. 얻는게 없는데 왜 도덕군자로 행세해야 하지요? 신해철이 학원광고에 출연한 것은 그의 틀려먹은 교육관과 맞는 행동입니다. 그럼 방송에서 잘난척 한건 뭐냐고요?

신해철이 방송에서 정당대표로, 혹은 노조대표로, 혹은 종교대표로, 혹은 교수로 나왔습니까? 신해철은 개인으로 나와서 떠든건데 그런건 안쳐주는 겁니다. 방송에서 잘 떠든다고 신분이 상승합니까?

정당대표로 나왔다면 정당 안에서 서열 올라가겠고, 노조대표로 나왔다면 노조위원장 되겠고, 종교대표로 나왔다면 종교지도자 되겠고, 학교대표로 나왔다면 부교수로 승진하겠고, 시민단체로 나왔다 해도 위상 올라가고.

신해철은 뭐죠? 뭡니까? 뭔데 나와서 떠드는 겁니까? 그냥 개인이다? 개인은 뭐 개인이니까 공인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돈벌이만 하면 되고. 정치적 성향도 상품화 되고 자선도 상품화 되고.

그게 다 연예인의 캐릭터 관리에 불과했다면? 뭐 캐릭터장사해서 본전 뽑았네요. 그러면 되었지 뭐가 불만이랍니까? 신해철은 큰소리 칠 자격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신용 쌓아서 단번에 팔아먹고 먹튀.

한동안 조용하게 있다가 또 나와서 떠들면 되겠지요. 그냥 버텨도 되고. 결국 제가 이 사이트에서 하는 이야기도 그런 겁니다. 우리는 정당도 아니고 종교집단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노조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지만.

그래도 연구소라고 타이틀을 붙였으니까 그에 따른 정체성이 있고 그 정체성이 강령을 대신해야 하겠고 그 정체성으로 사회적인 신뢰를 얻는 한편으로 우리 동지들을 보호해야겠지요.

신해철은 개인화된 현재의 모습에서 탈피해 노조에 가입하거나 교수 직함을 얻거나 정당인이 되거나 혹은 시민단체에 가입하거나 혹은 진보세력 안에서 어떤 서열을 얻어서 그것으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서, 그에 따른 이득을 얻어야 합니다. 그게 선진국 모델.

신해철의 문제는 그가 전혀 이득을 얻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뒷구멍으로 돈을 챙기는 거지요. 손해만 볼 수는 없잖아요. 노조에서 위원장이 되지 못했고 정당에서 금뺏지를 보장받지 못했고, 시민단체에서 어른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지성의 시스템’이란 그러한 조직, 혹은 조직에 준하는 공동체나 동아리에 소속이 되어서, 혹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강한 유대감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소속된 조직의 위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스스로 고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누구도 내게 잔소리할 자격은 없다. 누가 내게 돈을 줬냐 지위를 줬냐 학위를 줬냐 뭘 줬냐 내 인생 내맘이다.' 그러다가 다치죠.

당장 노조 만들고 정당이나 단체에 가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명시적으로 가입하지 않아도, 이미 신의 울타리 안에서 소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보의 편, 문명의 편, 역사의 편, 약자의 편, 신의 편에 선다는 마음가짐.

그런 자세를 가지면 문득 구름은 개이고 환하게 밝아집니다. 길은 저절로 분명해집니다. 그는 자신이 고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주변에 동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이 욕먹고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동지의 위신을 추락시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동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동지가 없어도 문명은, 진보는, 역사는, 사회는, 신은 그의 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설사 그의 교육관에 배치되지 않는다 해도 먼 길을 함께 가는 동지들의 교육관에는 배치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때가 그가 정신차리는 날이겠지요. 그는 여전히 자기만 챙기는 소아병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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