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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26 vote 2 2020.08.25 (10:40:38)

      

    나약해진 요즘 젊은이들


    꼰대들은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정신도 없고 패기도 없고 나약해졌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맞는 말이다. 젊은이들은 말한다. '기성세대가 알짜배기를 다 빼먹고 쭉정이만 남겨놓았는데 뭘 도전하라고?' 역시 맞는 말이다. 도전하려고 해도 도전할 만한 목표가 없다.


    건덕지가 없다. 하향평준화된다. 원래 그렇다. 인류는 어쩌다가 문명의 길로 들어와 버렸다. 이 길은 좋은 길인가? 아니다. 이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피할 수 없으므로 즐겨야 한다. 우리는 선과 악이니, 옳고 그름이니 하는 관념의 도피로 빠지기 쉽다.


    문제는 눈앞에 다가온 물리적 현실이다.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쉽게 관념으로 도피하지 말고 물리적 현실과 맞서라. 관념의 언어는 타인에게 전파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혼자 맞서야 한다. 지구 온난화 문제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가르치려 든다. '온난화 위기라고. 재앙이 눈앞에 닥쳤다고. 니들이 위기를 알아?' 미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인류는 더 다급해져야 우리 미국에게 매달릴걸. 조금 더 당해보라고.' 우리는 말로 설득하려 한다. '미국아! 제발 정신 차려. 이러다가 다 죽는다고.' 


    미국은 즐긴다. '죽어도 니들이 먼저 죽을걸.' 온난화가 되면 잉글랜드는 물에 잠기고 스코틀랜드인은 하이랜드에서 즐긴다. 온난화는 옳은가 그른가의 도덕문제가 아니라 70억 인류의 이해관계가 상충된다는 물리적 현실의 문제다. 말로 떠들어봤자 트럼프는 비웃을 뿐이다. 


    호랑이가 쫓아와도 동료보다 반걸음 앞서가면 된다. 중국도 비웃는다. '인류가 멸종해도 중국인은 어디서건 살아남을걸. 남은 자가 다 차지할걸.' 왜 진실과 대면하지 않고 말을 돌리는가? 문명이란 그런 것이다. 과거보다 행복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원하는 그림은 아닌 거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은, 성공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판타지와는 다르다. 편안한 것이 아니다. 꿈 같은 것이 아니다. 되레 긴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안락이 아니라 긴장을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상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긴장의 강도는 높아진다. 핵전쟁의 위기, 원자로의 위기는 24시간 인류의 숨통을 짓누른다. 가난은 제자리서 뺑뺑이를 도는 것이다. 무의미한 노가다를 끝없이 요구하는 일본 게임과 같다. 우리가 얻는 것은 노가다를 중단하고 상황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부단히 다음 스테이지로 올라서는 것이다. 얻는 것은 약간의 자부심과 자연스러움뿐이다. 보상을 기대했다면 어리석다. 구조론은 말한다. 뭐든 나빠지게 되어 있다. 진보한다는 것은 동시에 나빠진다는 것이다. 나서서 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당한다. 치인다. 끌려다니게 된다.


    피할 수 없으므로 이 길을 가야 한다. 인류는 어쩌다 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길로 들어와 버렸고 제 발로 뚜벅뚜벅 걸어가거나 남들에게 끌려가거나뿐이다. 큰 건수는 독립지사들이 먹었고 중간 건수는 민주화 형님들이 먹었다. 남은 건수는 성소수자 문제나 페미니즘 이슈다.


    생색이 나지 않는다. 이걸로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도전할 만한 목표가 아니라 적응해야 할 현실이다. 문명은 정복하는게 아니고 길들이는 것이며 동시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달랐다. 글자 아는 사람은 인구의 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긍지를 가졌고 사람들은 그들을 우러러보았다. 일단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수는 늙고 병들고 어렸다. 제정신이 아니거나 신체적인 장애가 있었다. 똑바로 서 있기만 해도 '한사람 몫을 하는 장골이구나' 하고 대접을 받았다. 글자를 알면 존경을 받았다. 


    글자 알면 마을의 모든 편지를 대필해야 한다. 필자 외삼촌은 시계를 볼 수 있다는 걸로 알아주었고 부싯돌을 잘 친다는 것만으로 명성을 얻었다. 시어머니 몰래 부싯돌 쳐달라고 소매를 잡아끄는 판이었다. 요즘이라면 나 부싯돌 좀 치는데 해봤자 알아주는 사람이 없잖아. 


    남보다 위에 오르기가 쉬웠다. 마을에 순사가 나타나 칼을 차고 거들먹거릴 때 ‘당신 누구요? 우리 마을에 왜 왔소?’ 하고 묻기만 해도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순사가 무섭지도 않은가 봐.' 하며 우러러보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단번에 마을 스타 등극이다. 그렇다면 도전할밖에.


    지금은 일론 머스크 콧잔등을 때려주고 와도 신문에 이름 내기가 어렵다. ‘전두환을 쳐죽여야지.’ 하고 결의를 다지던 우리 때와 다르다. 쳐죽일 그 무엇이 없다. 전광훈이 빽빽거리지만 소꿉장난이다. 좋아진다는건 나빠진다는 거다. 게임은 계속된다. 선택을 요구받는 것이다. 


    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대단한 보상은 없다. 있어도 의미가 없다. 세상은 많이 시시해졌다. 에너지 낙차는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천하로 나아갈밖에. 이 시골 바닥에는 건수가 없다. 촌구석에서 부싯돌 좀 친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세상은 변한다.


    1)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현실의 문제다.

    2) 자신이 게임을 주도하든가 남들에게 씹히든가의 선택뿐이다.

    3) 사회의 엔진을 만들고 그 엔진을 장악하고 통제하는게 정답이댜.

    4) 좋은 건수는 먼저 온 사람이 진작에 해먹었고 남은건 시시한 건수뿐이다.

    5) 먼저 온 사람이 해 먹고 판을 짜놓기 때문에 뒤에 온 사람은 말려들 수밖에 없다.

    6) 문제의 해결은 부분의 위기를 전체에 떠넘겨서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7) 물리적인 해결시스템을 만들고 그 과정에 인간은 길들여진다.

    8) 옳고 그르고 정답을 찍는게 아니라 서로 길들이고 길들여지며 계속 가는 것이다.


    문명은 야생마와 같다. 날뛰지 않으면 말이 아니다. 말은 길들여서 고분고분해진다. 동시에 내가 길들여져서 고분고분해진다. 새로운 말이 등장하고 또 한바탕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이 게임은 반복된다. 우리는 보상받으려고 하지만 그냥 이렇게 가는 것이다. 누군가 저질렀다.


    일은 터졌다. 피할 수 없다. 젊은이들은 불만이 많다. 천만에. 불만이 많은게 아니고 불만을 터뜨릴 대상이 없는 거다. 쳐죽일 전두환이 없다. 만만한 건수가 없다. 천하로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바닥은 더 기대할 것이 없다. 문제를 풀고 보상을 받는 게임이 아니란다.


    문제를 생산하여 다음 스테이지로 연결하는 것이다. 게임의 환경은 점점 나빠지므로 더 큰 단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8.26 (03:38:28)

"자신이 게임을 주도하든가 남들에게 씹히든가의 선택 뿐이다."

http://gujoron.com/xe/1230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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